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CLASSICAL MUSIC
백건우 피아노 독주회
모차르트를 마주하다
6월 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작년 12월, 인터뷰이로 마주한 백건우는 긴 대화를 마무리 지으며, 음악 안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소망을 비쳤다. 그리고 지난 5월, ‘모차르트’ 음반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지금까지 음악을 하는 동안 늘 ‘해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이제는 연주 자체에서 충만함을 느낀다”며 한층 홀가분한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그의 자유로움은 어디에서 기인한 걸까.
이번 신보는 ‘그라나도스-고예스카스’(2022) 이후 2년 만의 녹음이자, 지난해 1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내놓은 첫 음반이다. 백건우는 “지금은 음악과 나 외에는 다 잊어버리고, 음악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늘 새로운 작곡가의 삶과 음악을 탐구하고, 조망해 온 그에게도 모차르트는 고심의 대상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모차르트의 삶 속에서 ‘순수함’을 발견해 냈다. 백건우는 “모차르트는 사생활이나 종교, 사회적 관계 등 여러 면에서 굉장히 자유분방한 사람이었지만,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와 음악을 듣는 음악가였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지난날의 쇼팽과 슈만, 그라나도스 등의 화려한 연주를 뒤로하고, 70여 년의 음악 여정 끝에 처음으로 모차르트의 꾸밈없는 순수함과 마주했다.
6월 12일, ‘모차르트’ 음반 발매 기념 전국 투어의 일환으로, 부천·대구·제주 등을 거쳐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의 열렬한 박수와 함께 백발의 피아니스트가 무대에 올랐다. 프로그램에는 음반에 담긴 곡과 그렇지 않은 곡이 적절히 섞여 공연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연주에 대한 기대를 더 했다. 특히 모차르트의 피아노 작품을 대표하는 소나타뿐 아니라, 모차르트만의 위트가 느껴지는 지그 K574, 안단테 K616, 론도 K485 등 자주 연주되지 않는 곡들을 고루 담아, 작곡가의 광범위한 음악 세계를 프로그램 속에 펼쳤다.
첫 곡은 음반의 대문을 장식한 환상곡 K397로, 초반 d단조의 무거운 분위기에서 차츰 D장조로 나아가며 이어지는 론도 K485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연결되는 곡들의 조성과 음악적 특징을 고려해, 각 작품 사이의 끊고 맺음에 차이를 두며 음반에서보다 세밀하게 프로그램 전체를 조망하는 해석을 보였다.
2부까지 이어지는 그의 연주에서는 흔히 모차르트 작품 특유의 통통 튀는 소년의 활력보다는 한세월을 보낸 노장의 연륜이 느껴졌다. 35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모차르트의 삶에서 노년의 모습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의 이러한 해석은 자기 자신을 덜어내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이전까지 모차르트를 연주할 때는 그 스타일에 맞게 잘 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음악 자체를 전달하고자 한다. 모차르트의 작품은 어느 작곡가의 음악보다도 연주자가 순수하게 전달할 때 최상의 연주로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생각하는 모차르트의 이미지는 다르겠지만, 그의 모차르트는 70여 년을 피아노 앞에서 보낸, 지난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피아니스트 ‘백건우’이기에 가능한 연주였다. 거장의 ‘모차르트’ 프로젝트는 뒤이어 발매될 두 장의 음반과 11월 공연(서울·세종·부산·평택)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글 홍예원 기자 사진 판테온
벤 판 우스텐 오르간 독주회
짓눌리는 음의 압력으로 현현된 십자가의 무게
6월 4일 롯데콘서트홀
거대한 무대 위에 오르간 콘솔이 덩그러니 놓였다. 공연장의 한 벽면을 차지하는 거대한 오르간은 일반적으로 합창 좌석 너머에 있다. 이는 관객석과 멀어, 연주자들은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일반적으로 콘솔을 통해 원격으로 악기를 연주한다. 그래서 소리가 들려오는 곳과 아티스트가 연주하는 곳이 다른데, 보는 입장에선 연주자가 소리를 내고 있다는 인상이 덜하다. 나아가 여러 개의 손건반과 발건반의 이용, 스톱(오르간 음색을 조정하는 장치)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연주자가 관객을 등지고 앉으니, 음악과 교감하며 나타나는 표정 변화를 감지할 수 없어 시각적인 매력도 부족하다. 어려운 오르간 레퍼토리와 더불어 오르간 공연의 문턱을 높이는 것은 이러한 단점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르간 공연을 찾게 만드는 매력은 공연장 속 모든 공기가 진동하는 듯한 엄청난 음의 압력, 그리고 그 진동이 만들어 내는 신체적·정신적 전율에 있다. 무대가 비어 보이는가? 오케스트라의 규모를 넘어서는 거대한 소리가 그 공간을 채울 것이다.
콘서트 오르간의 대가로 꼽히는 벤 판 우스텐(1955~)의 연주는 이러한 오르간의 특성을 강화하는데 탁월했다. 다만 이 감상이 처음부터 우러나온 것은 아니었다. 차갑게 전하자면, 1부 전반에 연주한 비에른의 세 개의 즉흥곡, 24개의 환상곡 Op.55, 트립티크 Op.58은 좋은 첫인상을 위한 선곡은 아니었다. 그가 신속하게 다이내믹을 단계별로 조정하고, 각 스톱에 맞춘 깔끔한 프레이징을 보여주었지만, 지속음이 만드는 의도적인 불협화음을 끊임없이 사용하는 난해한 작품이 그의 장점을 다소 가리는 듯했다.
1부 후반에 연주한 프랑크의 코랄 제1번은 더 나았다. 변주형식을 가진 이 작품의 따뜻한 첫 주제 선율이 명확하게 인식됐고, 점진적으로 웅장한 종지로 향하는 진행이 인상적이었다. 1부의 마지막 곡인 비도르의 오르간 교향곡은 여러 스톱 조합을 오가며 변화하는 주제를 들을 수 있는 재미있는 연주였다. 그러나 인터미션 이후 2부가 시작되자, 이런 1부는 진정한 오르간 음악을 듣기 위한 애피타이저로 느껴졌다.
2부의 프로그램은 뒤프레의 수난 교향곡 Op.23뿐이었다. 작품은 4개의 악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구세주를 기다리는 세상’ ‘탄생’ ‘십자가형’ ‘부활’ 순서이다. 공연의 프로그램북 속 작품 해석은 연주자인 우스텐이 직접 적었는데, 그의 묘사가 연주와 완벽하게 일치하여 작품 이해에 효과적이었다. 오르간 음색이 가진 의례적 성질, 찬송가 선율의 오마주는 수난곡의 종교적 색채를 더했고, 십자가에 못을 박는 소리를 선명하게 묘사하는 연주는 음을 시각화하여 독주회를 음악극으로 변모시키는 듯했다. 특히 3악장 ‘십자가형’에서 발건반으로 연주하는 일정한 오스티나토가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처럼 들려왔고, 이 선율이 점차 손건반으로 올라가는 것도 이의 형상화로 다가왔다. 죽음의 순간 점차 잦아지는 오르간 소리에 청중은 추모를 하듯 숨을 죽였고, 이후 이어지는 4악장 ‘부활’의 화려한 상행 선율을 더욱 찬란하게 만들었다.
앙코르로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전주곡 1번(비에른 편곡)은 피아노에서 들을 수 없는 짙은 무게가 느껴졌고, 즉흥적으로 변주하여 연주한 ‘그리운 금강산’은 앉아서 박수를 보내던 몇몇 청중을 기립시키기에 충분했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롯데문화재단
임윤찬 피아노 독주회
새로운 세대가 열광하는 음의 감각법
6월 7일 롯데콘서트홀
지난 4월, 임윤찬이 발매한 쇼팽의 ‘연습곡’ 전곡 음반(Decca)은 익숙한 작품임에도 편안하게 들을 수가 없었다. 주선율을 무심코 따라 걷다 보면 갑자기 길이 끊어지고, 낭떠러지다. 저 아래에서 그간 인식하지 못한 선율이 튀어 올라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다. 전복(顚覆)된 쇼팽. 젊은 연주자의 아이디어가 선사한 것은 유쾌한 불안이자, 심장이 쫄깃해지는 스릴이었다. 올해 예정된 전국 투어는 이 음반의 실체를 만날 기회였다. 그의 연주에서 ‘시각화’는 중요하다. 지금의 대중이 임윤찬을 처음으로 인식한 매체가 ‘음반’이 아닌 ‘영상’이었기 때문. 관객은 그의 흩날리는 머리카락, 몰아치는 움직임을 음악과 구분해서 감상하지 않는다. 그러나 연주 두 달 전, 돌연 독주회 프로그램이 변경됐다. 또 한 번의 전복이 지난 6월, 전국의 공연장을 들썩였다.
시작은 멘델스존의 ‘무언가’ 두 곡(Op.19-1·85-4)이었다. 연달아 차이콥스키의 ‘사계’까지, 하나의 모음곡인 듯 호흡이 이어졌다. 앞서 한국에서 선보인 독주회(2022년 12월)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모음곡 사이에 자신만의 쉼표를 찍었다. 12개의 계절 중, 6월인 ‘뱃노래’에서는 적극적인 서정성이 드러났으며, 9월인 ‘사냥’의 질주가 끝나자 ‘임윤찬 표’ 쉼표가 등장했다. 작품의 계절은 흘렀지만, 연주는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는 않았다. 마치 계절의 단면만을 포착한 듯, 정지된 화면 속 아름다움을 탐구했다.
이번 독주회는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음’이, 임윤찬이 가진 강렬한 몰입력을 탄생시킨 요소임을 발견한 계기이기도 했다. 이는 2부의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에서 더 두드러졌다. 작품에는 전시장에서 그림 사이를 걷는 것을 묘사한 네 개의 ‘프롬나드’, 그리고 11개 그림에 대한 묘사가 담겨 있어, 순간을 포착하는 그의 장점이 극대화됐다.
시간 예술인 클래식 음악에서, 그는 시간보다는 ‘순간’에 가까운 예술을 한다. 대개 한 음과 그다음 음 사이에는 음악적 논리가 있다. 화성학에 기초한 기승전결로, 당장 느껴지는 짜릿한 감각보다 언젠가 도래할 클라이맥스를 기다리게 한다. 하지만 임윤찬의 연주는 이 흐름 밖에 있다. 순간 속에 존재하는 음향은, 울리는 동시에 휘발된다. 맥락을 잊게 하는 마취다. 그는 무대에서 즉흥 연주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다. 작곡가와 자신의 자아를 분리하지 않는 것은 음악에의 순수함이 남아 있는 청년의 특권이리라. 더불어 ‘전람회의 그림’에서도 성부에 대한 창의적 접근이 드러났다. 여러 성부의 선율을 살려 교향악적 표현을 품은 것은, 무대 위 즉흥을 뿜어내는 이 연주자의 평소 숨겨진 성실을 증명한다.
바야흐로, 부인할 수 없는 ‘감각의 시대’다. 맥락 없는 15초짜리 숏폼 영상이 젊은 세대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플랫폼의 홍수 속에, 임윤찬의 ‘전람회의 그림’은 전곡 40분을 들어도, 15초를 들어도 동일한 흡인력이 있다는 무기를 지녔다. 대중 문화와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듯한 이 감상의 관점이 맞는지 혹은 임윤찬의 파괴적 열정이 얼마간 지속될지를 질문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차이콥스키의 ‘서정적인 순간’과 리스트 ‘사랑의 꿈’ 앙코르 후 사랑스럽게 퇴장한 그의 뒷모습처럼, 훗날의 성장을 기대하며 당분간은 그의 전성기를 함께 즐길 일이다.
글 허서현 기자 사진 목프로덕션/Shin-joong Kim
예루살렘 콰르텟 리사이틀
기분 좋게 달린, 스피드웨이
6월 13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디아파종 황금상’ ‘BBC 뮤직 매거진 실내악 부문상’에 빛나는 명성 있는 4중주단, 예루살렘 콰르텟이 9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바이올린 알렉산더 파블롭스키·세르게이 브레슬러/비올라 오리 캄/첼로 키릴 즐로트니코프). 1996년 데뷔 이후 2010년, 단 한 번의 비올리스트 교체만으로 오랜 호흡을 맞춰온 악단이다. 프로그램은 모두 현악 4중주곡으로 스메타나의 1번 ‘나의 생애로부터’, 쇼스타코비치의 7번, 그리고 베토벤의 8번 ‘라주모프스키’. 현악 4중주라는 장르의 장벽이 약하게 느껴질 만한 친숙한 작곡가와 작품들로 이날의 관객을 흥분시켰다.
스메타나 ‘나의 생애로부터’는 작곡가의 목소리가 비교적 분명하게 표현되는 작품으로, 예루살렘 콰르텟의 직선적이고 직접적인 캐릭터와 잘 맞아떨어졌다. 외치듯 들어가는 첫 음부터 네 악기의 뉘앙스가 살아있었으며, 첫 문장을 낭독하는 비올라의 소리도 탁 트여 답답함이 없었다. 1악장에서 첼리스트는 높은 포지션에서 화려한 기교를 선보이는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탄탄한 안전망이 되어주었고, 연주회 내내 능동적인 태도와 다양한 무게감의 음색으로 곡마다 성격 변화를 생생하게 표현했다. 스메타나가 묘사한 ‘댄스 음악을 사랑한 청춘’과 ‘상류사회’를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매력적으로 표현한 2악장은 이날 공연에서 가장 농도 짙은 부분이었다. ‘처음 사랑에 빠지는 행복을 회상’하는 3악장 또한 관객의 감정을 동요시켰다. 들어가는 타이밍부터 기대를 불러일으킨 4악장 역시,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짜릿함을 안겼다. 스메타나의 작품에 흥분감이나 기쁨만 담겨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부분을 적극적으로 나타내 다음이 궁금해지는 흥미로운 대화를 이끌었다.
실험 정신 속에 어두움과 서글픔이 계속되며 다양한 얼굴을 내보이는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7번은 제1, 제2바이올린의 정교하고 민첩한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쇼스타코비치가 세상을 떠난 첫 번째 부인(니나 바실리예브나 바르자르 쇼스타코비치)을 그리워하며 쓴 곡이다. 연주의 핵심은 그 분위기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는데, 관객의 동물적 위기감을 건드리는 타이밍과 경종을 울리는 듯한 악상으로 설득력 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베토벤 ‘라주모프스키’는 윤기 있고 차분한 음색이라는 대세를 따르기보다 약한 전류가 흐르는 듯한 예루살렘 콰르텟의 음색에 조금 더 무게를 둔 해석이었다. 2악장에서는 도약음들을 연결할 때나 박자를 표현할 때 상당히 유연하게 움직였다. 피아니시모에서는 공기를 많이 집어넣은 독특한 소리로 현대적인 느낌을 주었다. 4악장에서는 약간 과속하는 인상마저 주었는데, 지루할 틈이 없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충분히 고전적이지 않다는 불평도 감수하겠다는 연주의 방향이 느껴졌다.
연주회 전체에서 볼 수 있었던 오차 없는 피치카토는 앙코르에서도 이어졌다. 멘델스존 현악 4중주 1번(2악장)과 버르토크의 4번(4악장)에서 그 호흡을 뽐냈다. 예루살렘 콰르텟과 함께 달린 쾌적한 경주로가 맘에 들어서일까. 관객 몇몇이 자리에서 박차 기립했고, 높이 치켜든 엄지손가락의 실루엣 위에는 어느 관객의 휘파람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글 양경원(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인아츠프로덕션
TRADITIONAL MUSIC
강은일 해금플러스 25주년 기념공연
‘오래된 미래: +’ 현과 활, 획과 길이 통한 시간들
6월 1일 국립국악원 예악당
1999년, 해금연주자 강은일이 창단한 ‘해금플러스’는 국악계의 분위기를 바꾼 그룹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해금플러스’는 단체명이자 강은일의 프로젝명으로 기능한다. 일례로 창단 직후인 2000년, 강은일이 인도악기, 더블베이스, 프리뮤직 타악기와 만난 공연을 선보인 적이 있었는데 공연명이 ‘해금플러스’였다. 지금과 같은 ‘컬래버레이션’이라는 단어가 없던 당시 사람들은 그의 해금이 무엇과 ‘플러스’할지 궁금해 했다.
3부로 진행된 이번 공연은 긴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강은일은 25년간 7장의 음반을 발매했고, 해금플러스라는 이름의 시리즈 공연도 28회 진행했다.
1부는 ‘초수대엽’(류형선 작곡), ‘서커스’(신현정), ‘해금랩소디1’(피터 쉰들러), ‘구름의 태동’(우디 박), ‘그저 받아들이다’(사이토 데츠)를 선보였다. 한국을 넘어 독일, 일본 작곡가의 작품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해금플러스가 자양분으로 삼아온 곡들이다. 그들(작곡가)에게 강은일의 해금은 영이었고, 그들 역시 해금을 통해 새로운 소리를 탐구했을 것이다.
2부는 이번 공연을 위한 초연곡들로 채워졌다. 강은일의 자작곡도 있어 작곡가로서의 면모도 돋보였다. 강은일이 지은 ‘지구에서 노래한다(Singing on Earth)’는 인도악기 시타르와 타블라가 함께 했다. ‘아주 오래전에’는 해금 특유의 독백적 미감이 돋보이는 곡이었다. ‘부드러운 공명(Silk Resonance)’은 모이세스 베르트란의 위촉 초연곡이었다.
공연의 선곡이 보여주는 것은 강은일 특유의 유연성이다. 해금은 이땅의 악기로 태어났지만, 소리의 시야와 실험적 영역을 넓히는 것은 오늘날 해금의 두 줄(현)을 쥐고 있는 연주자의 몫이다. 목숨줄을 쥐고 있다는 말처럼, 악기의 두 현을 어떤 곡으로, 어떤 감성으로 쥐느냐에 따라 해금은 옛 시간속으로 사장(死藏)될 수도 있고, 월드-악기로 부상할 수도 있다. 강은일은 후자의 길을 걸어왔다. 오늘의 감각을 ‘플러스’하고, 해금의 난제들을 ‘마이너스’해버린, 그녀의 손은 한마디로 두 현을 쥔 ‘마이다스’다.
6곡을 선보인 3부는 그간 해금플러스의 멤버를 역임한 이들과 지금을 함께 하는 이들이 한 자리에 오른 무대였다. 해금은 물론 가야금·피리·대금·기타·베이스·피아노·신시사이저·드럼·퍼커션 등 20명에 달하는 멤버들이 벌크업된 해금플러스를 보여주었다. 줄풍류 중 ‘타령’의 선율이 강은일의 해금을 타고 진하게 흐르는가 하면, 마지막 곡 ‘헤이 야!’는 민요 ‘옹헤야’의 흥겨움이 느껴지는 곡이었다. 전통의 가락을 진하게 드러내는가 하면, 은유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강은일의 필살기이다. 이러한 양수겸장의 능력을 그녀만의 ‘해금플러스 메소드’라 부르고 싶다. 이 메소드를 통해 강은일은 다른 음악과 플러스해도 자신을 진하게 드러낼 줄 알고, 또 옅게 돌아오기도 했다. 이처럼 그의 메소드를 구현하는 해금플러스는 하나의 ‘앙상블’이기도 했지만, 강은일의 감각과 음악성을 공유하고 젊은 음악가들을 성장시키는 ‘사관학교’이기도 했다. 하여 해금플러스에 몸담고 지나간 여러 멤버들을 프로그램북에 일일이 기록한 일은 잘 한 일이다.
획과 길은 통한다. 이번 무대는 강은일과 해금이 음악사에 하나의 ‘획’을 그은 시간을 돌아보고, 그 획을 따라 걸어갈 ‘길’을 가늠해본 시간이다. 역사를 만들었지만, 특히 그 역사에 갇히지 않겠다는 예술가의 ‘미래적 욕망’도 돋보였다. 2000년대 전후로 결성된 앙상블들이 많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이나, 시대적 변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지 못 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들도 많다. 이번 공연은 오랜 시간을 지켜온 앙상블이 그들의 시간을 어떻게 기념하고, 미래와 어떻게 약속해야 하는지 잘 보여준 공연이었다.
글 송현민(편집장) 사진 해금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