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Editor’s Note
통영국제음악제 3.29~4.7 스케치
섬세하고 긴밀한 프랑스 실내악의 정수
‘체임버 나이트 I’ 4월 3일 오후 9시 30분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밤 9시, 공연을 앞둔 콘서트홀에는 앞서 시작한 바스 비허르스/클랑포룸 빈의 연주가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로비 전체에 울려 퍼지는 낯선 음악과 곳곳에 붙어있는 상주 음악가의 사진들은 통영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했다.
‘체임버 나이트 I’에 오르는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 비올리스트 앙투안 타메스티, 피아니스트 베르트랑 샤마유는 이번 통영국제음악제의 상주 음악가로, 줄곧 음반으로만 접해왔던 이들의 연주를 한 자리에서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음악제의 여러 일정 중 이날 공연을 택했다.
프랑스 레퍼토리에 정통한 연주자들답게 프로그램은 풀랑크, 드뷔시, 라벨 등 프랑스 작곡가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먼저, 타메스티(비올라)가 양인모(바이올린)와 호흡을 맞췄다. 이들은 마르티누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2중주 1번 ‘세 개의 마드리갈’을 연주했는데,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주고받는 대화는 2악장의 트릴과 트레몰로에서 각자의 매력을 드러낸 뒤, 다시금 조화를 이루며 활기차게 마무리했다. 각각 솔리스트로 활약하는 두 연주자의 파워풀한 연주는 현과 현 사이에 풍성함을 더했다.
다음으로 파위(플루트)와 샤마유(피아노)가 무대에 올라 풀랑크의 플루트 소나타 FP164를 연주했다. 이미 에릭 르 사쥬(피아노), 프랑수와 를뢰(오보에), 파리 실내 관현악단 등과 이 곡을 녹음한 바 있는 파위는 시작부터 능숙하게 연주를 이끌었다. 콘서트홀의 높은 층고를 타고 뻗어나가는 풍부하고도 청명한 플루트 음색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고티에 카퓌송(첼로), 빌데 프랑(바이올린) 등과 꾸준히 실내악 연주를 이어오고 있는 샤마유 역시 현란한 플루트 멜로디 사이에서 안정적으로 밸런스를 맞춰나갔다.
무대에 하프가 등장하고, 파위, 샤마유와 함께 빈 필하모닉 하프 수석 아넬레인 레나르츠가 등장했다. 이어지는 곡은 드뷔시의 플루트·비올라·하프를 위한 소나타와 프랑스 하피스트 카를로스 살세도(1885~1961)가 편곡한 라벨의 플루트·비올라·하프를 위한 소나티네. ‘이 곡은 피아노 3중주와 같은 독일적인 악기편성을 일절 거부한다’는 프로그램 북의 설명처럼, 두 작품 모두 기존의 3중주(피아노·바이올린·첼로)에서 벗어난 낯선 편성으로 연주됐지만, 오히려 각 작품에 담긴 프랑스적인 색채를 강조해 프랑스 레퍼토리에 맞춰진 공연 전체 흐름에 자연스러움을 더했다. 멜로디를 주도하는 플루트와 그를 뒷받침하는 비올라, 피아노 역할을 대신하며 곡의 균형을 잡는 하프의 풍부한 화음이 더해지며 전체적인 조화를 이뤘다.
공연이 끝나고, 모든 연주자가 다시 한번 무대에 올랐다. 일반적인 공연이었다면 보기 힘든 커튼콜에 객석에서는 긴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야말로 음악 ‘축제’의 한 장면이었다.
글 홍예원 기자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김성찬
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홍석원/광주시향 (협연 에마뉘엘 파위) 4일 오후 7시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지역 축제의 묘미는 그 지역의 볼거리와 먹거리를 체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통영국제음악제는 ‘들을 거리’까지 풍성하다. 낮 동안 통영 곳곳을 구경하고, 저녁 무렵 다시 음악당으로 향했다. 로비에는 매진을 알리는 안내 문구와 함께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이 가득했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 국내 오케스트라로서 유일하게 초청받은 홍석원/광주시향은 첫 곡으로 윤이상(1917~1995)의 ‘바라’(1960)를 선보였다. 이는 윤이상의 초기 작품으로, 뒤이어 작곡될 작품들의 기초가 된 곡이다. 불교 의식에서 승려가 양손에 바라를 들고 추는 ‘바라춤’(나쁜 기운을 물리쳐 도량을 청정하게 수호하고, 의식에 참여한 이들의 내면을 정화한다는 의미를 지닌다)을 소재로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주제는 아니었지만, 감상하기에 난해한 음악도 아니었다. ‘극도로 정신을 집중시켜 긴장한 채 지극히 완만한 동작으로 서서히 법열로 빠져들어 간다’는 작곡가의 설명처럼, 각 악기가 만들어 내는 예상치 못한 화음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그 끝에 다다라 있었다. 작품의 본고장에서 듣는 연주 또한, 통영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색 있는 ‘들을 거리’다.
상주 음악가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이틀 연속 무대에 오르는 에마뉘엘 파위가 이번엔 오케스트라와 함께했다. 그는 닐센의 플루트 협주곡 FS119에서 전날의 실내악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플루트의 다양한 소리를 선보였다. 특히,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뚫고 나오는 플루트의 또렷한 음색은 베를린필 수석의 역량을 한껏 뽐냈다.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2부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이었다. 2022년 통영국제음악당 기획공연에서 연주했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과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걸까. 홍석원/광주시향은 콘서트홀의 뛰어난 음향을 십분 활용했다. 앞선 협주곡에서 농도 짙은 협연자와의 조화를 보여줬다면, 교향곡 5번에서는 광주시향만의 색깔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1악장의 몰아치는 긴장감을 4악장까지 촘촘히 유지했으며, 마디마디 꽉 채운 연주는 잠깐의 공백도 허용하지 않았다. 관객 역시 악단의 집중력에 숨 쉴 틈 없이 공연에 빠져 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윤이상부터 차이콥스키까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를 뒤로 한 채 음악당 언덕을 내려왔다. 부서지는 파도 소리조차 음악이 되는 이곳, 통영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글 홍예원 기자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김성찬
Editor’s Note
두 개의 색채, 하나의 조화
양인모·베르트랑 샤마유 듀오 리사이틀 4일 오후 9시 30분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서로 다른 색채를 지닌 연주자, 양인모와 베르트랑 샤마유는 어떤 음악을 만들어 낼까. 설렘을 품고 객석에 앉았는데, 뒤쪽에서 “너무 기대돼!”라는 소곤거림이 들렸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던 듯했다. 이윽고 시작된 리사이틀에서, 두 연주자는 한 곡씩 자신의 독주를 선보인 후, 마지막 세 번째 순서에서 함께 무대에 오르며 궁금증에 대한 답을 들려주었다.
양인모가 버르토크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하며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라는 점과 느리고, 빠르고, 느리고, 빠른 템포의 4악장 구성에서 바로크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그가 지닌 풍부한 음색은 1악장부터 눈에 띄었다. 두 개의 성부가 등장할 때, 각 성부를 확연히 다른 음색으로 연주한 것. 눈을 감으면 마치 두 명의 연주자가 연주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3악장에선 선명하고 깔끔한 고음 표현이 빛을 발했다. 하모닉스를 섬세하게 연주하는 그는 자신이 연주하는 이 부분에 필요한 활의 속도와 무게를 정확히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순간순간 변화하는 다채로운 표현 덕분에, 바이올린 한 대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어서 베르트랑 샤마유가 무대에 올랐다. 그가 연주한 작품은 ‘운디네(물의 요정)’ ‘교수대’ ‘스카르보’ 세 곡으로 구성된 라벨 ‘밤의 가스파르’였다. 세 곡 모두 아주 여리게 시작해 점차 규모를 키워 가는데, 그 과정에서 샤마유의 해석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페달 사용이 흥미로웠다. 그는 소리의 잔향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소리의 울림이 길었지만, 투명하고 깨끗한 잔향이 남았다. 특히 마지막 곡인 ‘스카르보’에서는 ‘운디네’와 ‘교수대’보다 가볍고 단단한 터치로 곡의 색채감을 바꿨다. 그만큼 페달도 급작스럽게 밟았으며, 특정 구간에선 발을 높이 들어 페달에서 멀어졌다가 더 깊게 밟기도 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페달이 사용되지 않는 구간을 확실히 들려줌으로써 음악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냈다.
드디어 세 번째 순서,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에서 두 사람이 호흡을 맞췄다. 상대방이 선명하게 주제 선율을 연주할 수 있도록 자신의 프레이즈를 정확하게 마무리하던 양인모와, 격정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호흡을 길게 가져가며 균형을 맞춰주던 샤마유. 그중에서도 4악장이 인상적이었다. 캐논 형식이 사용돼 피아노가 먼저 노래하고, 바이올린은 한 마디 간격을 두고 동일한 선율을 연주하며 따라갔는데, 두 연주자의 음색이 퍽 조화로웠다.
앙코르곡은 포레(1845~1924)의 자장가였다. 그의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였다. 바이올린 선율에 사용된 당김음, 그리고 그 리듬을 표현할 때 아주 살짝 끊어지던 양인모의 표현이 섬세했다. 그 순간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부드럽게 화성을 채워주던 샤마유도 좋았다.
11시가 가까운 늦은 시각에 공연이 끝났음에도, 로비에는 공연장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공연의 여운을 즐기는 이들이었다. 자신의 스타일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배려하며 만들어 낸 앙상블의 힘이었다.
글 김강민 기자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김성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