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인생 10년’, 찬란하게 살아간 인생이라는 축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7월 1일 9:00 오전

CINESSAY 영화로 만나는 세상과 사람

 

‘남은 인생 10년’

찬란하게 살아간 인생이라는 축제

 

감독 후지이 미치히토

작곡 래드윔프스

출연 코마츠 나나, 사카구치 켄타로

 

 

벚꽃 축제를 가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벚꽃이 흐드러진 봄을 걷는다. 모두 카메라를 꺼내 들고 환하게 웃으며 밝게 빛나는 자신의 현재를 기록한다. 하지만 나무에서 떨어지는 찬란한 꽃잎들은 사실 벚꽃의 소멸이다. 벚꽃이 더 많이 소멸할수록 사람들은 더 크게 즐거워하며 삶을 만끽한다. 이 찬란한 삶과 죽음의 묘한 역설에 우리는 굳이 ‘축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벚꽃도 축제도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을 보여주지만 결국 그 끝은 소멸이라는 점이 닮아서일까?

 

 

 

 

그 남자, 20년의 죽음

스무 살이 되던 해, 수만 명 중 한 명이 걸리는 난치병으로 최대 10년의 삶을 선고받은 마츠리(고마츠 나나 분)는 삶의 의지를 잃은 카즈토(사카구치 켄타로 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처음 만나 사랑을 느꼈던 봄, 첫사랑의 설렘으로 뜨거웠던 여름, 쓸쓸하지만 깊었던 가을, 눈부시게 빛나는 겨울을 거치면서 두 사람의 사랑은 깊어진다. 그러나 언제 죽음으로 끝날지 모를 아슬아슬한 사랑 앞에서 마츠리는 이별을 선택하고, 삶을 정리하며 소설을 쓴다.

끝나는 날이 정해진 사랑을 선뜻 시작할 수 있을까? 후지이 미치히토(1986~) 감독의 영화 ‘남은 인생 10년’은 한 사람의 소멸을 전제로 시작되는 청춘의 짧은 사랑을 그린다. 추억이 쌓여갈수록 살아갈 날은 줄어드는 역설이 반짝이는 시간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영화의 원작은 코사카 루카의 동명 소설이다. 코사카 루카는 2007년에 실제 불치병에 걸렸으며, 2017년 수정 문고판을 출간한 후 병세가 악화하여 사망했다. 원작이 죽음을 묵도하는 기록이라면, 영화는 ‘죽음’이 아니라 주인공 마츠리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후지이 감독은 코사카 루카의 가족들이 이야기한 그녀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영화에 담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죽음의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삶의 이야기다.

 

그 여자, 10년의 삶

영화는 청춘이 항상 빛나지만은 않는다는 점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후지이 감독은 마냥 살아있음이 벅차지 않은 카즈토에게도 아침의 볕과 사람의 관심을 준다. 죽음을 결심했던 것처럼, 그의 지난 20년은 죽어 있었다. 마음의 시간과 세상을 향한 관심이 낙엽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살아갈 이유가 없었던 그에게 비로소 그 이유를 준 것은 마츠리다. 삶을 잃어가지만, 여전히 빛나는 벚꽃 같은 여자.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가장 아름답게 사라지는 봄날의 벚꽃은 마츠리를 상징한다. 아주 짧게, 가장 아름답게 살다가 사라지는 운명을 타고났다. 건강하지만 마음의 병으로 자살하고 싶어 하는 카즈토는 가을을 닮았다. 살고 싶은 여자는 살지 못하고, 죽고 싶은 남자는 죽지 못하는 묘한 운명 앞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살게 하는 이유가 된다. 봄을 닮은 여자와 가을을 닮은 남자는 함께하면서 따뜻하고, 덥고, 시원하다가 추워지는 온전한 사계절이 된다.

후지이 감독은 시한부 인생을 사는 한 여성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삶의 유한함과 소중함에 대해서 말한다.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원작자가 있기에, 그 여성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매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펼친다. 그러기 위해서 측은한 마음이나 동정심 대신, 삶의 생생한 순간을 벅차게 채워 보여준다.

 

봄, 찬란한 계절

‘남은 인생 10년’은 2022년에 제작됐다. 한국에서는 2023년에 개봉했는데, 2024년 벚꽃이 흐드러지던 봄에 재개봉해 첫 개봉 때보다 더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재개봉 시점에 DK·휘인·폴킴·적재·10cm·헤이즈·조이·안세하 등 한국 가수들이 협업해 영화와 잘 어울리는 음원을 발매한 것도 화제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는 해외 영화와 국내 음악의 조화로운 마케팅으로 기록될 만하다.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운 청춘의 사랑과 소멸을 그린 이 영화에서 계절은 그들의 시간을 기록하기 때문에 무척 중요하다. 특히 두 사람의 첫 시작으로 기억되는 벚꽃 장면은 가장 소중하게 보여야 하는 장면이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매 계절에 담기는 애틋함을 기록하기 위해 후지이 감독은 촬영 기간을 1년 이상으로 잡았는데, 그 정성이 화면에 고스란히 담겼다.

최근에는 벚꽃이 만개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CG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후지이 감독은 가장 자연스러운 장면을 담고자 만개 시점에 맞춰 촬영 일정을 조정했다. 그만큼 계절을 상징하는 어떤 시점들은 일본의 계절과 두 사람의 관계를 잘 표현한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영화 ‘러브 레터’처럼, 매해 봄이면 ‘남은 인생 10년’의 이 안타까운 청춘들이 떠오를 것 같다.

다시 축제를 생각해 본다. 모두가 즐거운데 문득 혼자 있는 것처럼 느껴져 우울한 찰나, 바람이 불어오면 일어나는 소동에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방금까지 한산하던 곳이 꽉 채워지고, 북적대던 공간이 싹 비워지는 순간은 마법 같다. 이 즐거움이 끝나 슬프기도 하고 결국에는 모든 것이 소멸한다는 사실이 안도가 되기도 하는 축제는 우리의 인생을 닮았다.

제목과 달리 영화는 ‘남은 인생’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고 제대로 살아가는 ‘10년’의 소소하고도 소중한 시간을 보여준다. 그래서 사라지는 청춘을 바라보는 무거움보다 소중한 삶의 순간을 더 예쁘게 담아내고자 한다. 떠나보내 지키고 싶은 마음도, 혼자 남을 걸 알지만 기어이 잡고 싶은 마음도 모두 다 예쁘다. 그러니 이 삶은 죽어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죽음 직전까지 온전히 살아가고 살아내야 한다. 그렇기에 기어이 살아가는 시간이 아름답게 반짝인다.

 

[OST] 래드윔프스 | Muzinto Records

영화의 엔딩곡 ‘우루우비토(Ms. Phenomenal)’는 두 주인공의 아름다웠던 사랑을 더욱 빛나는 추억으로 남기게 하니, 영화관에서 끝까지 자리에 남아 감상하길 바란다. 뮤직비디오는 남겨진 카즈토의 마음과 찬란했던 사랑의 기억으로 살아가는 쓸쓸한 모습을 담고 있기에 영화가 생각날 때 꺼내 보아도 좋다. OST에는 래드윔프스가 직접 작곡한 음악 총 30곡이 담겨있다. 인물들의 정서와 관객이 느껴야 하는 감흥을 방해하지 않는 아주 잘 정돈된 음악이니 영화와 상관없이 따로 들어도 좋다.

 

| | | set-list

01 Opening of “The Last Ten Years” 02 Matsuri’s Reality 03 7 Years Until The Tokyo Games 04 Time Capsule 05 The First Good-Bye 06 Setbacks 07 Confusion 08 Venting In Hospital Bed 09 Small First Step 10 Time Appears to be Stopped 11 Overlapped Seasons 12 Voice of Innocence 13 Me And The Skytree 14 Scream From The Inside 15 Matsuri’s Lie 16 Two Hears Crying 17 Kazuto’s Confession 18 Spending Time, Remaining Time 19 Okay, Not Okay 20 Ski Slope 21 Two Souls Overlapped 22 Blind Alley 23 Tears in The Kitchen 24 Beacause You Were Here 25 Can’t Delete, Won’t Disappear 26 Matusri’s Dream 27 Tear Bag 28 The Voice Was Heard 29 Frozen Time 30 Ms. Phenomenal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제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영화에세이집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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