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 오르는, 한국의 창작 뮤지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9월 16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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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 오르는, 한국의 창작 뮤지컬

 

 

 

작품의 기획과 제작 단계부터, 국내 공연을 통한 검증, 해외 진출을 위한 플랫폼 놓기 등의 촘촘한 계획과 작전은 뮤지컬의 해외 진출의 성공 여부를 좌우한다. 국내에서 탄생한 뮤지컬이 해외 극장으로 진출하기까지, 생산자와 연결자들이 놓은 징검다리를 만나 본다

기획 홍예원 기자

 

 

 

 

 

 


 

창작 과정 뮤지컬 콤비의 세계 무대 도전기

홍예원 기자 사진 우란문화재단·CJ ENM

 

극작가 박천휴·작곡가 윌 애런슨

관객이 공감할 작품, 시대를 담을 욕심

 

박천휴 ©서울사진관

‘네가 날 볼 때 너의 그 눈빛과, 네가 웃을 때 너의 그 미소와~’

가까운 미래, 서울의 한 아파트.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가장 인간적인 감정인 ‘사랑’을 노래한다. 두 로봇이 사랑을 깨닫는 장면에서 흐르는 넘버(‘사랑이란’)는 지금까지도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어쩌면 해피엔딩’(2016)을 대표하는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국내 뮤지컬계에서 ‘윌휴’ 콤비로 불리는 극작가 박천휴와 작곡가 윌 애런슨의 작품이다. 2008년 뉴욕대에서 만난 이들은 취미 삼아 곡을 쓰기 시작했고,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제작한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2012)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함께 작업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조선 최초의 테너 이야기를 담은 창작 뮤지컬 ‘일 테노레’(2023)를 선보였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하나의 곡으로부터 탄생했다. 취향과 정서가 비슷한 두 사람은 카페에서 우연히 들은 영국의 록 밴드 ‘블러’의 보컬 데이먼 알반의 솔로곡 ‘에브리데이 로봇(Everyday Robots)’에서 극의 모티브를 얻었다. 사람과 기계의 구분 자체가 모호해지는 세상을 상상하며 두 ‘사람’은 두 ‘로봇’의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했다.

올해로 국내에서 다섯 번째 시즌(6.18~9.8/예스24스테이지 1관)을 맞이한 ‘어쩌면 해피엔딩’에 대한 관심은 해외로도 뻗어나갔다. 2020년 미국 애틀랜타에서 트라이아웃 공연 이후 일본 도쿄와 중국 상해에서 라이선스 공연이 이뤄졌으며, 오는 10월에는 뉴욕 벨라스코 시어터에서 브로드웨이 정식 공연을 앞두고 있다.

관객 성향과 시대의 감각을 파악

윌 애런슨 ©서울사진관

‘마타하리’ ‘벤허’ 등 대규모 창작 뮤지컬이 성행하던 2016년, 윌휴 콤비는 로봇이 펼치는 로맨스라는 설정과 재즈, 클래식 음악을 녹여낸 넘버로 승부를 걸었다. “첫 작품인 ‘번지점프를 하다’를 선보인 이후 오리지널 뮤지컬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극의 주제를 고민하다가 모두가 공감할 만한 진솔한 러브스토리를 써보자는 결론에 이르렀죠. 원작이 없는 이야기였기에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와 주제를 보다 자유롭게 펼칠 수 있었어요.”(박천휴)

서정적인 가사와 재즈풍의 넘버는 작품의 매력을 더했다. “요즘 관객들은 스케일이 큰 작품을 연달아 세 편만 봐도 곧바로 ‘클리셰’를 알아챌 만큼 뮤지컬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기존과 다른, 신선하고 솔직한 내용의 작품을 원할 것 같다고 생각했죠. 창작자 입장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무한대라는 뜻이니까요.”(윌 애런슨)

물론, 장르적인 우려도 있었다. 당시 대학로에서 로맨스물은 인기 있는 장르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이 선택한 ‘사랑’이라는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은 작품을 더 넓은 무대로 이끌었다. 윌휴 콤비는 ‘어쩌면 해피엔딩’의 대본을 쓸 때부터 한국어와 영어 버전을 동시에 작업했다. 미국에서 공연을 선보이기까지 약 8년의 작업 기간을 거쳤다.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는 작품들의 제작 기간을 살펴보면 그리 오랜 기간은 아니다. 2016년, 우란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성사된 뉴욕 낭독 공연에서 영어 버전의 첫선을 보였다. “뉴욕 공연을 마친 다음 날, 브로드웨이 프로듀서인 제프리 리처드에게 연락이 왔어요. ‘어쩌면 해피엔딩’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리고 싶다고 했죠. 그리고 바로 다음 해 1월, 계약이 속전속결로 이뤄졌어요. 팬데믹으로 일정이 조금 연기되기도 했지만, 내부적으로 계속 워크숍을 진행하며 개막을 준비했어요.”(박천휴)

한국의 이야기 담아 브로드웨이로

‘뮤지컬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브로드웨이는 크게 브로드웨이(Broadway) 극장과 오프브로드웨이(Off-Broadway) 극장으로 나뉜다. 브로드웨이 극장은 500석 이상의 대극장에서 주로 상업성이 높은 작품들을 공연하지만, 오프브로드웨이 극장은 브로드웨이 외곽 지역에 있는 500석 미만의 소극장으로, 브로드웨이로 진출하기 전 단계의 작품을 선보이는 편이다. 통상적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는 공연들은 규모가 크고 화려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지만, 극의 규모와 배우의 숫자로 공연장을 구분 짓지는 않는다. 윌휴 콤비 역시 ‘어쩌면 해피엔딩’의 첫 무대로 오프브로드웨이에서의 공연을 예상했다.

“극의 규모가 크지 않고, 우리의 정서가 잘 표현된 작품이니 오프브로드웨이의 작은 극장에서 뉴욕 관객에게 첫선을 보이고 싶었어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저희 생각과 반대로 제프리 리차드는 바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기를 권했어요. 브로드웨이와 오프브로드웨이를 나눠서 생각하는 건 의미가 없다며, 최선의 버전으로 작품을 선보이는 게 훨씬 현명한 방법이라고 했죠.”(박천휴)

윌휴 콤비는 미국 무대에서 ‘어쩌면 해피엔딩’이 가진 본연의 의도와 정서를 살리는 데 집중했다. 10월에 선보이는 브로드웨이 공연은 한국 공연과 연출적 차이는 있지만, 등장인물과 서사 등의 설정은 동일하다. 서울을 배경으로 하며, 극 중 올리버의 옛 주인 제임스 역시 원작 그대로 한국인이라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오디션 단계에서도 제임스 역만큼은 동양인 캐스팅을 강조했다. 다만, 두 주인공이 해저 터널을 통해 제주도로 떠나는 장면은 터널이 생소한 미국 관객의 정서를 고려해 페리를 타는 설정으로 바뀌었다.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넘버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를 미국 관객에게 선보이는 것이 저의 가장 큰 꿈이었던 만큼, 작품이 지닌 고유의 이미지를 최대한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올리버가 좋아하는 재즈 음악과 레코드플레이어, 반딧불 같은 아날로그 정서도 그대로 유지했어요.”(박천휴)

10월 브로드웨이 공연 준비에 한창인 이들은 오는 12월, 신작 ‘고스트 베이커리’로 국내 무대에 다시 돌아온다. 전작인 ‘일 테노레’에 이어 한국의 근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번 작품에도 ‘어쩌면 해피엔딩’에서 느꼈던 이중문화적인 성격이 담겨있다.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는 한국 창작자와 미국 창작자의 문화적 감성은 이제 윌휴 콤비를 대표하는 하나의 유니크함으로 자리 잡았다. 브로드웨이 진출이라는 꿈의 무대를 앞둔 이들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공연을 보는 자체가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돌아보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공연장에 앉아 극 중 장면을 바라보며 ‘나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는 거죠. 그게 공연의 즐거움이기도 하고요. 어느 무대에서든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결국 내 이야기’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박천휴)

 


 

제작 현지 프로덕션을 이끄는 리드 프로듀서의 힘

홍예원 기자 사진 라이브(주)

 

뮤지컬 프로듀서 강병원

흥미로운 소재, 부지런한 현지화

 

대학로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오프대학로’. 골목골목 늘어선 소극장들 사이에 고즈넉한 한옥 한 채가 자리 잡고 있다. 대문 안쪽에는 ‘마리 퀴리’ ‘팬레터’ ‘야구왕 마린스’ 등 콘텐츠제작사 라이브(주)를 대표하는 작품들의 포스터가 걸려있다. 아담하게 꾸며진 중정을 둘러보는 사이, 라이브(주) 대표이자 뮤지컬 프로듀서 강병원이 인사를 건넸다.

지난 두 달간, 그는 창작 뮤지컬 ‘마리 퀴리’의 웨스트엔드 초연으로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한국 창작 뮤지컬로서는 2002년 ‘명성황후’ 이후 22년 만으로, 현지 창작진·배우와 웨스트엔드 무대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리 퀴리’와의 첫 만남

‘마리 퀴리’의 리드 프로듀서를 맡은 강병원은 서울예대 극작과 출신으로, 2011년 콘텐츠제작사 라이브(주)를 설립하고 창작 뮤지컬 ‘파라다이스 티켓’으로 뮤지컬계에 발을 들였다. “특별한 목표가 있었다기보단 좋은 작품을 찾고 기획, 개발해 왔을 뿐”이라는 그의 시선이 닿은 작품이 바로 ‘마리 퀴리’였다.

2016년부터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 공모전을 진행하고 있는 그는 2017년 2회 선정작인 천세은 작가의 ‘마리 퀴리’ 대본에 흥미를 느꼈다. 여기에 최종윤 작곡가의 음악을 더해 2018년 대학로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을 올렸다. 극작과 출신인 그의 눈은 틀리지 않았다. ‘마리 퀴리’는 2020년 초연(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이후, 2021년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5관왕을 거두고, 관객 반응에 힘입어 올해 5월까지 꾸준히 공연을 이어왔다.

‘마리 퀴리’는 기획 과정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개발이 이뤄졌다. 그는 “폴란드에서 프랑스로 온 이주민이자 여성 과학자인 마리 퀴리의 삶, 라듐시계 공장에서 일하는 안느 코발스키로 대표되는 여성 연대의 과정 등이 한국 관객을 포함해 전 세계 관객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예술경영지원센터의 ‘K-뮤지컬 로드쇼’를 통해 2019년 중국, 2022년 영국에서 쇼케이스를 선보였다. 지난해에는 일본 도쿄·오사카에서 라이선스 공연을 올렸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폴란드에서의 공연이었다. 2021년 바르샤바에서 열린 한국문화주간 행사에서 ‘마리 퀴리’ 공연 실황을 상영한 데 이어 2022년에는 바르샤바 뮤직가든스 페스티벌에 초청받았다. “공연 전에 걱정이 많았어요. 이를테면 중동에서 세종대왕 뮤지컬을 제작해 한국 무대에 올리는 격이었으니까요.(웃음) 다행히 현장 반응은 무척 좋았어요. ‘마리 퀴리의 삶을 뮤지컬로 만들어줘서 정말 고맙다’며 실황 영상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기립박수가 끊이질 않았어요. 감사했죠.”

가능성을 엿본 웨스트엔드 무대

여러 차례 해외 경험을 쌓았지만, 현지 창작진·배우와 함께 웨스트엔드 무대에 오르는 것은 처음이었던 만큼 철저한 준비를 거쳤다. 현지화 과정에서 천세은 작가, 최종윤 작곡가와 영어 가사 번안에 공을 들였다. 2022년 ‘K-뮤지컬 로드쇼 in 웨스트엔드’의 하나로 개최한 쇼케이스의 피드백을 반영하기 위해 영국 창작진을 한국으로 초대해 국내 창작진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공연의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챗GPT’(!)에게 관객 반응을 물었다. 대답은 ‘대체로 긍정적이지만, 관객의 호불호가 갈리는 편입니다’였다. “일단은 긍정적인 편이었다고 생각해요. 다만 연습 과정에서 2시간 30분가량의 공연이 1시간 40분으로 축약되면서 이야기의 전개가 급박해졌는데, 한국 공연에 비해 인물 간의 관계성이나 서사가 섬세하게 그려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운 마음이 있어요.”

그럼에도 3년의 개발 과정을 거쳐 웨스트엔드 무대를 마주하고 그가 느낀 점은 ‘K-뮤지컬의 가능성’이었다. “영국 공연을 준비하며 저도, 작품도 많은 성장을 이뤘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서 널리 알릴 수 있다면 앞으로 해외 시장에서 K-뮤지컬의 흥행이 충분히 승산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우리 작품만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좋은 IP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대 본고장으로 향한 K-뮤지컬 현지 리뷰

정재은(영국 통신원) 사진 라이브(주)

 

뮤지컬 ‘마리 퀴리’ 6.1~7.28

언어는 바뀌었어도, 메시지는 싱싱했다

 

©Pamela Raith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는 힘을 가진 뮤지컬 ‘마리 퀴리’가 영국 런던 채링 크로스 극장 무대에 올랐다. 런던에서 선보인 ‘마리 퀴리’는 포스터에 ‘새로운 뮤지컬(A NEW MUSICAL)’로 소개됐다. 최초로 물리학과 화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여성 과학자 마리 퀴리(1867~1934)를 주제로 한 이 작품은 폭넓은 연령대의 관객을 끌어들이며, 교육적이면서도 독특한 콘텐츠로 주목받았다. 세상을 바꾼 이 여성 과학자에 대한 수많은 전기와 영화가 있었지만, 뮤지컬로는 한국에서 창작된 ‘마리 퀴리’가 처음이다.

265석 규모의 채링 크로스 극장은 무대 폭이 좁고 높이가 낮은 형태였지만, 영국 스태프들은 제한된 공간에서 다채롭게 무대를 꾸몄다. 이동과 회전이 가능한 계단 형태의 대형 세트는 노벨상 시상대, 공장 노동자의 시위 장소 등 여러 역할을 했다. 계단은 2층 구조물과 연결되기도 하고, 실험실로 변모하기도 하며 다양한 장면을 표현했다. 배우들은 직접 세트를 움직이며 협소한 무대를 최대한 활용해 마리 퀴리의 극적인 삶을 압축적으로 재현했다. 창살이 있는 창과 문, 후면 구조물에는 시대를 반영한 영상이 투사되었고, 중요한 단어나 화학 공식들이 무대 벽면에 실시간으로 쓰였다.

뮤지컬 ‘마리 퀴리’ 영국 프로덕션에서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배우들이 영어로 연기하고 노래했다. 마리 퀴리 역을 맡은 아일사 데이비슨은 냉철한 과학자로서의 인상을 주었고, 이주민 여성 과학자로서 불굴의 노력과 심리적인 변화를 탁월하게 표현하며, 윤리적 딜레마 속에서 갈등하는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안느 코발스키 역을 맡은 크리시 비마는 울림과 힘이 느껴지는 가창력으로 강인한 안느를 표현했으며, 특히 방사성 물질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는 넘버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출연진의 뛰어난 연기와 가창력은 많은 찬사를 받았다. 마리 퀴리와 딸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두 배우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눈물을 흘렸다. 집중해서 극을 관람하던 관객들은 이들의 노래가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뮤지컬 ‘마리 퀴리’의 영국 현지화 작업은 한국 창작진과 영국 창작진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천세은 작가와 최종윤 작곡가의 대본과 음악을 영어로 번역해 각색하고, 가사를 번안했다. 언어는 바뀌었지만, 작품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감정은 무대 위 7인조 라이브 밴드의 연주와 배우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대로 전해졌다. 현지 반응 중 작품이 다소 감상적이라는 평이 있었는데, 이는 한국적 정서인 한(恨)과 정(情), 끈기, 인내 등의 표현이 문화적 차이로 인해 다르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뮤지컬 ‘마리 퀴리’ 영국 프로덕션 넘버

다만, 100분의 러닝타임 동안 이뤄지는 급박한 전개와 빠른 진행 속도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이는 장면 간의 완급 조절을 통해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마리 퀴리’가 이번 공연에서 얻은 피드백을 바탕으로 입체감 있고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다듬어 나간다면, 영국에서도 경쟁력 있는 뮤지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마리 퀴리’는 런던에서 두 달간 다양한 관객에게 소개되었다. 웨스트엔드에서 시작해 브로드웨이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기에, 이 작품도 더 큰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비록 영국 무대에서 짧은 기간 동안 작은 규모로 공연했지만, 여러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여주며 국내 뮤지컬 제작자와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유통 해외 진출을 위한 플랫폼의 역할

홍예원 기자 사진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유통팀 팀장 이정은

국내·외 시장을 잇는 가교

 

최근 뮤지컬 ‘마리 퀴리’ ‘인사이드 윌리엄’ ‘라흐헤스트’ 등 K-뮤지컬이 잇따라 해외 시장에 진출하며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작품들은 ‘K-뮤지컬 로드쇼’를 통해 진행한 해외 쇼케이스에서 호응을 얻은 것들이다.

K-팝, K-무비에 이어 차세대 K-컬처로 떠오르는 뮤지컬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는 2016년부터 중국을 중심으로 우리 뮤지컬의 오리지널 투어, 라이선스 수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는 K-뮤지컬 로드쇼를 개최했다. 이어 2021년부터는 ‘K-뮤지컬국제마켓’을 통해 단계별 전략에 따라 우리 뮤지컬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공연예술의 메카인 대학로 초입에 위치한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K-뮤지컬국제마켓의 기획 단계부터 지금의 성과를 일궈내기까지, 실무를 담당한 공연유통팀 이정은 팀장을 만나 K-뮤지컬 시장의 유통 과정에 대해 들었다.

성장한 뮤지컬 시장에 보폭을 맞추며

K-뮤지컬 시장은 2019년부터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K-컬처의 차기주자라는 평가에 비해 국내 뮤지컬 시장은 유통 경로가 부재한 상황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는 산업영역과 가장 가까이 호흡하고 있는 뮤지컬에 주목하며, 국내 공연예술의 투자 활성화를 끌어낼 수 있는 마켓의 기획을 시작했다. 이렇게 K-뮤지컬국제마켓이 시작됐다. 첫해 행사에서 해외 초청 인사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지금의 단계별 해외 진출 지원사업이 기획됐다.

이 팀장은 “마켓 개최 전까지는 K-뮤지컬 로드쇼가 국내 유일한 뮤지컬 사업이었어요. 전 세계 뮤지컬 시장을 대상으로 행사를 개최하며 해외 시장에 대한 네트워크가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죠. 초기 3년 동안은 오디컴퍼니 신춘수 총감독을 필두로 신시컴퍼니 박명성 총 프로듀서 등 유관 기관과 뮤지컬 관련 전문 투자사 및 기관으로 구성된 지속발전추진단을 운영해 조언과 지도를 받았어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더욱 전문적인 행사로 거듭나고 있습니다”라며 당시를 돌아봤다.

물론 시작부터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11월에 개최한 첫 회에는 뮤지컬 빅마켓인 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의 프로듀서 10명이 참가했다. 그마저도 자가격리나 방역 조치 등 해외 인사의 한국 체류를 위한 까다로운 서류 작업을 거쳐야 했다. 다행히 해외 인사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공연예술축제를 대표하는 영국의 에든버러, 프랑스의 아비뇽, 캐나다의 시나르 페스티벌 등에서는 여러 장르의 공연예술마켓이 운영되고 있지만, 뮤지컬을 전문으로 다루는 마켓은 K-뮤지컬국제마켓이 유일합니다. 해외 인사들에게 특색 있는 행사로 각인된 거죠. 특히, 한국 뮤지컬 시장의 규모와 우수한 창작진을 보고 서로 알럼나이(Alumni, 동문·졸업생)를 자처하며 행사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인사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K-뮤지컬이 열어갈 새로운 지평

개막 포럼에 참여한 국내외 주요 인사

올해로 4회째를 맞이한 K-뮤지컬국제마켓은 뚜렷한 성과도 거뒀다. 대표적으로 뮤지컬 ‘마리 퀴리’가 웨스트엔드 무대에 오른 것. ‘마리 퀴리’는 2022년 ‘글로벌 전문프로듀서 역량강화 프로그램’ 및 ‘K-뮤지컬 로드쇼 in 웨스트엔드’ 행사에 지속적으로 참여한 결과, 웨스트엔드에서 공연할 기회를 얻었다. 이번 공연을 꾸린 현지 창작진 역시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받았다.

“지난 3년이 마켓의 초석을 다지는 시기였다면, 올해는 사업이 안정화되어 결실을 맺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마리 퀴리’의 경우에는 워크숍 프로그램을 통해 영국 시장을 탐색하고, 로드쇼로 현지화 과정을 거친 후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공연을 잘 준비한 사례라고 볼 수 있죠.”

그는 ‘마리 퀴리’ 외에도 최근 여러 편의 K-뮤지컬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었던 이유로 ‘뛰어난 창작 능력과 저돌적인 추진력’을 꼽았다. “한국 뮤지컬 시장은 예술성이 뛰어난 창작자·민간 제작사·프로듀서가 개척하고, 뛰어난 실력의 배우들과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관객 모두가 일궈낸 시장이에요. 앞으로도 세계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한국의 시선과 특징을 담은 작품으로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4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국내 뮤지컬 시장의 든든한 가교 구실을 하며 많은 성과를 이뤄냈지만, 이 팀장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올해는 처음으로 스페인, 사우디아라비아와 교류의 물꼬를 트고, 해당 국가의 시장 진출 가능성을 확인하기도 했다. “K-뮤지컬국제마켓을 통해 뮤지컬 장르에서 아시아 맹주로서의 위치를 더욱 견고히 하고, 전 세계 뮤지컬 관계자가 모일 수 있는 허브 플랫폼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우리 마켓이 투자자와 제작자의 접점을 만들고 소개하는, 글로벌 뮤지컬 홍보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도약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기

박병성(뮤지컬 평론가)

 

해외 뮤지컬 시장에 대한 대비와 현지화 전략

K-뮤지컬의 꿈,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K-뮤지컬의 해외 진출기

뮤지컬 ‘마이 버킷 리스트’ 중국 공연 © 라이브(주)

드라마·영화·K-팝에 이어 K-뮤지컬이 주목받고 있다. ‘K-뮤지컬’이라는 표현은 2011년부터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2008)와 ‘궁’(2010)이 일본에 진출하면서 언론에서 사용됐다. 당시에는 K-팝, K-무비 붐에 편승한, 구체적인 실체가 부족한 용어였다. 그러나 13년이 지난 지금, 아시아권에서 K-뮤지컬은 실제로 존재한다. 2023년에는 중국 시장에 한국 뮤지컬이 20여 편 진출했으며, 일본에도 10편 정도가 공연되었다.

지난해보다는 적지만, 올해도 중국과 일본 시장에 한국 뮤지컬이 꾸준히 소개되고 있다. 이제는 아시아권을 넘어 뮤지컬 종주국인 미국과 영국에 진출하는 한국 뮤지컬도 등장하고 있다. 한국 뮤지컬이 영미권 공연 시장을 지속 가능하게 개척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국내에서 호평받은 ‘마리 퀴리’와 ‘어쩌면 해피엔딩’이 각각 뮤지컬의 메카인 영국 웨스트엔드와 미국 브로드웨이 시장에 입성하며 상업 공연으로서 출발점을 찍었다.

최근 한국 뮤지컬의 제작 능력이 향상되고 K-컬처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지면서 해외 진출의 적기를 맞고 있다. 국내에서 뮤지컬 시장이 포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해외 진출은 필연적인 과정으로 여겨진다. 해외에 진출하는 한국 뮤지컬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해외 시장 개척은 쉽지 않은 일이다. 좋은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준비와 계획, 해외 공연 시장에 대한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다. 국내에서 공연을 올리기 위해 관객층의 특성이나 공연 환경을 고려하듯, 해외 시장 진출 역시 그러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시아 시장에서의 도전과 기회

뮤지컬 ‘레드북’ © Vibe management

중국 시장 진출을 희망한다면 소재 선택을 신중히 해야 한다. 중국에서는 여전히 사전 검열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검열에서 대본 수정을 요구받거나 공연 허가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미신이나 동성애 소재는 검열을 피하기 어렵다. 소재 선택뿐만 아니라 규모도 중요하다. 중국 제작사는 소극장 한국 뮤지컬을 선호하는 편이다. 중국에서도 소극장 뮤지컬은 마니아 관객들의 취향이 크게 작용하는데, 한국 뮤지컬이 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일본 시장 역시 공연 관객층과 공연계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공연 관객층은 대부분 연령대가 높으며, 한국 뮤지컬 중에는 중소극장 규모의 감동을 주는 작품이 인기가 좋은 편이다. 일본 뮤지컬은 토호, 극단 시키(四季), 다카라즈카 가극단이 주도하는데, 이중 토호가 한국 뮤지컬에 관심이 많다. 그 외에도 새롭게 공연계에 진입하려는 타 장르 회사들이 한국 뮤지컬을 통해 공연 시장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반면, 일본의 아동 공연 시장은 학부모와 긴밀한 네트워크가 이루어져 있어 상대적으로 상업적 진출이 어렵다.

아시아권은 주로 라이선스 판매로 이루어지지만, 오리지널로 진출할 때는 더 세심한 준비가 필요하다. 현지화 과정은 필수적이며, 공연 문화나 환경이 다르기에 현지에 맞는 수정과 보완이 필요하다. 뮤지컬 ‘레드북’은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우리가 느끼는 빅토리아 시대와 영국인이 느끼는 역사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디테일한 차이를 보완하기 위해 ‘레드북’의 제작사 아이엠컬쳐는 영국 출신 작가를 섭외해 작품의 현지화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 그들의 문화를 고려해 관객의 취향에 어울리는 각색을 위해 애쓴 것이다.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국내 시장에서 아무리 큰 흥행을 얻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현지 관객들과 만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섬세한 노력과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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