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THE MUSIC SCENE 22
세계의 공연기획자를 만나다
북유럽의 역사가 살아 숨 쉰다
‘오랜 전통’으로 다지고, ‘젊은 전통’을 세워가는 스웨덴 국립교향악단의 저력
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 제너럴 매니저
안나 카린 라르손
안나 카린 라르손(Anna-Karin Larsson) 스웨덴 국립 라디오에서 문화 및 음악 부문 리더로서 광범위한 경험을 쌓았다. 스톡홀름에 위치한 베르발트할렌 콘서트홀의 책임자를 역임한 후, 2024년 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CEO로 취임했다.
연재 | 세계의 공연기획자를 만나다
01 아라벨라 아츠 대표 스테파나 아틀라스 02 브라보! 베일 뮤직 페스티벌 대표 케이틀린 머리 03 루체른 페스티벌 대표 미하엘 헤플리거 04 브레겐츠 페스티벌 대표 미하엘 디엠 05 엘프 필하모니 대표 크리스토프 리벤 조이터 06 콘세르트허바우 대표 사이먼 레이닝크 07 에스플러네이드 대표 이본 텀 08 서구룡문화지구 대표 베티 펑 09 대만 국립가오슝아트센터 대표 치엔 웬핀 10 도쿄 산토리홀 대표 쓰쓰미 쓰요시 11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 대표 올리비에 레마리 12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대표 미하엘 아디크 13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경영감독 루카스 크레파츠 14 아스펜 음악 페스티벌&스쿨 대표 앨런 플레처 15 도쿄 신국립극장 대표 제니야 마사미 16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대표 안드레아스 슐츠 17 싱가포르 차이니즈 오케스트라 대표 테렌스 호 18 위그모어홀 대표 존 길훌리 19 싱가포르 아트그라운드 총괄 매니저 루안느 포 20 베르비에 페스티벌 설립자 마틴 엥스트롬 21 피핑 톰 무용단 매니저 베를 맨스 22 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 제너럴 매니저 안나 카린 라르손
복잡한 추리소설의 왕국이자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진 휴양의 천국. 동전의 양면 같은 매력을 지닌 스웨덴은 도시마다 특색이 무궁무진하다. 전 세계에서 9천만 권 이상 팔린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나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스웨덴의 지명들이 꽤 익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특히 ‘스웨덴의 부산’과도 같은 예테보리는 푸르른 북해와 발트해를 마주해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스웨덴 내 관광지 중 손꼽히며 다양한 예술과 볼거리가 가득한 도시다. 예테보리를 수호하려는 듯 예타 광장 중앙에 우뚝 자리한 포세이돈 동상을 중심으로 시립극장, 미술관, 콘서트홀 등이 둘러싸여 있어 방문객들은 근처에서 문화예술을 언제든 향유할 수 있다.
100여 년의 역사를 담은 예테보리 콘서트홀의 상주 오케스트라 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1997년 스웨덴을 대표하는 ‘국립교향악단’으로서의 기능을 수여받은, 전통과 명예를 자랑하는 교향악단이다. 1905년 빌헬름 스텐함마르가 창단한 이후 투레 랑스트룀·이사이 도브로벤·딘 딕슨 등 굵직한 지휘자들이 자리를 지켰다. 1982년에는 네메 예르비가 수석 지휘자로 부임해 22년간 예테보리 심포니를 지키며 도이치 그라모폰, BIS 등에서 시벨리우스·그리그 등을 녹음하며 유럽을 넘어 전 세계에 명성을 떨쳤다.
현재 예테보리 심포니의 제너럴 매니저를 역임하고 있는 안나 카린 라르손을 화상으로 만났다. 예테보리의 화사한 여름을 대변하듯 높은 채도의 빨간 원피스가 잘 어울렸던 그녀와의 인터뷰 역시 여름처럼 청량하고 시원시원했다.
역사가 빚어내는 소리
1905년 설립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를 만들고 있다. 이 오랜 시간이 오케스트라에 주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우리의 역사는 단원들뿐만 아니라 관객 그리고 예테보리 시민들의 자랑이다. 이 순간에도 우리의 역사는 계속 기록되고 있다는 것이 뿌듯한 일이다. 역사의 기록에서 우리는 항상 숨 쉬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오케스트라가 되고 싶다.
콘서트홀의 역사도 100년에 가까운 시간을 담고 있다. 1935년에 만들어졌음에도 미국 카네기홀,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허바우 등과 함께 음향이 뛰어난 홀로 손꼽히고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당연한 소리지만 콘서트홀은 소리에 매우 민감하게 설계되고 운영된다. 자재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들었다. 지붕과 천장의 목재는 캐나다산 단풍나무를 사용하고 벽과 벽이 만나는 모든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어 소리의 충돌로 인한 음의 손실이 없게 만들어졌다. 또 오디오 시스템은 볼보사(社)에서 공연장을 위해 특별히 제작해 지원했다. 탁월한 음향과 설계 덕분에 도이치 그라모폰 음반 녹음에 우리 공연장이 자주 사용되기도 한다.
네메 예르비 재임 시절(1982~2004)에 스웨덴 국립교향악단 칭호를 얻었다. 이 칭호가 오케스트라에 주는 의미는?
‘국립’이라는 명칭은 국가의 대표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해 준 것이다. 올림픽으로 치면 국가대표 선수단이 된 것이다. 그 칭호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복지 선진국의 음악계 지원
스웨덴은 잘 갖춰진 복지 시스템으로도 유명하다. 단원들 역시 국민으로서 복지 혜택을 받으리라 생각하는데, 혹시 오케스트라에 대한 복지 정책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자동차를 준다든지?(웃음) 엄청난 혜택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다만 평균 이상의 급여가 지급된다고 생각한다. 생활비로 5~6백만 원(한화 기준) 상당이 지급되고, 후원자들이 무료로 연주복을 지원해 주고 있다. 복지국가로서의 혜택을 굳이 말하자면 의료비나 교육비가 무상이라는 것 정도?
한 해 예산은 어떻게 조성하고 있는가. 국가 지원이 별도로 있는가?
한 해 예산의 60% 정도인 약 260억 원(한화 기준) 정도는 지역 정부 후원이 있다. 나머지 예산은 티켓 판매 수익과 기업 혹은 개인의 후원으로 조성된다.
초연도 꽤 많고 스웨덴 창작곡들도 위촉 초연하고 있다. 사실 창작곡은 공연 예산이 많이 들어가서 쉬운 작업은 아니지 않나. 이를 위한 특별 예산 계획, 후원이 별도로 있는지 궁금하다.
초연을 위한 위촉곡 비용은 북유럽의 다른 오케스트라와 비용을 나누는 식으로 운영한다. 경제적으로도 이익이며 동시에 초연곡을 두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니 더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다. 운영하다 보면 상생을 위한 다양한 전략이 이런 곳에서도 필요하다.
예테보리는 음악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음악교육에 대한 열의도 상당할 것이라 기대되는데. 특히 클래식 음악교육의 분위기가 궁금하다.
내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50년 전만 해도 클래식 음악을 배우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그때만큼 일상에서 즐기는 분위기까진 아닌 것 같다. 부모의 관심 여부, 아이들 스스로 느끼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호기심 등이 음악교육에서 중요한 요소인데 즐길 수 있는 공연 문화가 다양해지면서 클래식 음악 자체에 대한 열의가 다른 곳으로 분산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스웨덴의 음악교육 비용은 비교적 저렴한 편이라 원한다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현재 클래식 음악의 주요 관객층은 중장년으로 젊은 관객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 절실하긴 하다.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음악 교육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 프로그램을 열심히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유아부터 청소년까지 다양한 연령을 아우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내일의 관객이자 오늘의 음악인 모두를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알아야 들리고 들려야 즐길 수 있기에 교육 프로그램은 관객 개발에 필수적인 부분이다. 오케스트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운영해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2월에 스포츠 홀리데이 오케스트라(Sports Holiday Orchestra)가 열리고 가을에는 합창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좀 더 전문적인 교육을 원하는 친구들은 청소년 오케스트라(Youth Symphony)에 입단하기도 한다.
사람과 함께 성장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네메 예르비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여러 음반을 통해 오케스트라의 위치를 끌어올린 그의 역량이 존경스럽다. 그렇게 역동적인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가 활동하던 1980년대는 지금과 달리 음반 활동 자체가 활발했다. 그만큼 많이 팔리는 시대이기도 했고. 나 역시 스웨덴 라디오 재직 시절 그의 음반을 많이 틀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의 변화도 있고 음반보다 음원을 선호하는 현상도 두드러져 녹음에 대해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산투 마티아스 로우발리(1982~)가 2017년부터 수석지휘자에 임명돼 2025년까지 계약돼 있다. 차기 지휘자를 선임할 시기가 아닌가 싶은데.
일단 로우발리의 마지막 공연은 2024년 5월로 예정되어 있다. 지휘자 선발은 오케스트라에 절대적 요소이기 때문에 아주 오랜 기간 준비 과정을 거친다. 이미 2~3년 전부터 선발은 준비하고 있었고 위원회가 2주에 한 번씩 예비 지휘자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그램에 따라 어울리는 지휘자가 따로 있고,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합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 토론은 굉장히 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특별히 오케스트라가 선호하는 지휘자를 논할 때에는 한 번 더 초빙해 재확인 작업을 거치기도 한다.
현재 바바라 해니건(1971~)이 수석 객원 지휘자다. 소프라노로서도 많은 활약을 하는 음악가이기도 한데, 그녀와 함께한 작업이 많은 만큼 스타일에 대해서도 잘 알 것 같다.
단원들도 관객들도 모두 그녀를 사랑한다. 노래를 부를 때만큼이나 평상시 목소리도 아름다워서 대화하는 것 자체가 즐거울 지경이다. 아, 그렇다고 단지 목소리 때문에 그녀를 사랑하는 건 아니다.(웃음) 레퍼토리 선택 능력이나 지휘 스타일 모두 탁월하며 단원들과 잘 화합하는 지휘자라고 생각한다.
스웨덴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아바 바하리(1996~)가 2024/25 상주 연주자로 선정되었다.
예테보리 출신이니만큼 누구보다 오케스트라를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해 새로운 창작 음악이나 다양한 공연을 준비하고 있으니 한국 관객도 찾아와 주면 좋겠다.
음악을 중심에 두고 나아간다
행정가로서 단원들과 호흡을 맞추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단원들과의 조화를 위해 어떤 점을 특히 신경 쓰고 있나?
단원들의 이야기를 통해 힘든 점이나 건의 사항 같은 것들을 지속적으로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숙고한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게 곧 공연의 문제나 사고로 직결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고 있다.
과거에 스웨덴 라디오와 베르발트할렌 콘서트홀을 거쳐 현재 예테보리 심포니에 재직 중이다. 오케스트라 업무는 이전의 일들과 무엇이 다른가?
스웨덴 라디오에서는 음악 부서에서 일했다.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대중음악 관련 업무도 많았고 공연장 업무까지 맡았으니, 업무의 영역이 지금보다 훨씬 넓었던 셈이다. 반면 예테보리에 와서는 한 분야에 더 깊게 몰입한다는 감각이 있다. 특히 예전보다 음악 그 자체에 훨씬 더 가까워진 느낌이랄까. 프로그래밍, 재원 조성, 인적 관련 업무 모두가 음악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게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부분이다.
예테보리 심포니는 UN의 지속 가능한 발전(Sustainability goal)에 대해 관심이 많은 악단이다. 어떤 식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또 실천하고 있는지 소개해 준다면?
덴마크 코펜하겐이나 독일 함부르크 등 비교적 가까운 거리를 이동할 때는 이산화탄소 배출 최소화를 위해 기차를 이용한다. 또, 수석 지휘자들의 경우 필연적으로 연주 여행이 많은 편이라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의 지휘자인 산투 마티아스 로우발리, 바바라 해니건의 경우는 머무는 기간을 늘려 이동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한 번 예테보리에 방문할 때 2주 정도의 일정을 소화하고 가는 식이다. 또 할 수 있는 한에서 전기 절약을 실천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은 일상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관객들도 함께 실천하면 좋겠다고 늘 생각하고 있다.
1년에 100회 이상의 공연을 소화하는, 공연이 많은 오케스트라 중 하나다. 스케줄 관리가 만만치 않으리라 감히 짐작해 본다.
일단 스케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혼자 일하는 시간을 가지는 편이다. 항상 음악과 가까이하면서 업무를 하다 보니 사실 스트레스가 크지도 않고 일이 일로 느껴지지 않는 순간들도 많다. 복 받은 직업이다.
앞으로 오케스트라가 나아갈 방향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우리의 역사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잘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목표 달성이 아닐까. 음악적 역량이 뛰어난 연주자들과 계속해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늘려가며 레퍼토리의 다양성도 늘려가고 싶다. 더 많은 여성 지휘자도 만나고 싶고 현대곡 연주 기회도 늘리고 싶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진화해 나갈 것이다.
우리 오케스트라만의 매력
한국 관객에게 소개하고 싶은 예테보리 심포니만의 특징이나 분위기가 있다면?
우리 단원들은 일상을 같이 하는 가족이나 다름없기에 유난히 돈독한 관계를 자랑한다. 대부분 20대 초부터 함께 해 살아온 대부분의 시간을 공유해 왔다. 그 덕에 앙상블에서도 친밀감이 뚝뚝 흘러넘친다는 게 우리 오케스트라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또, 우리는 끊임없이 연습하는 오케스트라라고 자신 있게 전하고 싶다.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서로 악보를 보며 의논할 만큼 열정이 가득하다. 지독한 연습 벌레들이다.(웃음) 덕분에 예민하고 섬세한 음향을 갖춘 홀에서도 완벽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선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음정 하나가 삐끗해도 공연장 전체에 들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단원들이 정말 최선을 다한다.
한국인들에게 스웨덴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자 매력적인 휴양지로 손꼽힌다. 마지막으로 한국 관객들이 예테보리를 찾았을 때 공연 관람 외에 꼭 해봤으면 하는 게 있다면?
시내에서 11번 트램을 타고 살트홀멘(Saltholmen)으로 가서 페리를 타고 섬에서 산책을 한 뒤 시내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는 루트를 추천한다. 예테보리는 항구도시답게 싱싱한 해산물은 물론 다양한 음식점들이 많다. 볼거리도 다양한 도시니 공연과 함께 도시를 온전히 만끽하는 시간을 꼭 가져보길 바란다.
예테보리에는 오래된 시간이 쌓아 올린 아름다움과 현재의 반짝임이 공존하고 있다. 바닷냄새를 가슴 깊숙이 들이마시며 공연을 보러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올여름에는 서스펜스와 로맨틱이 공존하는 스웨덴의 문학과 음악에 함께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 박선민(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예테보리 심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