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STIVAL ZONE
연출가 적극·이왕수
전통예술만의 ‘잡색(雜色)’이 ‘빅쇼’로 펼쳐지다
전주세계소리축제의 개·폐막 공연을 맡은 두 연출가의 포부
어떤 축제의 명칭은 한 덩어리로 있을 때에 그 의미가 살아난다면, 이 축제는 정반대이다. ‘전주’ ‘세계’ ‘소리’ ‘축제’ 각 어휘의 뜻이 모두 살아나는 5일간의 향연이 이달에 찾아온다. 다섯 낮과 밤 동안 열리는 공연의 종류만 무려 40가지가 넘어가니, 보고 싶은 공연들로 계획을 짜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거대한 축제는 시작과 끝이 중요할 터. 전주세계소리축제는 이를 알고 개막공연과 폐막공연에 특별한 공을 들였다. 연극과 전통음악 현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연출가를 섭외하여 각 공연의 음악과 특징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도록 말이다. 개막공연의 적극(1977~), 폐막공연의 이왕수(1985~) 연출가와 극과 공연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는데, 실로 각 공연에 그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이들이었다.
적극은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라는 명칭의 독자적인 작업을 이어온 연출가이다. 적극만의 연출 콘셉트를 잘 보여주는 이 말은 ‘어디로나 흐르는(Dappertutto)’이라는 의미와 ‘스튜디오’의 결합어이다. 기존 연극의 틀을 벗어나고 새로 재정립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그는 최근에 “이야기가 멈춘 곳에서 연극이 시작된다”라는 메모에서 출발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자신의 작업과 연극의 여러 방면을 설명하는 어휘에는 방대한 지식 습득과 여러 고심이 저절로 묻어난다. 이는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들을 위해 치열하게 공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의 주제인 ‘잡색(雜色)’에 관해서도, 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어휘를 고르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왕수는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와 전북대학교 한국음악과에서 판소리를 전공한 소리꾼이었다. 초등 3학년 시절 텔레비전 방송의 판소리를 따라 부르던 것이 예고 입학으로 이어졌다. 그는 ‘일단 부딪혀보기’를 잘하는 사람이다. 드라마와 극이 좋아 비디오 가게에서 책장 위쪽부터 순서대로 전부 빌려, 말 그대로 ‘도장깨기’식 영화 감상을 했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연출이 배우고 싶어 새벽에 주호종 교수에게 ‘저 연출 좀 알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문자를 보냈던 대학 시절까지. 돈을 떠나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행복한, 그야말로 ‘참 예술인’이다. 두 연출에게 각 공연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자.
적극(1977~) 서울대 산업디자인, 한예종 연극원을 졸업했다. 2010년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를 창단했다. ‘다페르튜토’ 뒤의 공연 장소명을 붙이는 시리즈 ‘다페르튜토 서울’ ‘다페르튜토 쿼드’ 등을 이어오고 있으며, ‘장단의 민족’ ‘메타 퍼포먼스: 미래 극장’ 등을 연출했다.
개막공연
‘잡색X’ 연출가 적극
평소 연극과 국악 공연의 연출을 고르게 맡았다. 두 장르의 연출은 무엇이 다르고, 같은가?
연극은 ‘언어’가 전면에 있어, 관객의 의식은 멈춰서서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책상물림의 연출가 연극’을 거부했던 데라야마 슈지(1935~1983)에 동의하여, 음악을 닮은 연극을 하고 싶고, 관객의 의식이 자유롭게 흐르는 연극을 지향한다. 그래서 무의식·유머·서정성이 논리와 이성보다 중시되도록 노력한다. 음악 공연은 반대로 추상적인 연주를 관객이 이야기로 수용하도록 음악의 언어로 나침반을 제공하려고 한다. 그래서 주제나 콘셉트로 그 범위를 한정하여, 몰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 둘은 어찌 보면 정반대겠지만, 모순되는 요소가 공존하는 결과물을 만든다는 유사성이 있다.
개막작 ‘잡색X’(8.14·15)는 임실필봉농악 공연에 사전 모집한 일반인이 함께 한다. 관객참여 연출을 시도한 이유가 무엇인가?
농악의 가장 큰 특징은 ‘청중·관중의 전복’이다. 농악의 앞치배(악기 연주자)들이 관객을 압도하는 연주로 시작했다가, 말미에는 무대에 난입한 관객이 반주자를 자처하는 상황은 다른 연희에는 없는 유일무이한 속성이다. 그러나 현대의 프로시니엄 극장에서 이를 자연스럽게 구현하기 어려워 무대 위에 ‘유사관객’을 만드는 것으로 대처했다. 현대 극장의 미덕은 거리를 두고 전체를 볼 수 있는 점이므로, ‘유사관객’이 만드는 전복까지 관객이 고요하게 바라보면, 과거와 현대의 대척하는 장점이 모두 드러날 것이라 기대했다.
앞으로 다루고 싶은 주제나 극은 무엇인가?
평생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만을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을 기다려왔다. 그렇지만 ‘잡색X’가 그 과정에 있다는 생각도 하며, 그렇게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를 서서히 완성해 가고 싶다. ‘다페르튜토 스튜디오’는 ‘대립의 일치’ 즉, 모순된 것을 한 번에 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연속선상으로 민중음악과 궁중음악, 두 대립의 일치를 다루어 보고 싶다. 다른 작업으론, 일본의 전통공연예술인 가부키를 의식하여 다소 성급하게 판소리를 창극화했던 시기에도 관심이 있다. 향후 판소리의 구조를 더욱 살리는 또 다른 창극을 발견하고 싶다.
이왕수(1985~)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전북대학교에서 판소리를 전공했다. 국립무형유산원의ㅁ 연출가 발굴 사업인 ‘출사표’에서 ‘화용도’(2016)로 1등을 거머쥐며 연출가 데뷔했다. ‘만세배더늠전ㅁ’ ‘왕과의 산책’ 등을 연출했으며, 현재 문화예술공작소를 이끌고 있다.
폐막공연
‘조상현·신영희의 빅쇼’ 연출가 이왕수
창극을 비롯한 여러 전통음악 공연에는 연극·뮤지컬 분야 연출가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소리를 전공한 연출가로서 본인이 가지는 장점은 무엇인가?
전통음악을 안다는 점 자체가 장점이 된다. 판소리 한바탕의 사설이 가진 의미, 장단의 붙임새, 음악이 이어지는 흐름을 말이나 언어로 바꾸지 않아도 몸에 체화되어 있다. 언제든 주머니에서 꺼낼 수 있는 카드를 여러 장 들고 있는 기분이라고 할까? 또한 전통예술인들의 문화와 그들의 생활·삶 등을 깊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제작 과정에 많은 도움이 된다. 윗세대 예술인을 진정 마음으로 섬기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은 공연을 만드는 하나의 방법론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구상 중인 창극이 있는가?
극작을 직접 쓸 때가 많아서, 지금도 생각해 둔 것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일제가 조선 경제의 독점과 자원 수탈을 위해 세운 회사)를 중심으로 하는 내용이다. 독립을 이루고자 하지만 서로 다른 방식을 추구하는 두 인물과, 그들의 정신이 조선인·대한민국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는 내용이다.
폐막공연 ‘조상현·신영희의 빅쇼’(8.18)는 소리꾼 중에서도 명창으로 꼽히는 인물의 조합이다. 두 소리꾼과 국악관현악단, 다른 소리꾼이 모두 등장하는데, 어떻게 진행되나?
핵심어는 ‘자연’과 ‘흐름’이다. 두 명인 선생님이 이 소리에 도달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고,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를 넣어 담아내려고 했다. 그 둘은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자연적인 소리를 품으려고 한평생을 지내면서 국악의 대중화에 가장 앞서온 인물들이다. 공연은 여러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소리꾼 조상현이 앞선 스승과 선배들을 소개하면서 “넘어가자, 넘어가자”라는 말을 한다. 이것이 그저 장면을 넘어가는 것이 아닌, 소리가 스승에게서 본인에게로, 본인에게서 제자에게로 흘러가는, 세대를 넘어가는 이어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전주세계소리축제 일정표는 다음 장으로)
글 이의정 기자 사진 전주세계소리축제
2024 전주세계소리축제
“올해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주제어는 ‘로컬 프리즘: 시선의 확장’이다. ‘로컬’은 좁게는 전라북도, 넓게는 한국을 뜻하며, 세계화된 공간에서 축제의 ‘로컬’은 다른 세계의 ‘로컬’(월드뮤직)과 만나 문화적 다양성을 전한다” (김희선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총천연색 무지개를 보여주듯, 축제가 이어줄 알록달록한 문화의 빛깔을 만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