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미클로시 페레니,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9월 16일 9:00 오전

HIGHLIGHT

 

첼리스트 미클로시 페레니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올해 평창대관령음악제의 화제 음악가. 노장의 해석과 통찰의 시선을 나누다

 

 

그가 미리 적어 온 답변 ©송종석

평창대관령음악제 개막공연(7.24)을 하루 앞둔 날, 여의도 KBS교향악단 연습실에서 리허설을 막 마친 미클로시 페레니를 만났다. 당시 그는 평창대관령음악제에서의 두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하나는 개막공연을 장식할 토마스 체헤트마이어/KBS교향악단과의 하이든 첼로 협주곡, 다른 하나는 그의 독주회(7.26)였다.

그는 인터뷰 진행에 관해 이리저리 물으면서 본인의 가방을 뒤져, 잘 접힌 종이와 돋보기안경을 꺼냈다. 종이가 무엇인지 하여 머리를 기웃했는데, 기자가 보낸 질문지 여백에 그의 메모가 가득 담겨 있다.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문답의 시간이 풍부하게 느껴졌던 것은 그의 철저한 준비성 덕일까.

그는 헝가리의 첼리스트로, 부다페스트를 거점으로 활동해 왔다. 음악가 가문에서 태어나 1963년 파블로 카살스 콩쿠르에서 입상한 후, 전 세계 다양한 축제에 초청 받으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다.

교직·연주 등 다른 나라로 거처를 옮길 기회는 많았지만, 그는 부다페스트에서 머무는 것을 선택했다. “자석 같은 겁니다. 고향으로 저절로 향하는 것이요.” 교직은 고향의 주요 교육기관이자 본인이 졸업한 프란츠 리스트 음악원에서 이어갔다. 그는 65세까지 부다페스트에서 살았고, 지금은 그 외곽인 나지코바치(Nagykovácsi)에서 지내고 있다. 부다페스트 근교의 작은 지역에 관해 이야기하는 그의 표정이 무척이나 밝아 “자석 같다”는 그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미소를 유지하며, 그는 대화를 이었다.

 

그러고 보니, 언드라스 시프(2008), 피닌 콜린스(2023)와 가진 듀오 리사이틀, 서울시향(2018)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의 마스터클래스 등 한국에 여러 번 방문했는데 홀로 무대에 오르는 독주회는 처음이군요. 감회가 다른가요? (※페레니는 독주회에서 바흐, 달라피콜라, 에뢰드, 코다이의 무반주 곡을 연주했다)

독주가 다른 공연과 다르게 느껴질 수 있죠. 연습 과정에서 함께하는 음악가가 있으면 빠르기나 해석에 대해 합의하는 시간,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간이 생기니 더욱 그렇지요. 반대로 독주는 제약이 없으니 자칫하면 루바토를 지나치게 크게 하거나, 빠르기가 변하기도 쉽습니다. 그러니 곡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요. 저는 결과적으론 독주가 실내악 연주와 크게 다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 몇 번의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했습니다. 국내 관객과 학생들에겐 소중한 추억이 됐죠. 학생을 가르칠 때면 어떤 것을 알려주려 하나요?

때마다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음악이나 작곡가에 관해 확고한 입장이나 해석을 제공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제 경험을 공유해 줄 뿐이죠. 음악을 향한 해석은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신 악보에 기록된 법칙과 기록되지 않은 법칙을 읽어 낼 줄 알아야 하죠. ‘기록되지 않은 법칙’이 중요한 겁니다. 마음속으로 연주해야만 알 수 있는 사실과 소리를 발견하는 일이죠.

워낙 다양해서 답하기가 어려운 질문인데(웃음), 어쨌든 연주에서 계속 유념해야 할 것은 ‘음악의 균형’을 맞추는 것입니다. 음악을 잘 아는 청자가 듣는 것은 ‘전체의 균형을 연주자가 어떻게 잘 조정했나’이고, 이를 완수한 이후에 작은 디테일이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연주 해석이 많이 변하는지요.

5살 때부터 첼로를 시작하여 70년이 넘게 연주를 하니, 나이가 들수록 더 깊게 해석하는 부분이 생겨나죠. 40년 전부터는 작곡도 시작해서 매우 학술적으로 곡을 이해하는 법도 더해졌고요. 그러나 이를 받쳐주는 실력을 계속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좋은 해석이 있어도 연주해 내지 못하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연주한 세월이 줄여준 것은 곡 해석을 헤매는 시간뿐이지, 연습의 시간은 아닌 거죠.

하루의 연습 시간을 어떻게 됩니까?

음, 제가 시간을 재는 편이 아닌데요. 공연 일정에 따라 많이 변합니다. 어떨 때는 책상에 앉아서 악보를 그리는 시간이 더 길기도 하고요. 지금은 공연이 코앞이니 연습에 조금 더 신경 쓰고 있죠. 아, 그렇지만 온종일 연습하는 것은 아닙니다!

 

헝가리 음악의 전도사

평생 부다페스트를 거점으로 활동해왔습니다. 2018년 내한 당시 헝가리 음악을 알고 싶다면 졸탄 코다이나, 벨라 버르토크의 음악을 감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가진 ‘헝가리적’ 특징은 무엇인가요?

다른 작곡가도 물론 많지만, 그 둘이 가장 헝가리 고유의 옛 음악에 다가가 이를 구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코다이 작품에서 들리는 5음 음계가 대표적이죠. 버르토크는 12음 기법 음악을 활용하지만, 조성음악이 가진 협화음의 특징을 활용해서 그 정체성을 보여주죠. 이런 독특한 조성을 마치 모국어처럼 활용한 것이 놀랍습니다. 작품을 뜯어보면 이러한 헝가리 어법이 기존의 서양 음악 방식과 섞여서 복조성(poly-tonal)을 이룹니다.

이번 독주회(7.26)에 올린 ‘베토벤을 회상하며(Hommage à Beethoven)’는 작곡가 이반 에뢰드(1936~2019)의 작품입니다. 그도 헝가리 작곡가네요. 이 작품에서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올해 키워드인 ‘루트비히’는 어떻게 작용하나요?

이반은 헝가리 사람이지만, 오스트리아로 이주한 작곡가이죠. 제 기억이 맞는다면 그는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교수가 되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이 작품은 여전히 헝가리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반은 작품에 베토벤 첼로 소나타 4번 Op.102-1을 인용했는데, 베토벤이 헝가리의 백작 부인인 안나 마리아 에르되디(1779~)에게 헌정한 작품이거든요. 또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에 등장하는 리듬이 들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미묘한 연결이죠.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다른 헝가리 작곡가도 알려주세요.

리게티와 쿠르탁은 알고 계시죠? 지금은 파르카스 페렌츠(1905~ 2000), 졸로시 언드라시(1921~2007), 아틸라 보자이(1939~ 1999)까지 떠오르네요.

이탈리아 작곡가인 루이지 달라피콜라(1904~1975)의 작품은 프로그램에서 조금 눈에 띕니다. 이 작품을 선곡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작품을 알게 된 것은 참 오래전인데, 그렇게 자주 연주하지는 않았죠. 매우 까다롭거든요. 갑작스러운 변화와 더블 스톱이 자주 등장하고, 악보에 표기된 지침이 정말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12음 기법을 사용하지만, 여전히 조성을 기반으로 하는 선율을 들을 수 있어서, 이번 프로그램의 중간 즈음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페레니만의 바흐란

평창대관령음악제(2024) ©LEE JONG HEE

독주회의 바흐(첼로 모음곡 4번)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전의 인터뷰(본지 13년 5월호)에서도 바흐 모음곡 필사본의 중요성에 관해서 이야기했는데, 드디어 국내 관객이 만나보게 됐네요.

바흐 모음곡의 필사본은 여러 판이 존재하거든요. 바흐의 아내인 안나 막달레나의 판본이 있고, 바흐의 제자였던 요한 페터 켈너가 필사한 것도 있습니다. 이외의 필사본에서는 눈에 띄는 점을 발견하기 어렵고, 중요성도 낮습니다. 이러한 여러 필사본을 직접 보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였어요.

2020년, 40여 년 만에 정식으로 이 작품을 포함한 6개 모음곡을 녹음(Hungaroton)했죠. 여느 사람들은 이 6개의 모음곡을 ‘첼로의 성서’라고 표현하는데, 이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성서’라는 표현이 제 단어가 아니라는 것은 알겠군요. 저는 그렇게 여기지는 않으니까요. 제가 모음곡 중 하나를 처음 집어 든 때는 8살이었고, 14~15살까지 모든 모음곡을 배웠습니다. 이 모음곡은 다성음악인데, 그게 종(縱)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횡(橫)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게 중요하죠. 여러 목소리가 함께 존재해요. 조화롭고, 화성적이죠.

음반에서는 작품을 순차적으로 담지 않고 1-4-5-2-3-6번의 순서로 담았습니다. 순서대로 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작품 사이의 무게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어떤 것은 무겁고, 어떤 것은 가벼워서, 들쑥날쑥해지니까요. 이 작품을 정말 수도 없이 연주했는데, 이 순서가 가장 좋다고 느껴집니다. 물론 제 의견이지만요! 자세히 이야기하면, 2번 모음곡으로 넘어갈 때 도약이 너무 커요. 전주곡이 무척 집약적입니다. 순서대로 연주해 보면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찾아와요.

지난 세월 동안 쌓은 생각을 이 음반에 모두 담아낸 것이군요.

그렇지도 않은 게, 그 사이 두 가지 정도 새로운 생각이 또 들어서요. 바흐의 여섯 개의 모음곡은 한 번 더 녹음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 아들 중 한 명이 사운드 엔지니어라서 녹음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렇다면 앞으로 더 많은 음반을 기대해도 될까요?

그럼요! 이미 녹음을 완료한 것도 있어요. 버르토크 비올라 협주곡을 첼로로 연주한 것인데, 부다페스트 오케스트라와 함께해서 아마 내년에 발매될 것입니다. 연주하고 싶은 곡이 많습니다. 아르튀르 오네게르(1892~1955)의 협주곡에 제가 직접 만든 카덴차를 연주하면 참 좋을 것입니다. C.P.E 바흐의 작품에도 새로운 카덴차를 더하고 싶고, 비발디도 좋겠네요. 전부 제 바람이지만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전곡) Hungaroton HCD32834-35

며칠 뒤, 26일 그의 첼로 선율이 평창의 밤을 뒤덮었다. 인터뷰 동안 그의 움직임은 쉼이 섞여 느리고 눈으로 분명히 그릴 수 있었는데, 무대 위의 움직임은 재빠르고 첨예하여, 신비로웠다. 눈을 살며시 감고 연주하는 바흐, 설명한 부분이 종종 튀어나오는 달라피콜라와 이반 에뢰드의 작품은 즐겁게 들을 수 있었다. 한편, 마지막 작품인 코다이의 첼로 소나타는 그의 배경과 겹쳐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을 만들어냈다. 어떤 감정을 쓰든 그는 모든 것에 상응했다. 그는 청중의 부름으로 여러 번 무대로 다시 나와 인사했고, 바흐 ‘알르망드’(무반주 모음곡 2번)를 앙코르로 연주하며 공연을 마쳤다. 그의 새로운 음반, 그리고 다음 방문을 더없이 기다리게 됐다.

이의정 기자 사진 송종석(studioBOB)·평창대관령음악제

 

미클로시 페레니(1948~) 프란츠 리스트 음악원에서 공부하였다. 1963년 파블로 카살스 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하였고, 1965년과 1966년에 파블로 카살스를 사사했다. 1980년부터 프란츠 리스트 음악원의 교수로 재직했고, 2014년에는 로열 노던 음악 대학에서 학과장으로 재직했다. 언드라시 시프와 함께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리사이틀을 하였고, 에든버러 페스티벌, 베토벤 페스티벌 등에 초청되어 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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