콘서트 오르간의 매력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5월 27일 8:00 오전

SPECIAL

집중탐구

 

콘서트 오르간의 매력

올 하반기 오르간 연주회 감상을 위한 육하원칙!

 

 

교회가 아닌 공연장에서 만나는 오르간 연주는 어떻게 감상해야 할까. 오르간 공연을 보기 전 꼭 알아야 할 내용을 육하 원칙으로 준비했다. 아, ‘언제(When)’는 준비하지 않았다. 바로 지금, 콘서트 오르간의 세계로 떠나볼 테니까! 기획·총괄 이의정 기자

 

HOW 오르간 구조와 발전사

WHERE 국내 파이프오르간 공연장

WHAT 음반에 담긴 오르간

WHO 세계의 오르가니스트

WHY 벤 판 우스텐 인터뷰

 


 

HOW 어떻게 연주하나?

 

오르간의 구조와 발전사

한 명을 음의 거인으로 만드는 악기

 

독일 파사우 성 슈테판 성당

오르간은 서양음악에서 사용된 가장 오래된 악기 중 하나로, 악기를 넘어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여겨진다.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이나 이탈리아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 그리고 독일 파사우의 성 슈테판 성당 등 유럽의 유서 깊은 성당에 가면 한 벽면에 위엄 있게 설치되어 있는 오르간을 감상하며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러한 장엄한 모습에 걸맞게, 오르간은 오케스트라에 견주어질 정도로 다채로운 음색과 넓은 음역, 그리고 장대하고도 엄숙한 울림으로 많은 음악가와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기욤 드 마쇼(1300?~1377)와 모차르트(1756~1791)는 오르간을 “악기의 왕”이라고 지칭하였으며, 르네상스 시대의 작곡가이자 이론가로 악기들에 관한 글도 쓴 미하엘 프레토리우스(1571~1621)는 오르간을 가리켜 “모든 악기의 총합체”라고 말했다.

 

바람이 소리가 되어 나오기까지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성당

이탈리아 밀라노 두오모 성당

‘기구’ ‘연장’ ‘조직’이란 뜻의 그리스어 ‘오르가논(organon, όργανον)’에서 유래된 오르간은 오늘날 ‘(신체의)장기’ ‘(단체·조직의)기관’과 더불어 형용사로 ‘유기적’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오르간은 실제로 건반을 눌러 소리가 나기까지 마치 인체의 ‘장기’들처럼 여러 부분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매우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악기로, 수많은 악기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 정밀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오르간은 현을 때려서 소리를 내는 피아노와 클라비코드, 그리고 현을 뜯어서 소리를 내는 하프시코드와는 다르게, 건반악기 중에서 유일하게 현이 아닌 파이프에 바람이 들어가 진동하여 소리를 내는 관악기이다. 이처럼 건반과 파이프, 그리고 바람이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는 오르간은 파이프와 공기의 흐름을 제어하는 ‘윈드 체스트’, 그리고 건반이 있는 ‘콘솔’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콘솔은 연주자가 악기의 모든 것을 조정하는 부분으로, 손건반(manual), 발건반(pedalboard), 스톱(stop), 커플러(coupler, 서로 다른 건반을 연결하는 장치), 스웰 박스(swell box, 강약을 조절하는 장치)와 스웰 페달, 콤비네이션(combination, 기록한 스톱 조합을 소환하는 장치) 등의 장치가 있다. 일반적으로 손건반은 2~3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발건반은 피아노의 페달과는 다르게 30~32개의 건반이 저음역대를 담당한다. 더욱이 오르간은 하나의 건반을 누르는 것만으로도 두 개의 건반을 조작시킬 수 있는 커플러를 통해 서로 다른 음색을 동시에 소리 낼 수 있다.

 

오르간 연주의 질을 좌우하는 ‘스톱’

오르간의 스톱 ©부천아트센터

한편, 오르간을 가장 특색 있게 만드는 것은 ‘스톱’이다. 스톱은 특정 음색과 음높이를 내는 파이프에 바람이 들어갈 수 있게 열거나 막는 장치로, 어떤 스톱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소리의 색깔과 높이가 달라진다. 대부분의 스톱에는 악기의 종류와 숫자 등이 적혀있다.

우선 악기의 종류는 일반적으로 음색에 따라 네 가지로 나뉜다. 오르간 고유의 화려하고 선명한 음색을 갖고 있는 ‘프린시팔(principal)’ 계열과 부드럽고 섬세한 ‘플루트(flute)’ 계열, 그리고 비올라와 첼로 등의 현악기 음색을 갖는 ‘스트링(string)’ 계열, 마지막으로 오보에·트럼펫·바순 등과 같이 관악기의 리드를 진동시켜 소리를 내는 ‘리드(reed)’ 계열이 있다.

음색의 이름 뒤에 붙은 2’, 4’, 8’, 16’ 등의 숫자는 파이프의 길이를 의미한다. 따라서 같은 건반을 눌렀다고 하더라도 어떤 숫자가 붙은 스톱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음높이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가온 도를 눌렀을 때 8’이라고 쓰인 스톱을 선택하면 악보의 음과 같은 소리가 나지만, 4’라고 쓰인 스톱을 선택하면 파이프의 길이가 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원래 음보다 한 옥타브 높은 소리가 난다. 반대로 16’이라고 쓰인 스톱을 선택하면 파이프의 길이가 두 배가 되어 악보의 음보다 한 옥타브 낮은 음이 난다.

즉, 다양한 악기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오케스트라와 같은 다채로운 오르간의 음색, 그리고 다양한 음높이는 모두 스톱 장치로 조절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르가니스트들이 스톱을 조정하는 것을 실제 연주회장에서 보기 어렵다. 대다수의 오르가니스트는 연주 때 미리 설정해 놓은 스톱의 조합을 통해 보다 간편하게 음색과 음높이를 바꾸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오르간은 스웰 박스를 점진적으로 열거나 닫을 수 있는 스웰 페달로 소리의 점증적인 강약을 표현할 수도 있다.

 

고착하지 않고, 변화하다

카바예 콜

오르간은 중세 시대부터 서유럽의 교회 예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장엄한 음량과 음색은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효과적이었기에, 오르간 음악은 오랫동안 종교음악에 한정되어 있었다.

18세기에는 폭넓은 음색과 장엄한 외관을 갖춘 대형 오르간들이 유럽 전역에서 제작되기 시작하였으나, 여전히 오르간 음악은 교회 오르간 연주자들에 의해 주도됐다. 독일 뤼베크의 오르가니스트였던 북스테후데(1637~1707)나 뤼네부르크의 뵘(1661 ~1733), 그리고 아른슈타트와 뮐하우젠의 바흐(1685~1750) 등은 18세기 독일 오르간 음악을 이끈 작곡가로, 이들은 모방적인 대위법을 빈번하게 사용하였다. 반면 프랑스의 오르간 작품들은 독일과는 다르게 작은 규모로 복잡한 대위법보다는 음색과 대비에 집중했다.

오르간 음악은 19세기에 접어들면서 프랑스의 오르간 제작자인 카바예 콜(1811~1899)에 의해 괄목할 만한 변화를 맞이하였다. 오르간의 제작·연주·작곡에 획기적인 발전을 꾀한 카바예 콜은 오르간이 오케스트라처럼 부드럽고 즉각적인 다이내믹 변화가 가능하도록 개량한 ‘심포닉 오르간’을 탄생시켰다. 심포닉 오르간은 보다 많은 스톱으로 다양하고 풍성한 음색을 낼 수 있었고 음색의 대비와 조화를 용이하게 제어할 수 있어서, 오르간이 교회 밖의 연주회장에서도 빛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카바예 콜의 혁신에 영감을 받아 세자르 프랑크(1822~1890)와 루이 비에른(1870~1937), 그리고 샤를 마리 비도르(1844~1937)와 같은 19세기 프랑스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는 ‘오르간 교향곡’을 작곡하여 오르간의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러한 경향은 20세기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재즈와 록과 같은 장르에서도 쉽게 살펴볼 수 있다. 오늘날의 오르간은 교회라는 공간을 넘어 다양한 장소에서 다채로운 매력을 선사하고 있다.

유선옥(음악학자)

 

 

오르가니스트에게 듣는 오르간의 구조와 연주법

 

유동성이 없어서 한번 지어지면 부서지기 전까지 그곳에 존재하는 악기, 오르간. 덕분에 지어진 나라의 문화가 이 악기에 고스란히 담게 된다. 오르가니스트 신동일의 해설과 함께 햇불선교센터(서울시 양재동)에 설치된 오르간의 구조와 연주법을 알아보자!(본지 2015년 7월호 기사 ‘한 몸에 품은 거대한 오케스트라’ 재구성) 정리 이의정 기자 사진 심규태

 

손건반

단마다 다른 음색을 가지고 있다. 각 층의 음이 쌓이면 소리는 점점 커지고, 악기 전체는 하나의 하모니를 이룬다. 음량은 스웰, 포지티브(콰이어), 그레이트, 봉바르드 순으로 커진다. “오케스트라와 똑같습니다. 현으로 시작해 목관, 금관, 나중에는 타악기까지 더해져 하나의 튜티를 만드는 것처럼 말이죠. 고유한 성격의 건반이 모여 하나의 앙상블이 되는 겁니다.” 나라마다 다르게 불리지만 손건반은 각각 이름이 있다.

① 봉바르드(bombarde): 4단 이상의 큰 오르간에서만 볼 수 있다. 크고 둥근 금관 소리를 가지며, 앙상블에 색을 입히고 화려함을 더하기 위해 쓰인다.

② 스웰(swell): 그레이트보다는 소리가 작지만 체임버 전면에 세워진 스웰 셔터를 열고 닫으며 볼륨을 조절한다.

③ 그레이트(great): 가장 튼실하고 뚜렷한 소리를 낸다.

④ 포지티브(positive): 스웰보다 소리가 크나 그레이트 보다는 작다. 합창음악이 발달한 영국의 경우, 합창단과 함께 연주하기 위해 사람의 목소리처럼 작고 섬세한 소리를 내는 콰이어(choir)가 포지티브를 대체하기도 한다.

 

오르간 악보

파이프오르간은 3단 악보를 사용한다. 프레이징과 스타카토 같은 연주 지시어는 다른 악기의 악보에도 똑같이 기보되지만, 파이프오르간 악보의 경우 음색과 건반의 변화가 표시 되어있으며 전반적으로 더 많은 지시어가 꼼꼼하게 적혀있다.

 

 

발건반

오르간은 발로 선율을 연주하는 유일한 악기다. 바로크 시대의 파이프오르간은 지금보다 발건반 수가 적었지만, 현재 발건반의 개수는 32개다. 양발의 앞뒤를 모두 사용하면 동시에 네 음까지 낼 수 있다. “발건반은 보통 베이스 음역을 담당합니다. 오케스트라와 비유하면 첼로나 더블베이스라고 할 수 있죠. 손발을 조화롭게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서 발건반 테크닉을 익히는 데 많은 시간이 들어요.”

 

 

 

오르간 슈즈

대부분의 오르가니스트는 특수 제작한 전용 신발을 신고 연주한다. 건반을 정확하게 ‘밟기’ 위해서다. 볼이 좁고, 연주 시 매끄러운 움직임을 위해 밑창은 가죽으로 만든다. 굽의 높이는 연주자마다 편의에 맞게 정하지만, 어느 정도 높이는 돼야 발로 수월하게 연주할 수 있다.

 

 

스웰 박스

음의 강약을 조절하고 싶으면 연주자들은 스웰 박스의 페달을 밟는다. 스웰 박스가 닫히면 소리는 작아지고, 열리면 커진다. “큰 강약은 스톱으로 조절하고, 스웰 박스의 페달로는 섬세한 뉘앙스를 표현합니다.”

 

 


 

WHERE 어디서 만날 수 있나?

 

국내 공연장의 오르간과 하반기 공연 일정

46살 오르간부터 1살 오르간까지

 

국내에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된 1,000석 이상의 대형 공연장은 총 3곳이다. 각 오르간은 서로 다른 국가, 다른 회사에서 제작되어 공연장마다의 개성을 더하고 있다. 국내의 파이프오르간의 특징과 다가올 하반기 공연을 간단히 살펴보자.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세종문화회관

 

1978년에 개관한 세종 대극장의 오르간은 독일 칼 슈케(Karl Schuke)사에서 제작한 것이다. 8,098개의 파이프와 97개의 스톱으로 제작되어 당시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였지만, 9년 뒤에 대만이 더 거대한 오르간을 제작하면서 국내 최대 규모로 한 걸음 물러났다. 지금도 무대를 바라볼 때 우측 벽면에 그 거대함을 뽐내고 있지만, 아쉽게도 그 음성을 자랑하지는 못하고 있다. 공연장이 다목적홀로 지어져 오르간의 음색을 받쳐주지 못하는 문제로 오랫동안 골머리를 썩여 왔고, 2019년 세종문화회관 측이 파이프오르간의 노후화로 인한 안식년을 공식화하며 5년 가까이 연주되지 않았다. 수리비 견적이 5억 원에 육박하여 쉽사리 수리하지 못하고 있으며, 수리를 한다면 이전과는 다른 활용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롯데콘서트홀

©롯데문화재단

세종문화회관의 파이프오르간이 멈추면서 국내 오르간 공연을 전담해 온 것은 오스트리아 리거(Rieger)사가 제작한 롯데콘서트홀(2016년 개관)의 파이프오르간이다. 5,000여 개의 파이프와 68개의 스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무대의 정면에 위치하여 롯데콘서트홀 실내 조경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롯데콘서트홀에서 매년 진행하는 핵심적인 오르간 프로그램은 총 3가지이다. 개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오르간 시리즈’는 해외 유수의 오르가니스트를 초청하는 기획 공연으로 토머스 트로터(1957~), 올리비에 라트리(1962~) 등이 거쳐 갔다. ‘오르간 오딧세이’는 관객에게 익숙한 프로그램으로 즐길 수 있는 기획 공연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피아니스트 김경민의 해설과 함께 오르가니스트 이민준(7.30)·박준호(12.19)의 공연이 있을 예정. 마지막으로 2019년부터 기획하고 2020년부터 개최해 온 ‘한국 국제 오르간 콩쿠르’를 통해 차세대 오르가니스트를 선발하고 있으며, 초대 우승자로 꼽힌 오르가니스트 이민준이 올해 하반기 오르간 시리즈 무대(10.31)에 오른다.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부천아트센터

2023년 개관한 부천아트센터는 국내 파이프오르간계의 신흥강자이다. 캐나다의 카사방 프레르(Casavant Frères)사가 4,579개의 파이프와 63개의 스톱으로 제작한 파이프오르간은 롯데콘서트홀과 마찬가지로 무대 정면 벽을 차지하고 있으며, 파이프로 만들어 낸 물결 무늬의 외장도 아름답다.

개관 후, 공연장의 강점을 찾아가는 단계에 있어 아직 오르간을 활용한 정기 시리즈는 보이지 않지만, 개관 공연·1주년 기념 페스티벌 등에 오르간 공연·작품을 포함하여 기존 클래식 음악 관중에게 자연스럽게 그들의 오르간을 소개하고 있다. 하반기에 만나 볼 수 있는 공연은 오르간 앙상블 인스피레이션 무대(12.7)로, 재즈와 클래식 음악이 함께하는 독특한 오르간 음악을 접할 기회로 기대된다.

이의정 기자

 

 


 

WHAT 무엇을 연주하나?

 

음반으로 만나는 오르간 연주 작품, 숨은 명곡들

신비롭거나, 신기하거나

 

‘신비’한 음향부터, 전자 사운드를 곁들인 ‘신기’한 음향까지, 오르간은 서양음악의 뿌리부터 변화를 이끌고 있다. 뿌리가 된 명곡을 소개하고, 역사에 숨은 작품을 발굴하고, 기술을 동원해 첨단의 악기를 만들어가는 오르간계의 변화와 명반을 살펴본다.

 

바흐 ‘푸가의 기법’

‘푸가의 기법’을 위한 최고의 교과서

➊ 바흐 ‘푸가의 기법’ 조지 리치(오르간)/윌 프레이저(영상) Fugue State Films FSFDVD001 (2CD/1DVD)

바흐(1685~1750)가 남긴 푸가의 유산을 오르간으로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푸가 스테이트 필름(Fugue State Films)의 최고 역작이다. 1CD의 17개 트랙에 ‘푸가의 기법’이 담겼고, 곡들은 2CD의 세 트랙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2CD에는 바흐의 캐논 변주곡 BWV769를 포함해, 여러 합창곡이 담겼다. 조지 리치는 고도의 집중력과 전달력이 있는 연주를 선보인다. 녹음에 사용된 미국 애리조나, 매사추세츠 등에 설치된 여러 오르간의 소리도 명품이다. 영상물 ‘데저트 바흐’(90분)에서는 ‘푸가의 기법’ 서양음악사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논하고, 조지 리치는 ‘푸가의 기법’ 각 대목을 꼼꼼히 설명하고 연주한다(111분).

 

 

 

 

 

막스 레거 오르간 독주곡집

바흐의 뿌리부터 바그너의 실험성까지

➋ 막스 레거 오르간 독주곡집 로베르토 마리니(오르간) Brilliant Classics 97066(17CD)

17~18세기의 오르간 역사에 바흐가 있었다면, 19~20세기에는 막스 레거(1873~1916)가 있었다. 독일 혈통의 레거는 바흐가 남긴 음악적 유산을 기반으로 풍부한 화성, 숙련된 대위법, 심오한 영성적 분위기를 곡에 담았다. 게다가 바그너와 브람스가 만든 독일 음악의 풍부한 오케스트레이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풍의 선율과 반음계를 넘나드는 현대성 등도 담았으니, 어떻게 보면 이 음반은 막스 레거를 ‘기념’하면서, 동시에 바흐와 후기 낭만주의를 오르간 독주곡들로 ‘연결’하고 있다. ‘바흐에 의한 환상곡과 푸가’ Op.46을 비롯해 ‘환상곡과 푸가’ ‘코랄 전주곡’ ‘토카타’ 등이 담겼다. 어린 시절에 바흐 작품 연주로 데뷔한 후, 낭만주의의 전문가로 잘 알려진 로베르토 마리니의 이력과 전력이 선곡과 해석에도 잘 녹아 있는 모음집이다.

 

 

 

 

마르티니 오르간 독주곡 모음집

오르간으로 조명한 숨겨진 작곡가의 위대함

➌ 마르티니 오르간 독주곡 모음집 마누엘 토마딘(오르간) Brilliant Classics 96182(9CD)

잘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바로크 거장들의 오르간 작품을 발굴하는 브릴리언트 클래식스 레이블의 집념은 대단하다. 이탈리아 태생인 지오반니 바티스타 마티니(1706~1784)의 1732년 작품부터 만년의 작품까지 한데 모았다. 마르티니는 대위법 및 음악사에 관한 포괄적인 지식을 정립해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 모차르트, 나우만 등 훗날 유명한 작곡가가 된 이들을 가르쳤다. 음반에는 소나타, 프랑스 춤곡, 이탈리아풍의 소나타, 전례용 음악 등이 담겼다. 특히 이를 위해 레이블은 마르티니의 작품을 전적으로 복원해 마르티니 아카이브를 재정립하며 음악사를 풍성히 했다. 해설지에 오르간 기종과 스톱 매뉴얼이 잘 담겨 있다.

 

 

 

 

 

헨델·퍼셀·바흐 등 오르간 연주곡집

함부르크의 명기와 명곡이 만나는 순간

➍ 헨델·퍼셀·바흐 등 오르간 연주곡집 장 크리스티안 루트비히(오르간), 베로니카 푼터(소프라노) 외 MDG 951 2227-6

독일 함부르크 성 엘리자베스 성당에 설치된 오르간은 오르간 제작의 거장 루돌프 본 베크라흐(1907 ~1976)가 최초로 만든 오르간으로 ‘BECKERATH-ORGAN OPUS1’이라고도 불린다. 그 영광스런 시작을 기억이라도 하듯 음반의 첫 곡은 캐틀드럼과 함께 하는 샤르팡티에의 ‘테 데움’으로 웅장하게 시작하고, 헨델·퍼셀·바흐·C.P.E 바흐·텔레만 등의 선율이 소프라노와 관·현악기와 함께 펼쳐진다. ‘오르간 명곡집’이라 할 정도로 친숙한 오르간곡들을 한데 모았으며, 함부르크에서 활약한 텔레만과 C.P.E 바흐의 명곡을 중심에 놓아 함부르크의 음악문화를 자랑하고 있다. SACD 녹음인만큼 오르간 음향이 구성하는 풍부한 음향감과 공간감이 압권이다.

 

 

 

 

 

카베존·바흐·권깃비 작품집

최첨단 오르간에선 어떤 소리가 날까

➎ 카베존·바흐·권깃비 작품집 에크하르트 만츠(오르간) MDG 951 2226-6

2017년 독일 카셀의 성 마르틴 교회에 리거(Rieger, 롯데콘서트홀 오르간 설치사)사의 혁신적인 오르간이 설치됐다. 모던한 외양의 이 오르간은 전통적인 소리는 물론 현대적인 스톱 장치를 통한 전자음향, 그리고 현대적 음향까지 연출한다. 에크하르트 만츠는 16세기 카베존부터 바흐·뵘·그리니 등의 전통 음악은 물론, 1990년대 태어난 작곡가들의 작품까지 수록해 한 대의 오르간으로 5세기에 걸친 음악들을 선보인다. 특히 젊은 작곡가들의 사운드 코스모스는 듣는 이에게 압도적인 사운드를 제공하며, 이를 담아내는 음향과 음질 역시 훌륭하다. 우주적 음향을 담은 한국 작곡가 권깃비(1992~)의 ‘Zweisam Ⅱ’도 주목해 볼 것.

송현민 편집장

 

 

 


 

WHO 누가 있을까?

 

당신이 알아야 할 유명 오르가니스트 6인

교회와 공연장을 종횡무진하는 이들

 

헬무트 발햐(1907~1991), 마리 클레르 알랭(1926~2013), 피에르 코슈로(1924~1984)가 만든 20세기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오르가니스트들을 소개한다. 종교적인 악기로 태어났지만, 오르간의 세계는 이들과 함께 감각적이고 세속적으로 진화 중이다.

토머스 트로터

토머스 트로터(1957~) 영국의 오르가니스트로 사이먼 래틀, 리카르도 샤이, 발레리 게르기예프 등의 지휘자와 협연한 바 있다. 국내에도 2018년 방문하여 바흐를 비롯한 여러 작곡가의 오르간 레퍼토리를 들려주었다. 음반을 다작하여 레퍼토리가 폭넓은데, 영국의 오르가니스트인 만큼 영국 작곡가의 작품이 많다. 영국 버밍엄 타운홀을 비롯하여 영국에 있는 여러 오르간의 소리를 그의 음반을 통해 접할 수 있다.

한스 올라 에릭손(1958~) 스웨덴의 오르가니스트이자 작곡가로, 루이지 노노와 올리비에 메시앙을 사사했다. 전통적인 오르간 레퍼토리는 물론, 본인이 작곡한 오르간 음악을 직접 연주하고, 녹음하기도 한다. 메시앙의 오르간 작품 녹음이 특히 유명하며, 현재는 여러 국제 오르간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캐나다의 맥길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올리비에 베르네

올리비에 라트리(1962~) 롯데콘서트홀 개관 연주, 그리고 작년의 내한으로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프랑스의 오르가니스트이다. 독주회는 물론 다양한 오케스트라와 협연 무대에 초청받고 있으며, 파리 음악원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도이치 그라모폰(DG) 소속 아티스트로 이 레이블에서 발매한 메시앙 오르간 전집(2002)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통적인 레퍼토리 음반도 많고, 노트르담 대성당과 같이 유명 성당의 오르간으로 녹음한 음반도 여럿이어서, 오르간을 공부할 때 알아두어야 할 아티스트이다.

올리비에 베르네(1964~) 2022년 프랑스 메츠 국립 오케스트라와 내한 협연, 2023년 부천아트센터 개관 공연으로 오르간 듀오를 펼쳤던 프랑스의 오르가니스트이다. 마리 클레르 알랭을 사사했으며, 1984년 파리 UFAM 콩쿠르에서 만장일치 1위, 1991년 보르도 오르간 콩쿠르에서 1위를 수상한 바 있다. 오르간 레퍼토리는 물론, 바이올린 작품, 관현악 작품을 오르간으로 연주하며 콘서트 오르간의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이베타 압칼나(1976~) 라트비아의 오르가니스트이자 피아니스트이다. 2002년부터 다양한 국제 오르간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고, 2005년 에코클라식상을 받으며 활동의 지평을 넓혔다. 2020년 얀손스/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녹음한 생상스의 교향곡 3번 ‘오르간’과 풀랑크의 오르간·현악·팀파니 협주곡은 오푸스 클라식 후보에도 올랐다. 작년에 발매한 ‘오세아닉(Oceanic)’ 음반에서 현대 오르간 작품을 선보이는 등 흥미로운 작품을 많이 소개하는 연주자이다.

캐머런 카펜터

캐머런 카펜터(1981~) 2016년 국내에 내한한 바 있는 그는 20대 때부터 큰 화제를 모은 오르가니스트이다. 무려 쇼팽 연습곡 중 ‘혁명’의 빠른 왼손 패시지를 오르간의 발건반으로 연주하며 데뷔했기 때문이다. 당시 내한 인터뷰에는 ‘오르간’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교회의 인상을 탈피하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나는 무신론자이며 회의론자다. 이런 철학이 담긴 내 음악은 매너리즘에 빠진 기존 오르가니스트들의 연주와 차별된다.”

이의정 기자

 

 


 

WHY 왜 오르간인가?

 

6월 내한하는 오르가니스트 벤 판 우스텐 에게 묻다

오르간 음악의 무한한 세계

 

19세기 프랑스의 오르간 제작자였던 카바예 콜이 개량한 오르간은 여러 작곡가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교회 전례용으로 사용되었던 오르간과 구분하기 위해 카바예 콜의 오르간은 ‘심포닉 오르간’이라 불리거나, ‘카바예 콜 오르간’이라고 불렸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작곡가들은 심포닉 오르간을 활용한 콘서트용 오르간 레퍼토리를 작곡하기 시작했고, 이는 프랑스를 오르간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현재에도 많이 연주되는 오르간의 콘서트 레퍼토리가 대부분 프랑스 작곡가의 작품인 이유는 이러한 영향 때문이다. 또한 이 오르간이 대성하자,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을 비롯하여 여러 교회에도 이 심포닉 오르간이 들어서게 됐다. 프랑스를 넘어 스페인·영국·벨기에·이탈리아·네덜란드 등에서도 이 오르간을 만나 볼 수 있다.

벤 판 우스텐은 심포닉 오르간의 대가이다. 전통적인 교회 오르간을 연주하기도 하지만, 그의 경력과 디스코그래피, 그리고 그의 애정은 프랑스 심포닉 오르간을 비추고 있다. 1985년, 독일 음반사 ‘다브링하우스 운트 그림(MDG)’은 30세의 그에게 카바예 콜 오르간으로 비에른의 교향곡 전곡 녹음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를 기점으로 그는 19세기 프랑스 오르간 교향곡의 레퍼토리를 차례로 녹음하였고, 공연장에서 감상하는 오르간의 특별함을 연주를 통해 전하고 있다.

 

오르간의 매력이 무엇일까?

무한대에 가까운 음색과 가능성이다. 오르간으로는 아주 조용한 명상부터 무아의 황홀경까지 느낄 수 있다. 레퍼토리는 여섯 세기보다도 길게 이어지기 때문에 폭넓은 양식의 다양성을 느낄 수 있다. 오르간 작품을 여럿 작곡한 샤를 마리 비도르는 “모든 악기 중에서 끝없는 음색을 가진 유일한 악기이며, 불변·지속·영원을 떠오르게 하는 것은 오르간이 유일하다”라고도 했다.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관객 중에도 오르간 공연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이들에게 오르간을 설명하자면?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오르간이 매혹적인 악기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수 세기를 거쳐온 오르간 문화유산이 보전되는 한, 사람들은 계속 오르간 음악을 듣고 싶어 할 것이다. 다만 오르간 음악에 열광하게 되려면, 그 연주의 수준이 높아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오르간에 빠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전문 연주자가 되기로 결심한 시기도 궁금하다.

어머니는 피아노, 아버지는 피아노·오르간을 다룬 아마추어 음악가셨다. 피아노·오르간·오케스트라 음반이 재생되는 실내의 모습은 내 어린 날 집의 정경이다. 특히 오르간의 음색은 꼬마였던 내게 압도적이었다. 일요일마다 찬송가 오르간 반주를 위해 교회에 가는 아버지를 따라다녔고, 아버지는 가끔 내가 찬송가 반주를 하는 것도 허락하셨다. 나는 11세 때 교회 오르가니스트가 됐고, 이 무렵에 전문 오르가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결심을 굳혔다.

 

악기가 변하자, 음악도 변했다

오르간 레퍼토리 중에서도 프랑스 낭만파 음악의 권위자이다. 프랑스 낭만파 오르간 음악의 특징이 무엇인가?

19세기 후반 오르간 제작자 카바예 콜이 오르간에 새로운 혁신을 불어넣으면서, 오르간 레퍼토리에 큰 변혁이 일어났다. 새로운 악기인 심포닉 오르간을 활용한 작품은 선율이 우아하고, 화음이 다채롭고, 구성이 명료하다. 또한 프랑스 제2 제정기(1852 ~1870)에 연극적 요소를 활용하는 음악 양식이 오르간에도 반영됐다. 프랑스 오르간 레퍼토리를 잘 연주하기 위해서는 이 카바예 콜 오르간의 특징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포닉 오르간 레퍼토리를 꼽을 때면 작곡가 세자르 프랑크, 비도르의 이름이 거론된다. 각 작곡가의 특징도 설명해 줄 수 있을까?

비도르는 본인이 연주할 때도, 가르칠 때도 엄격하고 보수적인 오르간 테크닉을 고수하였다. 반면 프랑크의 오르간 접근법은 피아니스트답다. 그는 전통적인 오르간 연주법에 얽매이지 않았다.

이러한 악기의 차이 때문에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연주 레퍼토리를 비교할 때, 큰 차이점이 보인다고.

내가 어렸을 때인 1960년대에는 심포닉 오르간 레퍼토리는 금지된 작품이었고, 네덜란드에서 이를 연주하는 오르가니스트도 거의 없었다. 나의 아버지는 19세기 낭만파 음악을 사랑하셨는데, 1960년대에 나의 고향 헤이그에서 그들의 공연이 열리면 아버지와 함께 찾아갔던 기억이 난다. 1970년대에 파리에서 이 레퍼토리를 제대로 된 심포닉 오르간으로 감상하게 됐는데, 내게 마치 계시처럼 다가왔다. 그것이 나의 음악 세계가 될 것이라는 느낌. 그래서 사실 나는 네덜란드 출신이지만, 고음악 레퍼토리보다 프랑스 낭만 레퍼토리를 먼저 익혔다.

 

서로 다른 오르간, 다른 프로그램을 선택하다

내한 공연은 다른 공연장에서 각 1회씩 진행된다. 2일 부천아트센터와 4일 롯데콘서트홀의 프로그램이 서로 다른데, 선곡은 어떤 기준으로 하였나.

부천아트센터의 오르간(카사방 프레르)은 이제 막 제작된 새로운 악기라 축제의 분위기를 넣어보고자 했다. 바흐의 유명한 작품 중 두 곡의 오르간 편곡 버전을 연주하고, 바흐를 향한 존경이 담긴 프랑크의 b단조 코랄을 연주한다. 루이 비에른은 프랑크와 비르도의 제자였는데, 그의 ‘24개의 환상곡’에서 세 곡을 선곡해 연주할 예정이다. 롯데콘서트홀에서는 완전한 프랑스 낭만파 레퍼토리로 구성했다. 비에른 프랑크, 비도르 그리고 마르셀 뒤프레(1886~1971)의 작품을 연주한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할 뒤르페의 ‘수난 교향곡’은 까다로운 대작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 감상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팁이 있을까?

뒤프레는 내러티브가 살아 있는 음악에 능한 이였다. 덕분에 ‘수난 교향곡’은 예수의 생애를 음악적으로 묘사하는 4개 악장 구성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뒤프레의 전기 작가인 아베 로베르트 델레스트레(1901~1993)는 이 작품에 “오르간은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고, 울고, 기뻐했다”고 적기도 했다.

이의정 기자 사진 롯데문화재단

 

벤 판 우스텐(1955~) 암스테르담과 파리에서 피아노와 오르간을 공부했고, 15세에 헤이그에서 데뷔 리사이틀을 가졌다. 1985년 비에른 교향곡 전곡 녹음(MDG)을 시작으로 다수의 프랑스 레퍼토리를 녹음했다. 로테르담 음악원 교수, 헤이그 대성당(Grote Kerk)의 오르가니스트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벤 판 우스텐 오르간 독주회

6월 2일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바흐 칸타타 BWV29 중 신포니아, 프랑크 코랄 2번, 비에른 ‘24개의 환상적 소품’ 중 3곡, 비도르 오르간 교향곡 5번 외

6월 4일 롯데콘서트홀

프랑크 코랄 1번 E장조, 비에른 ‘24개의 환상적 소품’ 중 3곡, 비도르 오르간 교향곡 5번, 뒤프레 ‘수난 교향곡’ O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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