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송현, 내면에서 자라난 크고 고요한 소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7월 17일 9:00 오전

RISING STAR

 

피아니스트 김송현

내면에서 자라난 크고 고요한 소리

 

슈만·리스트가 그의 내면에 들어왔다.

윤이상콩쿠르 수상자 음악회에서 그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지난해,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입상자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여느 때보다 높았다. 앞선 우승자 임윤찬(2019)과 한재민(2022)이 빠른 속도로 차세대 대표 연주자의 커리어를 쌓았기 때문. 마치 스타 연주자의 탄생지처럼 비친 것도 사실이다.

그중 김송현은 단연 시선을 사로잡는 연주자였다. 190cm가 넘는 큰 키에도 벨벳 소재의 정장이 잘 어울리는 부드러운 외모, 무엇보다 체구의 장점을 활용한 크고 화려한 피아니즘을 선보일 것이란 예상을 깨고 흘러나온 정제되고 서정적인 음색은 그에 대한 궁금증을 더했다.

다가올 여름, 김송현은 당시 받은 특별상의 부상으로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박성용영재특별상 수상자 음악회’를 갖는다. 연주를 앞둔 그를 만난 것도, 초여름이 다가오는 계절이었다. “키가 참 크다”는 첫 마디에, 김송현은 “193cm 정도… 국내 최장신 피아니스트라 불려도 틀린 말은 아니다”며 웃음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수많은 선택지 끝에 시작한 성장

요즘 말로 치면, 김송현은 융합형 인재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예술의전당 음악영재아카데미를 다녔지만, 5학년에 과학영재로 텍사스의 창의력 경진대회를 출전할 정도였다. 초등학교 1·2학년 때 만난, 시인이기도 한 담임교사를 따라 동시를 쓴 것도 60편이 넘는다고. 3학년 때는 ‘해리포터’에 푹 빠져 몇백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도 썼다.

“그 소설은 지금 읽으면 좀 웃기는데, 책을 정말 좋아하는 아이긴 했어요. 상상력이 진짜 풍부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꾸준히 글을 쓰고 있고, 언젠가는 출간해 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어요. 피아노를 시작하게 된 건, 부모님이 다섯 살 때 생일 선물로 사주신 업라이트 피아노에서 제 나름의 즉흥 연주를 하면서였어요. 부모님은 어릴 때 제 모습을 기록해 주시려고, 제가 치는 걸 악보로 남길 수 있게 작곡 선생님을 붙여주신 게 시작이었죠.”

서울예고 재학 중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으로 진학한 그에게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 진학에 대한 고려는 하지 않았냐”고 묻자 “스승의 길을 따랐다”는 것이 답변이다. 예술의전당 영재아카데미에서 만나 2011년부터 함께한 강혜영은 그를 뉴잉글랜드 음악원 백혜선 교수에게 이끌었다. 피아노계의 대모인 신수정에게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레슨을 받았다.

“신수정 선생님은 몸과 소리의 연결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 하십니다. “뱃속에서 토하듯이 소리를 내라”는 말을 자주 하시죠. 강혜영 선생님은 제게 거의 가족이에요. 오랜 시간 함께하기도 했고, 제가 국내 대학 진학을 고려하던 때에 보스턴에 가게 된 것도 그곳에 가 계신 선생님을 뵙기 위함이었거든요. 뉴잉글랜드 음악원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됐죠.”

 

음악에 대한 확신과 헌신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결선 무대 ©통영국제음악재단

백혜선은 김송현의 음악 세계 구축에 가장 큰 영감을 주는 존재다. 앞으로 도전할 콩쿠르들의 목록이 있냐는 질문에도, “선생님이 가신 길을 따라갈 생각”이라고. 오전 9시부터 학교에서 자정이 될 때까지 레슨을, 그 이후에 밤을 새워 연습하는 것이 김송현이 바라본 백혜선의 일상이다.

“선생님의 삶을 보며 무엇보다 많이 배워요. 어떻게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어주시겠다는 마음이 느껴지고, 한 곡이 끝나기 전엔 두세 시간이 걸려도 레슨이 안 끝날 정도죠. 그 헌신의 마음은 정말 귀감이 돼요. 지금은 당장 본인의 가르침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나중에 어른이 된 후 그 가르침이 필요했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죽는 한이 있어도 다 내어주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존경하지 않을 수 없죠.”

계속되는 대화 속에서 그의 음악에 스승이 되어주는 또 하나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무대. 제대로 음악을 해야겠다는 결심도, 내가 걷는 길이 맞겠다는 확신도 결정적인 순간은 모두 무대에서 얻었다.

“하마마츠 콩쿠르가 제 시니어 콩쿠르 첫 도전이었거든요. 1라운드에 멘델스존의 ‘무언가’를 골랐어요. 콩쿠르에서 실력을 드러내기는 적합하지 않은 프로그램이죠. 그래도 제가 가장 사랑하는 소품집으로 저를 처음 소개하고 싶었어요. 연주하고 나서 결과와 상관없이 무척 행복했죠. 그런데 연주가 끝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연주가 깊게 와닿았고 하더군요. 그때, 내가 사랑하는 음악을 한다면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한여름 카자흐스탄의 더위를 견디고 무대에서 모든 걸 쏟아냈던 영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들은 박수 소리는 아직도 너무 선명해서 잊히지 않아요.”

차곡차곡 쌓인 경험은 지난해 윤이상국제콩쿠르 무대에서의 결과로도 증명됐다. 2차 라운드에서는 일반 콩쿠르에서 잘 연주되지 않는 슈만의 ‘환상 소곡집’을 연주하겠다는 결정도 흔들리지 않았다.

“청중상을 받은 게 정말 각별하게 느껴졌어요. 마지막 라운드 연주가 끝나고, 기립 박수를 많이 받았거든요. 일어나서 그 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졌어요. 알게 모르게 쌓인 심적 부담감에 관객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복합적인 감정까지, 거의 오열하면서 무대를 내려오는데…(웃음). 그 화답으로 콩쿠르 준비한 것에 대한 보상을 다 받았다고 생각했고, 그게 실제로 청중상 수상까지 이어지니 제가 추구하는 방향이 맞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죠.”

 

슈만과 리스트에서 꽃 피울, 지금의 나

다가올 연주회에서 그는 ‘헌정’이라는 부제 아래 1부는 슈만의 작품을, 2부는 리스트의 작품을 선보인다. 연주할 작품 중 리스트의 ‘피아노를 위한 노르마의 회상’은 그가 2023년 발매한 첫 음반 ‘POTENTIAL’(뮤직앤아트컴퍼니 발매)의 수록곡 중 하나다. 음반에는 버르토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도 함께 수록됐는데, 특히 이 협주곡은 피아노 독주 버전으로 편곡한 죄르지 산도르의 음반 외에는 레코딩을 찾기 어려운 작품이기도 하다.

“두 작품 모두 오페라·오케스트라라는 큰 편성의 곡을 88개의 건반 안에서 표현한, ‘피아노의 한계’를 시험한 작품들이죠. 첫 음반인 만큼 저 또한 선생님들과 뮤직앤아티스트 대표님의 조언에 따라, 평소 선호하던 작품들보다는 큰 규모의 작품들에 도전한 것이고요. ‘김송현의 한계’를 담기도 했다는 점에서 음반명을 ‘POTENTIAL’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리스트에 대한 생각도 이 음반 작업 중에 많이 바뀌었어요. ‘피아노를 위한 노르마의 회상’을 연구하면서 그 안에 담긴 깊은 연구를 느낄 수 있었죠. 제 안에 숨겨져 있던 드라마틱한 표현에 대한 욕구를 새롭게 깨닫기도 했고요.”

1부를 장식한 슈만의 작품은 김송현의 스타일이 확연히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아라베스크’와 ‘다비드 동맹 무곡집’으로, 문학을 사랑하는 그의 성향에도 걸맞다.

“슈만을 연주할 때면, 마치 그가 나를 위해 작곡한 작품이라는 생각에 빠져요. 당연히 착각이지만,(웃음) 그런 착각에 빠지게 할 만큼 그의 작품은 가장 사적인 곳으로 우리를 초대하죠. 저 자신과 슈만은 분리가 불가능하다고 느낄 만큼, 정신적으로 깊게 연관되어 있음을 느껴요. 제게 슈만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정의되기도 하는데요,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그 심리의 상태를 가장 잘 포착한 슈만의 음악을 관객들과 꼭 나누고 싶네요.”

두 시간여 이어지던 대화 끝에, 이 젊은 연주자의 내면에 조성된 소담하고 아름다운 동산에 닿았다.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 속 가사 한 구절이 떠올랐다. ‘맑게 갠 여름 아침, 꽃동산을 거닌다. 꽃들은 소곤소곤 말을 걸고, 나는 침묵 속에 걸어갔다.’ 희미한 연보라색의 들꽃이 초여름의 바람에 하늘거리고 있는 듯한 김송현의 동산에는 깊게 뿌리내린 생각의 가지들이 풍성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는 더 울창하고 넉넉한 숲이 되어 있을 김송현의 음악 세계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허서현 기자 사진 금호문화재단

 

 

MINI TALK

 

소소하고 무해한 취향을 가득 가진 ‘찐 INFP’였던 김송현.

인터뷰에 모두 싣지 못한, 그의 취향이 엿보인 대화 몇 가지.

 

#보스턴 학교가 위치한 이 도시가 내향적인 내게 잘 맞다.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한데, 또 인프라도 갖춰진 편이라 뉴욕과 유럽의 중간 정도. 학교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찰스강도 흐른다. 보스턴 미술관도 있고,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뮤지엄도 정말 좋아하는 곳!

#조던홀 뉴잉글랜드 음악원 안에 있는 홀, 내가 경험한 곳 중 가장 음향이 좋았다. 작년 1월, 보르메오 콰르텟과의 연주를 앞두고 피아노를 고를 기회가 있었다. 날짜도 기억한다. 1월 17일 오전 9시. 아무도 없는 조던홀에서 이런저런 곡을 쳤던 그 시간이, 잊지 못할 황홀한 순간으로 각인되어 있다.

#라흐마니노프 (아직 공개하지 않았지만, 준비하고 있는 필살기를 궁금해하는 기자의 질문에) 아무래도 라흐마니노프. 겉으로는 차갑게 보여도, 그 안에 끓어오르는 불같은, 인간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작곡가라고 생각한다. 연주하지 않고서는 못 베기겠다는 생각이 든달까.

# 그리그의 서정 소품집 대중이 익숙하지 않은 작품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그리그 서정 소품집 전곡을 녹음한 피아니스트가 없다. 마치 ‘북유럽의 슈만’라 할 만큼 각 작품에 부제가 붙어있는데, 노르웨이 작곡가답게 조금 더 동화적이고 신비롭다. 단편소설의 한 장면 같은 작품들이다.

# 좋아하는 음반 좀 전까지 에밀 길레스가 연주한 그리그 서정 소품집을 듣고 왔다. 백건우 선생님의 ‘포레’, 정경화 선생님의 ‘콘 아모레’도 좋아한다. 부니아티쉬빌리의 ‘마더랜드’라는 음반도 퀄리티가 진짜 좋다. 재닌 얀센이 12대의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연주한 ‘12 스트라디바리’도 영감을 주는 음반 기획이다. 아, 그리고… (이하 생략)

#Innig 슈만만의 지시어. 슈만 전에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던 용어다. ‘내면적인’이라는 뜻. 셔츠 소매에도, 손수건에도 새길 만큼 각별한 단어다.

 

김송현(2002~) 예원학교 졸업 후 서울예고 재학 중 도미하여 뉴잉글랜드 음악원 학사 과정을 졸업하고, 석사 과정 진학 예정(9월)이다. 2023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준우승과 함께 박성용영재특별상·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특별상(청중상)까지 수상했다. 영 차이콥스키·센다이 콩쿠르 등에서 입상한 바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김송현 피아노 독주회

8월 1일 오후 7시 30분 금호아트홀 연세

R. 슈만 ‘아라베스크’ ‘다비드 동맹 무곡집’, 리스트 ‘시적이고 종교적인 10개의 하모니’ 중 3번 ‘고독 속의 신의 축복’, ‘피아노를 위한 노르마의 회상’ S.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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