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공간의 새 조합을 꿈꾸는 예술가들, 요시 호리카와, 이다희, 홍나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9월 9일 9:00 오전

CHALLENGE

 

공연장이 아닌 곳에서 음악을 담는다!

소리와 공간의 새 조합을 꿈꾸는 예술가들

 

소리를 시각·촉각 등 다른 감각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순간의 소리를 포착해 공간에 멋스럽게 담아내는 사람들의 손길을 거치자 본래 음악이 없는 공간이 소리가 흐르는 공연장으로 탈바꿈한다. 흘러가는 소리 하나하나를 소중히 모아 자신만의 공간에 담아내고 있는 세 명의 아티스트를 소개한다

김강민 기자

 


Interview 1

 

사운드 아티스트 요시 호리카와

 

사찰로 흐르는 소리

주변의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되고, 모든 장소는 공연장이 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그가 가진 것이라곤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가 전부였다. 악기도, 연주 기술도 없었지만, 음악에 흠뻑 빠져버린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다. 방법을 찾던 중 우연히 래퍼 KRS-One의 음반을 발견했다. 음반 재킷에는 헤드폰에 대고 소리치는 남성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문득 래퍼의 목소리가 헤드폰으로 녹음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헤드폰으로 소리를 녹음하기 시작하자 세상의 모든 소리가 음악으로 변했다. 새의 지저귐, 도시의 소음, 주방에서 요리하는 소리까지도 음악이 되었다. 요시 호리카와가 12살 때의 일이다.

그 후, 건축을 공부한 요시 호리카와는 공간을 소리로 채우는 사운드 아티스트가 되었다. 직접 채집한 소리를 전자음과 결합해 음악을 만들었고, 그 음악을 최적의 음향으로 전달하기 위해 60쌍 이상의 스피커를 개발했다. 스피커는 자신을 표현하는 필수 도구이니, 자신의 소리에 항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그렇게 그는 각 공간에 알맞은 소리를 찾아내어, 공간을 소리로 채운다. 그가 ACC 월드뮤직페스티벌(8.30~9.1)에서 음악으로 채울 공간은 전라남도 무등산에 위치한 원효사다. 첫 내한을 앞둔 요시 호리카와와 대화를 나눴다.

 

원효사에서의 공연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점이 있나요?

장소의 분위기에 집중했습니다. 야외에서의 공연은 실내에서 진행되는 것과 매우 달라요. 저는 풍경을 느끼며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고, 연주를 위해 장소에 어울리는 소리를 찾곤 합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기 전에도 원효사를 촬영한 영상을 미리 살펴보며 공간에 어울릴 만한 소리를 상상했습니다. 제 음악이 원효사와 잘 어울리기를, 관객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풍경과 하나가 될 수 있기를 바랐거든요. 원효사처럼 역사적인 공간에서는 특별한 무언가를 시도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공간에 따라 소리의 차이가 큰 이유가 무엇인가요?

소리와 공간을 함께 듣기 때문입니다. 모든 소리는 다른 소리와 섞여 있어요. 예를 들어 파도 소리는 수많은 물방울 소리, 거품 소리, 모래와 바위, 물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모두 합쳐진 소리죠. 날씨에 따라 바람·온도·습도·지면의 질감이 달라지면 또 다르게 들립니다. 좋은 소리와 좋지 않은 소리를 명확히 구분해 말하기는 어렵지만, 저는 좋아하는 파도 소리도 있고 좋아하지 않는 파도 소리도 있어요. 그렇기에 늘 멋진 소리를 찾기 위해 여행하는 중입니다.

소리를 채집하는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쓰는 점은 무엇인가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고, 새로운 음악을 찾고 만드는 일입니다. 예전에는 음악의 콘셉트를 먼저 정하고 그에 맞는 소리를 찾았다면, 최근에는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내 귀를 믿고, 마이크를 가지고 집 밖으로 나가 녹음 버튼을 누르는 거예요. 스튜디오로 돌아와 녹음한 소리를 다시 들으면, 그 소리가 저를 어디론가 이끄는 것만 같습니다.

일상의 소리와 전자음을 결합해 음악을 만듭니다. 여러 소리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소리를 너무 깔끔하게 섞지 않으려고 주의하는 편입니다. 비(非)음악적인 소리에는 그 나름의 매력이 있거든요. 일상에서 찾은 소리와 악기 사이에 약간의 불일치가 일어날 때 음악은 더 재미있어집니다.

요시 호리카와의 연주(2021 MUSO 컬쳐 페스티벌)

작곡한 음악은 일어날 공연에서 어떤 방식으로 연주하나요?

많은 소리를 중첩해서 작곡하는데요, 공연에서는 한 번에 많은 소리를 낼 수 없으니 녹음해 둔 소리 요소들을 미리 준비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다양한 효과를 적용하며 실시간으로 편집하며 연주합니다. 현장에는 실시간으로 재생하고 섞을 수 있는 소리가 많아요. 종종 직접 만든 칼림바를 연주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당신의 음악에서 느끼길 바라는 점이 있나요?

저는 진심으로, 모든 사람이 제 음악을 자유롭게 감상하길 바랍니다. 다만 제 음악에는 일상 속 구체적인 소리가 사용되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어요. 우리는 모두 다른 경험을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음악을 들으며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요시 호리카와(1979~) 자연과 일상의 소리를 채집하여 작곡하고, 연주하는 사운드 디자이너이자 오디오 장비 제작자. 건축과 음향학을 공부했으며, 자신만의 악기와 스피커를 제작하고 있다. 첫 정규 음반 ‘수증기(Vapor)’는 영국 ‘팩트’지와 일본 ‘재팬 타임스’지에서 2013년 최고의 음반으로 선정됐다.

 

Performance information

2024 ACC 월드뮤직페스티벌

8월 30일~9월 1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일대

스페셜 스테이지 ‘요시 호리카와-일파만파’

8월 28·29일 원효사

 


Interview 2

 

비주얼 아티스트 이다희

 

화폭에 담는 소리 색, 모양, 질감으로 재탄생한 소리들.

음악을 보고 그림을 듣는다

 

설치 미술, 퍼포먼스, 회화 등 다양한 예술 재료를 활용해 실험을 거듭하던 이다희는 2011년, 음악을 화폭에 담아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음악번안시스템’이라는 독자적인 표현방식도 개발했다. ‘번역’이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과정이라면, ‘번안’은 새로운 언어로의 재해석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면 음악이 들리는 듯하다.

‘캐논변주곡’(2011)을 시작으로, ‘아리랑-마림바 버전’(2015), 모차르트 ‘작은 별 변주곡’(2017·2018) 등 그가 음악을 시각적으로 번안한 지 어느새 14년이 흘렀다. 그사이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의 전주곡 상반부(1~13번) 번안을 마쳤고, 그의 ‘음악번안시스템’도 한층 더 정교해졌다. 지금은 바흐를 잠시 떠나, 매달 신청곡을 받아 두 곡씩 작업하며 더 많은 사람과 음악 번안의 즐거움을 나누는 중이다. 새로운 프로젝트(The Sound of You’) 진행이 한창인 이다희를 화상으로 만났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준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8년 동안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프로젝트(WTC-Project)를 작업하면서 한 장르에 갇혀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음악을 접할 기회가 줄어들었고, 타인의 음악 취향이 궁금해졌죠. 그래서 1년간 재정비하며 새로운 장르나 작곡가의 음악을 저만의 음악번안시스템으로 작업해 보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자유를 주는 프로젝트예요.

프로젝트의 부제는 ‘당신 마음의 음악을 그립니다’입니다. ‘이다희가 꼽는 마음의 음악작품’은 무엇인가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입니다. 그중에서도 1권 6번은 심장을 울리는 리듬과 신비로운 화성감이 특별하게 다가와 아끼는 곡이에요. 음악 번안 시스템의 분석 영역을 과학적으로 발전시켰던 1권 13번 역시 특별합니다. 사실 모든 곡을 사랑하는데, 이렇게 이야기해서 다른 곡이 섭섭해하면 어쩌죠?(웃음)

@the_sound_of_you_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 6번(로잘린 투렉 연주)

보이지 않는 소리를 시각화할 때 어떻게 영감을 얻나요?

음악을 들으면 개별 음들과 함께 색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감각이에요. 음의 모양은 연주자의 해석과 표현, 아티큘레이션에 따라 결정합니다. 이미 완성된 명작을 제가 연주자가 되어 표현하는 셈이기에 작은 영감만으로도 충분해요.

작품과 함께, 작업 과정이 담긴 드로잉을 함께 전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작품만 전시했습니다. 그런데 영국에서 작업 과정 또한 작품이니 드로잉도 공개해 보라고 제안했어요. 청각예술이 시각예술로 변환되는 절차는 두터울 수밖에 없기에, 과정을 축약해서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추상화와 클래식 음악을 어렵게 느끼던 사람들도 이러한 드로잉을 통해 제 작업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음악 번안을 하고 싶어요.

드로잉에 적힌 숫자들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한 음이 전체 음악에서 차지하는 비율과 좌표를 계산하는 과정에서 나온 수치입니다. ‘청취 분석’을 하며, 여러 연주자의 연주를 비교 감상하며 작품을 외웁니다. 음악은 이어지지만 그림으로 표현하려면 줄 바꿈이 필요합니다. 화성 진행이나 연주자의 호흡에 맞춰 정리합니다. 보통 16분음표를 기준으로, 화면에 잘 맞는 비율을 계산합니다. 이처럼 16분음표의 크기를 정하면 자연스레 4분음표의 크기도 결정되죠. 피아노 음악이라면 오른손과 왼손이 연주할 성부를 계산해 폭을 조정하고, 반복과 변형되는 순간을 고려하여 정렬합니다. 드로잉에는 이 과정이 압축적으로 담겼습니다.

자신을 어떤 예술가로 정의하고 싶은가요? 더불어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음악을 그림으로 연주하고 연구하는 작업가’입니다. 저는 평생의 작업을 다 계획해 두었어요. 바흐의 건반 음악을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마지막에는 바흐와 굴드처럼 ‘푸가의 기법’으로 생을 마무리하고 싶어요. ‘캐논 변주곡’(2011)도 다시 작업해 음악가들과 풍성하고 재미있는 공연전시를 하고 싶습니다. 가까운 목표는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2권을 마무리하고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두 긴 여정이 될 테지만, 좋은 협업자들과 함께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작품을 작업하고 발표하고 싶습니다.

 

이다희(1987~)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서양화와 심리학을 공부했다. 이후 영국 글래스고 예술대학에서 회화 석사과정을 마쳤다. 14년간 꾸준히 클래식 음악에 집중, 다양한 맥락에서 ‘음악번안시스템’을 소개해 왔다.

 

Exhibition information

The Sound Of You’(당신 마음의 음악을 그립니다)

2025년 봄, 12달 동안 모인 신청곡 24곡이 전시된다. 현재 인스타그램(@the_sound_of_you_)에서 작업 과정을 볼 수 있다.

 

 


Review 3

 

미디어 아티스트 홍나겸

 

미술관에서 들리는 소리

풀벌레 소리와 나직한 숨소리까지 음악적으로 표현하다

 

미디어 아트-홍나겸 ‘숨’ ©노원문화재단

자연의 소리와 영상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홍나겸의 전시 ‘숨’이 상계예술마당에서 진행됐다(7.2~8.15). 그의 작업에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아름다운 소리가 담겨 있어, 삶을 성찰하게 한다. 그의 대표작인 ‘바다를 그리워하는 꽃의 노래’(2014), ‘디지털 포레스트’(2013~2018)에 이어, 이번 전시 ‘숨’도 그러했다. 자연의 소리를 음악처럼 엮어 전시장에 풀어냈다. 관람객을 자연의 세계로 초대하고,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얇은 커튼을 지나 전시장 내부로 들어서면, 커다란 스크린(가로 18m x 세로 2m 30cm)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조명이 꺼진 어두운 실내, 스크린에서 잔물결이 소리 없이 반짝이며 전시가 시작된다. 그리고 관람자에게 묻는다. “숨, 쉬고 계신가요. 지금…” 여섯 개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풀벌레 소리와 물소리, 바람 소리가 귀를 스쳐가고, 세 개의 스크린과 프로젝터를 통해 비치는 풍경이 마음을 울린다. 이따금 느껴지는 바람은 착각이 아니다. 세 개의 서큘레이터가 배치되어 있어, 영상 속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더 잘 느낄 수 있도록 고안되었기 때문이다.

전시는 세 개의 주제로 구성됐다. 삶의 몸짓을 표현한 ‘숨, 불다’, 삶과 죽음의 강한 에너지를 전하는 ‘숨, 피어오르다’, 생명의 순환을 담은 ‘숨, 흐르다’이다. 상영 시간은 30분이며, 같은 영상이 두 번 반복된다. 홍나겸은 이 세 구성에 대해 “모든 삶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송가(頌歌)이면서 나 자신에게 바치는 찬가이다”라고 표현했는데, 실제로 두 번의 상영을 마치면 잔잔한 감동과 여운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마지막의 ‘숨, 흐르다’였다. 아침 햇살과 나뭇가지, 멀리서 날아가는 새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고요히 가라앉는 소리, 함께 감상하는 관람자들이 내쉬는 나직한 숨소리가 새삼스레 음악처럼 느껴졌다. 찰나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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