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율리우스 아잘, 다르게 보면, 더 자세히 보인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5월 20일 8:00 오전

SPOTLIGHT

 

피아니스트 율리우스 아잘

다르게 보면, 더 자세히 보인다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데뷔하는 낯선 피아니스트의 흥미로운 음반

 

© Michael Reinicke

세기별로 전문 피아니스트가 되는 길은 다 달랐다. 대규모 공연이 교회를 나와 공공 음악회로 성장하던 18세기, 첫 번째 전문 피아니스트라고 불릴만한 모차르트는 교회와 왕권이 나눠주는 권력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작곡가로 서민에게 성큼 다가갔다. 교회도 왕권도 흔들리던 격동의 19세기, 쇼팽·리스트 등은 귀족·부르주아 지인을 통해 살롱에서 데뷔 음악회를 가진 뒤, 그들의 후원으로 독주 리사이틀이라는 개념을 완성했다. 신분이 모두 박살 나고 평등하게 실력을 겨루라는 20세기, 음악 콩쿠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세기 중반부터 말에 다다를수록, 전문 피아니스트의 탄생은 국제 콩쿠르의 우승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루어진 콩쿠르 시대는 아직 유효한 듯하다. 수많은 국제 콩쿠르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으며, 그 우승자는 부정할 수 없는 국제적인 관심을 받으니 말이다.

그러나 도이치그라모폰(이하 DG)은 여기에 의문을 던져왔다. 국제 콩쿠르를 거치지 않고, 탁월한 연주 실력을 가진 10대를 발굴하여 데뷔 음반을 제작해 온 것. 아티스트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이들과의 계약 소식, 그다음은 데뷔 음반을 통해서이다. 이러한 사례로는 피아니스트 얀 리시에츠키(1995~),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로자코비치(2001~)가 있다.

나아가 이 인터뷰의 주인공, 독일 출신 피아니스트 율리우스 아잘(1997~)은 또 다르다. 21세기라 함은 디지털 기술이 혁신을 이뤄낸 시대. 이제는 실물 CD조차 듣지 않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여 음악 향유의 방식을 바꿔놓았다. 음반의 트랙을 조각조각 모아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큐레이션’은 음악을 센스 있게 감상하는 방식이 됐다. 그리고 아잘은 이런 ‘큐레이션’ 능력을 통해 DG와 계약한 이로, 스타의 탄생 공식에 21세기식 새로운 답을 써내려 한다.

 

 

DG 4865283

음반 발매를 축하합니다! 작년에 DG와 계약한 이후 드디어 첫 음반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도 제가 사랑하는 음악에 집중할 기회를 DG에서 얻었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첫 음반으로 ‘스크랴빈과 스카를라티’를 한 음반에 담는 독특한 결정을 내렸는데, 두 작곡가의 연결점이 무엇일까요?

시작은 두 작곡가가 소품을 많이 작곡했다는 작은 공통점이었습니다. 저는 작품이 가지고 있던 맥락을 살짝 비틀어 보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물론 작품의 정체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요. 투명하고 명료한 스카를라티의 소나타가 신비롭고 어두운 스크랴빈의 그것과 결합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냅니다. 그 세계가 이 음반을 통해서 전하고 싶던 모습일 겁니다.

음반의 트랙 순서가 매우 독특합니다. 스크랴빈의 소나타 1번·전주곡(Op.11·16)·연습곡(Op.8)과 스카를라티의 건반 소나타 작품(Kk56·58·238, K87·466)이 번갈아 나옵니다. 스크랴빈 소나타 1번 Op.6의 4악장 중 ‘Quasi Niente(거의 아무것도 없이)’ 부분은 따로 녹음해서 음반의 첫 트랙과 마지막 트랙으로 배치했습니다.

이 음반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작품은 스크랴빈 소나타 1번입니다. 소나타의 장송행진곡에 해당하는 이 부분을 시작에 들려주면, 소나타 1번을 감상할 때는 이 부분이 데자뷔처럼 들려올 겁니다. 꿈같이 들리길 바랐어요. 그리고 그 부분을 다시 마지막에 들려주면, 이제 음반은 그 자체로 끝없는 루프를 만들어 영원히 재생될 것만 같이 느껴집니다.

선공개했던 싱글에서는 같은 작품을 업라이트 피아노 연주로 공개했습니다. 음반에는 업라이트와 그랜드, 두 피아노의 버전이 들어가나요?

업라이트로 연주한 싱글은 다른 음향도 도전해 보자는 취지였고, 이번에 발매하는 음반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음반을 녹음한 베를린의 텔덱스 스튜디오(Teldex Studios)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두 대 있었어요. 무척 어두운 톤의 신비로운 스타인웨이, 그리고 가볍지만 생생한 소리를 가진 또 다른 스타인웨이였죠. 음반에서는 이 두 가지 피아노 소리를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음반에는 ‘트랜지션’이라는 트랙이 2개 담겨 있습니다. 어떤 효과를 위해 사용했나요?

마찬가지로 데자뷔라는 아이디어를 활용한 부분입니다. 음반을 감상하며 들었던, 또는 듣게 될 음악의 한 부분을 잘라 작품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로 만들었습니다. 연극에서 인물의 행동으로 그 인물의 인상이 변하듯이 음반에서 모티브는 등장하는 맥락에 따라 다른 인상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해체하고, 조립하다

DG가 눈여겨본 것은 이러한 “놀라운 프로그램 큐레이션 재능”이었습니다. 작품을 새롭게 배치하는 일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여러 차례 연주한 작품에 새로운 변화를 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욕구는 몇 해 전 프로코피예프 작품에 집중할 때 처음 든 생각이었죠. 그렇게 완성한 피아니스트 데뷔 음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작품’(2022)은 발레음악 ‘로미오와 줄리엣’을 이리저리 조각내고 재배열한 모습이 됐어요. 장면이 긴장감 있게 이어지도록 만든 것이었는데, 이것이 DG의 눈에 들게 됐으니, 영광입니다. DG의 프로듀서 크리스티안 바주라와 협업하고 있는데, 음악에 관한 아이디어와 의견을 교환할 수 있어 정말 기뻤습니다.

얘기한 대로 데뷔 음반이었던 ‘프로코피예프’는 그 해의 ICMA와 오푸스 클라식 어워즈 ‘독주 부문’ 후보에 올랐습니다. 음반에는 관현악을 위한 작품을 피아노로 편곡했을 뿐만 아니라, 작품이 조각조각 나뉘어 새로운 순서로 배치됐습니다.

침묵만이 가득했던 팬데믹을 견디며 얻어낸 수확이었습니다. 2년 동안 프로코피예프와 함께 동거한 기분이 들 정도니까요.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의 더 많은 장면을 피아노로 옮겨보고자 시작한 작업이었는데, 연주하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들을 즉흥 연주로 이어보니, 점점 더 많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빈 악보와 펜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곡을 배웠나요?

아니요. 작곡도 편곡도 배운 적은 없습니다.

DG와 계약 이후 ‘12월 32일’이라는 자작곡 싱글을 발매했습니다. 3월에는 홀스트의 ‘행성’ 중 ‘화성’을 편곡해서 마찬가지로 싱글로 공개했죠.

‘12월 32일’은 택시를 타는 동안 머릿속에 떠올랐던 선율의 즉흥 연주였습니다. 홀스트의 ‘화성’은 몇 년 전부터 하고 싶었던 실험을 마친 것이었어요. 이 작품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인데, 원곡을 조금 수정한 뒤, 거기에 제가 직접 쓴 세 번째 피아노 파트를 추가했습니다. 녹음은 각각의 파트를 연주한 뒤 오버랩했습니다.

 

주에 담는 자아, 구성을 위한 상상

© Michael Reinicke

작품을 새롭게 구성하기 위해선 작품에 관한 상당한 연구와 좋은 아이디어가 필요해 보입니다. 큐레이션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작업하나요?

정말 좋은 작품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보다 더 많은 내용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형태로 말이죠. 이런 부분을 제가 남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작품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는 것을 통해 그 불가사의한 내용을 밝혀보고자 합니다.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길 바라며, 붓질을 더해보는 것이죠. ‘스크랴빈과 스카를라티’ 음반 같은 큐레이션 작업은 지성과 감성의 중심을 잘 맞추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런 큐레이션을 통해 클래식 음악 공연이 영화와 같이 다양한 분위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죠.

즐거움 외에 다른 감정이 느껴졌으면 합니다. 음악은 인생의 가장 깊은 심연, 큰 슬픔을 담아낼 때가 있습니다. 공연이 주는 모든 기쁨, 행복과 대조적으로, 예술의 많은 부분은 절망에서 탄생하곤 하니까요. 사람들은 해피엔딩이 될지, 아닐지도 모르는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갑니다. 자신은 잠시 잊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러 가는 것이죠. 클래식 음악 공연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아, 오해하지 마세요. 공연이 만족스러워야 한다는 것은 동감합니다.

국제 콩쿠르를 통하지 않고 DG와 계약하게 됐는데, 대회에는 관심이 없었나요?

물론 콩쿠르에 참가하는 동료들을 존경합니다. 그들의 결과가 좋든 나쁘든 간에요. 그렇지만 저는 경쟁의 환경에 불편함을 느낀 것이 맞고, 저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 꽤 많다고 생각합니다. 집에서 혼자 연주를 녹음하거나, 연주에 아주 집중하고 있을 때 더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아무도 제 공연에 오지 않더라도, 혹은 제 작업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더라도 저는 계속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습니다. 연주는 제가 자신과 가장 가까워졌다고 느끼는 행위니까요.

이제 첫발을 내디뎠다 할 수 있는데, 앞으로의 꿈은 무엇일까요?

앞에서는 혼자라도 계속할 것이라 이야기했지만, 그래도 제 목표는 사람들에게 제 음악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제 싱글을 들었다고 전 세계 사람들이 SNS에 글을 남겨주시는걸 읽었는데, 정말 기뻤어요. 공연에서 사람들과 연결되는 기분은 항상 제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기쁨입니다.

이의정 기자 사진 라이니케 아티스츠

 

율리우스 아잘(1997~)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8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현재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와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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