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FAMOUS COMPETITION
스위스 게자 안다 콩쿠르 5.30~6.8
긴장과 감동, 감격과 배움이 공존한 현장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정신과 역사를 담은 콩쿠르.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며 위대한 음악가의 탄생을 예고했다
스위스의 음악사는 비교적 뒤늦게 발전했다. 오스트리아의 모차르트, 폴란드의 쇼팽, 러시아의 차이콥스키, 독일의 베토벤처럼 18~19세기 음악을 꽃피운 내로라하는 음악가가 없었다. 그러한 스위스가 음악문화를 꽃피운 것은 20세기 중반.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고, 수많은 연주자가 전쟁의 난리를 피해 중립국인 스위스로 망명지를 잡으면서부터다. 서유럽 국가들이 ‘작곡의 역사’로 그들만의 음악사를 빚어갈 때, 스위스는 20세기에 일어난 혼란 속에서 ‘연주자의 이동’을 통해 비교적 늦은 시기에 명성을 챙겨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위대한 피아니스트 게자 안다를 위하여
그중에는 게자 안다(1921~1976)도 있었다. 헝가리에서 태어난 그는 세계대전을 피해 1943년 스위스로 이주했고, 종전 후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생전에 슈만·브람스·쇼팽 등 낭만기 작품은 물론 고국의 작곡가 버르토크를 즐겨 연주한 피아니스트이다. 특히 모차르트 협주곡으로 명성이 높았던 그는 모차르트 협주곡 전곡을 ‘최초’로 녹음하기도 했다. 영화 ‘엘디라 마디간’에 삽입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은 그가 연주한 것이다.
스위스에는 여러 콩쿠르가 있다. 한국인들의 입상이 세계 곳곳 콩쿠르의 존재을 알려주는 가운데, 게자 안다 콩쿠르는 2009년 이진상이 우승하며 그 존재가 널리 알려졌다. 이후 2012년 김다솔이 2위, 2018년 박종해가 2위를 수상하며 더욱 친숙하게 다가왔다. 그 외 우승자들의 내한도 이 콩쿠르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2012년 첫 내한 후 금호아트홀(2018), KBS교향악단(2023)과 함께 한 알렉세이 볼로딘은 2003년도 우승자이다. 2021년도 우승자 안톤 게르첸베르크는 2023년에 예술의전당에서 리사이틀을 갖기도 했다. 게자 안다 콩쿠르 외에도 2005년 김선욱이 우승한 클라라하스킬 콩쿠르, 2021년 한재민이 입상한 제네바 콩쿠르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1976년 게자의 서거 후, 그를 기리고자 1979년에 처음 열린 게자 안다 콩쿠르는 3년마다 개최되고 있다. 1927년 첫 회에 쇼스타코비치가 입상했던 쇼팽 콩쿠르, 다비드 오이스트라흐가 우승한 1937년 태생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1958년 시작된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비하면 짧은 역사를 지닌 콩쿠르이다. 콩쿠르를 통해 등장한 음악가들의 활동과 쌓이는 연륜이 곧 그들의 젊은 관문이었던 콩쿠르의 명성을 높이는 사후적 요소임을 생각해 보면, 콩쿠르의 명성을 좌우하는 조건 가운데 역사는 상당히 중요하다.
역사와 축적의 시간을 높이 사는 유럽의 문화를 의식해서인지 게자 안다 콩쿠르는 그 어느 콩쿠르보다도 풍부한 예산과 지원을 통해 수준과 명성을 높여가고 있다. 1987년 세계국제음악콩쿠르연맹(WFIMC) 가입은 물론, 입상자에게는 수상 후 3년간 공연 기회를 촘촘히 제공한다. 박종해는 “2018년에 입상했는데, 올해 봄에 다녀온 미국 공연은 콩쿠르를 주최하는 게자 안다 재단에서 주선한 것이었다”고 귀띔 해주기도 했다. 콩쿠르의 지원과 지속성이 얼마나 단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게자 안다 탄생 100주년이었던 2021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찾아온 이번 콩쿠르에는 무엇보다 많은 변화를 보여주었다. 심사위원장인 리코 굴다를 비롯해 아르헤리치, 호소카와 토시오(작곡) 등 심사위원 9명의 라인업이 눈길을 끌었다. 3차 준결승과 4차 최종 결선에서는 각각 미하일 플레트뇨프(무지크콜레기움 빈터투어)와 파보 예르비(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가 지휘봉을 잡는 것도 화제였다. 결과에 초점을 둔 콩쿠르보다는 미래 세대에게 음악을 나누고 만들어 가는 과정의 중요함을 체감하게 하도록, 그 과정의 시간에 방점을 찍은 것이었다.
깐깐한 예선(5.30~6.1)과 본선(6.3·4)
콩쿠르마다 연령 제한이 있다. 이번에는 1992년 5월 30일 이후에 태어난 이들을 대상으로 했다. 영상물 심사를 통해 42명이 선정되었지만, 프로그램북에는 38명의 지원자가 적혀 있었고, 1라운드부터 실제로 참여한 이들은 36명이었다. 그중 한국인 참가자는 7명. 2021년 몬트리올 콩쿠르 우승자 김수연, 2022년 롱티보 콩쿠르 공동우승자 이혁, 2023년 프레미오 하엔 콩쿠르 우승자 박진형을 비롯해 조준휘, 김혜림, 김정은, 이승현이 참가했다.
“영재성보다는 원숙한 연주자를 발굴하는 데 중심을 두고 있다”는 이진상의 말처럼, 게자 안다 콩쿠르는 선곡과 연주에 있어서 깐깐하기로 소문나 있다. 준비해야 하는 곡도 많다. 일례로 영상물 심사도 30분 분량의 연주를 담지만, 콩쿠르에서 제시한 특정 시기의 자품들로 구성해야 한다.
예선에 해당하는 1라운드는 취리히음악원홀에서 진행되었다. 5월 30일(목)부터 6월 1일(토)까지 3일간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매일 12명씩 36명이 각자 25분씩의 무대를 선보였다. 참가자 2명이 연주하고, 20분간 휴식, 다시 2명의 참가자가 연주하는 흐름이었다.
게자 안다 콩쿠르는 긴장을 풀고, 연습에 집중할 텀도 부족하다. 예선을 거쳐 선발된 12명은 하루만 쉬고, 6월 3일(월)과 4일(화)의 본선으로 돌입했다. 각각 6명씩 오르는 무대였다. 연주를 위해 주어진 시간은 55분. 선곡할 곡목은 콩쿠르측이 미리 공지한 목록 안에서 짜야 하는데, 3개 파트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A파트는 장조의 곡들, B파트는 단조의 곡들로 구성해야 하고, C파트는 자유 선곡이다. 제시된 작품 범위는 모차르트(1756~1791) 시대부터 버르토크(1881~1945)의 작품까지.
한국인 참가자 중 유일하게 본선에 진출한 박진형은 단조곡들(B파트)로 구성했다. 드뷔시 ‘물의 반영’, 리스트의 장송곡 S.173과 자장가 S.198,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리스트의 B단조 소나타였다. 후기 낭만주의적 경향이 강한 곡들로, 리스트를 통해 기교를, 드뷔시를 통한 해석력을, 라벨을 통한 감성을 보여주겠다는 선곡이었다. 이들의 경연은 실시간 스트리밍을 통해서도 전세계로 생중계되었다.
6월 5일과 6일에 펼쳐질 준결선(3라운드)에는 6명이 진출했다. 아쉽게도 기대를 모은 박진형은 준결선에서 만날 수 없었다. 취리히 시내에는 게자 안다 콩쿠르 깃발과 배너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모차르트와 함께 한 준결선(6.5·6)
게자 안다 콩쿠르는 독특하게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준결선과 최종 결선으로 나눠 진행된다. 게자 안다 콩쿠르가 열리기 며칠 전에 막을 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만 하더라도 최종 결선에서 12명의 후보를 세우고, 이들이 교향악단과 협주곡을 선보이는 대향연을 펼친다. 하지만 게자 안다 콩쿠르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결선을 1차(준결선)와 2차(최종 결선)로 나눠 진행한다. 특히 참가자 모두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선보이는 준결선은 게자 안다 콩쿠르만의 특별한 과정이다. 게자 안다가 생전에 남긴 모차르트를 통한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일명 ‘모차르트 라운드’라 불린다. 콩쿠르측이 개최 전에 공개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들 중 참가자가 2곡을 고르면 심사위원들이 그중 한 곡을 지정하는 방식이었다.
모차르트 라운드는 취리히에서 기차로 30여 분 걸리는 빈터투어에서 열렸다. 콩쿠르의 입장권도 45스위스프랑(약 7만원)으로 일반 공연 못지않은 가격이다. 연주자에 대한 정보가 편견이 될 수 있는지, 낱장으로 배포된 프로그램북에는 참가자의 이름, 국적, 연주곡목만 간단히 기재되어 있었다.
5일(수) 오후 7시 30분. 시간이 되자 아르헤리치를 비롯한 9명의 심사위원이 착석했다. 그들 주위에는 관객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벨트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주니어 심사위원단들도 자리했다. 주니어 심사위원단 제도는 이번에 처음 도입되었다. 콩쿠르의 대표 토비아스 리히터가 오프닝 멘트로 문을 열었다. 그 사이에 플레트뇨프가 서서히 등장했고, 그의 지휘봉에 맞춰 무지크콜레기움 빈터투어 단원들이 생일축하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리히터는 “오늘(6월 5일)이 심사위원 아르헤리치의 생일이다”라며 그녀에게 축하의 꽃다발을 선사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함께 다우만츠 리에핀스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17번으로 문을 열었다. 라트비아 태생의 피아니스트와 러시아 지휘자가 함께 호흡하는 묘한 순간이었다. G장조 곡의 발랄함을 온몸으로 표출하는 리에핀스의 제스처와 달리 플레트뇨프의 지휘는 평정심과 무관심의 표정으로 일관했다. 순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관계가 떠올랐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사실 러시아 내셔널 심포니 시절부터 보여준 그의 절제된 동작은 꽤 유명하다. 건반 앞에서도 그는 차갑고 냉랭하다. 악단원들이 참가자들을 대하는 온도도 플레트뇨프의 표정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참가자와의 협연을 통한 음악적 조화보다는, 참가자가 지닌 모차르트에 대한 해석과 시선을 제1순위로 드러나도록 하겠다는 듯이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자세였다.
준결선 진출자 6명 중 2명이 러시아 참가자였다. 어떤 관객은 이를 놓고 플레트뇨프가 힘을 실어줄 것이라 했다. 애국심이 없더라도, 이러한 현장에서는 일종의 민족주의와 애국심이 발동하지 않던가. 하지만 걱정과 달리 러시아 참가자들에게 힘을 실어준 것은 관객들의 박수와 호응이었다.
5일 무대 중 마지막을 장식한 23살의 드미트리 유딘의 피아노 협주곡 24번, 6일 무대에서 피아노 협주곡 17번을 선보인 러시아 출신의 29살 일리야 슈마클러가 관객들로부터 압도적인 찬사와 박수를 받았다. 특히 최종 결선(4라운드)에 함께 진출한 리에핀스와 슈마클러는 같은 곡(피아노 협주곡 17번)을 연주했는데, 리에핀스가 섬세한 연주였다면, 슈마클러는 중후한 연주를 선보였다. 라트비아의 모차르트와 러시아의 모차르트는 그렇게 대립되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관객들의 관심이었다. 대화를 들어보면 그들은 분명 이 자리에서 처음 만난 이들이었지만, 참가자들의 연주를 바탕으로 각자의 의견을 나누었다. 특히 30살의 케이트 리우는 막강한 후보였다. 4세에 랑랑과의 듀오 무대로 데뷔했고, 2015년 쇼팽 콩쿠르 3위와 마주르카상 수상자. 어느 관객은 케이트 리우의 연주를 놓고 “힘찬 모차르트, 시원한 연주”라고 평했다. 케이트는 피아노 협주곡 20번을 연주했는데, 앞서 참가자가 연주했던 피아노가 맞나 싶을 정도로 색다르고 거대한 음량의 연출력을 보여주었다. 이를 놓고 어느 관객은 “오직 포르테와 피아노만 있는, 그래서 모차르트 특유의 뉘앙스가 없는 연주”라고도 평했다.
축제가 된 최종 결선(6.8)
최종 결선이 있던 8일(토)에는 오전부터 많은 비가 내렸다. 취리히에 흐르는 강물이 맑은 날씨에서는 모차르트의 선율처럼 잔잔히 흘렀는데, 불어난 강물은 최종 결선 무대에 오를 버르토크의 피아노 협주곡처럼 거칠게 흘렀다. 버르토크의 피아노 협주곡도 게자 안자가 생전에 즐겨 연주한 곡이다.
최종 결선이 오를 취리히의 명물 톤할레에는 많은 인파가 몰려 세계적인 음악가의 공연을 방불케 했다. 55스위스프랑(약 86,000원)부터 115스위스프랑(약 18만원)에 판매되는 입장권은 이미 오래 전에 매진되었다. 그들중에는 스위스를 대표하는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와 파보 예르비를 보러오는 이들도 있었겠으나, 무엇보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신예를 보러오는 그들의 마음이 묘하게 느껴졌다. 한국에서도 국제적 수준의 콩쿠르가 개최되지만, 수상자 음악회부터 입장권이 매매된다는 점에서 유럽인들이 지닌 콩쿠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관객들은 대부분 연세가 지긋한 노인들이었다. 관객의 입장에서 콩쿠르를 즐긴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콩쿠르가 일종의 순위를 놓고 벌리는 경연이라면, 그들에게는 역사가 스며들어 전통이 된 유산을 이어갈 후예, 그러니깐 그 누군가의 탄생을 기다리는 시간일 것이다. 따라서 그 후속인, 혹은 유산 지킴이의 탄생 과정을 함께 한다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아닐까. 콩쿠르에 참가하는 한국 음악가들과 그 수준도 높아지고 있는 지금, 이를 지켜보는 한국 관객들의 수준도 이들처럼 높아져야 한다는 것을 현장에서 느끼게 된다. 모차르트 라운드를 거쳐 최종 결선에 오른 이는 3명이었다.
새 역사를 예고한 파이널리스트 3인
오후 6시 30분. 톤할레의 위용과 화려함은 관객에게는 축제의 흥분을 배가시키는 곳이었다. 첫 참가자는 다우만츠 리에핀스. 자신감에 찬 재빠른 걸음으로 등장한 그는 축포처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선보였다. 그는 섬세하면서도 발랄한 청년이었다. 모차르트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베토벤의 선율에서 모차르트의 표정을 드러내곤 했다. 그러다가 1악장에서 몇 마디를 빠뜨렸다. 하지만 흔들리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2악장과 3악장을 밀고 나간, 배포 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두 번째 참가자인 드미트리 유딘은 버르토크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했다. 앞의 리에핀스가 아기자기하고도 섬세하고, 상체를 건반에 밀착시키며 다양한 몸동작을 보여준 것과 달리 유딘은 무뚝뚝한 표정과 정면에 고정시킨 시선으로 일관했다. 관객석의 분위기도 묘했다. 고전과 현대음악의 특징이 명확히 갈리듯 관객들도 친근한 베토벤과 낯선 버르토크로 나뉘었다. 리에핀스의 베토벤이 선율적으로 다가왔다면, 유딘의 버르토크는 다양한 리듬으로 관객의 마음을 두드렸다. 이날의 협주곡도 콩쿠르측이 정한 후보군에서 골라야 하는데, 버르토크의 피아노 협주곡은 게자 안다가 생전에 즐겨 연주한 곡이었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 곡을 낯설어했다. 이를 의식해서였는지 예르비는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갑자기 몸을 유딘 쪽으로 틀어 두 팔을 높이 들어 화려한 제스처로 마무리지었다. 이 모습을 보고 관객들도 유딘과 예르비의 호흡이 성공적이었음을 느끼고 박수를 보냈다.
최종 결선에서의 특이한 점은 협주곡이 끝난 뒤, 참가자 전원이 공통적으로 앙코르 곡을 연주해야 하는 것이었다. 콩쿠르의 심사위원이자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상주작곡가인 호소카와 토시오의 에튀드 중 1번 ‘2라인’을 연주해야 했다. 음표로 엮어가는 기교보다는, 음과 음 사이에 있는 여백과 여운이 돋보이는 곡이었다. 여기서도 참가자들 제각각의 색이 표출되었다. 무엇보다도 ‘2라인’을 연주할 때는 앞서 연주한 협주곡으로부터 추출된 감정이 이 곡에 담기는 것 같았다. 베토벤에 물든 리에핀스는 이 곡에서 선율성을 부각시켰고, 버르토크의 여운이 스며든 유딘은 리듬감을 살려 점을 찍듯 연주했다.
일리야 슈마클러의 인상적인 연주
최종 결선은 순위를 다투는 경연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3곡의 유명 협주곡을 한 자리에서 만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특히 톤할레의 잊지 못할 정도로 매혹적인 음향, 버르토크 협주곡에서 기염을 토한 오케스트라의 목관과 금관의 높은 수준, 여기에 예르비의 통제 아래 있으면서 입체감을 드러내는 단원들의 연주력은 이곳이 경연장이 아니라, 수준 높은 젊은 피아니스트 3인의 합동 공연처럼 느껴지게 하는 데 일조했다.
인터미션 후에 오른 일리야 슈마클러의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이 끝나자 관객들은 승자를 정한 합의의 박수를 보내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본 피아니스트 중에 가장 많은 땀을 흘리는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턱 끝에 맺힌 땀방울은 건반 위로도 뚝뚝 떨어졌다. 그것을 닦기 위해 쉬는 마디에서도 부지런히 손수건으로 땀을 훔쳐냈다. 그런 그의 선곡은 신의 한수였고, 연주 역시 주관적 표출과 오케스트라 사운드와의 조화를 이루는 탁월한 수준이었다. 1악장에서는 예르비가 끌어내는 강한 사운드와 놀라울 정도로 균형을 맞추고, 2악장에서는 그리그 특유의 서정성을 마음껏 뿜어냈다. 상대적으로 템포를 빨리 잡아 치러낸 3악장도 피아노를 압도하려는 듯한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포효에 맞서며 감정의 문장과 주장을 다 쏟아냈다.
시상식은 10시가 되어서야 시작되어 1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토비아스 리히터 대표는 이번 콩쿠르를 둘러싼 여러 지원과 의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참으로 긴긴 설명들이었는데, 후원과 지원의 주인공과 사연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감사를 표하는 것이 스위스의 사회적 문화라고 한다. 취리히는 물론 게자 안다의 고향인 헝가리 음악계와의 협업, 게자 안다와 모차르트의 정신을 돌아보고자 제정한 무지크콜레기움 빈터투어의 모차르트상, 참가자 중 리스트와 버르토크를 잘 해석하고 연주한 이에게 수여하는 리스트-버르토크상, 남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콩쿠르를 설립한 게자 안다 부인의 이름을 딴 상, 주니어 심사위원단이 제공하는 상 등 시상 내역도 각양각색이었다. 1위는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선보였던 일리야 슈마클러, 공동 2위는 다우마츠 리에핀스와 드미트리 유딘이었다. 1위에게는 4만 스위스프랑(약 6,000만원), 2위 3만 스위스프랑(약 4,500만원), 3위 2만 스위스프랑(3,0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결과의 기쁨보다, 과정의 소중함을 남기며
6월 9일(일) 오전 11시 취리히 비더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끝으로 게자 안다 콩쿠르는 막을 내렸다. 시상식 진행을 맡았던 토비아스 대표는 전날처럼 콩쿠르의 의미와 의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상적인 것은 2위 입상자 유딘이 버르토크 협주곡을 연주했고, 그로 인해 헝가리 방송교향악단과 다음 시즌에 협연자로 추대한다는 것이었다. 게자 안다 콩쿠르는 경연 과정에서 만난 인연과 참가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이 나아갈 미래를 만들어주는 터전과도 같았다.
현재 취리히 음악원 부총장이자 스위스의 공연기획사 소누스아트 대표를 맡고 있는 허승연도 이번 콩쿠르의 현장을 함께 지켜봤다. 그런 그녀의 말도 인상적이었다. “우승자를 향한 뜨거운 관심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스위스는 독특하게도 1등만 내세우거나 바라보기보다 여러 입상자를 초청하는 경우가 많다. 개성과 독특한 음악적 성향을 드러내는 음악가라면 콩쿠르 성적과 무관하게 충분한 예우와 러브콜을 보내는 것이다. 한마디로 연주자의 ‘개성’을 중요시하는 게 스위스 음악계만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우승자인 일리야 슈마클러는 6월 29일 취리히 클루스클라식스 페스티벌에 오른다. 소누스아트가 주최하는 음악제이다. 이번 콩쿠르에 공식 스폰서로 함께 한 소누스아트는 11월 13일 일리야 슈마클러의 한국 공연(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주최하기도 한다. 슈마클러는 어떤 곡을 선보이고 싶냐는 질문에 “이번 콩쿠르에서 연주하지 않은 나만의 레퍼토리로 한국을 찾고 싶다”고 했다.
3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던 일리야 슈마클러는 2021년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고, 임윤찬이 우승한 2022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모차르트 협주곡 최고 연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는 미국 미주리주 파크빌에 있는 파크대학교 국제음악센터에 수학 중이다. 게자 안다 콩쿠르에는 유독 러시아 우승자들이 많다. 2003년 알렉세이 볼로딘(1977~), 2006년 세르게이 쿠드리아코프(1978~), 2012년 바르바라 네폼냐샤야(1983~)가 우승했고, 2위와 3위에도 많은 러시아 피아니스트가 입상했다. 일리야 슈마클러의 내한 공연을 기대해 본다.
글 송현민 편집장 사진 게자 안다 재단·송현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