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홀 조성진 피아노 독주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6월 27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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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홀 조성진 피아노 독주회 5.17

음악으로 이룬 완벽한 세계로의 초대

 

하이든·라벨·리스트로 카네기홀을 달군 피아니스트와 관객의 몰입이 빚은 순간

 

그가 천천히 카네기홀의 무대 위로 걸어 나온다. 객석뿐 아니라, 무대 위에도 관객들이 가득 앉아 있다. 조성진은 모든 관객을 향해 인사한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에는, 무대 위 관객이 연주자와 너무 가까워 보여 몰입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연주가 시작되고, 세 번째 곡인 라벨 ‘쿠프랭의 무덤’에 다다를 즈음 조성진의 모습은 세상에 피아노와 자신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예기치 않은 소음 속에서도, 그는 오롯이 자신의 세계에 집중했고 심지어 타인을 그 세계로 초대해 냈다.

 

생동감이 넘치는 작품별 접근법

©Jennifer Taylor

그가 선택한 첫 곡,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 34번이 경쾌하고 가벼운 건반의 울림과 함께 퍼져나간다. 하이든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기쁨과 환희. 이를 대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피아노 작품은 밝고, 흥겨움이 묻어 있다.

그러나 조성진은 작곡가의 고유한 특성에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해석 스타일을 드러냈다. 무거운 왼손과 오른손의 가벼운 터치가 상호보완적으로 움직이며, 완전히 다 펼쳐내기를 자제하면서 절제미를 선보였다. 세 개의 악장을 거의 연결하듯 이어 연주했고, 깔끔하고 결백한 마무리였다. 이는 관객이 물 흐르듯 유연하게 하이든을 만나게 해주었다.

두 번째 곡은 라벨이 작곡한 ‘하이든의 이름에 의한 미뉴에트’이다. 1909년에 작곡된 이 곡은, 연주 시간이 2분도 채 되지 않는다. 조성진은 극적인 서막을 알리듯 단숨에 도입부로 진입했지만 서두르지 않았고, 건반 위를 즐기는 손가락은 박자에 맞춰 춤을 추듯 매혹적인 움직임을 이어 나갔다.

세 번째 곡인 라벨 ‘쿠프랭의 무덤’은 거의 연결되는 느낌으로 이어졌다. 6개의 곡으로 작곡된 이 피아노 모음곡에서 조성진은 각 곡이 가진 특징을 섬세하게 부각했다. 그가 어떻게 자신의 음악 세계로 관객을 끌어들이는지 상세히 보이는 순간이었다. 제3곡 ‘포를란’에서, 오른손은 물방울을 튕겨주듯 찰나의 공백을 만들고 불균형의 음들 속에서 왼손을 초대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허공에서 작은 새가 날개짓하다가 떨어지는 것처럼 섬세히 다가가다, 다시 빠르게 창공을 향해 날아가는 듯하다.

그의 연주는 마치 다양한 맛을 선보이는 코스 요리 같았다. 이 요리를 모두 꼭꼭 씹어 먹으며 충분히 소화할 수 있게 되자, 제4곡 ‘리고동’에서는 냉철하게 날이 서 있는 듯한 정교함이 기다린다. 제5곡 ‘미뉴에트’는 잘 짜인 극본처럼 구조와 흐름을 따라 서정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마지막에 다다르기 전, 잠시 숨을 고른 뒤 끝으로 ‘토카타’에서는 감정이 폭발하며 화려하면서도 박력 있게 연주됐다.

 

피아노 위에서 그가 걸은 순례의 길

©Jennifer Taylor

2부에서 조성진이 선택한 곡은 리스트 ‘순례의 해’ 중 ‘이탈리아’였다. 일곱 곡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연주 시간이 50분에 다다르는 리스트의 대표작 중 하나다. 한 사람의 생애에 출생과 삶, 그리고 죽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있듯, 조성진은 자신이 건반 위에서 수도 없이 쓰고 지웠을 편지처럼 차곡차곡 준비한 것들을 보여주었다. 격정적으로 무겁게 건반을 누르며 시작한 그는, 미켈란젤로의 동상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제2곡 ‘생각하는 사람’에서 깊은 사색으로 점차 더 장엄하고 강력한 중력장 안에 빠져 들어갔다. 제3곡 ‘살바토르 로사의 칸초네타’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시인 살바토르 로사의 노래에서 영감을 받았다. 조성진은 앞의 중력장을 경쾌한 발걸음으로 빠져나와, 인생에는 어두운 시기도 있지만 밝은 빛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듯 위로를 선사했다.

이어지는 세 곡은 시인 페트라르카에게 영감을 받은 소네트들이다. 첫 소네트(47번)에서는 격렬해졌다가, 이어지는 두 번째 소네트(104번)에서는 고독하게 저녁노을이 지고 있는 듯한 풍경이 연출된다. 오른손의 멜로디 아래 왼손의 분산화음은 마치 쇼팽을 얹은 듯한 리스트를 연상시켰다.

‘단테 소나타’로도 불리는 마지막 곡에 이르기 위해 앞의 여섯 곡을 한겹 한겹 준비한 것처럼, 조성진은 그가 쥐고 있던 숨겨진 카드를 모두 펼치며 클라이맥스로 달려갔다. 건반 위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듯 휘몰아치는 그의 손가락은, 어느새 다시 새벽의 숲을 걷는 것처럼 사뿐히 다가온다. 느린 부분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연주하며 정교하고 자연스럽게 프레이즈를 넘나들었다. 고밀도의 집중력으로 숨이 막힐 듯한 화려한 옥타브 속주는, 관객들을 환희의 세계로 안내했다. 아직은 절망할 때가 아니라고 말해주듯, 뚜벅뚜벅 걸음을 내딛는 그의 연주는 절정에 다다르며 관객들의 환호성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끝나지 않을, 전성기에 보낸 환호

박수 소리가 끝나지 않았다. 다시 무대로 등장한 조성진은 자신의 단골 앙코르이기도 한 슈만의 ‘어린이 정경’ 중 ‘트로이메라이’로 화답했다. 마지막 음이 끝나도 아직 그의 손이 건반 위에 머무르고 있자, 관객 중 그 누구도 침묵을 깨지 않고 온전히 그의 세계와 하나가 되었다.

여전히 끊이지 않는 환호에 쇼팽의 폴로네이즈 6번 ‘영웅’으로 두 번째 앙코르를 이어갔다. 앙코르로 선택하기에는 조금 긴 곡이지만, 깔끔하게 소화하여 피아노의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연주가 끝나자마자 터져 나온 환호는 카네기홀을 가득 채웠다. 치열한 티켓 경쟁을 뚫고 객석에 들어온 이들이 결단코 후회하지 않을, 조성진의 진가를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양승혜(미국 통신원) 사진 카네기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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