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 COLUMN
음반에 담긴 이야기
탄생 100주년, 야노스 슈타커 1924~2013 를 돌아보다
엄격한 절제로 표출한 내면의 소용돌이
야노스 슈타커는 음반을 가장 많이 녹음한 첼리스트로 손꼽힌다. 무려 160장이 넘는 음반을 발매하여 거의 모든 첼로 레퍼토리를 망라한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들을 다섯 차례 녹음했고 1992년 녹음은 그래미상을 받았다. 1990년 다비드 포퍼(1843~1913)의 작품을 녹음한 음반은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다. 데이비드 베이커(1931~2016), 안탈 도라티(1906 ~1988), 베르나르트 하이덴(1910~2000), 장 마르티농(1910~1976), 로저 미클로시(1907~1995), 로버트 스타러(1924~2001) 등의 작곡가들이 협주곡을 작곡해 슈타커에게 헌정했다.
1950년부터 1965년까지 슈타커는 로드 에일스포드(Lord Aylesford) 스트라디바리우스 첼로로 녹음했다. 이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악기 중 크기가 가장 큰 것이다. 1965년부터는 마테오 고프릴러 첼로로 연주했는데, 1705년 베니스에서 제작된 악기다.
아홉 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대중 앞에서 연주를 했지만 공식적인 데뷔는 14세 때인 1938년이다. 이날 불과 3시간 전 연주 불가를 통보한 첼리스트의 대타로 드보르자크 협주곡을 연주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는 부다페스트 오페라와 부다페스트 필하모닉에서 수석 첼리스트로 활약했다. 그는 1946년 2월 빈에 초청돼 공연을 열었고, 부다페스트로 돌아가지 않고 빈에 정착했다. 그 해에 슈타커는 제네바 콩쿠르에 참가해 동메달을 수상했는데, 이는 국제적인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슈타커는 명성을 좇지 않았다. 대신 파리로 가서 현악 4중주단에 합류했다. 이 경험으로 그는 악기와의 친밀한 관계, 연주의 생리적인 측면, 손 근육과 힘의 분배 방식, 프레이징과 장식을 익혔다.
교향악단 수석을 거치며 성장하다
제네바를 떠나 파리로 간 슈타커는 1948년 기념비적인 첫 리코딩인 코다이 무반주 첼로 소나타 Op.8 음반을 퍼시픽(Pacific) 사에서 녹음했다. 당시에는 연주 불가능한 곡이라고 여겨졌을 만큼 난곡이다. 이 음반은 프랑스 레코드 그랑프리(Grand Prix du Disque)를 수상했고 그에게 명성을 안겨주었다. 이후 이 작품을 1950년(Period), 1957년(Columbia/EMI), 1970년(Delos)❶ 등 세 차례 더 녹음한다. 1950년대 후반 음반은 다시 들어봐도 30대에 완성된 기교를 들려주고 있는 점이 놀랍다. 델로스의 음반은 조미료를 하나도 넣지 않은, 날 것의 야성이 생생하게 살아나 명반으로 손꼽힌다.
1948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슈타커는 드디어 국제적인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는 안탈 도라티가 지휘하는 댈러스 심포니의 수석이 되었다. 이듬해인 1949년에는 뉴욕에서 프리츠 라이너(1888~1963)가 지휘하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수석으로 연주한다. 1950~1952년 슈타커가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일부(3·6번/1·4번)를 처음 녹음한 곳도 뉴욕이었다.
1952년 프리츠 라이너가 시카고 심포니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하자, 슈타커는 라이너를 따라 시카고 심포니의 수석이 되었다. 그는 “라이너의 지도 아래에서 수석 첼리스트로 활동하는 동안, 완벽함을 늘 염두에 두고 정확성을 요구하는 성향을 그로부터 물려받았다”라고 자주 언급하곤 했다. 라이너는 엄격한 기교, 내면화된 연주, 절제된 표현을 그에게 주문했고, 이는 슈타커 연주의 특성이었다.
1958년 그는 오케스트라 활동을 할 시간이 부족했기에, 부득이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블루밍턴 음악대학 총장 윌프레드 베인으로부터 받은 첼로 학과장직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수락했다. 인디애나의 블루밍턴은 슈타커의 예술에 중요한 거점이 됐다. 그는 연주 활동을 하며 고갈된 자아를 학생들을 가르치며 보충했다.
협주곡에서 느껴지는 단단함
1957년부터 1959년 사이 EMI 사의 프로듀서 월터 레그(1906~1979)는 슈타커의 레퍼토리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들을 녹음했다. 당시 HMV 사에는 슈타커의 경쟁자가 두 명 있었다. 1956년까지 EMI와 녹음하며 레그와의 관계가 항상 복잡했던 피에르 푸르니에(1906~1986)와, 레그가 녹음을 총괄한 적이 없었지만 1953년 말콤 사전트가 지휘한 BBC 심포니와 엘가 첼로 협주곡을 훌륭하게 연주한 폴 토르틀리에(1914~1990)였다. 완벽주의자였던 레그는 내면을 응시하는 기질과 절제된 매너의 소유자인 슈타커를 이중 가장 이상적인 대화 상대로 생각했다. 둘 다 신랄한 유머를 좋아하는 공통점도 있었기에 슈타커가 레그의 인정을 받았으리라. 레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한 프로듀서인 발터 옐리네크에게 슈타커의 솔로 녹음을 맡겼으나 모든 협주곡 녹음 작업은(미요 협주곡 2번 제외) 레그 본인이 직접 총괄했다.
EMI에서 녹음했던 드보르자크 협주곡(Documents)❷을 들어보면 발터 쥐스킨트(1913~1980)와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이뤄낸 연주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같은 작품을 연주한 피에르 푸르니에와 라파엘 쿠벨리크(1914~1996)의 빈 필과의 연주(Decca)와 비교해 봐도 흥미롭다. 푸르니에의 연주의 극적이고 솔직 담백함이 인상적이지만 슈타커와 쥐스킨트의 연주 또한 내면적인 성격과 세심하게 계획한 프레이징, 다이내믹의 완벽함, 실내악적인 해석에서 놀라움을 안겨준다. 잘 연마되고 우아하며, 감정적인 효과만을 추구하지 않는 슈타커의 고전적인 예술을, 이 연주는 온전히 보여준다. 슈만 첼로 협주곡(EMI)❸에서 젊은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의 만남은 슈타커의 미니멀한 연주, 즉, 최소 요소로 최대 효과를 거두는 연주 방식에 새로운 차원의 빛을 비춰준다. 줄리니의 열정적인 지휘는 슈타커의 견고한 집중력과 확고한 논리를 더욱 두드러지게 부각한다.
한편 도라티/런던 심포니와 함께한 드보르자크 협주곡(Mercury Living Presence)❹과 1962년 7월 녹음은 바흐 모음곡과 더불어 슈타커가 머큐리 리빙 프레즌스 사에서 거둔 최상의 기록 중 하나로 손꼽힌다. 푸르니에와 셸/베를린 필의 DG 녹음과 쌍벽을 이루는 명연주다. 머큐리에서 나온 슈만·랄로·생상스의 낭만주의 첼로 협주곡 음반(Mercury Living Presence)❺도 추천한다. 낭만과 서정성을 세련되게 표출한 슈만 협주곡과 고전적인 구성·민속적인 색채가 돋보이는 랄로 협주곡은 스타니스와프 스크로바체프스키(1923~2017)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와의 연주로 1962년 7월 녹음됐다. 첼로의 낭랑한 음색이 강조된 생상스 협주곡 1번은 1964년 6월 안탈 도라티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와의 연주로 녹음됐다. 전체적으로 음악의 근육질을 드러내는 해석이다. 슈타커의 음악은 낭만적인 달콤함에 쉽사리 녹아들지 않는 특성이 있다. 프리츠 라이너가 지휘에서 보여준 것과 마찬가지다.
과장 없는 독주곡과 소나타
슈타커 최초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세트는 1957년부터 1959년까지 녹음돼 EMI에서 발매됐다. 슈타커는 이후 머큐리❻와 RCA❼에서 두 차례 더 전곡을 녹음한다. 머큐리 녹음에서 모음곡 2번과 5번, 첼로 소나타 1번과 2번은 1963년 4월 녹음이고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과 6번은 1965년 9월 녹음, 모음곡 3번과 4번은 1965년 12월 녹음이다. 중후한 음향 속에 짙은 색채감이 또렷하다. 슈타커는 진솔하고 과장 없는 태도로 연주에 임한다. 탁월한 레가토를 발휘하며 이미 찾은 길을 또 물어 찾는 듯한 연주를 통해 나오는 그 음색은 따스하다.
브람스 첼로 소나타 전곡과 멘델스존 첼로 소나타 2번(Mercury Living Presence)❽ 음반에서 브람스는 1964년 6월, 멘델스존은 1962년 7월, 모두 런던에서 녹음됐다. 브람스 소나타에서 묻어나는 짙은 우수와 서정은 슈타커의 스타일과 가장 잘 어울리는 레퍼토리가 아닐까 한다. 중용적이고 직선적인 슈타커와 죄르지 세보크(1922~1999)의 연주는 첼로와 피아노의 이상적인 균형미를 보여준다.
비발디·보케리니·코렐리·로카텔리·발렌티니 등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의 작품과 바흐 첼로 소나타 3번 BWV1029 등을 수록한 음반(Mercury Living Presence)❾에서는 유연하되 감상적이지 않은 슈타커 전성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의 활 사용에서 감상에 젖지 않는 강렬함과 지적인 섬세함도 풍성하게 묻어난다. 원전연주가 보편화된 현재에도 설득력을 잃지 않는다.
쇼팽 첼로 소나타와 멘델스존 첼로 소나타 2번, 드뷔시 첼로 소나타, 버르토크 랩소디 1번, 멘델스존 협주적 변주곡, 마르티누 로시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 바이너 헝가리 결혼 춤곡 등이 담긴 리사이틀 음반(Mercury Living Presence)❿은 1962~1963년 런던과 뉴욕의 녹음이다. 거침없이 연주하는 외향적인 소리가 담긴 음반이다. 첼로가 아니라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처럼 지판을 주무르는 왼손이 인상적이다. 마르티누, 바이너 등 20세기 작곡가들의 작품을 통해 폭넓은 슈타커의 음악성을 확인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끝으로 소개하고 싶은 음반은 델로스에서 발매한 80세 생일 기념 음반(Delos)⓫이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의 얼굴이 가장 왼쪽에 인쇄돼 있어 반가운 이 음반은 2004년 엘 파소 프로 무지카에서의 라이브 연주를 담았다. 레퍼토리가 수려하다. 슈타커가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보케리니와 슈베르트 현악 5중주를 담고 있다. 슈타커와 김수빈·커트 니카넨(바이올린)·커스틴 존슨(비올라)·쥘 베일리(첼로) 등 동료 연주자 간에 존경을 바탕으로 한 교감이 형성돼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위대한 예술이 어떻게 후대로 이어지는가를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기도 하다. 천상의 작품을 함께 연주하며 대견스러워하고 스스로 감동하는 슈타커의 따스한 마음을 공감할 수 있는 음반이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RECORD COLUMN
야노스 슈타커의 제자가 보내는 헌정의 축제
에코 오브 로망스: 슈만·브람스
Decca 4876246
양성원(첼로)/에마뉘엘 슈트로세(피아노)/김한(클라리넷)/ 한스 그라프(지휘)/런던 심포니
“횃불을 계속 들고 가라.” 야노스 슈타커가 제자인 양성원(1967~)과 작별 인사를 할 때 그에게 건넨 이 문장은 제자의 마음에 평생 남았다. 양성원이 야노스 슈타커 앞에서 처음 연주한 것은 그가 17세 때의 일이지만, 양성원의 가슴에 슈타커가 처음 자리한 것은 보다 전인 1973년의 일이다. 그는 다섯 살 때부터 바이올리니스트인 부친 양해엽을 따라 여러 현악 리사이틀을 관람했는데, 그중 처음으로 아름다움을 느꼈던 것은 야노스 슈타커의 1973년 서울 내한 공연이었다. 그 순간부터 이 음반까지,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첼로의 선율로 이어지는 횃불이 서서히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넘겨지는 모습을 그려본다.
이 음반과 더불어 야노스 슈타커가 세상에 남긴 유산을 만나 볼 수 있는 공연이 이달에 예정되어 있다. 세계 각지에 퍼져있는 야노스 슈타커의 제자들이 모여 3일간 ‘야노스 슈타커 탄생 100주년 첼로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축제는 일본 첼로 협회, 산토리홀과 협업하여 7월 3~5일은 롯데콘서트홀에서 5~7일은 일본 산토리홀에서 열리는 일정. 국내 공연 첫날의 주제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으로, 여섯 명의 첼리스트가 돌아가며 6개 전곡을 연주한다. 이튿날은 슈타커가 음반으로도 여러번 선보인 코다이 무반주 소나타를 포함하여 베토벤, 포퍼, 도흐나니, 비발디 등의 실내악 작품을 연주한다. 축제의 마지막 날은 이승원/서울시향과 함께 세 개의 첼로 협주곡이 연주된다. 축제 전체 기간에는 일본의 거장 첼리스트 쓰쓰미 쓰요시(1942~)부터 새로운 세대를 이끌 뛰어난 신예로 손꼽히는 우에노 미치아키(1995~)까지 참여하니, 첼로의 계보를 목격하고 싶다면 이 축제의 한 좌석에 앉아야 할 것이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롯데문화재단
PERFORMANCE INFORMATION
야노스 슈타커 탄생 100주년 기념 첼로 페스티벌
7월 3~5일 롯데콘서트홀
쓰쓰미 쓰요시, 게리 호프만, 양성원, 슈타커 센터니얼 앙상블 외 3일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4일 베토벤 첼로 소나타 4번, 브람스 헝가리 무곡 1·3·5번 외 5일 슈만 첼로 협주곡,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