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금 연주자 윤은화, 불모지에 피워낸 소리의 꽃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7월 8일 9:00 오전

PASSION

 

양금 연주자 윤은화

불모지에 피워낸 소리의 꽃

 

전통악기인 양금의 개량, 주법 개발, 작품 생산 등 양금은 그로 인해 진화한다

 

 

양금(洋琴)은 서양(洋)에서 들어온 금(琴=악기)이라는 의미다. 그 기원은 페르시아에서 출발한다. 유럽으로 퍼져나가 덜시머·침발롬·산투르 등 다른 모양과 이름으로 많은 나라가 양금을 갖게 됐다. 각 나라는 자국의 음계와 문화에 맞게 악기를 발전시켰다. 한국의 경우, 실학자 홍대용(1731~1783)을 통해 조선으로 들어왔다. 풍류방과 궁중음악에서 사용되었으나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2옥타브 반의 좁은 음역와 복잡한 조율 방법 등 악기가 지닌 특성이 한몫했으리라. 그런데 최근 들어 양금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국악관현악단마다 양금 단원을 선발하고, 대학에서는 특수악기 전공으로 양금을 가르친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양금을 배우러 오기도 한다. 올 11월에는 한국에서 세계양금대회가 개최된다. 이러한 변화는 놀랍게도 오직 단 한 명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국 양금의 흐름을 단번에 뒤바꿔 놓은 인물, 양금 연주자 윤은화를 만났다.

 

다양한 악기로 쌓은 음악적 토대

중국에서 자란 윤은화는 4살부터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가야금·아코디언·목금·드럼·꽹과리 등 안 다뤄본 악기가 없고, 6살이 되자 ‘윤은화가 없으면 공연이 안 된다’라는 평을 들었다. 모든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아이는 결국 양금을 선택했는데, 그 이유를 묻자, 단번에 악기의 매력을 풀어냈다.

“양금은 현악기와 타악기, 두 얼굴을 갖고 있어요. 한국의 현악기는 대부분 명주실을 사용하는데 양금은 철을 사용해서 그들과 비교했을 때, 소리가 독특해요. 때로는 처량하고요. 아름답고 화려한 연주는 물론 강하고 힘이 넘치는 표현도 가능하죠. 그리고 이 악기가 지닌 타악기적인 성격이 저의 성향과도 잘 맞았어요. 채를 활용한 연주법이 제 신체 조건에도 맞았고요.”

중국의 양금 전공생들은 모두 타악기를 배운다. 이 과정에서 사물놀이·목금·드럼까지, 동·서양의 구분 없이 다양한 타악기를 다루게 된다. 중국에서 수학한 윤은화는 이후 한국으로 건너와 타악기를 전공하며 서양악기인 마림바·팀파니 등을 배웠다. 이러한 토대는 독특한 음악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베이스·퍼커션·양금으로 이뤄진 3인조 밴드 ‘동양고주파’의 음악들이다. 윤은화는 밴드의 일원으로 양금으로 록 음악을 연주하기도 한다. 자작곡이 담긴 그의 음반 ‘양금, 무경계’와 ‘철’에서 전통적인 국악과는 사뭇 다른 강렬한 소리가 들리는 이유다. 그러나 전통을 잃는 일은 없다. “전통적인 소리는 이미 몸이 알고 있었다”라고 말하며.

 

새로운 양금의 탄생

윤은화 ‘갈색여름’

“그동안 양금은 소외된 악기였어요. 그래서 예전엔 국악관현악단에서도 정단원을 선발하지 않았고, 학과도 없었죠.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제가 악기 개량만 18년간 했습니다. 그동안 여덟 종류의 악기를 만들었어요. 양금만 보고 정말 죽기 살기로 달려왔습니다.”

그의 양금 개발기는 파란만장하다. 속상함이 악기 개량이라는 목표에 불을 지폈다. 그는 무작정 중국으로 날아갔다. 중국은 이미 양금이 많은 발전을 이룬 상태였기 때문. 그는 북경의 가장 큰 악기상에 들어가서 가장 비싼 양금을 보여달라며 한국에서 온 부자처럼 행동했다. 악기상으로 출근 도장을 찍으며 사장님과 서서히 친밀감을 쌓은 지 3일째, 그제야 자신의 본래 목적을 밝히고 사장님께 유명한 악기 공장을 소개받기에 이른다. 전통에 머물러 있었던 양금이 현대로 나아간 순간이었다.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었어요. 제가 갖고 있던 중국 연변의 양금과 북한의 양금을 분해했죠. 그리고 다시 본래 모습을 구현했어요. 한국만의 양금을 만들기 위해 중국과 북한의 양금을 비교하고 분석했고, 이 과정이 긴 시간 이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전통 악기를 개량한다며 욕도 많이 들었는데,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18년의 세월로 양금의 크기는 무럭무럭 성장했다. 몸집이 커진 만큼 소리도 커졌다. 반음계 연주가 가능해졌고 4옥타브 반까지 음역도 넓어졌다.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끊임없이 매만지고, 두드리며, 새로운 주법을 만들어 냈다. 그가 만든 악기는 그에게 영감 그 자체인 듯 보였다. 악기의 가능성이 커지니 자연스레 양금 연주자도 늘었다.

 

양금의 모든 것을 보여주다

국립극장 여우락페스티벌(7.4~27)의 일원으로 그가 선보일 공연 제목은 ‘페이브’다. 지금까지 그가 닦아낸 양금의 길을 관객과 동행하겠다는 의미다. 양금의 모든 매력을 보여주고자 전통식 양금, 개량한 양금, 전자 양금을 전부 활용한다. 전자 악기, 루프스테이션, 앰비언트 등이 함께하지만, 국악기를 많이 사용해 전통적인 색채를 가져갈 생각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양금의 타악기적인 면에 집중해 보세요. 특히 저는 속도를 활용한 화려한 연주를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상모를 돌리듯 머리를 흔들며 연주하는 모습은 저의 시그니처입니다. 직접 보면 환호를 보내실 겁니다.(웃음) 또, 개량 양금에 특화된 ‘더블 스틱’을 사용할 예정입니다. 화음을 빠르게 연주하니, 훨씬 더 큰 소리와 울림, 강한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양금에서 채(스틱)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채의 머리 크기와 재질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난다. 채 머리에 고무를 씌우면 단단한 소리가 부드럽게 변하고, 거기에 솜을 감으면 더욱 부드러워진다. 윤은화가 자주 사용하는 채는 머리가 두 개 달린 ‘더블 스틱’으로, 그가 개량한 56음 양금에 최적화된 채다. 머리가 두 개이기에 화음을 연주할 수 있다. 중국이 개발해 현대음악에서 잠깐 사용한다면, 윤은화는 곡 전체에 사용한다.

“앞으로는 한국 양금을 전 세계에 알리는 일에 더 힘을 쓰려고 합니다. 제자들도 열심히 키우고요. 우리 양금의 경쟁력이 높아졌다는 것이 굉장히 뿌듯해요. 불모지에서 꽃이 피는 느낌이 들어서 요즘은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그는 말하는 내내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마치 양손에 투명한 채를 쥐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양금 하나만을 보고 줄곧 달려왔다는 진심을 그의 손도 전하고 있었다.

김강민 기자 사진 국립극장

 

윤은화(1983~) 전자 양금을 개발하고, 이를 위한 다양한 주법과 작품을 생산 중이다. 단국대·이화여대·한양대 등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으며, 세계양금협회 한국지부 회장, 국제양금예술연합회 부회장, 한국양금앙상블 대표, 밴드 동양고주파의 멤버로 활동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여우락 페스티벌-윤은화 ‘페이브’

7월 17일 오후 7시 30분 국립극장 하늘

윤은화(양금), 진미림(가야금), 홍지혜(피리·생황·태평소), 이창현·이종섭(타악), 조한민·김동환(타악·소리), 원종우(무용), 조현(핸드팬·디저리두), 애쉬(기타·앰비언트), 서진실(소리·이야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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