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조, 세월의 흔적이 담긴 나의 작곡 노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8월 19일 9:00 오전

음악이 내게로 온 순간_7

음악가들이 알려주는 ‘추억의 플레이리스트’

 

작곡가 이영조

세월의 흔적이 담긴 나의 작곡 노트

 

이영조(1943~) 연세대 음악대학 작곡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뮌헨 국립음대를 거쳐 아메리칸 콘서바토리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연세대, 아메리칸 콘서바토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원장을 역임했다. 한국작곡대상·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난파음악상 등을 받았으며, 지난 6월 창작오페라 ‘처용’(1987)의 유럽 투어를 성료했다.

 

 

일상 속 바흐의 선율

#바흐 #‘B단조 미사’ BWV232 #일상에서 자주 듣는 곡

요스 반 펠트호번/네덜란드 바흐 소사이어티

감상 포인트 삶과 죽음에 대한 종교적 성찰이 담긴 곡

 

평소 바로크 음악을 자주 찾아 듣습니다. 특히, 바흐의 ‘B단조 미사’ BWV232는 제게 생명의 양식과도 같은 곡입니다. 1곡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Kyrie eleison)’는 소프라노, 카운터테너, 알토, 테너, 베이스의 5성부로 구성된 합창곡으로, 그 건축적인 구조와 치밀한 밀도는 현대음악의 선구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또한, 호른과 함께하는 베이스 솔로곡인 11곡 ‘홀로 거룩하시고(Quoniam tu solus sanctus)’와 이어지는 합창곡 ‘성령과 함께(Cum Sancto Spiritu)’는 반드시 감상해야 할 작품입니다.

흔히들 현대음악이 어렵다고 이야기하지만, 현대음악보다 더 어려운 것이 바로 바흐의 작품입니다. 바흐의 음악에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선율의 미세한 연결과 삶과 죽음에 대한 종교적 성찰이 담겨 있어,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번 자주 들어야 합니다. 이러한 점이 바로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의 차이점이기도 하지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칸타타 ‘예수, 인간 소망의 기쁨’, 토카타와 푸가 BWV565 같은 곡부터 차근차근 들어보세요. 요스 반 펠트호번/네덜란드 바흐 소사이어티의 연주를 추천합니다.

 

 

1934년, 아버지의 가곡집

#그리그 #‘페르귄트 모음곡’ 중 ‘오제의 죽음’ #작곡에 눈을 뜨게 한 곡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베를린 필하모닉

감상 포인트 상행과 하행을 반복하는 선율, 현악기의 음색에서 드러나는 쓸쓸함과 비통함

 

저는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우리 7남매는 작곡가셨던 아버지(이흥렬(1909~1980))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연습했습니다. 6.25 전쟁이 발발하고, 남쪽으로 피난을 가면서 한동안 피아노 연습을 중단해야 했지만, 서울이 수복되고 난 후부터 다시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어느 날, 서재에서 아버지의 얼굴이 크게 실린 ‘이흥렬 가곡집’을 발견했습니다. 1934년에 출판된 가곡집에는 ‘바우고개’ ‘어머니 마음’ ‘코스모스를 노래함’ 등의 가곡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저도 제 이름으로 된 음악집을 내고 싶은 마음에 직접 쓴 엉터리 동요 27곡을 아버지께 보여드리며 가곡집을 만들어 달라고 졸랐습니다. 당시 아버지께서 제 곡을 보고 웃으시며 “곡이 예쁜데, 모두 슬픈 곡이구나”라고 하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후, 아버지께 작곡을 본격적으로 배웠습니다. 아버지는 이론을 가르치기보다 아름다운 곡들을 자주 들려주셨습니다. 특히,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중 ‘오제의 죽음’은 제게 ‘색깔 음악’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 곡입니다. 세 개의 음이 상행하는 이 곡의 주제에서 세 번째 음은 나중에 프랑스 6화음(French 6th)이라는 종래와 다른 화음을 사용하는데, 작곡 기법을 몰랐던 어린 시절, 이 아름다운 화성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흥렬 가곡집(좌) 이영조 동요집(우)

 

 

아름다운 정가(正歌)의 발견

#이영조 #달 #국악의 선율을 따라서

하윤주

감상 포인트 장대한 칸타타 속 느리고 단아한 독창의 아름다움

 

1885년은 서양음악의 오선보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온 해입니다. 그때 들어온 오선보는 교회 예배용 찬송가 악보였습니다. 고종 말기에 배재학당, 이화학당, 연희전문학교 등 여러 기독교 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학문과 예술은 젊은 세대를 열광시켰는데, 이러한 교육 방침에 따라 당시 국내 음악계에서는 서양음악과 국악을 따로 분리해 가르쳤습니다.

이후 국악은 시장 논리에서 밀려나 지금까지도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현재에도 국악은 서양음악을 가르치는 음악대학 내에 학과로 존재할 뿐입니다. 저는 종종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의문이 듭니다. 우리 음악에 맛과 멋이 없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요? 1966년 대학 시절, 국립국악원에서 향피리를 공부하며 우리의 전통음악에 보물 같은 음악적 자산과 요소가 존재함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전통관악기 합주곡인 ‘수제천(壽齊天)’은 궁중의 중요한 연례 및 무용에 연주되던 관악곡으로, 국가의 태평과 민족의 번영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타 국악곡과 달리 주고받는 형식미가 있는 장대한 곡입니다.

국악의 성악곡은 민요, 판소리, 정가(가곡·가사·시조)로 분류됩니다. 그중, 정가를 부르는 가객 하윤주가 노래한 정가 ‘달’을 추천합니다. 이 곡은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제게 위촉한 ‘시조 칸타타’(2019) 중 ‘가을’편에 나오는 독창곡으로, 관현악과 피아노 반주 버전이 있는데, 그중 피아노 버전을 먼저 들어보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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