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여수에코국제음악제 예술감독 김민지, 배우고 베푸는 음악가를 꿈꾸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6월 3일 9:00 오전

COVER STORY

 

첼리스트·여수에코국제음악제 예술감독 김민지

흐르는 강물처럼 자유롭게!

 

 

배우고, 베푸는 음악가를 꿈꾸다

 


 

PART 1 INTERVIEW

 

전라남도 아래쪽에 위치한 여수는 매년 여름 다양한 클래식 음악 축제가 이어지는 도시이다. 찾아가는 음악회를 비롯한 ‘여수음악제’가 가장 유명하지만, 여수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김소진을 앞세워 시작했던 ‘여수국제음악제’도 매년 8월이면 돌아오는 행사 중 하나였다. 이 행사가 작년 새로운 예술감독을 선임하며 6월로 옮겨졌는데, 변화를 통해 축제에 새로운 바람을 꾀하는 듯하다. 그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이 새로운 예술감독인 첼리스트 김민지의 손에 달린 일일 것이다.

모범생. 첼리스트 김민지의 삶의 궤적을 살펴볼 때 가장 어울리는 단어이다. 현재 서울대학교 부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연주자가 학문으로 닦을 수 있는 길 중 가장 모범적인 노선을 걸었다. 멀리서 보면 잔잔한 바다를 지나듯이 탄탄대로 흘러온 엘리트의 삶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그의 여정에도 거친 파도가 존재했다. 음악가가 없는 집안에서 돌연변이처럼 선택한 첼리스트라는 직업에 대한 반대도 있었고, 경제적 어려움도 따랐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했기에, 김민지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연주자가 되지 않았어도 필시 음악을 했을 인물이다. 용돈을 조금씩 모아 꾸준히 수집한 수많은 음반, 어느 지역을 가든 구입해 온 여러 악보가 그의 음악을 향한 사랑을 증명한다. 궁한 유학 시절에도 돈이 생기면 사는 것은 꼭 두 가지였다. 비상식량, 그리고 악보.

유학을 마치기까지 그리 넉넉하지 않았던 가정사가 그와의 대화에 이따금 등장한다. 미국보다 학비가 저렴한 독일을 택하려고 했던 유학 준비 시절, 박사과정보다 경제활동을 시작해야겠다고 불안을 품었던 20대 중반이 그러하다. 그때마다 김민지에게는 선택을 거드는 기회들이 찾아왔다. 음악에 헌신한 만큼 따라주는 실력으로, 그는 미국 대학의 전액 장학금, 파리 유학 장학금,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 부수석의 자리를 얻어냈다.

자신에게 주어졌던 좋은 기회를 돌아보며 “운이 좋았죠”라고 웃으며 말하지만, 김민지의 운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요행으로 보이지 않는다. 커버 촬영이 이루어지는 짧은 시간에, 털털하고 진솔한 성격으로 그가 주변 사람에게 좋은 인물로 인식된다는 걸 뚜렷이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 다가왔던 여러 기회는 김민지가 가꿔온 소중한 인연의 화답이었으리라.

 

10대, 미지의 문을 열다

 

음악 여정의 시작은 빨랐다. 유년 시절 음감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작한 첼로로 예원학교에 입학했다. 만 16세로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 입학하여, 남들이 대입을 준비하는 나이에 석사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개교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학교는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지원했다. 학생들도 이를 통해 자신과 학교의 능력을 검증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나이에 첼로 전공으로 한예종에 입학했다. 음악을 아주 어린 나이에 시작했나?

음악을 시작한 것은 4살 때, 피아노가 먼저였다. 첼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취미로 이를 배우고 있던 아버지 덕분이었다. 유년 시절, 아버지 품에 거대하게 안기는 악기가 신기하게 느껴져 이내 따라 배웠다. 이후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공으로 배우기를 결심한 후, 박경옥 선생님(전 한양대 교수, 현 예원학교장)을 만나 예원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전공 결심부터 진학까지 순탄했나 보다.

사실 어렸을 때는 실력과 별개로 아버지께서 내가 음악보다는 다른 공부를 하기 원했고, 예원학교에 입학하고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만나 집중을 못 하기도 했다.(웃음) 서울예술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 다시 정신을 차렸고, 한예종에 들어가 정명화 선생님과 박상민 선생님을 사사하며 음악에 홀딱 빠지게 됐다.

한예종 예술영재 선발제도의 시행 초기였는데, 동급생보다 어린 나이가 힘들지는 않았을까?(예술영재 선발제도는 영재를 조기 발굴하고 체계적인 영재교육을 하기 위한 한예종만의 독특한 제도이다)

힘든 면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말마따나 예술영재 선발제도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한예종 역사상 ‘영재 2호’였다. 이 제도에 대한 기대와 혜택, 그러면서도 뭔가 실험적인 시간 속에서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았고, 나는 늘 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다행히 교수님들은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고, 내게 많은 열정을 쏟으셨다. 나도 그에 부응하고자 더 열심히 따랐기에, 결과적으로 즐겁고 재밌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맹목적인 마음도 있었지만, 길잡이가 되어주는 여러 언니, 오빠들이 있어 음악의 기초를 잘 다질 수 있었던 시기였다.

당시 한예종 교수진에는 정명화가 있었고, 앞서 말한 대로 그를 사사했다.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겠다.

첼로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실내악·피아노 등 다른 악기 전공 교수님에게도 지도를 받으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정명화 선생님을 만나고서는 적극성이 많이 늘었다. 그전까지는 레슨실에 들어가면 조용히 연주만 하는 학생이었는데, 선생님께 배우며 자기 의견을 말하는 학생이 됐다.

류이스 클라레트, 정명화, 김민지, 로런스 레서

한예종을 졸업한 직후, 미국의 뉴잉글랜드 음악원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미국 유학은 언제부터 고려했나?

인연과 운이 따라주었다. 미국 LA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첼리스트 피아티고르스키(1903~1976)의 이름을 따서 진행하는 세미나가 있었는데, 한예종이 그곳의 세 교수를 초빙하는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했다. 여기에 참여했던 첼리스트 로런스 레서(1938~)가 나를 마음에 들어 했고, 내가 졸업할 즈음 정명화 선생님께 직접 연락하여 “민지를 가르치고 싶다”라고 전하셨다. 미국 대학은 학비가 높고, 나의 집안 형편은 이를 마련하기가 어려워서 미국이 아닌 독일을 고려하던 때였다. 그런데 그분이 내게 일단 미국으로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방향을 틀어 그분이 교수직을 맡고 있던 뉴잉글랜드 음악원에 오디션을 보았고, 5년 동안 레서 선생님 아래에서 석사와 전문연주자과정, 최고연주자과정까지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게 됐다.

로런스 레서는 어떤 스승이었나?

아버지에게 잘 얘기하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대화를 나눴으니, 또 다른 아버지 같은 분이다. 지금도 선생님을 마주하면 가슴이 짠해지곤 한다. 내가 지금 가진 음악관을 심어주신 분이며, “좋은 첼리스트 이전에 좋은 음악가, 좋은 사람이 돼라”는 선생님의 말씀은 나의 학생에게도 전하곤 한다. 나아가 음악을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게 된 것은 모두 레서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이다.

 

20대, 견문을 넓히다

 

20대에 접어든 김민지에게는 조언을 해주는 좋은 스승이 많았다. 그들은 앞에서 제자를 이끌어 주는 존재이기도 했지만, 제자가 시야를 넓히며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뒤를 밀어주는 힘도 컸다. 덕분에 김민지는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고 다양한 국가를 오가며 여러 연주 스타일을 익힐 수 있었다.

뉴잉글랜드 음악원이 위치한 보스턴 시내는 다양한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번화가이다. 2000년대 초반 유학 생활을 보내며 공연예술을 많이 즐겼는가?

보스턴 심포니의 공연을 많이 보았다. 또한, 뉴잉글랜드 음악원 안에는 약 1천석 규모의 조던홀이 있는데, 그곳에서 공연장 안내원으로 일하면서 좋은 공연을 많이 보기도 했다. 학생일 때는 24시간 내내 음악을 듣고, 음악과 관련된 일만 했다. 이제는 그런 시간을 얻는 것이 불가능하니 때로는 그때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좋은 추억을 선사한 미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유학생활은 보통 한 대륙에서 꾸준히 머무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유럽으로 건너가게 된 이유가 있을까?

레서 선생님의 권유였다. 나는 박사 학위까지 생각하며 학교에 원서를 제출했는데, 선생님께서 반대하며, “너의 20대 절반을 보스턴에서 보냈는데, 그 전부를 이곳에서 보내고 싶니? 나도 네가 곁에 있으면 좋지만, 그럼에도 네가 더 넓은 곳에서 배웠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조언을 들은 이후 결심이 서서 프랭크 헌팅턴 비비 펀드(Frank Huntington Beebe Fund) 장학금을 받아 1년간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떠났다.

프랑스 툴루즈 음악원에서는 최고연주자과정을 수료만 했는데….

장학금 지원이 끝났음에도 파리에서 더 공부하고자 했는데, 그때는 가세가 기울어 더 이상 공부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됐다. 게다가 미국에서 쌓은 경력과 인맥은 유럽으로 넘어오며 사라지기 때문에, 유럽에서 돈을 벌어 공부를 이어간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때는 걱정이 많았다. 20대 후반이 됐고, 주변의 다른 친구들은 솔리스트로 활동하거나, 콩쿠르 실적을 쌓으며 성장하고 있는데, 나는 지체되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때 유럽에서 가르쳐 주셨던 류이스 클라레트(1951~) 교수님께서 용기를 주셨다. 본인도 내 나이에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며 돈을 벌었다며, 나 역시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기를 권했다. 그때도 선생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스페인 발렌시아를 거점으로 하는 레이나 소피아 오케스트라에 부수석으로 입단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스페인의 팔라우 데 레자르 레이나 소피아

부수석으로 입단한 오케스트라는 오페라를 주력으로 하는 스페인의 극장, 팔라우 데 레자르 레이나 소피아(Palau de les Arts Reina Sofía)였다. 2005년에 문을 열어 당시에는 새로운 단체라는 인식이 많은 오케스트라였다.

팔라우 데 레자르 레이나 소피아는 새로운 극장이었지만 좋은 지휘자가 많이 거쳐 갔다. 나를 발탁했던 당시 음악감독인 로린 마젤(1930~2014)이 그랬고, 파비오 비온디·로베르토 아바도 등이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다. 주빈 메타가 이 극장 음악축제의 대표를 맡기도 했다. 신식 극장이라 프로덕션과 의상 등이 정말 최고 수준을 자랑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주빈 메타가 지휘한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시리즈는 홀로그램 등을 활용하여 그 시대 기술과 맞닿은 프로덕션이었는데, 이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전용기를 타고 방문하는 관객이 존재했을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지금도 이러한 공연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한국, 미국, 프랑스, 스페인까지. 20대를 정말 다양한 국가와 대륙에서 보냈다.

덕분에 음악을 바라보는 시야가 많이 넓어질 수 있었다. 미국에서 약 6년, 프랑스에서 1년, 스페인에서 약 3년 반 정도 있었으니, 서로 다른 오케스트라, 다양한 음악, 여러 지휘자·음악가를 만나고 무대와 오페라 연출까지 겪으면서 성숙해지는 시기로 20대를 보낸 것 같다.

각 나라가 가진 연주 스타일의 차이를 잘 알고 있겠다.

‘이것은 북미 스타일, 저것은 유럽 스타일’이라고 칭하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음악 문화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은 맞다. 유럽은 전통과 근본을 다루고자 하는 기저가 깔려있으니 말이다. 재미있게도 미국 유학 시절의 레서 선생님은 유럽의 양식을 익힌 음악가였기에, 나 역시 그러한 스타일을 미국에서도 공부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그 경험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싶다.

문화가 잘 맞았던 나라는 어디인가?

스페인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는 스페인 사람들의 느긋함이 오히려 어려웠다. 저녁 식사를 밤 9시에 하고, 새벽 2시에 잠에 들고, 아침에 일어난 후 점심에 낮잠인 시에스타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일 처리가 빠른 한국인으로서 ‘답답해!’라고 느끼지 않겠나. 우리나라와 분위기가 참 반대였다. 그러나 그 느긋한 문화에 적응하고 나니, 귀국했을 때는 반대로 빠르게 돌아가는 한국 시스템이 힘들었다.(웃음)

30대, 복합성을 갖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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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대에 얻은 다양한 문화는 30~40대에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음악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흡수하며 감상하던 모범생은 정석은 물론, 응용까지 다양하게 프로그램에 담아냈다. 이러한 면모는 그의 첫 음반인 ‘굴다·카사도·힌데미트·솔리마’(2021, Decca)에서 두드러진다. 흔치 않은 작곡가를 모아 놓은 이 음반에는 변칙적인 선율이 주는 재미부터 무게감 있게 울리는 무반주 첼로의 깊이까지 모두 감상할 수 있다.

바로크·고전·낭만·현대음악은 물론 재즈, 영화음악, 가요까지 무대에서 선보이고 있다.

작품은 물론 장르에 편견 없이 다가가는 자세를 항상 중요하게 생각한다. 어떤 음악이든 주어진 것은 모두 시도해 보고 싶다. 무용·미술·기술·미디어아트 등 다른 장르와의 컬래버레이션도 환영이다. 맑은 날 먹는 국밥과 비 오는 날 먹는 국밥이 다르듯이, 같은 음악을 다른 장소, 다른 방식으로 들으면 다르게 다가오기 마련이지 않은가.

첫 음반인 ‘굴다·카사도·힌데미트·솔리마’에서 그러한 면모가 돋보인다. 첫 트랙에 관악 앙상블과 합주하는 굴다의 첼로 협주곡을 배치했다.

관악 앙상블(김영률 지휘/더 윈즈)과 함께하는 것은 내게도 새로운 시도였다. 이 작품은 공연으로도 몇 번 선보인 적이 있고, 올해도 연주 계획이 있다. 드럼의 리듬 덕분에 항상 관객의 반응이 좋아 재밌어하는 작품이다.

카사도(1897~1966), 힌데미트(1895~1963), 솔리마(1962~)의 작품은 모두 20세기 음악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첫 음반이라 작품에 관한 고민이 많았다. 세상에 나와 있는 18~19세기 작품 음반은 너무 많은데, 나도 그중 하나가 되어 바흐, 베토벤, 브람스를 녹음해야 할까? 이를 생각해 보니,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싶더라.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을 해야 의미를 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현대곡이면서 동시에 조금씩 다른 장르를 섞은 음반을 만들게 됐다. 발매한 이후에는 저작권료가 어마어마해서 조금 후회하기도 했지만,(웃음) 여전히 잘 짠 레퍼토리라고 생각한다.

현대음악 레퍼토리는 앙상블오푸스(예술감독 류재준)에서 활동하면서 넓히기도 했다. 초연작도 여럿 연주했고, 해외 작곡가와 협업도 했다. 오늘날 작곡되는 작품에도 관심이 많은 편인가?

새로운 곡을 하는 것은 항상 재미있다. 처음에는 물론 어렵지만, 난감한 테크닉을 해내고 나면 희열이 느껴지지 않겠나. 작곡가와 연주가의 협업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음악가로서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작업이다. 주변의 학생들, 젊은 작곡가들에게도 새로운 작품을 쓰라고 항상 독려하는 편이다. 작품만 만들면 바로 연주하겠다고 말이다. 학생들에게는 본인이 적은 음표가 실제 악기에서 어떻게 소리가 나고, 가능하고 불가능한 주법이 무엇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작업이 특히 중요하다. 서로 소통해야지만 알 수 있는 부분이 무척이나 많다.

이 같은 현대음악에 대한 관심은 물론 기본도 충실하다. 2022년 독주회에서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 여섯 작품은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었던 도전이었는데, 2년 전에 무대에 올리게 됐다. 사실 그때도 아직 준비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 망설였지만 주변의 응원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스스로 무척 감격스러운 공연이었는데,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첼리스트에게는 바이블이기 때문이다. 항상 마음 한구석의 끝내지 못한 숙제를 달성하니, ‘내가 인생에서 첼로를 이만큼이나 했구나’라는 감상에 새삼 벅차올랐다. 그 연주는 음악 인생 속 하나의 마침표로 남았다.

바흐를 연주하기에 적합한 악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들었다. 비올라 다 감바를 개량한 첼로를 사용 중인데, 악기의 특징을 설명해달라.

울산대학교에서 재직하신 고(故) 이동우 교수님께 물려받은 악기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용해 왔다. 1681년에 제작된 비올라 다 감바를 개량한 것인데, 이런 경우에 악기가 무조건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비올라 다 감바는 첼로보다 조금 커서 악기를 처음 받았을 때는 운지판의 크기가 손에 안 맞아 부상이 많았다. 그때는 악기에 관한 지식도 많지 않아서 악기를 개량하는 법을 잘 몰랐다. 자라면서 악기 부속품에 점점 관심이 늘고, 더 좋은 소리를 찾기 위해 여러 부품을 시도해 보면서 지금은 손에도 맞고, 음색도 더욱 향상된 악기로 개선했다. 울림이 좋아서 다른 첼로보다 더욱 깊은 소리가 나는데, 이 덕분에 바흐와 같은 바로크 작품을 연주할 때면 악기가 더욱 빛을 발한다.

 

40대, 앞서서 이끌다

 

첼리스타 첼로앙상블(2023, 성남아트센터)

2009년에 귀국하여 자리를 잡기 전부터 이어온 국내 앙상블 멤버 활동, 그리고 올해 13년 차로 접어든 대학에서의 교육 활동은 김민지의 음악 생활에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다른 음악인과의 소통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고 여러 번 강조하는 그에겐 두 모습이 모두 걸맞다. 함께하는 즐거움을 잘 아는 겸허한 태도는 그가 왜 한 축제의 예술감독으로 임명될 수 있었는지를 알려준다.

도전을 좇는 성향 덕분인지, 여러 앙상블 공연 활동도 활발하다. 2007년에 창단한 금호솔로이스츠, 2013년에 창단한 첼리스타 첼로앙상블과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다. 실내악과 앙상블 연주에는 언제부터 빠져들었는가?

대학생 때부터 좋아했다. 첼로는 특성상 실내악에서는 빠질 수 없는 악기이고, 실내악을 통해 다른 음악가와 교류하면 새로운 관점, 레퍼토리 등 혼자 익힐 수 없는 것을 습득할 수 있었다. 이게 마음을 꽉 채우는 기분을 선사해서 여전히 실내악을 좋아한다. 또한 어릴 때 시작한 피아노는 대학 시절 내내 부전공으로 연주해서, 실내악 작품을 공부하기에 더욱 좋았다.

멤버로 활동하는 악단 중에서도 첼리스타 첼로앙상블은 구성이 독특하다.

12명의 첼리스트와 안성민 작곡가로 이루어진 단체이다. 첼로 12대를 위한 기존 레퍼토리가 거의 없어서, 편곡자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안성민 작곡가가 전담으로 우리 앙상블을 위한 편곡 악보를 제작해 준다(멤버는 박상민·김두민·김민지·주연선·강미사·김소연·심준호·양지욱·이상은·이재성·장우리·장혜리·안성민). 또한 악기의 음역과 음색의 특성상 적합한 곡을 고르기도 쉽지 않아 프로그램에 고민이 많은 편이다. 작년의 10주년 기념 공연이 그러한 의미에서 특별했다. 이 앙상블이 10년을 갈 수 있다니!(웃음) 모든 멤버가 서로를 지긋이 믿어주는 힘이 있기에 가능했다. 지금은 서로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가족이 된 기분이다. 첼로만이 뭉쳐서 만들어 내는 음악은 상당히 개성이 있고 매력적이라, 앞으로의 10년도 기대가 되는 단체이다.

첼리스타 첼로앙상블과 안성민 작곡가는 올해 9회를 맞이하는 여수에코국제음악제에도 참여(6.23/GS칼텍스 예울마루 대극장)한다. 작년에 이 축제의 음악감독으로 올라 올해 두 번째 축제 프로그램 기획을 마쳤다.

이 음악제의 예술감독을 맡은 것을 굉장히 기쁘게 생각한다. 그 외에 2018년부터 덕수궁 석조전 음악회의 음악감독을 맡아오고 있는데, 이러한 경험을 이 축제에서도 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음악 축제를 준비하면서 참고하거나 본받고자 하는 음악 축제가 있었을까?

공연 관람을 좋아하다 보니 유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국내외 음악 축제를 관람했다. 이를 통해 깨달은 바는 음악제의 힘은 결국 좋은 음악과 많은 관객 참여에서 온다는 것이다. 콕 집어서 한 음악제를 참고했다기 보다, 내 안에 쌓인 여러 레퍼런스들을 구현하는 과정에 있다.

2018년부터 서울대학교의 교수로 재직 중인데, 학생에게 연주 외에 이러한 현장 노하우도 전수하고 있는가?

학생들에게 소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비유적으로 음악을 언어라고 표현하는 대로, 음악도 하나의 소통이다. 나는 말로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이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분명하게 전달할 줄 알고, 그것을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받는 영재에서 교육하는 교수가 될 때까지, 하나의 긴 성장 서사를 풀어냈다. 끝으로 학생들에게 어떤 스승이 되고자 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어린 학생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들에게 언제나 다가가려고 노력하는데, 아이들이 이에 화답하면 정말 기쁘다. 학생들에게 내가 배우는 것도 많고, 내가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는 용기는 학생들의 존재에서 나온다. 그런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스승이 되고 싶다. 먼저 새로운 레퍼토리에 도전하고, 새로운 방식의 연주를 보여주며 안주하지 않는 사람,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 가능성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내 음악 인생의 목표이다. 레서 선생님이 전해주셨듯이 좋은 첼리스트 이전에 좋은 음악가가 되기를, 그리고 20대, 30대를 지내며 스승과 선배들에게 배운 지혜를 전할 수 있는 스승이 되기를.

이의정 기자 사진 박진호(studio BoB)·스테이지원

 


 

PART 2 FESTIVAL PREVIEW

 

제9회 여수에코국제음악제

자연과 인간이 더해진 음악을 꿈꾸며

 

해안에 위치한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운치 있는 축제

 

제8회 여수에코국제음악제

전라남도 해안에 위치한 여수시는 2010년대 이후 관광도시로 부상했다. 클래식 음악가들에게도 이 시기부터 여수는 의미 있는 음악 도시로 거듭났는데, 2012년에 개관한 GS칼텍스 예울마루 공연장, 그리고 여름이면 돌아오는 여러 음악제 덕분이다. 올해 9회를 맞이한 여수에코국제음악제 역시, 남해를 바라보고 있는 GS칼텍스 예울마루에서 펼쳐지는 여수의 음악적 면모를 둘러볼 수 있는 축제이다.

여수에코국제음악제가 다른 축제와 차별을 두는 지점은 축제 이름에 담긴 ‘에코’에 있다. 2016년 여수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김소진을 예술감독으로 임명하며 시작한 ‘여수국제음악제’는 기후위기를 바라보며 2022년에 ‘여수에코국제음악제’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매년 개최되는 전국의 클래식 음악 축제는 적지 않지만, ‘에코’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작년부터 예술감독을 맡은 김민지는 여수가 가진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여 음악제가 기후변화와 환경적 실천에 앞장서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여수와 인근 순천, 광양 지역의 탄소 배출량은 전국 탄소 배출량의 17% 정도로 매우 심각한 편입니다. 오늘날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자연과 환경을 보호해야하는 시점이에요.”

이를 실천하기 위해 작년 제8회 여수에코국제음악제는 종이로 제작되는 홍보물을 축소하고, 프로그램북과 악보를 모두 디지털화하였다. 축제를 찾아온 관객도 참여할 수 있도록 재활용 종이팩을 가져오면 친환경 기념품으로 교환해 주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연주하는 프로그램 역시 자연과 관련된 작품으로 배치하였다.

올해의 축제는 여기에 ‘자연’의 의미를 더 돌아본다. 김민지 감독은 작곡가 안성민의 위촉 초연곡 ‘음악이 에코다’를 짚으며 자연과 음악의 접점을 이야기했다. “악기도 결국은 나무에서 온 산물입니다. 음악의 소리는 자연의 소리와 닮은 점이 있어요. 사람들이 지칠 때 찾는다는 공통점도 있고요. 자연을 닮은 음악을 통해, 휴식을 원하는 관객들에게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길 바랍니다. 음악과 자연의 닮은 면모를 담은 안성민 작곡가의 작품처럼 앞으로의 음악제에서도 이와 같은 작품을 계속 위촉, 초연할 계획입니다.”

축제에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제’라는 명칭이 붙었지만, 다수의 출연자가 국내 아티스트인 점, 주요 무대 외에 다른 부대 행사가 부족한 점은 축제에 성장이 아직 필요하다는 의미이겠다. 국내에 여러 음악 축제가 생겨나도 지원과 예산의 한계 때문에 문을 닫는 현실을 떠올리면, 예술감독으로 두 번째 해를 맞이하는 김민지 감독에게는 아직 해나가야 할 여러 과제가 있을 것이다. “역량이 된다면 해외와 교류하며 한국을 알리는 페스티벌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여러 음악가들이 이 축제를 통해 활동의 기회를 얻고, 제가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또한 바랍니다.”

제8회 여수에코국제음악제

나아가 김민지 감독은 여수 지역의 문화 행사를 향한 적극성과 발전 가능성을 이야기하였다. “여수는 크고 작은 음악제가 많습니다. 더불어 여수의 실무자들도 문화행사를 진행하고 싶다는 열정이 많습니다. 2026년 9월부터 11월까지는 여수세계섬박람회도 개최될 예정이고, 앞으로 예술 분야에서 발전할 가능성이 많은 지역입니다. 관광으로는 미식가들 사이에 소문이 날 정도로 좋은 먹거리가 많습니다. 음식과 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축제야말로 사람들이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곳이 아닐까요?”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 축제에는 여러 음악가가 모여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구성했다. 축제 1일 차에는 4곡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하프시코드가 함께하는 비발디의 작품과 안성민의 위촉곡이 무대에 오른다. 2일 차에는 실내악에서 선보일 수 있는 큰 규모 중 하나인 현악 8중주로 멘델스존의 작품을 연주한다. 3일 차에는 피아노가 더해져 가곡으로 잘 알려진 슈베르트의 ‘송어’를 연주하는데, 물가에 있는 공연장에서 연주하기에 실감나는 선곡이다. 마지막 날에는 김민지 감독이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첼리스타 첼로앙상블이 무대에 올라 대중에게 친근한 클래식 음악 작품과 영화음악 작품을 연주한다. 첼로 12대가 연주하는 비틀스 노래를 감상하고 싶다면 마지막날을 놓치지 말자.

이의정 기자 사진 범민문화재단

 

 

2024 여수에코국제음악제

장소 GS칼텍스 예울마루 대극장

 

6월 20일(목) 오후 7시 30분

이한나

송지원

출연 백주영·이지혜·김남훈·이현웅·송지원·김현경·서주희·곽연후·임정은· 김은지·박진수·안수경·백건(바이올린) |

이한나·이수민·장희재·정승원(비올라) | 이경준·남국희·김수정·서지수(첼로) | 조재복(더블베이스) |

아렌트 흐로스펠트(하프시코드)

프로그램 모차르트 디베르티멘토 K136 | 비발디 콘체르토 그로소 Op.3-11, RV565 | 안성민 ‘음악이 에코다’ |

드보르자크 ‘현을 위한 세레나데’ Op.22

 

6월 21일(금) 오후 7시 30분

출연 백주영·이지혜·송지원·김남훈·이현웅(바이올린) | 이수민·이한나(비올라) | 김민지·이경준(첼로) |

윤혜리(플루트) | 원재연(피아노)

프로그램 하이든 현악 4중주 ‘종달새’ Op.64-5 | 베버 플루트,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3중주 Op.63 | 멘델스존 현악 8중주 Op.20

 

6월 22일(토) 오후 5시

출연 일리야 라쉬콥스키·원재연(피아노) | 이지혜·백주영(바이올린) | 이수민(비올라) |

이경준·김민지(첼로) | 조재복(더블베이스)

프로그램 포레 ‘돌리’ 모음곡 Op.56 | 아렌스키 현악 4중주 2번 | 슈베르트 피아노 5중주 ‘송어’ Op.114 D667

 

6월 23일(일) 오후 5시

GS칼텍스 예울마루 공연장이 위치한 장도

출연 첼리스타 첼로앙상블(박상민·김두민·김민지·주연선·강미사·김소연·심준호·양지욱·이경준·이상은·임재성·장우리·장혜리·안성민)

프로그램 차이콥스키 백조의 호수 중 ‘왈츠’ | 존 윌리엄스 ‘쉰들러 리스트’ 주제곡 | 엔니오 모리코네 ‘가브리엘의 오보에’ 외 | 포퍼 콘서트를 위한 폴로네이즈 Op.14 |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중 ‘샤콘’ BWV1004 | 비틀스 ‘오블라디 오블라다’ ‘예스터데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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