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스칼라 극장 대표 도미니크 마이어, 이탈리아 오페라의 역사와 긍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9월 9일 9:00 오전

BEHIND THE MUSIC SCENE 23

세계의 공연기획자를 만나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역사와 긍지

예술과 경제의 균형 잡힌 시야로 전통의 역사를 이어간다

 

라 스칼라 극장 대표  도미니크 마이어

 

 

도미니크 마이어(1955~) 프랑스 출생의 경제학자이자 예술 경영인. 파리 오페라·로잔 오페라·프렐조카주 발레·샹젤리제 극장의 대표직을 맡았다. 2010년부터 빈 슈타츠오퍼 대표직을 역임했으며, 2020년부터 라 스칼라 극장의 대표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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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 20 베르비에 페스티벌 설립자 마틴 엥스트롬 21 피핑 톰 무용단 매니저 베를 맨스 22 예테보리 심포니 오케스트라 제너럴 매니저 안나 카린 라르손 23 라 스칼라 극장 대표 도미니크 마이어

 

 

 

중세의 시인 단테나 르네상스의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파가니니나 베르디부터 구찌·베르사체·페라리까지. 이탈리아는 서양 예술과 문화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특히, ‘오페라’에 관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오페라의 시작은 16세기의 이탈리아. 그 중심에는 라 스칼라 극장(이하 라 스칼라)이 있다.

극장의 역사는 1717년, ‘테아트르 레지오 두칼레’에서 시작한다. 1776년 이 곳이 화재로 소실된 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군주인 마리아 테레지아에 의해 이탈리아 최대 규모로 다시 건축됐다. 지금의 라 스칼라는 1778년,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오페라 ‘유럽의 발견’을 초연하며 화려하게 개관했다. 이후 ‘노르마’ ‘나부코’ ‘오텔로’ ‘팔스타프’ 등 수많은 오페라 명작이 이곳에서 초연됐다. 건축 과정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라 스칼라는 건립 당시 귀족들에게 박스석을 분양하고 건축비를 지원받아 자금을 충당했다. 귀족들은 취향에 따라 자신의 박스석에 가문 모양을 새기기도 했다. 박스석 위 갤러리석(Loggione)은 서민들이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오페라의 역사와 이탈리아인들의 문화 정체성을 만드는 곳, 라 스칼라. 이곳의 수장 도미니크 마이어를 화상으로 만났다. 그의 뒤에 걸린 붉은 박스석 사진과 바로크 시대 가구를 보니 오페라 속 인물과 인터뷰하는 것 같았다. 파리 오페라·빈 슈타츠오퍼·로잔 오페라, 그리고 라 스칼라까지. 세계적 오페라 하우스의 수장을 거쳐 온 그와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프랑스 억양이 섞인 영어로, 그는 연륜과 진심을 담아 인터뷰 질문에 답해주었다.

 

경제학자에서 오페라의 수장으로

라 스칼라 ‘투란도트’ ©Brescia e Amisano

경제학자 및 정부 관료, 무용단과 오페라 극장의 대표까지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해왔다. 경제와 오페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분야로 느껴지는데, 어떻게 오페라 극장에서 일하게 됐나?

어릴 적 꿈은 경제학과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친께서 돌아가시고 세 명의 동생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벌이가 시급해서 공부에만 몰두할 수는 없었다. 정부 관료가 되어 일을 시작했다. 1980년부터 경제재무부 의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프랑스 CD 산업 공장 개발을 감독했다. CD 산업 공장 개발은 고용을 창출하고 문화산업의 활성화 등 산업적 안정을 가지고 왔다. 이를 눈여겨보던 자크 랑(Jack Lang) 산하의 문화부에서 일을 하게 됐다. 당시 문화부는 경제적인 행정 경험을 필요로 했다. 1986년, 프랑스는 영화가 주요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수익이 감소하고 있었다. 이에 나는 영화계의 재정 시스템을 정비하는 일을 했고, 이때 만들어진 여러 시스템이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또한, 루브르 박물관과 같은 세계적인 명소에서 명작들이 지나치게 높은 보험료 때문에 대중에게 선보이지 못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곤 했는데, 이를 타개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었다. 문제는 언제나 생긴다. 나는 해결책을 찾아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내 일에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문화부에서 자연스럽게 오페라, 발레 등을 많이 접하며 예술적 안목을 키움과 동시에 예술이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예술 분야 일에 전망과 확신을 가지고 뛰어들기로 마음먹고, 1989년부터 파리 오페라 총감독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경제 분야의 업무가 예술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하다.

경제학은 예술 분야의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오페라 극장 같이 합창단·오케스트라·발레·무대 및 의상 제작·행정 등을 포함한 900여 명의 대규모의 직원이 상주하는 경우는 많은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에 안정적인 재정 관리가 필수다. 예술과 재정의 균형이 잘 맞아야 한다. 대중적인 작품과 새로운 작품, 그리고 제작비 소요 정도에 따라 다양한 규모의 작품을 만들어 관객의 요구에 부응하고, 예술가들의 활동에 활력을 주어야 한다. 만일 프로그램이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한다면, 수익이 감소할 것이고 이는 공연 예술의 위축을 가져오고 결국 시장의 축소까지 이어질 것이다.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드는 데 있어, 예술적 관점만큼 경제적 관점이 필요하다.

경제와 오페라, 양쪽 모두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왔다. 각 분야를 이끈 공통적인 태도와 신념은 무엇인가?

다양한 경력 때문에 그런 질문을 가끔 받는다. 어떤 일을 하든지, 나의 태도는 늘 같다. 가까운 이들은 ‘어쩜 이렇게 한결 같냐’고 묻기도 한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는 새로운 신념을 가지는 것도 힘들다.(웃음) 일을 해나가는 데 있어 나의 신념은… ‘하기로 한 일은 반드시 한다’ ‘시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항상 중요한 일을 먼저 처리한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긴장하지 않으려고 한다’이다. 내가 긴장하면 조직 전체가 긴장한다. 긴장하는 조직은 창의적으로 일하기 어렵다.

파리 오페라·빈 슈타츠오퍼 그리고 라 스칼라까지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에서 근무했다. 각 도시의 차이와 함께 오페라단의 특성도 다를 것 같다.

파리 오페라 극장(오페라 가르니에)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극장이다. 극장 내외부의 화려한 장식들, 특히 마르크 샤갈이 그린 천장의 프레스코화 ‘꿈의 꽃다발’은 스트라빈스키·차이코프스키·드뷔시·모차르트·바그너 등의 발레와 오페라 장면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파리는 음악보다 영화, 박물관, 발레가 더 중요한 도시라고 생각한다.

빈은 이백만 명의 시민들이 거주하는 작은 도시이지만, 그들에게 음악은 종교와도 같다. 시내에만 3개의 오페라 하우스와 2개의 공연장이 있고 매일 만 장의 클래식 공연 표가 팔린다. 일 년으로 치자면, 60만 장의 표가 팔리는 셈인데 이 중 40만 장은 빈의 시민들이 구매한다. 음악은 그들의 중요한 일상이다.

라 스칼라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로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전쟁, 코로나와 같이 국가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음악을 통해 가장 먼저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곤 했으니까. 이탈리아의 문화와 자긍심을 구성하는 영혼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라 스칼라’라는 브랜드

2020년부터 라 스칼라에서 근무했다.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

코로나로 인해 근무를 시작한 지 18일 만에 극장 문을 닫아야 했다. 이 당시 빈 슈타츠오퍼도 함께 경영하고 있었는데, 빈 역시 문을 닫았다. 코로나 사태는 오페라 업계의 생존 자체를 위협했다. 하지만 라 스칼라는 감사하게도 많은 후원사 덕분에 재정적 손실을 입지 않았다. 이 극장이 이탈리아 사회에서 얼마나 사랑받는 중요한 존재인지 느낄 수 있었다.

350년간,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1778년 살리에리의 오페라를 시작으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2편이 초연되었고, 그 후로 로시니·벨리니·도니체티·푸치니 등의 곡을 초연했다. 이 극장이 곧 이탈리아 오페라의 역사이다. 물론, 새 작품도 제작한다. 이번 시즌에는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하고, 안나 네트렙코와 요나스 카우프만이 출연하는 ‘운명의 힘’이 제작된다. 우리는 이탈리아의 정체성과 자존감이다. 유수의 극장들이 유명 작품들을 공연하지만, 그러다보면 자칫 극장의 개성이 약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극장은 이탈리아 오페라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이탈리아 오페라의 진수가 라 스칼라에 있다고 자부한다.

라 스칼라 건물은 네오 클래식 스타일이다. 천장의 샹들리에와 레드 벨벳, 금박 장식이 무척 화려한데, 좋아하는 공간이 있나?

단연코 메인홀이다! 라 스칼라의 콘서트홀은 오페라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공연장으로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300년이나 된 공연장임에도 훌륭한 음향을 가지고 있다. 지난 4년간 하루에도 몇 번씩 홀에 갔다. 홀에 들어가면 내가 오페라의 역사 속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자부심이 솟는다.

오페라 제작에서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이며, 그에 따라 어떤 노력을 기울이나?

오페라 제작에 성공하는 것보다는 실패하는 것이 훨씬 쉽다. 그만큼 오페라 제작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오페라가 더 많은 대중을 만나기 위해서 처음 보는 관객도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청난 섬세함이 요구된다.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이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오페라의 개성은 연출가에게 달려 있다. 라 스칼라는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현대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시대성과 당대적 감각을 갖추기 위해 연출가 선정에 공을 들이고 있다. 또한 이것을 표현할 성악가가 중요한데 특히 원곡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성악가를 선호한다. 이 모든 것이 라 스칼라의 정체성을 이룬다.

한 시즌에 12~15개의 오페라가 오른다. 작품 선정 기준은 무엇이며, 보통 몇 년에 걸쳐 준비되는지 궁금하다.

4년 전부터 오페라를 제작하는 것이 안전하다. 원하는 성악가와 지휘자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 감독인 리카르도 샤이가 작품을 정하고, 적합한 지휘자와 성악가를 정한다. 작품에 적합한 연주자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부득이하게 작품을 바꾸기도 한다. 최고 수준의 오페라를 만들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그 오페라를 하지 않는다. 라 스칼라는 이탈리아 오페라 작품을 많이 공연하며 고유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시즌의 70~80%는 이탈리아 오페라를, 20~30%는 독일·프랑스·영국의 오페라들을 공연한다.

현대 오페라를 창작하는 것도 중요하다. 라 스칼라는 어린이를 위한 오페라도 선보이기도 했는데, 2022년 10월 ‘어린 왕자’를 세계 초연했고, 2023년에는 ‘어린이를 위한 작은 청소부’를 라 스칼라 프로덕션으로 공연했다. 내년에는 움베르토 에코(1932~2016)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창작 오페라를 선보일 예정이다.

한 해 예산은 어느 정도인가. 정부 및 기업 후원, 표 판매 수입의 구성 비율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한 해 예산은 약 1,750억 원(한화 기준)이다. 그중 공적 자원, 기업후원, 티켓 판매 수익이 각각 3분의 1씩을 차지한다. 주로 공연 제작비·인건비·운영비·유지보수비용 등에 사용한다.

극장엔 연주자들부터 스태프까지 많은 인원들이 함께한다. 이들을 관리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예술가와 스태프들로 이루어진 노조를 존중하며 일을 해야 한다. 동료 스태프들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하루에도 서너 번 무대로 찾아가 이야기한다. 솔직하고 차분하게 대화하며 미리 문제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대표로서 기억해야 할 점은 저마다 맡은 일에 따라 입장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세한 업무 파악은 물론 상황에 따른 적절한 용어 사용에 이르기까지 아주 세심하게 이루어지는 일이다.

 

엘리트주의를 벗어난, 모두의 오페라

신인 성악가들을 위한 시스템은 어떻게 갖추어져 있나?

가장 열정을 쏟는 부분이다. 대중은 현재의 성악가들이 예전만큼 못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생각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이 분야에서 약 30년 간 일하며 새로운 스타 성악가들이 탄생하는 것을 무수히 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콩쿠르를 통해 신인 성악가들을 발굴하기도 하고, 합창 단원들이 작은 역할부터 점점 더 큰 역할을 맡으며 성장해 나가기도 한다.

나는 새로운 스타들을 늘 지켜보고 있다. 한국의 성악가 박정민(바리톤)을 눈여겨보고 있으며 그의 눈부신 성장을 기쁘게 생각한다. 애착을 가지고 지켜보는 성악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대중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다가가고 있는가?

라 스칼라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늘 변화하고 있다. 예전의 관객은 사교 클럽과 같은 형태로 존재했지만, 이제는 더 많은 관객에게 다가가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전체 관객의 3분의 1이 35세 미만의 관객들로 채워지는 점이 예전과 다르다. 관객 확대를 위해 어린이를 위한 오페라, 10대를 위한 오페라 등을 제작하고 있다.

코로나가 끝난 기념으로 페스티벌을 진행하며 2만 5천 장의 무료 티켓을 나눠준 적이 있는데, 20분 만에 매진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페스티벌로 라 스칼라는 모든 사람들에 열려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려주고 싶었다.

한국은 오페라 관객을 넓히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관객층을 넓히기 위한 라 스칼라만의 방법이 있다면?

오페라 극장은 ‘문턱이 높은 곳’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 주려 한다. 첫 번째로 관람비 지원이다. 원래 30세 미만에게만 할인 표를 제공했었는데, 35세로 상한선을 높였다. 35세가 되면 가족들이 생겨 오히려 재정적으로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닐 거라고 판단하고 지원의 폭을 넓혔다.

프로그램 측면에서는 테크 리허설, 드라이 리허설 등 다양한 리허설을 관객에게 개방하고 있다. 또한 밀라노 시내 곳곳에서 오페라 공연을 해 사람들이 좀 더 친숙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오페라 극장에 오는 관객 중 3분의 1은 외국 관광객이라 이들에게 좀 더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

 

오페라의 미래를 내다보며

미래의 예술경영인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무엇보다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 쉬운 삶, 부자가 되는 삶, 유명해지는 삶을 원한다면 오페라 분야에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리고 주말에도 일을 한다. 섬세하면서도 겸손해야 한다. 섬세한 접근은 질 높은 오페라를 만들 수 있도록 해 주며, 겸손함은 팀의 사기를 높이고 더 나은 협력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적, 산업적인 시각과 더불어 예술적 안목도 있어야 한다. 이 두 분야가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면서 예술적 비전을 잃지 않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라 스칼라에서 오페라를 꼭 봐야 하는 이유를 든다면?

이곳에서의 오페라 관람은 단순한 공연 관람이 아닌 이탈리아 오페라의 정수를 맛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오페라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이 공연장에서 예술이 주는 진정한 감동을 느끼기 바란다.

라 스칼라가 18세기부터 21세기까지 300년 이상 오페라계의 정상에 있을 수 있는 있었던 이유는 아마 이탈리아 오페라의 정통성을 지키며 최상의 오페라 공연만을 만들어 내는 장인정신과 함께 관객의 오페라 대한 애정, 안정적인 재정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뛰어난 기량을 가진 한국 성악가들이 전 세계 곳곳의 오페라 극장을 누비며 활동하고 있지만 국내 무대는 꾸준히 활동하기엔 공연 횟수가 적다. 한국에도 라 스칼라처럼 장기적인 계획으로 제작을 할 수 있는 오페라 극장이 있어야 한다. 유능한 수장과 함께 예술가와 스태프들이 직원으로 상주하며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제작 극장을 통해 꾸준히 수준 높은 공연을 만들어 더 많은 관객을 음악의 세계에 초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극장에서 한국의 색채가 담뿍 담긴 오페라가 만들어지고, 전 세계 관객이 이를 관람하는 날을 상상해 보게 하는 인터뷰였다.

박선민(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라 스칼라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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