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라스트 오브 어스, 세상이 망해도, 누군가와 함께 한다면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6월 17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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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오브 어스

세상이 망해도, 누군가와 함께 한다면

 

 

20년 전, 세계는 정체불명의 동충하초균으로 인해 지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어떤 바이러스보다 전염력이 강한 이 동충하초균은 숙주의 뇌를 장악하고, 마치 좀비처럼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괴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세계 곳곳에서 이 새로운 전염병으로 인해 폭동이 일어나 인간 사회는 붕괴하고 맙니다. 조엘은 폭동으로 인해 하나뿐인 딸을 잃습니다. 평범한 가장이던 그는 이제 밀수업을 하며 지냅니다.

 

디스토피아적인 서부극에도 낭만이

엘리 ©2023 Sony Interactive Entertainment LLC.

평소처럼 여러 격리구역 사이를 비밀스럽게 오가며 밀수업을 하던 조엘은 ‘파이어플라이’라 불리는 반군단체의 수장 마를렌을 만납니다. 배에 치명상을 입은 마를렌은 자신이 데리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준다면 두둑한 보상을 해주겠다며 조엘에게 의뢰를 합니다. 소녀의 이름은 엘리. 그렇게 조엘과 엘리는 미국 보스턴에서 솔트레이크시티까지 3,500킬로미터에 달하는 아주 험한 여정을 떠납니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여정이었죠.

이 게임은 서부극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두 인물의 경로가 미국 동부에서 서부까지를 횡단한다는 점도 그렇고, 사람들이 거주하는 구역들이 오늘날처럼 촘촘하게 연결된 것이 아니라 아주 간헐적으로 존재한다는 점도 서부극의 황량한 사막을 연상시키죠.

조엘과 엘리의 여정에서 동충하초균으로 인해 변이된 괴물보다 위험한 것은 다름 아닌 살아남은 인간들이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광기, 삶에 대한 갈망으로 인간은 서로를 마주치면 약탈과 살인을 일삼곤 했죠. 서부 개척시대에서도 인간에 의한 약탈과 살인이 빈번했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이 게임은 명백히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하는 서부극이며, 총·각종 연장과 함께 혈혈단신으로 적들을 물리치는 조엘은 카우보이에 해당합니다.

메인 테마곡

‘더 라스트 오브 어스’의 음악을 만든 구스타보 산타올랄라(1951~)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곡가로, 어렸을 때 할머니에게 기타를 선물받은 후 본격적으로 음악에 빠져들었습니다. 이 게임에서 산타올랄라는 아르헨티나의 전통 발현악기인 론로코(Ronroco)와 더불어 어쿠스틱기타·전자기타와 같은 다양한 기타의 소리를 이용하여 사운드트랙을 채웠습니다. 산타올랄라가 기타를 애용한 이유에는 그가 뛰어난 기타리스트인 점도 있지만, 그도 이 게임이 서부극을 닮았다고 명확하게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조엘이 등장할 때마다 처량하게 울리는 기타 소리는 영락없이 서부영화에서 외로운 카우보이 뒤로 흐르는 음악을 연상시키기 때문이죠.

서부극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요소는 위험천만한 무법지대를 때때로 낭만적인 곳으로 묘사하는 점입니다. 엘리에게 온갖 약탈자와 괴물들이 도사리고 있는 격리구역 바깥의 세계는 과거의 찬란한 문명과 함께 생명력이 가득한 곳으로 그려지죠.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최종 목적지에 거의 다다른 조엘과 엘리가 마주한 모습도 이를 보여줍니다. 폐허가 된 세상에서 기린들이 평화로이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이죠. 이 장면과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은 이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음악을 통틀어 가장 아름답습니다. 서부에서 금이라는 희망을 발견하고자 했던 이주민들처럼, 망한 세계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해 내는 어린아이의 시선을 반영하는 음악이죠.

 

음악의 변주와 복선에 녹아있는 메시지

조엘 ©2023 Sony Interactive Entertainment LLC.

이 게임은 공포 게임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만큼 무서운 장면과 소리가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산타올랄라의 음악은 이와 대비되어 오로지 등장인물들의 ‘감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특히 그는 같은 음악을 아주 미세하게 변주하여 수많은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사운드트랙은 ‘모두 사라진(All Gone)’인데, 이 곡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은 20년 전, 조엘이 자신의 딸 사라의 죽음을 지켜볼 때입니다.

20년 후의 쓸쓸한 조엘을 비추면서 이 곡은 재등장합니다. 처음 등장할 때는 첼로와 기타 선율이 마치 비가(悲歌)처럼 애통한 분위기를 자아냈다면, 두 번째로 등장한 ‘모두 사라진’은 왜곡된 소음들 사이에서 기타 선율만 홀로 처량하게 울리고 있죠. 이 두 음악을 비교해 보면 첼로 선율은 사라를, 기타 선율은 조엘을 상징합니다.

‘모두 사라진’은 계속해서 다양하게 등장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음악은 조엘과 엘리의 관계를 그려내는 역할을 합니다. 마를렌이 의뢰했던 목적지는 반군단체 파이어플라이의 실험실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조엘과 엘리는 최종 목적지에 다다르는데, 사실 엘리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동충하초균에 대한 항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고, 마를렌과 파이어플라이의 목적은 엘리를 통해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었죠. 그러나 문제는 백신을 만들려면 그 어린 여자아이의 뇌를 통째로 뜯어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소수의 희생을 통해 다수가 구원받을 것인가, 엘리를 구할 것인가. 이를 고민하던 조엘은 결국 수술대에 오른 엘리를 데리고 도망치고, 그때 흘러나오는 ‘모두 사라진’은 게임음악 연출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All Gone’

곡은 사라가 죽었을 때 등장했던 ‘모두 사라진’의 도입부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그렇지만 이내 호른이 똑같은 선율을 주고받기 시작하죠. 이 호른 소리가 상징하는 인물은 바로 엘리입니다. 사라와 엘리가 동일한 음악을 나란히 이어서 연주하는 것은 조엘에게 엘리가 새로운 딸이라는 의미이죠.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조엘을 상징하던 기타 선율이 들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를 추측하자면, 조엘은 엘리를 구하면서 인류 전체를 배반했기 때문일 겁니다.

새로운 딸을 얻었지만, 자신은 인류로부터 버림받아도 마땅한 행동을 저질렀죠. 암담한 미래를 택한 조엘과 엘리. 하지만 조엘에게 남은 희망은 엘리이고, 마찬가지로 엘리에게 남은 희망은 조엘입니다. 서로가 마지막까지 함께(The Last of Us) 의지한다면 모두가 사라진다 해도(All Gone) 괜찮지 않을까요.

‘All Gone(No Escape)’

 

 

 

 

 

 

 

 

이창성 서울대학교 작곡과 이론 전공을 졸업 후 동대학원 석사과정에서 게임과 음악의 관계에 관심을 두어 게임음악학 연구를 진행 중이다. 현재 KBS 1FM의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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