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IS NOW
바수니스트 유성권
협연·앙상블이 아닌, 이번에는 ‘독주’로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수석으로서 15년.
어쩌면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첫 독주회를 앞두고 나눈 이야기
“시대가 달라지고 있죠. 베를린 주요 오케스트라의 협연자로 찾는 한국인들도 늘었고,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정말 많아요. ‘한국 음악가를 빼고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합니다. 우리나라도 클래식 음악계에서 힘이 생기는구나 싶어요.”
최근 우리 음악계에 전해진 소식들은 유성권이 말하는 이 ‘시대의 변화’가 어느 정도 사실임을 증명한다. 올해만 해도 독일 함부르크 필하모닉에 유채연(플루트)이 수석, 이현준(트럼펫)이 종신 수석으로 임용됐고, 2022년부터 쾰른 서독일 방송교향악단에 유해리(호른)도 수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유성권이 몸담은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에도 최근 한국인 수습 단원(비올리스트 유혜림)이 생겼다. 한국인 단원이 퍽 반가우면서도 처음 오케스트라에 입단했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고.
“스물한 살에 ‘최연소 수석’ 타이틀을 누렸던 그 삶은 지금 돌이켜보면 멋모르고 시작했기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지휘자와 동료들에게서 얻은 배움 덕분이었죠.”
이제 오케스트라의 커리어를 시작할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조언일, 그가 말하는 ‘입단 이후’의 삶 이야기를 곧 다가올 연주회의 음악 이야기들과 함께 버무려 들어보았다.
베를린은 음악의 중심지 아닌가. 그 한복판의 오케스트라에서 10년 넘게 단원 생활을 유지한다는 건 어떤가?
베를린에는 메이저 오케스트라만 해도 7개다. 각 오케스트라가 모두 다 살아남은 이유는 그들만의 색깔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경쟁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계속 이 오케스라의 연주를 비교해서 듣고, 피드백도 활발하다. 나태해질 일이 없다. 올해 문득 ‘내가 어떻게 15년이나 이 생활을 버텨냈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결국, 동료들 덕분이었다. 더 많이 연습하고, 거기서 나오는 배움의 소리가 노력할 이유가 되어주었다. 상임 지휘자 유롭스키(1972~)를 만난 것도 내 음악 생활에 또 하나의 변환점이다.
마침 지휘자에 대한 질문을 하려던 참이다. 입단 당시 지휘자였던 마레크 야노프스키(1939~)와 비교하자면 어떤 차이가 있나?
야노프스키와는 10년 가까이 함께했다. 베토벤·브루크너·바그너 등의 레퍼토리로 소리 내는 것에 집중한 시간이었다. 반면 유롭스키 부임 이후 매년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빠지지 않고 연주하고 있다. 유롭스키는 초연작일지라도 각 파트를 두루 꿰고 있다. 이렇게 똑똑한 사람이 존재하나 싶다. 그의 피드백은 목관뿐만 아니라 현악 파트일지라도 배울 게 있어 저절로 귀 기울이게 된다.
시간이 쌓인, 바순의 소리를 듣다
시즌이 끝나면 연주자들은 ‘방학’이다. 매년 여름, 이 시기에 한국에서 고잉홈프로젝트나 클럽 M 공연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
이런 프로젝트가 가능할 만큼, 우리나라 음악가들의 실력과 해외 진출이 늘었기에 가능한 것 같다. 무엇보다 고잉홈프로젝트의 경우는, 연주자들의 자발적 참여가 원동력이다.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은 100년간 쌓인 전통에서 배우는 점이 있다면, 고잉홈프로젝트는 2~3주 만에 탄생하는 그만의 개성과 만족감이 있다. 이런 요소들이 모여서 이 현상이 유지되고 있는 것 아닐까. 이제는 한국보다 독일에서 지낸 시간이 더 길지만, 여전히 한국에 올 때면 가족과 동료들을 만난다는 느낌이 크다.
올여름은 여느 때보다 조금 더 특별하다. 한국에서 갖는 첫 바순 리사이틀이 아닌가.
솔직히 말하자면, 첫 리사이틀을 하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연주를 준비하면서, 지금이 솔로 연주를 선보이기에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곡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건 지금이기에 가능하다’고 느꼈다.
바순 솔로 작품은 그 수도 많지 않고, 독주 연주 소식도 자주 보이지는 않는다.
바순 독주회는 생각보다 자주 열린다. 다만 대중에게 그 소식이 잘 노출되지 않는 것 같다. 종종 ‘베토벤이나 브람스가 바순을 위한 소나타 한 곡만 써줬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그들 곁에 바순을 위한 솔로 작품을 쓰게 할만큼 훌륭한 연주자가 없었기 때문일까? 아쉬워해 봤자 지금은 이미 많이 늦었지만, 요즘은 세계적으로 훌륭한 바순 연주자들이 많고 현대곡들도 많이 쓰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구바이둘리나와 같은 작곡가가 있다.
생상스의 바순 소나타는 바수니스트들에게 필수적인 레퍼토리다. 연주회 제일 마지막에 위치하고 있는데.
바수니스트에게는 널리 알려진 곡 중 하나지만, 매번 연주 때마다 공부하게 만드는 곡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선보이는 이 작품에서, 오케스트라 단원 생활을 거치고 유롭스키를 만나 테크닉적 표현의 장점을 깨닫게 된 지금의 내가 이 곡을 어떻게 표현할지 나 또한 궁금하다. 그동안 어떤 인생을 살았는가를 잘 보여줄 수 있는 곡인 것 같다.
라이하(1770~1836)의 바순 소나타나 브룬스(1904~1996)의 바순을 위한 4개의 비르투오적 소품 등 다양한 시대의 곡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 공연은 ‘네트워크 시리즈’의 일환이라, 나와 작곡가의 연관성을 생각한 곡들로 골랐다. 라이하의 바순 소나타는 베를린 국립 음대에서 사사한 이카르트 휴브너 선생님의 음반으로 들었고, 베를린행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된 작품이라 첫 곡으로 골랐다. 브룬스는 베를린 슈타츠오퍼의 바수니스트였다. 5년 전쯤 베를린에 있는 오케스트라 바수니스트들이 모여서 음반을 냈었는데, 당시 이 작품을 내가 맡아 연주했었다.
오케스트라 속 악기가 아닌 독주 악기로 만날 바순의 매력은 무엇인가?
사실 관객들은 오케스트라에서도 바순 소리가 무엇인지 잘 듣지 못한다. 저음역에서 화음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케스트라 연주에서도 관객이 귀 기울일 수 있도록 움직임이 많은 편이다. 독주로 만나게 된다면, 조금 더 바순의 섬세한 표현을 눈으로 보실 수 있을 거다. 피아니스트들이 손가락의 모양에 따라 그 음색을 달리하듯, 바순도 마찬가지다. 손가락을 다 들었다가 어느 정도의 속도로 내려가는지, 내려간 손가락에 어느 정도 힘을 주는지에 따라서도 소리가 다 다르다.
‘제2의 유성권’이 되고 싶어하는 후배들이 많다. 그들에게 충분한 귀감이 되고 있다는 뜻일 텐데,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요즘에도 여전히 이른 성공이 주목을 받는다. 10대에 노력해 20대 초반에 성공하는 삶이 모두에게 맞는 속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 또한 이걸 원동력 삼아 달려오긴 했지만, 그 길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 이후에 만약 내가 지금까지 오케스트라 생활을 버티지 못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았을까. 지금 성공하지 못했음을 자책하는 원동력은 그 이후의 얻은 것들을 유지할 힘이 되어 주지 못한다. 모든 인생에는 각자의 무게와 방식, 속도가 있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글 허서현 기자 사진 금호문화재단
유성권(1988~) 예원학교 졸업 후 서울예고 재학 중 도독하여 16세에 베를린 국립음대 최연소로 입학, 이카르트 휴브너를 사사하며 최고연주자과정까지 졸업했다. 21세에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에 최연소 수석으로 입단했다. 2014년부터 베를린 국립예술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유성권 바순 리사이틀
7월 4일 오후 7시 30분 금호아트홀 연세
유성권(바순), 김재원(피아노) / 안톤 라이하 바순 소나타, 빅토르 브룬스 4개의 비르투오적 소품 Op.93, 생상스 바순 소나타 Op.168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