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듀 밸리, 도시 속 바쁜 삶을 위로하는 ‘사이버 귀농’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9월 16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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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듀 밸리

도시 속 바쁜 삶을 위로하는 ‘사이버 귀농’

 

 

아침의 만원 지하철에서 일터로 가고 있으면 ‘출근하기 싫다’라는 마음이 들 때가 많죠. 오늘의 주인공도 오랜 직장생활로 지칠 대로 지친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주인공은 숨이 턱 막히는 직사각형의 사무실에서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마지막 편지를 읽어보았습니다. 그 편지에는 자신이 운영했던 농장에서 진정한 삶을 살아보라는 조언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싱그러운 자연과 따뜻한 이웃이 모여 사는 스타듀 밸리로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고향을 찾아주는 음악

©2024 Sony Interactive Entertainment LLC

‘스타듀 밸리’에서 플레이어는 전원생활이 주는 여유로움을 맘껏 즐깁니다. 그렇지만 게임이니 망정이지, 농부가 그렇게 만만한 직업은 아니죠.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체력적으로도 고된 작업을 계속하기 때문입니다. 게임 제작자인 에릭 바론(1987~)은 사람들이 도시 문명에서는 체험할 수 없었던 삶의 풍요를 느끼길 바란 걸까요? 성실히 밭을 가꾸고 가축을 길러 생산물을 수확했을 때 얻는 뿌듯함을 말이죠. 나아가 플레이어는 수확한 농산물을 마을의 친절한 이웃들과 나누면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야 합니다. 전통 사회를 그리워하는 감성이 진하게 묻어 나오죠. 그리고 이 전통 사회는 ‘미국의 농촌’을 통해 보다 구체화되는데, 이는 ‘스타듀 밸리’의 음악을 통해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의 놀라운 점은 그래픽·스토리·코딩·작곡 등 게임의 모든 요소를 에릭 바론, 단 한 사람이 개발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개발자가 담고자 했던 농촌의 이미지가 음악에서도 드러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죠. 이 게임에서 개발자는 농촌과 지역 공동체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악기 ‘밴조(Banjo)’를 주로 사용하고, 사운드트랙의 많은 부분을 컨트리(Country) 장르로 작곡했습니다.

‘클라우드 컨트리’

밴조는 둥근 몸통, 길게 뻗어나간 목, 그리고 5개의 현이 특징인 악기로, 기타보다 경쾌하고 밝은 소리를 냅니다. 다소 생소할 수도 있지만 밴조는 미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악기이죠. 이 악기는 본디 서아프리카에서 기원한 것으로 미국에 정착한 흑인들이 주로 연주했지만, 점차 백인 사회가 주목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19세기 연주자인 조엘 스위니(1810~1860)가 밴조를 개량하여 미국 사회 전역에 보급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죠. 이 밴조는 가장 미국적인 음악이라고 여겨지는 컨트리 장르에 사용됐습니다. 초기 형태의 컨트리 음악은 미국 남부 지방에 거주하던 시골 사람들이 그들이 지역의 강한 사투리를 섞은 노래였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별 탈 없이 가족, 이웃과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 담겨 있었죠.

덕분에 온라인 사이트 등지의 여러 미국인 플레이어가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진한 그리움과 향수를 느꼈다는 반응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게임을 실행하고 캐릭터를 설정할 때 나오는 ‘클라우드 컨트리’는 느긋한 빠르기의 밴조를 바탕으로 신시사이저와 피아노의 은은한 선율이 부드럽게 음악을 전개합니다. 특히 스윙 리듬을 반복하는 밴조의 기본 선율은 컨트리와 재즈가 절충된 형태인 ‘웨스턴 스윙(Western Swing)’도 떠오르게 하죠.

순간을 음악으로 포착하다

특수한 장르를 통해 전원의 한적하고 소박한 정취를 담아내는 한편, 에릭 바론은 농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음악으로 담아냈습니다. 바로 ‘계절’이죠. ‘스타듀 밸리’에서 계절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계절에 따라 심을 수 있는 작물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계절별로 3곡씩, 총 12곡의 음악이 등장합니다. 그중 아주 독특한 것은 겨울입니다.

‘겨울(얼음의 야상곡)’

겨울은 그 어떠한 작물도 심을 수 없어 게임이 상당히 어려워지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다른 음악과는 달리 겨울의 음악은 상당히 쓸쓸하고 어둡습니다. 두 개의 트랙을 살펴보자면, ‘겨울(얼음의 야상곡)’은 눈을 밟을 때 들리는 발자국 소리를 연상시키듯 규칙적인 강세의 음형이 음악 내내 반복되고, 미분음으로 연주되는 정체불명의 음들은 서늘함을 넘어 섬뜩하기까지 합니다. 또 ‘겨울(태고)’ 역시 생명력이 꺼져가는 겨울을 묘사하듯 느린 빠르기로 전개되지만, 곧이어 등장하는 피아노가 꽤 뭉클한 느낌을 자아내죠. 한 인터뷰에서 에릭 바론은 “겨울은 외롭고 어둡지만, 그 속에는 경외감을 일으키는 아름다움이 있는 계절”이라 말한 바 있는데, 그런 개발자의 낭만이 듬뿍 담겨 있는 곡이 바로 겨울의 음악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스타듀 밸리’에서는 다양한 이벤트가 계절의 여러 부분을 장식하는데, 그중 여러 플레이어가 특별하다고 꼽는 이벤트는 단연코 ‘달빛 해파리의 춤’이라는 축제입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기 하루 전날, 밤바다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어려운 미션이 아닌 그저 마을 바다를 찾아온 희귀한 해파리들을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해프닝’에 가깝습니다. 이때 흘러나오는 2분도 채 되지 않는 곡인 ‘달빛 젤리의 춤(Dance of Moonlight Jellies)’은 ‘스타듀 밸리’의 모든 사운드트랙 중 가장 많이 재생한 곡으로 무려 2천만 회가 넘는 재생수를 기록하였습니다. 잔잔한 파도 소리와 함께 몽환적인 신시사이저 선율이 매력적인 음악입니다.

‘달빛 젤리의 춤’

플레이어는 아마 계속해서 반복되는 작업을 하다 일 년 중 단 한 번밖에 볼 수 없는 찰나의 순간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을 겁니다. 그러고 보면 인생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가 반복되어 때로는 지루하고 피곤할 때도 있지만, 일 년 중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는 찰나의 이벤트가 삶의 특별함을 만들어 줄 테니까요. 그것이 실제의 삶이 되었든, 게임 속이 되었든 그런 반짝이는 이벤트를 기대해 보며, 이번 주말에는 나만의 농장을 가꿔보는 ‘스타듀 밸리’, 어떠신가요?

 

이창성 서울대학교 작곡과 이론 전공을 졸업 후 동대학원 석사과정에서 게임과 음악의 관계에 관심을 두어 게임음악학 연구를 진행 중이다. KBS 1FM의 작가 및 PD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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