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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오페라 발레 수석무용수 기욤 디오프
실력으로 부순 투명한 천장
작년 내한 공연으로 파리 오페라 발레의 역사를 쓴 무용수가 갈라 공연으로 돌아온다
작년 3월, 파리 오페라 발레는 ‘지젤’(3.8~11/LG아트센터 서울 시그니처홀)을 들고 30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매년 180회 이상의 공연을 소화하는 파리 오페라 발레는 단원 전체가 해외 투어를 나서는 일이 잦지 않다. 귀한 경험을 위해 공연장은 인산인해를 이뤘고, 그러던 중 뜻밖의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11일 공연을 예정했던 위고 마르샹(에투알)의 사정으로 알브레히트 역에는 기욤 디오프가 대신 올랐는데, 커튼콜에 예술감독이 나와 그를 새로운 에투알로 임명한 것이다. 눈물을 글썽이며 감동한 디오프의 표정은 몇몇 온라인 영상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354년 파리 오페라 발레 역사의 첫 아프리카계 수석무용수.’ 다음날 전 세계 무용계의 뉴스를 채우는 것은 이 문구였다. 박세은이 2021년 수석무용수로 발탁됐을 때도 연도와 인종만 다른 동일한 문구가 떴으니, 이는 분명 주목해야 할 파리 오페라 발레에 오늘날의 변혁이다.
그는 파리 태생으로, 세네갈 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4세부터 춤을, 8세부터 발레를 췄다. 그가 프랑스인인 것에는 어떠한 사족도 붙을 필요 없이 명백하지만, ‘최초의 아프리카계’라는 수식어는 그의 인생을 넘어 파리 오페라 발레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디오프의 춤을 마주하기 전까지, 그가 사회 풍조에 따른 필요를 위해 등장했는지 물음을 던질 수 있겠다. 파리 오페라 발레는 다른 발레단과 비교하여 인종 측면에서 보수적인 모습을 보여왔으니 말이다. 파리 오페라와 견주는 영국 로열 발레에는 카를로스 아코스타를 비롯한 몇 명의 아프리카계 수석무용수가 2000년대부터 있었고, 현재는 포르투갈 출신의 마르셀리노 삼베가 2019년부터 수석무용수로 활동 중이다. 인종 문제에 더 적극적인 미국의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에는 2015년에 임명된 미스티 코플랜드가 최초의 아프리카계 수석무용수로 알려져 있다.
이달 파리 오페라 발레 10명의 무용수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서 갈라 공연을 펼친다.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 이후 2021년 에투알로 임명되며 한국의 이름을 알렸던 박세은과 더불어 5명의 에투알이 참여하며, 그중에는 1년 만에 다시 한국 관객에게 인사를 전하는 디오프가 포함되어 있다. 그럼 이제, 해맑은 미소 뒤에 깊은 속내를 가진 이 청년의 말을 들어보자.
작년 3월 11일, 파리 오페라 발레의 ‘지젤’ 내한 공연에서 에투알로 임명됐습니다. 당시 승급을 예상하고 있었나요?
전혀요! 그때는 방금 막, 쉬제로 승급했었고, 프르미에 당쇠르도 아니었기 때문에 에투알 임명은 전혀 예상치 못했어요.
에투알로 임명되고 주변 동료의 반응은 어땠나요? 동료 무용수도 예상하지 못했다면, 임명 후에는 다소 겸연쩍었을지도요.
다행히 그렇지 않았어요. 저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제 승급을 예상하고 있었거든요.(웃음) 에투알로 임명될 때, 저는 이미 6개의 에투알 역할을 수행한 상태여서, 적응이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에서 예상치 못한 발표가 나온 그 순간은 한국 관객에게도 특별한 시간이었죠. 그 기억으로 올해 공연을 찾아오는 관객도 있겠네요! 1년 만에 한국 관객과 다시 만나는데, 한국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요?
한국 관객은 정말 열렬하고 진심 어린 사람들이에요. 이번 여름에 다시 만나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저는 한국을 무척 사랑해요!
행동하는 청년
한국에서 파리 오페라 발레는 2021년에 승급한 박세은 덕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당신이 354년 만의 첫 아프리카계 에투알이었던 것처럼, 박세은 역시 352년 만의 첫 아시아계 에투알이었어요. 파리 오페라 발레 내부에 있으면서 시대의 변화를 실감하는지, 또는 여전히 유리천장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저는 파리 오페라 발레가 이러한 물음과 문제점에서 진전하고 있다고 믿어요. 무엇보다도 세은과 저의 임명이 유색 인종 아이들에게 파리 오페라 발레의 에투알이 될 수 있다고, 그 꿈을 꾸도록 격려한다고 생각해요.
인종차별 문제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2020년 파리 오페라가 조지 플로이드 시위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발레단 안의 다른 아프리카계 무용수 4명과 함께 ‘파리 오페라의 인종 문제에 관하여’라는 이름의 선언문을 작성하기도 했어요. 파리 오페라 내부의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변화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다고 들었는데, 400명이 넘는 직원이 그때 서명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참여했던 저와 제 동료들은 그 선언문을 정치적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파리 오페라가 하나의 국가 기관으로서 인종 차별 문제 해결을 위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길 바랐습니다. 파리 오페라가 이 논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전 세계 누구든 ‘파리 오페라가 당신을 환영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그게 저희의 목표였습니다.
별이 꾸는 꿈
어린 시절부터 롤 모델이었던 무용수가 있나요?
특별한 롤 모델은 없었어요. 그렇지만 존경하는 무용수를 꼽는다면 니콜라 르 리치(1972~)와 로랑 힐라일(1962~)입니다.
에투알로 임명되고 맞이한 2023/24 시즌에서는 수많은 역할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호두까기 인형’ ‘고집쟁이 딸’ ‘돈키호테’ ‘지젤’ 등에서 주요 역할을 맡았어요. 어떤 역할을 가장 좋아하나요?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를 가장 좋아해요. 제가 처음으로 춘 역할이기도 하고, 예술적·기술적으로 완전한 동시에 그만큼 어려운 역할이거든요.
내한 갈라 공연의 프로그램에는 이러한 전막 발레 공연의 하이라이트도 있지만, 낯선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에릭 사티의 ‘세 개의 그노시엔느’에 맞추어 발레를 선보일 예정인데, 어떤 작품인가요?
‘세 개의 그노시엔느’는 에릭 사티의 작품 중에서도 매우 유명한 것이죠. 이 음악에 맞추어 추는 2인무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굉장히 순수하면서 동시에 학구적인 면모가 있어서 단둘이 추는데도, 큰 힘을 발산하는 안무입니다.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작품 중에 시도하고 싶은 역할이 있나요?
뒤마 피스(1824~1895)의 소설 ‘춘희(La Dame aux camélias)’를 기반으로 한 존 노이마이어(1939~)의 안무작이 있어요. 오페라로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가 유명하지만, 이 작품에는 쇼팽 음악이 사용됐죠. 그 작품의 아르망 역을 해보고 싶어요. 또 모리스 베자르(1927~2007)의 안무작 중 손꼽히는 ‘볼레로’도 해보고 싶습니다. 이 두 작품은 힘도 있어야 하고, 뚜렷한 해석을 보여주어야 하는 아름다운 발레죠.
장 코렐리(1779~1854), 쥘 페로(1810~1892), 프레데릭 애슈턴(1904~1988), 루돌프 누레예프(1938~1993) 등 다양한 시대 속 안무가의 작품을 접하면서 고전발레부터 낭만발레, 현대발레까지 소화했습니다. 선호하는 시대나 안무가가 있나요?
루돌프 누레예프의 안무를 정말 사랑해요. 안무가 말도 못 하게 어렵지만요.(웃음) 누레예프의 작품은 항상 음악적이고, 그가 그린 남성 역할들은 좋은 깊이를 가지고 있어요.
파리 오페라 발레 무용수의 은퇴는 42세로 정해져 있는데, 발레 무용수로 달성하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저는 제 예술적·기술적 잠재력을 최고로 발휘하는 경지에 닿고 싶어요.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춤을 추며 느끼는 기쁨을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에투알클래식·LG 아트센터 서울
파리 오페라 발레의 등급제도와 디오프의 승급
파리 오페라 발레의 등급 제도는 다섯 단계로 나뉜다. 카드리유(군무 단원), 코리페(군무 리더), 쉬제(솔리스트), 프르미에 당쇠르·당쇠즈(제1무용수) 그리고 승급 시험으로 뽑지 않는 에투알(수석무용수). 입단부터 한 단계씩 거쳐 올라가기 때문에 에투알까지 도달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7월에 갈라 공연으로 내한하는 6명의 에투알이 입단부터 에투알까지 걸린 시간은 8~12년이다.
그럼 디오프는? 5년이다. 그는 프르미에 당쇠르를 거치지 않고 2023년 막 승급한 쉬제에서 바로 에투알로 임명됐다. 에투알로 임명되기 위해서는 평소 작품의 주연으로 출연한 경력이 필요하며, 에투알의 대타로 급하게 투입됐을 때 완벽하게 안무를 수행해야 한다.
디오프는 2021년 무려 카드리유의 위치에서 제르맹 뤼베(에투알)를 대신하여 ‘로미오와 줄리엣’의 로미오로 급히 투입됐고, 이를 완벽히 소화했다. 이는 2003년의 공연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코리페로 승급했을 때, 이미 ‘돈키호테’의 바실리오, ‘백조의 호수’의 지그프리트 왕자로 무대에 오르고 있었으니, 그의 빠른 승급은 이미 2021년부터 싹을 보이고 있었다.
기욤 디오프(2000~) 2012년 파리 오페라 발레학교를 입학했다. 2016년에는 미국의 다인종 발레단인 앨빈 에일리 아메리칸 댄스 시어터에서 활동했으며, 2018년 파리 오페라 발레에 입단했다. 2022년에 코리페, 2023년에 쉬제로 승급했으며, 그해 3월 서울의 ‘지젤’ 공연에서 에투알로 임명됐다.
Performance information
파리 오페라 발레 에투알 갈라
7월 20~2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박세은, 폴 마르크, 레오노르 볼락, 기욤 디오프, 발랑틴 콜라상트, 한나 오닐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