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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아나운서 신윤주·윤수영
그대 곁에 음악을 놓을 때, 함께 하는 목소리
KBS 클래식FM(93.1MHz)으로 나누는 음악과 사연의 안내지기들
도시에는 ‘마을’이 없다. 더운 계절, 큰 나무의 그늘에서 쉬면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눌 ‘이웃’도 없다. 안부 인사며, 어쩌다 생긴 행운을 서로 전하는 ‘정’도 부족하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은 아니지만, 취향을 공유하는 클래식 음악 속에서 만나는 커뮤니티는, 뜻밖에 라디오에 있다.
라디오의 주파수를 93.1MHz에 맞추면, 혹은 시대에 맞게 스마트폰으로 ‘KBS 콩’(이하 ‘콩’)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콩밭’(KBS 콩의 채팅창을 이르는 사용자들 사이의 은어)에 들어가 앉으면 당장 들을 수 있다. 바로, 우리 주변의 내밀한 이야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예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KBS 클래식FM의 신윤주·윤수영 아나운서와 사람 사는 이야기로 충만한 콩밭 마을 속으로 떠나보자.
새로이 만나는 진행자
2013년부터 2021년까지 오랫동안 ‘KBS 음악실’을 진행하다가, ‘신윤주의 가정음악(이하 가정음악)’으로 돌아왔습니다.
신윤주 윤유선 씨가 진행하던 프로그램 가정음악(오전 9~11시)을 올봄부터 맡게 되었어요. 제가 이전에 진행했던 ‘KBS 음악실’(오전 11시~오후 12시)보다 청취자 사연의 비중이 훨씬 더 높죠. 출연 연주자를 돋보이게 하는 ‘KBS 음악실’에서의 역할과 달리, 청취자 사연과 음악으로 두 시간을 꾸리는 게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청취자의 일상에 스며들어 ‘반려 매체’로서 ‘가정음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개편 후 3월 중순에는 음악을 듣고 사연을 올리기 위해 앱에 접속한 건수가 10% 가까이 늘었다는 긍정적인 피드백도 들었어요. ‘콩’과 문자 메시지로 올려주는 사연도 늘 놀랍고 새롭습니다. 단오인 오늘(인터뷰 당일)은 이런 사연을 받았어요. 청취자의 할머님 성함이 김소단오래요. 첫째가 김단오이고, 할머니는 둘째라서 김소단오가 됐대요. 예전엔 딸한테 막 지어준 이름이 서운했는데, 매년 단오가 되면 우리 소단오 할머니가 생각난다는 사연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항렬을 따른 어떤 멋스러운 이름보다도 그 ‘소단오’라는 이름이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 사연을 통해 소단오 할머니가 훅 가깝게 느껴지면서, 그분을 직접 만난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어요. 이렇게 사연을 나누는 게 라디오의 매력인 것 같아요. 그 외에도 입양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이야기, 아침에 자전거 타면서 듣는 음악, 요즘 읽는 책… 모두 인터넷 채팅창 ‘콩밭’에서 나누면서 친해지죠.
윤수영 아나운서도 2020년부터 4년간 ‘생생 클래식’을 진행하다가, 이번 봄개편으로 ‘KBS 음악실’로 이동했죠.
윤수영 ‘생생 클래식’ 역시 ‘가정음악’처럼 사연을 많이 나눴죠. 오며 가며 식사하고 여유롭게 듣는 시간대라서, 매일 2시간 청취자들과 수다를 떤다는 기분으로 방송했어요. “힘내세요, 아이가 낮잠 잘 자길 바랄게요” 그런 말 한마디가 너무 소중하고 힘이 된다는 사실을 저 자신도 ‘생생 클래식’의 청취자로서 경험했었고요. 사실 진행자는 뼈와 살을 깎아서 자리에 맞춰 들어가는데, ‘생생 클래식’에서는 진짜 자유롭게 진행하는 드문 경험을 했습니다. 반면 ‘KBS 음악실’은 방송 시간도 한 시간으로 짧아요. 연주자·전문가 등 초대 손님도 있고요. 이전 프로그램에서는 가족이나 취업 이야기를 나눴다면, 이젠 음악회와 음반 이야기, 연주자의 근황 이야기로 대화 주제가 바뀌었습니다. 좀 더 본격적인 음악 프로그램이니까요. 저는 청취자가 실시간으로 올리는 질문들을 연주자와 청취자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며 풀어냅니다. 라디오로 진행되는 수준 높은 음악 레슨이자 마스터클래스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프로그램의 색채 변화
‘KBS 음악실’은 한국 클래식 음악가들의 산실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연주자가 출연했지요.
윤수영 KBS 클래식FM이 1979년 개국했을 때부터 시작된 역사 깊은 프로그램입니다. ‘KBS 음악실’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음악가들의 이야기와 연주를 전한다는 데 있죠. 45년이 흐르면서,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가들도 프로그램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많은 ‘월드클래스’ 한국인 연주자들이 배출됐고, 지금은 이제 ‘K-클래식’이라고 해서 세계가 우리나라를 집중해 지켜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더욱 큰 책임감을 느끼면서 방송하고 있어요. 주요 코너는 매달 살롱 마스터가 출연해 직접 연주하면서 작품들을 설명하는 화요일 ‘살롱’ 시리즈, 연주자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수요일 ‘음악실 초대석’이에요. 금요일에는 음악 칼럼니스트 허명현 씨가, 토요일은 음악학자 계희승 씨가 음악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세심한 선곡과 검증된 설명으로 이미 팬층이 두터운 코너이기도 하죠.
‘가정음악’의 코너들도 궁금합니다.
신윤주 제가 내년이면 방송 활동한 지 30년이 돼요. 이렇다 보니 방송하며 크게 놀라는 일이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요즘 정주은 작가의 데일리 코너 ‘음악, 그리고…’를 들으며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음악에 뭐든지 가져다 붙이는 거예요. 이를테면 ‘음악과 어깨’ ‘음악과 커피’ 이렇게요. 오늘은 ‘음악과 부채’였어요. 19세기, 브람스와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친구였을 시절에는 부인들이 부채에 음악가들의 사인을 받았다고 해요. 어느 부인이 부채에 브람스가 자기의 곡이 아닌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음표를 그린 것을 보고 의아해 했대요. 그러더니 브람스가 “아쉽게도 브람스의 곡이 아니군요”라는 센스 넘치는 말을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주제가 왜 ‘음악과 부채’인가 했더니, 오늘이 단오니까요. 단오에는 부채를 선물하곤 했잖아요. 또 수요일에는 ‘렌토보다 느리게’라는 코너가 있어요. 제가 책을 골라서 몇 문장을 낭독하고 책을 소개합니다. 그러면 원고 사이사이에 박정연 PD가 선곡하는데 찰떡같이 어울리는 음악을 금세 찾아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정주은 작가와 박정연 PD의 능력을 느낄 수 있는 코너들이죠.
요즘은 ‘보이는 라디오’에 호응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유튜브 채널 ‘KBS 클래식FM’ 채널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리스트 ‘순례의 해’, 손열음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연주 등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들도 많고요.
윤수영 최근에 ‘KBS 음악실’에 김선욱 지휘자와 경기필하모닉 단원들이 출연해 연주도 하셨어요. 그런데 그날은 ‘보이는 라디오’를 하는 요일이 아니었거든요. 그때 이걸 왜 안 보여주느냐는 청취자분들의 원성(!)이 있었어요. 김선욱 지휘자의 출연으로 청취자분들이 ‘보이는 라디오’를 얼마나 열망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죠. 원래는 화요일 ‘살롱’ 코너만 ‘보이는 라디오’를 했었는데, 6월부터는 수요일 ‘초대석’ 코너도 ‘보이는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출연하는 연주자 중에 ‘요즘 세상에 라디오를 누가 얼마나 듣겠어?’라는 생각으로 오는 분들도 인기에 놀라고 갑니다.(웃음)
신윤주 ‘가정음악’에도 최근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1974~), 오귀스탱 뒤메이(1949~)가 ‘보이는 라디오’에 출연해서 연주와 이야기를 들려줬었죠. 뒤메이 편은 유튜브로 다시 보실 수 있고요. 2023년 9월에 오픈한 ‘스튜디오 콩’은 음향도 분위기도 좋아서 ‘보이는 라디오’에 출연한 해외 연주자들도 놀란답니다.
일상 속 클래식FM
본인 프로그램 외에, 클래식FM 채널에서 추천하고 싶은 다른 프로그램이 있나요?
신윤주 저에게 오전 7시의 ‘출발 FM과 함께’는 ‘아침의 진정제’예요. 방송을 들으면서 동료인 아나운서 이재후 씨를 더 좋아하게 됐어요. 청취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포인트는 뭐든지 “다행”이라는 거예요. 덮어놓고 다 잘했다고 격려하는 거예요. ‘이게 위로구나’ 많이 배웠어요. 오후 6시, 저녁을 차릴 땐 ‘세상의 모든 음악’을 주로 들어요. 그 시간에 ‘세상의 모든 음악’을 틀면 저녁 차리는 일이 예술이 되고, 틀지 않으면 노동이 돼요. 저한테 큰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윤수영 저도 수년째 ‘출발 FM과 함께’를 들으며 아침을 시작하고 있어요. 이재후 아나운서는 충청도 분이어서, 3초쯤 있다가 핵심이 나와요. 그게 방송에서도 그대로 묻어나오죠. 가족들도 함께 듣는데 그가 느릿느릿 ‘아재 개그’를 하면, 저희도 3초쯤 뒤에 함께 웃죠. 그런 매력 때문에 끊을 수가 없어요.
라디오보다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앱으로 각종 미디어를 접하는 시대이지만, 큰 재난이 있을 때를 대비해 FM 라디오 주파수가 잡히는 기기를 ‘재난 가방’에 챙기라고들 한다. 지진·해일 같은 ‘외부 재난’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폭풍우가 칠 때, 희끄무레한 안개 속에 라디오 주파수를 가만히 맞추고, 사랑스럽고 매끄러운 음악과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나의 개인적 재난’을 잠시 피할 안온한 곳, ‘클래식FM’이라는 장소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 양경원(음악 칼럼니스트)
신윤주 KBS 공채 22기 아나운서. TV 프로그램 ‘KBS 문화스페셜’ ‘KBS 뉴스라인’ 등을 진행했다. 1FM에서 ‘당신의 밤과 음악’ ‘밤의 실내악’ ‘출발 FM과 함께’ ‘KBS음악실’을 거쳐, 현재 ‘신윤주의 가정음악’을 진행 중이다.
윤수영 KBS 공채 31기 아나운서. 1FM ‘생생클래식’과 TV 프로그램 ‘명견만리’ ‘글로벌24’를 진행했다. 현재 1FM ‘KBS음악실’과 1TV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