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비에 페스티벌 설립자 마틴 엥스트롬, 눈부신 여름, 스위스의 달콤한 꿈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6월 10일 9:00 오전

BEHIND THE MUSIC SCENE 20

세계의 공연기획자를 만나다

 

연재 | 세계의 공연기획자를 만나다

01 아라벨라 아츠 대표 스테파나 아틀라스 02 브라보! 베일 뮤직 페스티벌 대표 케이틀린 머리 03 루체른 페스티벌 대표 미하엘 헤플리거 04 브레겐츠 페스티벌 대표 미하엘 디엠 05 엘프 필하모니 대표 크리스토프 리벤 조이터 06 콘세르트허바우 대표 사이먼 레이닝크 07 에스플러네이드 대표 이본 텀 08 서구룡문화지구 대표 베티 펑 09 대만 국립가오슝아트센터 대표 치엔 웬핀 10 도쿄 산토리홀 대표 쓰쓰미 쓰요시 11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 대표 올리비에 레마리 12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대표 미하엘 아디크 13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경영감독 루카스 크레파츠 14 아스펜 음악 페스티벌&스쿨 대표 앨런 플레처 15 도쿄 신국립극장 대표 제니야 마사미 16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대표 안드레아스 슐츠 17 싱가포르 차이니즈 오케스트라 대표 테렌스 호 18 위그모어홀 대표 존 길훌리 19 싱가포르 아트그라운드 총괄 매니저 루안느 포 20 베르비에 페스티벌 설립자 마틴 엥스트롬

 


 

베르비에 페스티벌 설립자

마틴 엥스트롬

 

마틴 엥스트롬(1953~)은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음악사를 전공했다. 런던·파리를 거쳐 베르비에 페스티벌을 설립해 지금까지 책임자로 활동 중이다. 도이치 그라모폰 아티스트 개발 총괄 등을 역임했고 마카오·조지아·라트비아의 페스티벌 예술감독도 맡았다.

 

눈부신 여름, 스위스의 달콤한 꿈

신예부터 스타까지 함께 하는 베르비에 페스티벌(7.18~8.4) 경영인에게 안목 키우기와 성공 비결을 묻다

 

© Sedrik Nemeth

 

스위스 발레주 베르비에 산악의 여름은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젊은이들로 반짝인다. 기차역에서도 곤돌라를 타고 10분 정도 들어가야 이 작은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알프스산맥의 웅장한 경관과 휴양지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베르비에는 여름이면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나부끼고, 축제를 찾은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평화로우면서도 활력이 넘치는 이 마을에 4만여 명의 관객과 200여 명의 음악가와 예술가가 모여든다.

1994년 7월 12일에 문을 연 베르비에 페스티벌은 매년 7월 말부터 2주간 계속된다. 당시 스위스의 젊은 음악가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 페스티벌은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참여로 많은 관심을 얻었다. 호숫가의 장관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오페라 무대와 아카데미 및 마스터클래스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조화를 이뤄 관객은 물론 음악가들에게도 소통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베르비에 페스티벌의 설립자이자 감독인 마틴 엥스트롬(Martin Engstroem)을 화상으로 만났다. 예술경영인으로서 그의 행보는 전방위적이면서 의욕이 넘쳤다. 어떻게 한 사람이 이토록 많은 일을 꾸준히, 한평생 지속할 수 있었을지 궁금증을 품고 그와 인터뷰를 나눴다.

 

 

 

스위스의 찬란한 여름 탄생기

베르비에 페스티벌 ©Silvia Laurent

베르비에 페스티벌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떻게 ‘베르비에’라는 멋진 장소를 발견하게 되었는가?

1985년부터 2년간 나는 220명의 음악가를 관리하며 바쁘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에이전트는 직업 특성상 예술적 아이디어를 스스로 발현할 기회를 얻기 어렵기 때문에 창작자로서 계속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내 안의 아이디어를 밖으로 꺼내고 싶은 욕구가 있었기 때문에 페스티벌을 기획하게 되었다. 베르비에는 1991년 여름휴가를 왔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겨울은 스키로 더 유명하지만, 여름에 발산하는 싱그러움 또한 남다른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한 번 산으로 올라가면 다른 길이 없어 빠져나갈 수 없다.(웃음)

앞선 업계 경력이 페스티벌 기획에는 어떻게 도움이 됐나?

페스티벌을 창단한 나이는 마흔이었다. 그 전까지 매니저·이벤트 프로듀서로도 일했지만, 도이치 그라모폰에서의 업무는 마흔다섯에 시작했으니 페스티벌 기획과 예술경영인 경력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셈이다. 여러 좋은 사람들의 도움도 큰 힘이 되었다. 특히 당시 이스라엘필의 대표 아브라함 쇼사니의 넓은 인맥은 체계를 갖추는 데에 큰 힘이 됐다.

페스티벌에 초청되는 연주자는 신인부터 스타까지 폭이 넓다.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사실 선정 기준은 매우 주관적이다. 일단 반드시 연주를 들어 본 음악가들만 초청하는데, 그 이유는 ‘이 아티스트의 연주를 듣기 위해 내가 기꺼이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가’에 나부터 ‘있다’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0년 동안, 이 믿음 하나로 페스티벌을 이끌어왔다.

그런 이유라면 선호하는 음악가들이 자주 방문하게 될 것 같은데, 어떤가?

페스티벌 초창기에 오던 연주자들이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 유자 왕·막심 벤게로프·길 샤함·랑랑 등은 10~20대 시절부터 페스티벌에 꾸준히 참여했다. 이곳에서 청소년 시기부터 친구가 돼 지속해서 교류하는 이들도 많다. 베르비에만의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사랑해서 자주 방문하는 아티스트도 많다.

교육적인 면에도 큰 비중을 둔 게 느껴진다. 이와 관련된 구성을 간략하게 소개해준다면?

15~18세 대상의 유니온 오케스트라, 18~29세 대상 심포니 오케스트라, 졸업생 대상 체임버 오케스트라까지 세 개의 오케스트라를 운영하고 총 220명의 단원이 있다. 이들은 페스티벌 기간에 별도의 오케스트라 훈련을 받는다. 바이올린·피아노·첼로 등 악기별 독주자 양성 교육과 마스터클래스도 운영 중이다.

올해 프로그램도 참신한 것들이 눈에 띈다. 래틀(지휘)과 함께 하는 베토벤 프로그램에 두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첼로)·라하브 샤니(피아노) 그리고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올린)가 함께 하고, 임윤찬(피아노)이 함께 하는 드보르자크 피아노 4중주도 몹시 궁금하다. 이런 프로그래밍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모든 프로그램 구성을 직접 하고 있다. 음악가들에게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싶다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자기 능력에 도전하는 프로그램을 제안하면 음악가들도 더욱 의욕적으로 공연에 참여한다. 이런 생각들은 샤워할 때, 저녁 먹을 때 등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른다. 일상의 매 순간이 영감의 원천이고 종일 공연만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웃음)

지난해 창립 30주년을 맞이했다. 오랜 시간 페스티벌을 이끌어 오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을 텐데.

처음 페스티벌을 시작할 때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텐트에서 공연하고 개런티 지급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가들끼리 친목을 다지기 위해 이곳에 즐겨 방문하기 시작했다. 2007년부터 메디치 TV에서 페스티벌을 방송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얻었고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

오랜 기간 몸담아온 만큼 관객들의 취향이나 인식의 변화도 많이 느꼈을 것 같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확실히 음악가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고 느꼈다. 그들의 카리스마에 더 큰 비중을 둔달까. 무엇보다 그들의 연주 실력이 물론 중요하지만, 관객들과의 소통방식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클래식 업계에서 스타 시스템은 늘 존재해 왔다. 아마 모차르트도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

 

좋은 연주자를 발견하는 안목

카바스코와 요요 마

조성진

예술경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열네 살 때부터 학교에서 공연 기획을 경험한 것을 계기로 10대 시절 내내 공연에 빠져 살았다. 그러던 중 대부의 추천으로 여름방학에 공연기획사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고,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1년간 런던의 공연기획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런던은 예술의 중심지답게 굉장한 에너지를 내뿜는 도시였고, 덕분에 슈라 체르카스키·쇼스타코비치·메시앙 등 굵직한 아티스트들의 음색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도이치 그라모폰의 클래식 음악부 수장으로 오랜 기간 일했다고 들었다. 신인 음악가 발굴 역시 적극적이었다고.

지금 왕성하게 활동 중인 랑랑·윤디 리·유자 왕·에사 페카 살로넨·체칠리아 바르톨리·안나 넵트레코 등 정말 많은 아티스트들의 신인 시절부터 함께 했다. 음반사에서는 신인 음악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위험부담을 많이 느낀다. 신념과 직관성을 제대로 발휘해야 리더로서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지금도 젊은 연주자 발굴에 적극적이라고 들었다.

많은 연주자가 초기 경력을 쌓는 과정에 혼란을 겪는다. 예를 들어 콩쿠르로 갑자기 유명세를 겪으면 당사자보다 부모가 당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기저기서 오는 연주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이도 부모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이때 방향을 잘 정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해진다. 나는 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일찍 재능을 발견하고 제대로 꽃피운 친구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 성공의 열쇠는 음악가의 재능뿐만 아니라 주변의 조력에 있다.

많은 성장을 지켜보며 느낀, 음악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 하나를 꼽자면?

신인일수록 연주를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Something to say)’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요즘 임윤찬이나 브루스 류, 다닐 트리포노프의 연주가 굉장히 인상 깊다.

 

예술의 성장에 필요한 균형 잡힌 토양

음악가들의 재능은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충분히 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재능은 기본적으로 하늘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재능이 있다고 모두 꽃피울 수 있는 건 아니다. 부모의 역할도 중요하다. 환경을 조성해 주고, 좋은 선생을 만날 수 있게 도우며 힘든 순간에도 응원하는 존재가 있을 때 비로소 재능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재능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성향이다. 어느 정도 경쟁적인 성향이 있어야 스스로 발전을 위해 노력할 수 있다.

맞다. 하지만 성공하기 위해서 그 외에 또 뭔가가 있어야 할 것 같다. 테크닉은 연습으로 갈고닦을 수 있지만 표현력의 문제는 별개이지 않은가?

테크닉을 완벽하게 익히는 것은 음악가로서 출발선에 서는 것이다. 하지만 표현력은 연습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른 음악가들의 연주를 듣고, 문학을 읽고, 박물관을 가는 등 음악 외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경험을 충분히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연습 시간의 30% 정도는 다른 활동에 투자하라고 권하는 편이다. 네트워킹 문제도 빠질 수 없다. 음악적 교류가 지속되어야 발전이 가능하다. 콩쿠르 출전이나 마스터클래스 등에 열심히 참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베르비에 페스티벌 마스터클래스를 적극 추천한다.(웃음)

첼리스트 장한나와도 인연이 깊다고 들었다.

열한 살의 어린 나이에 미샤 마이스키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했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당시 장한나의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고, 에이전트가 없다는 말에 기꺼이 매니저를 자청했다. 열두 살부터 열일곱 살까지 그녀를 매니징하며 EMI 음반 계약, 로스트로포비치와의 협연 등 많은 일을 함께했다.

 

‘덕업일치’의 행복, 예술을 사랑하는 삶

클래식 업계에서 한평생 일해 온 소감이 새삼스레 궁금해진다. 클래식 음악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내 삶이 곧 음악이다. 취미와 직업이 일치한 삶은 만족도가 클 수밖에 없다. 음악과 함께할 수 있어 매 순간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예술경영인의 꿈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고 싶다. 음악만 알아서는 좋은 공연을 구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음악 외적인 부분에 대해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한다. 더불어 강조하고 싶은 건 신뢰다. 공연에 오르는 아티스트에 대한 믿음을 갖고,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믿음을 주려고 노력하길 바란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대인관계 기술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또, 일하면서 실수하는 순간에 숨지 않기를 바란다.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발전도 가능하다. 자기 몫을 묵묵히 견뎌내는 힘 역시 믿음에서 나온다. 자신에 대한 믿음, 타인에 대한 믿음을 지키며 성장해야 오래 일할 수 있다.

 

스위스의 오후 네 시, 화면에 비친 흰 창틀 사이로 비추는 따스한 햇살은 한국이 밤이라는 걸 잊게 할 정도로 눈부셨다.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돕고 동시에 자신의 꿈을 위해 여전히 힘찬 걸음을 계속하는 그의 모습에서, 차세대 예술경영인들의 롤모델의 정석은 그가 아닐지 감히 생각해 본다.

박선민(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베르비에 페스티벌

 


 

PREVIEW

베르비에 페스티벌 속 한국인 연주자

 

임윤찬 ©studio possiblezone

김봄소리 ©Kyutai Shim/DG

올해 베르비에 페스티벌은 7월 18일부터 8월 4일까지 열린다. 베르비에의 얼굴과 같은 연주자들, 키신·마이스키·유자 왕 등의 명단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신선한 만남’이라는 실내악 공연명 아래 다수의 신예 연주자도 공연을 선보인다.

올해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한국인 연주자는 두 명이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독주회(7.20)를 선보이며, 해당 연주는 일찌감치 매진을 기록했다. 프로그램은 6월 국내 투어와 동일. 그의 연주는 독주만 있는 것은 아니다. 24일에는 실내악 공연으로 드보르자크의 피아노 4중주 2번을(요제프 슈파체크(바이올린)·엥스트롬(비올라)·미샤 마이스키(첼로)), 26일에는 협연으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파파노 지휘,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연주)를 연주할 예정.

페스티벌에 함께하는 또 한 명의 연주자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다. 두 번의 공연을 선보이는 김봄소리는 실내악 공연(7.26·28), 그리고 줄리앙 쿠엔틴과의 듀오 공연(7.29)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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