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지휘자 르노 카퓌송, 인생의 새로운 장을 펼치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9월 1일 9:00 오전

COVER STORY

 

바이올리니스트·지휘자 르노 카퓌송

인생의 새로운 장을 펼치며

 

 

어릴 적에 5살 연상의 누나는 피아노를, 5살 연하의 남동생은 첼로를 연주했다. ‘가장 예민하다’는 바이올리니스트가, ‘가장 무던히 자란다’는 세 남매의 끼인 둘째로 태어나니, 유쾌하고 긍정적인 르노 카퓌송이 되었다. 연주, 지휘, 심지어 인터뷰까지 모두 성실한 그의 이야기에는 ‘예민’한 성찰과 ‘무던’한 웃음이 담겼다. 8~9월 5개 도시 순회 공연을 앞둔 그의 여정을 미리 만나보았다

이의정 기자 사진 라보라 예술기획·워너 클래식스·로잔 체임버 오케스트라

 


 

Renaud Capuçon

르노 카퓌송(1976~) 14세에 파리음악원에 입학, 1997년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이끄는 구스타프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베를린필, 보스턴 심포니, 런던 심포니, 뉴욕필, 빈필, 파리 오케스트라,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하며 솔리스트로 성장했다. 실내악 리사이틀을 자주 열며 아르헤리치, 바렌보임, 브롬프만, 이고르 레비트, 트리포노프, 유자 왕, 요요 마 등과 연주했다. 2013년부터 엑상프로방스 부활절 페스티벌을 이끌고 있으며, 2021/22 시즌부터 스위스 로잔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로 활약 중이다.

 

원로 음악가들은 종종 ‘독주는 잘해도, 실내악은 못하는 연주자가 많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실로 연주회를 가보면 독주에서 빛을 발하는 음악가가 실내악에선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적잖게 보인다. 이에 대한 해답 역시 원로에게서 나오는데, 남들과 많이 해보고, 익숙해지는 것이 최선으로 보인다.

이렇다 보니 어릴 때부터 소위 ‘음악적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실내악에 강점을 보인다. 여러 아티스트의 인터뷰 시작에 등장하는 ‘저희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클래식 음악을 집안에 틀어놓고…’라거나, ‘양부모님 모두 아마추어 음악가여서 음악에 관심이 많아…’ 같은 집안 말이다. 훌륭한 연주자인 부모 밑에서 마찬가지로 훌륭한 연주자 자식이 나는 경우는 음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서론을 늘어놓는가 하면, 이제부터 시작할 르노 카퓌송(1976~)의 남다른 이야기 때문이다.

 

시작

평범했지만 진실되게

©Simon Flowler

4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잡은 그는 14살의 나이로 파리 음악원에 입학했다. 수상 이력은 1992년 파리 음악원의 실내악 부문에서 1위를 달성하며 시작됐고, 이듬해 바이올린에서 1위, 1995년에는 베를린 예술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는 등 음악원과 학술원의 지지를 받았다. 그의 동생인 고티에 카퓌송(1981~) 역시 첼로 분야에서 10대 시절부터 주목받았으니, 남다른 가정 분위기가 있을 터. 그러나 그의 부모는 음악과 무관했다. 르노 카퓌송은 “부모님이 압력을 주는 일은 결코 없었다”라고 회상하며, 본인의 가정이 평범했음을 강조했다.

“부모님은 음악을 하지 않았습니다. 바이올린을 시작한 계기도 정말 평범해요. 3살 쯤에 성가대 같은 곳에서 노래를 부르며 지냈는데, 그때 어머니가 반주자에게 가서 ‘아이한테 악기를 쥐여주려고 하는데, 무엇이 좋을까요?’하고 물으셨죠. 그분은 아이가 귀가 좋은 것 같은데, 바이올린은 어떠냐 답했고, 짠.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네요.(웃음)”

프랑스의 리옹과 스위스의 제네바 사이의 알프스산맥 지역, 오베르뉴론알프의 우측에 자리한 샹베리 산마을 출신. 그는 어린 시절 여름에는 바이올리니스트, 겨울에는 스키 챔피언이 되고 싶었다. “실패했죠!”라고 방긋 웃으며 말하는 그는 여전히 스키를 좋아한다. 그런 그가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것은 필시 바이올린을 더 좋아했기 때문. 자신의 강점 또는 신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언제나 계속하는 것” “멈추지 않는 것” “버티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는 12살부터 25살까지는 하루에 7~8시간을 꼬박 연습하는 연습벌레였다. 강요가 없는 곳에서 버틴다는 것은, 그 일을 좋아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기자들이 정말 많이 질문해요. 어릴 적부터 천재적인, 영재적인 면모가 있었냐고 말입니다. 저는 언제나 ‘아니오’라고 대답합니다. 천재는 아인슈타인이나 예후디 메뉴인(1916~1999) 같은 사람들이죠. 물론 저도 재능은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 재능은 모두가 어느 정도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는 운에 달린 일이에요. 그리고 당신이 어떻게 그 일을 사랑할 것인가에 달린 일이고요. 저희 부모님이 현명하셨던 점은 저에게 어떤 부담도 방향도 싣지 않고, 그저 제가 원하는 대로 두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었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 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는 강요하지 않는다. 음악을 이어가며 진심으로 중요한 것은 이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연속된 공연과 연주로 피로하여 멈추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면, 그는 바이올린을 내려놓는다. 이틀, 사흘… 나아지는 감정이 들면 다시 악기를 집어 든다. 휴식이 필요하면 응당 쉬어야 한다고 믿으며, 자신의 학생에게도 지칠 때는 5주간 여름휴가라도 떠나라 말한다. “오랜만에 악기로 돌아왔을 때 행복한 마음이 들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이 방법이 모두에게 통하는 것은 아니죠. 제 아들도 아내가 쥐여주면서 바이올린을 시작했었는데, 1년 반이 지나고 제게 와서 3가지 이유로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어요. 첫째는 ‘너무 어렵다’, 둘째는 ‘선생님이 맘에 들지 않는다’, 마지막은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저는 바이올린을 좋아하지 않아요’라고 하지 뭐예요. 방법이 있나요?(웃음)”

 

존경

배움의 시간 속에서

어린 나이에 시작하여 주목을 받은 만큼, 그는 스승이 많았다. 8살부터 20살까지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던 베다 레이놀즈(1922~2000)에게 배웠는데, 커티스 음악원에서 제자를 가르치다가 생의 후반기에 유럽으로 이주했던 연주자이다. 그는 인터뷰나 소셜 미디어에서 스승을 언급하며, 그에 대한 존경을 표해왔다.

청소년기에 입학한 파리 음악원에서는 제라르 풀레(1938~)를 만났다. 르노 카퓌송은 그에게 왼손을 사용하는 기술, 올바른 자세, 긴장 풀기와 같은 기초적인 가르침을 많이 받았다. 파리 음악원 이후 에는 베를린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그곳에서 토마스 브랜디스(1935~1917)와 아이작 스턴(1920~2001)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중 아이작 스턴과의 인연이 특별한데, 현재 그가 사용하고 있는 1737년 과르네리 바이올린 ‘파네트(Panette)’는 아이작 스턴이 50년간 사용했던 바이올린이다.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함께

“1995년에 처음 아이작 스턴을 만났을 때는 겁을 먹었습니다. 그분이 친절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의 아우라가, 그가 존재하는 힘이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땀을 비 오듯 흘리던 게 기억나네요.(웃음) 그와 배웠던 기억이 인상 깊게 남은 이유는 그가 저의 연주에서 짚어내는 여러 미세한 지점이 너무나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에요. 그에게 배울 당시에 저는 현대 바이올린을 사용하고 있었고, 새로운 악기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아이작 스턴에게 제가 후원 받을 수 있게 추천서를 써달라고 했죠. 그는 정말로 ‘그가 바이올린을 구할 수 있게 후원해 주십시오’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주었어요. 그렇지만 제가 그 편지를 사용할 일은 없었습니다. 인생이 바쁘게 흘러가고, 이런저런 일이 생기다 보니 그랬어요. 그런데 편지를 받고 정확히 10년 뒤에, 스위스 은행이 저를 위해 그가 남긴 바이올린을 구매했고, 저는 2005년부터 그 악기를 사용하게 됐어요. 그가 써준 편지는 아직도 제가 가지고 있고요. 삶은 이따금 정말 이상하죠? 그는 저에게 편지를 써줬고, 저는 그 편지를 쓰지 않았는데, 그의 바이올린을 제가 쓰게 됐으니 말입니다.”

그가 인생에서 꼽는 존경하는 음악가는 또 있다. 청소년기에 유러피안 유니언 유스 오케스트라와 구스타프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였는데, 그 시절 만난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1914~ 2005)와 수석지휘자였던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이다. 그가 언제나 존경하는 음악가 1순위로 꼽는 이들이다. 16살 때 제2바이올린의 끝자리에 앉아 줄리니가 지휘하는 베토벤 교향곡을 연주하던 때를 “앞으로의 음악 인생에서 자신이 무엇이 될지 깨달은 날”이었다고 말한다.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를 향한 존경의 마음은 언제나 가득합니다. 이 감정은 변한 적이 없고, 제가 살아있는 날까지 변하지 않을 거예요. 그는 저에게 깊은 영감과 인상을 남긴 첫 번째 지휘자였습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도 빼놓을 수 없죠. 저는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으로 활동하며 50회 정도의 연주를 그와 함께했는데, 역시 제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영감

동료와 함께 나누며

지난 7월, 동생 고티에 카퓌송과 함께

유스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으로 지낸 3년 동안 르노 카퓌송이 경험한 지휘자는 수도 없이 많다. 거기에는 피에르 불레즈(1925~ 2016), 오자와 세이지(1935~2024), 프란츠 벨저 뫼스트(1960~) 등도 포함되어 있다.

이 기간 다져놓은 내실 덕에 특별한 국제 콩쿠르 입상 경력 없이도 솔리스트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2000년에 프랑스의 음악 시상식인 ‘클래식 음악의 승리’에서 주목을 받는 신인으로 불렸으며, 2005년에는 ‘올해의 기악 솔리스트’상을 받았다.

당시 르노 카퓌송은 동생 고티에 카퓌송과 함께 활동하곤 했다. 2003년 형제의 첫 공동 음반인 ‘대면’(2003, Erato)에 19~20세기의 여러 무반주 소나타를 담는 것을 시작으로, ‘인벤션’(2006, Erato), 브람스 2중 협주곡과 클라리넷 5중주 음반(2007, Erato)을 연이어 발매했다. 이중 ‘인벤션’은 큰 누나 오드 카퓌송(1971~)이 피아노로 함께 했으며, 브람스 협주곡 음반에는 구스타프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정명훈 지휘)가 함께 했다. 형제가 처음 내한했던 것도 2008년이다.

이후로 국내에서는 그들의 듀오 무대를 다시 보지 못했으며, 2000년대에 활발하게 발매했던 듀오 음반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오해 말자. 둘 사이엔 아무 문제도 없다. 둘은 여전히 서로에게 좋은 형과 동생이며, 바로 직전인 올해 7월 14일, 파리에서 함께 공연하기도 했다.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파리 올림픽의 성화 봉송을 위해, 6월에 두 형제가 나란히 성화를 옮기는 사진도 언론에 공개됐다. 또한 2026 시즌부터는 형제가 이전보다 더 자주 연주할 계획이라고 한다.

형제의 듀오가 줄어든 이유는 각자가 함께 연주할 좋은 피아니스트를 여럿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레퍼토리만 봐도 바이올린이 듀오 음반을 낸다면 첼로보다는 피아노가 먼저 떠오르니 말이다. 그의 음반에서 접할 수 있는 피아니스트로는 라벨 피아노 3중주 소나타, 슈베르트 피아노 3중주,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베토벤 피아노 3중주 등을 함께 녹음한 프랑크 브레일리(1968~), 생상스 작품을 함께 녹음했던 베르트랑 샤마유(1981~), 바흐 작품을 함께 녹음했던 다비드 프레(1981~) 등의 프랑스 연주자들이 있다. 한편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파트너이자 여러 음반 표지에 지분을 나누고 있는 피아니스트는 마르타 아르헤리치(1941~)이다.

“앞으로도 수년간 연주하고 싶은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마르타 아르헤리치입니다. 저와 25년간 함께 해왔는데, 정말로,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의 영감을 얻어왔지요. 가능하다면 그와 더욱 자주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정기적으로 함께하고 싶은 연주자들은 많지요. 그래도 역시 한 명을 꼽으라면 아르헤리치입니다.”

언뜻 진지하고 깔끔한 음색을 가진 르노 카퓌송의 연주가 열정적이고 자유로운 아르헤리치의 음색과 어울릴지 의문이 든다면 엑상프로방스 부활절 축제에서 함께 한 베토벤·슈만·프랑크 소나타 실황 음반(2022, DG)을 추천한다. ‘그라모폰’지는 “카리스마”라는 단어로 두 음악가를 단번에 묘사했는데, 감상하며 생겨나는 두근거리는 에너지를 담아내기 좋은 표현이다.

앞선 여러 듀오·트리오 음반을 비롯하여 르노 카퓌송은 다양한 편성의 실내악은 물론 협주곡의 독주자로도 수없이 많은 연주와 음반을 선보였다. 래틀/런던 심포니와 함께한 엘가 협주곡(2021, Erato), 예르비/파리 오케스트라와 녹음한 랄로·브루흐·사라사테 협주곡(2016, Erato)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또한 고향인 샹베리에서 직접 음악 축제(1996~2010)를 개최하여 운영한 이력이나, 2013년부터 지금까지 엑상프로방스 부활절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는 것은 그의 폭넓은 레퍼토리를 설명하는 거울이 된다.

“장르마다 다른 마음가짐으로 연주하기도 하지만, 저는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든지, 아니면 듀오·트리오든지 특별한 차이 없이 음악을 함께 공유하고 나눈다는 데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다양한 장르를 연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죠.”

 

생명력

새로운 자리를 빚어가며

로잔 체임버 오케스트라 ©Federal studio/OCL

이 경험 많은 바이올리니스트는 몇 해 전 활을 들었던 손으로 지휘봉을 잡기 시작했다. 2020년 스위스 로잔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처음 지휘한 것을 발단으로 2021/22 시즌부터 악단의 제7대 수석지휘자로 임명됐다. 그는 이 악단을 “각자의 소리가 적극적으로 음악에 참여하기 때문에 생명력이 가득하고, 그래서 저에게 큰 실내악 그룹처럼 다가옵니다”라고 표현했다. 실내악에 일가견이 있는 연주자가 말하니 더 재미있게 들리는 말이다.

음반 발매에도 성실한 음악가답게, 그는 로잔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맡자마자 새로운 녹음을 연속해서 공개했다. 첫 음반에는 아르보 패르트의 작품(2021, Erato)을 담았고, 이듬해 비발디의 ‘사계’와 조제프 불로뉴(1745~1799)의 바이올린 협주곡(Erato)을 담았다. 작년에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DG), 올해는 포레의 협주곡과 발라드·파반·엘레지 등(DG)을 연주했다.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하는 것은 몇 년간 거절해왔죠. 파리 지하철을 탈 때면 매번 들리고, 통화연결음으로도 듣고, 아시잖아요.(웃음) 저는 제가 이 작품을 영원히 안 하거나, 좀 더 나중에 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근데 기회가 와서 한 번 연주를 해봤더니, 우와. 유명한 데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기가 막히더라고요. 포레의 음악은 어린 시절 스키를 타러 갔던 높은 산에서 펼쳐지는 축제(페스티발 데 자르크/Festival des Arcs)에서 알게 됐어요. 그때 듣자마자 포레의 음악에 빠져서 어렸을 때 실내악 LP를 빌려서 테이프로 복제하기도 했죠. 지금도 그 테이프를 가지고 있고요.”

그는 로잔 체임버 공연의 레퍼토리를 협연자의 특성에 맞추어 선택하곤 한다. “그리고 서로의 선호에 의해서 선택되기도 합니다. 작품이 선택됐을 때는 뒤따르는 이유가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음반으로 발매한 작품들은 로잔 체임버의 연주로 이미 훌륭하게 소리 날 거라는 것을 예상한 것들이죠. 들어보세요! 작품과 정말 잘 어울릴 겁니다. 아직 공개하지 않은 프로젝트도 잔뜩 있고… 정말 기대되죠?”

로잔 체임버와 함께 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라벨(1875~1937)과의 친밀도도 오르고 있다. “앞으로의 녹음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로잔 체임버와 공연했던 라벨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가 라벨에게 가진 열정도 크고요. 얀 마레슈(1966~)가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한 라벨의 소나타는 우리 악단에 정말 잘 어울립니다. ‘쿠프랭의 무덤’이나 ‘어미 거위’ 모음곡도 연주했죠. 나아가 드뷔시, 에르네스트 쇼송의 작품도 연주했고, 샤를로트 소이(1887~1955), 마르그리트 카날(1890~1978)과 같이 더 알아봐야 하는 작곡가의 작품도 연주하고 싶습니다.”

악단의 우두머리에 앉게 되어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됐지만, 그의 솔리스트·실내악 활동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지휘에서 바이올린 연주에 대한 영감을 얻고, 바이올린 연주에서 지휘에 대한 영감을 얻는 사람이었다. 이 “선순환”으로 바빠진 것을 그는 오히려 무척이나 기꺼워했다.

 

선순환

다음 세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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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 카퓌송은 201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함께한 키트 암스트롱(1992~)과 16곡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를 녹음하여 2023년에 발표하였고, 올해 2월 예술의전당에서 국내 관객을 만나기도 했다. “젊은 음악가와 연주하는 것은 늘 큰 기쁨이다”라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대학에서 여러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경험이 많은 연주자와 함께 연주하는 기회를 얻었던 것처럼, 젊은 연주자와 함께 공연하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적인 일이죠. 오늘날 젊은 음악가들이 이루어내는 많은 일이 놀랍기도 하고요. 다만 젊은 음악가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말이 있다면, 성과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본인의 다양한 면모를 깎는 데에 시간을 더 들였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그들이 더 자주 음악 문화를 접하기를 바랍니다. 한국 관객은 정말 따뜻하고, 열정적이죠. 키트 암스트롱과 함께 공연했을 때도 즐거웠습니다. 제가 정말 사랑하는 관객들이에요! 그리고 올해 다시 5번의 공연으로 한국에 오게 됐네요”

밝힌 대로, 그는 로잔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지휘자로서는 처음으로 국내 무대에 선다. 동시에 직접 협연에 나서기도 한다. 그가 젊은 시절 동생과 함께 하며 추억과 실력을 쌓은 작품인 베토벤 3중 협주곡을 연주할 예정. 에네스쿠 콩쿠르, 제네바 콩쿠르,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 입상한 첼리스트 한재민, 현재 베토벤 트리오 본 멤버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피아니스트 이진상이 그와 함께한다. 그는 최근에 베르비에에서 함께 연주했던 한재민을 만나게 되는 것이 기쁘며, 만나게 될 이진상에 대한 기대도 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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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3중 협주곡은 정말 오랫동안 연주해 왔습니다. 작품 속에 관현악, 실내악, 독주가 모두 담긴 작품이죠. 이는 제 음악가의 삶이 모두 녹아들 수밖에 없다는 뜻이고요. 바이올린 연주와 동시에 지휘까지 맡을 예정이니 더욱 그러하죠. 다른 협연자와 완벽한 호흡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주자로서 빛나는 법도 알아야지 소화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이 종종 과소평가되는 것을 보았는데, 저는 이 작품이 정말 아름다운 곡이라고 생각해요. 청중이 즐기기에도 훌륭하고요.”

그는 이번 내한에서 대구, 천안, 통영, 고양, 서울까지 총 5개의 지역을 방문한다. 그가 언급한 로잔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라벨 ‘쿠프랭의 무덤’을 포함하여,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1번, 베토벤 ‘로망스’ 1번과 2번을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덧붙이자면, 우아하고 재치 있는 ‘로망스’를 연주하는 르노 카퓌송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인터뷰를 준비할 때부터 글을 완성하는 몇 주의 시간 동안 그의 수많은 음반을 돌아가며 감상했는데, 지루함과 식상함은 아직 단 한 스푼도 맛보지 못했다.

※ 본 기사는 ‘객석’과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미국 의회도서관·빈 콘체르트하우스·메디치TV·프랑스 상원·워너 클래식스 인터뷰를 참조하여 작성됐습니다.

 

 

Performance information

르노 카퓌송/로잔 체임버 오케스트라 (협연 르노 카퓌송·한재민·이진상)

8월 29일 대구콘서트하우스

8월 30일 천안예술의전당

8월 31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9월 1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9월 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토벤 ‘로망스’(1·2번), 3중 협주곡 Op.56, 라벨 ‘쿠프랭의 무덤’,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1번 O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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