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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마르크-앙드레 아믈랭
‘슈퍼 비르투오소’를 둘러싼 오해와 이해
작품 발굴, 남다른 해석, 독특한 녹음. 무한한 영감과 개성의 소유자가 내한한다
처음 보는 낯선 길을 걷기 위해선, 상세한 지도가 필요하다. 요즘으로 따지자면 GPS를 실시간 반영해 주는 고성능의 내비게이션. 그렇다면 9월, 한국을 찾는 프랑스계 캐나다 피아니스트 마르크-앙드레 아믈랭은 방대한 레퍼토리, 특히 19·20세기 생소한 작품들을 능숙히 운전하는 전문가라 할 수 있겠다. 더불어 균형 잡힌 테크닉과 논리적인 음악성을 지닌 그는 어떤 작곡가나 작품에 담긴 낯섦에도 당황하지 않고 길을 찾게 도와주는 든든한 지도이기도 하다.
‘슈퍼 비르투오소’라 불리는 그의 프로필엔 요즘 피아니스트들이 하나쯤 가진 대단한 콩쿠르 이력은 없지만, 수많은 음반과 작곡가들의 이름이 가득 차 있다. 그중에서도 영국 하이페리온 레이블과 30년간 함께해온, 70장 이상의 희소성 넘치는 음반은 아믈랭의 많은 것을 증명해 준다.
내한을 앞둔 그에게, 질문을 건네 보았다. 몇몇 질문에 대해 답변이 돌아왔다. 그중에서도 아믈랭이 답해준 ‘비르투오소’의 이야기에는 그만의 명쾌한 통찰이 담겨 있었다. 이 피아니스트를 둘러싼 세계를 함께 살피며, 오늘날의 비르투오소에 대한 정의를 남겨본다.
가장 적절한 피아노의 박동을 찾아서
아믈랭의 한국 방문은 네 번째다. 2004년과 2012년에 독주회를, 2019년에는 레 비올롱 뒤 루아의 협연자로 한국을 찾았다.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며, 기억에 남는 것은 관객이었습니다. 풍부한 감수성, 그리고 깊은 존중심이 느껴졌죠. 이번 공연에도 따뜻하게 맞아줄 관객 앞에서의 연주가 가장 기대되네요.”
이번 독주회는 슈만의 ‘숲의 정경’으로 시작된다. 이어지는 작품은 세 악장으로 구성된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다. 그중 ‘스카르보’는 어려운 테크닉으로 악명 높다. 라벨이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보다 더 어려운 곡을 쓰고자 했다’는 흉흉한 전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물론 라벨이 발라키레프의 작품을 언급한 것은 맞지만, 이 작품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어요! 종종 ‘스카르보’를 피아니스트가 부리는 묘기처럼 생각하는데, 정말 안타까워요. 이 작품은 텍스트가 가진 의미를 음악으로 가장 잘 변환한 작품입니다. 곡의 템포도 ‘Vif(빠르게)’로 적혀있지, ‘Prestissimo(매우 빠르게)’가 아닙니다. 너무 빠르게 연주하면 라벨이 쓴 곡의 성격과 뉘앙스, 스페인적 정취들이 사라지죠. 라벨과 동시대에서 그를 알고 지냈던 프랑스 피아니스트 폴 도게로(1908~2000)에 의하면, 라벨이 원했던 템포는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스케르초에 더 가까운 템포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가장 정확한 템포는, 피아노가 아닌 오케스트라로 연주된다고 상상할 때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잊힌 비르투오소들을 기억하다
그가 연주할 마지막 곡인 슈베르트 소나타 21번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미뤄두고, ‘슈퍼 비르투오소’라는 그의 별칭에 대한 이해와 오해 풀기를 먼저 하자. 이 수식어가 처음 사용된 건, ‘뉴욕 타임스’의 기사다.
“그 별칭은 ‘뉴욕 타임스’의 평론가 해럴드 숀버그가 제게 붙인 용어죠. 그 후로 제 공연의 모든 홍보 자료에 이 용어가 끊임없이 사용됐고요. 경력 초기에는 시선을 끌 수 있는 단어였지만, 앞으로도 저를 계속 설명하는 낙인처럼 남지는 않았으면 하네요.”
때는 바야흐로 19세기, 낭만시대에 ‘비르투오소’가 음악계의 용어로 등장했다. 특히 이 시기의 피아노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의 발전을 마치고, 비르투오소들의 뛰어난 기교를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담아내기 위한 진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리스트와 라흐마니노프에서 이어지는 이 계보는 다수의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를 남겼다. 작곡가 스스로가 주목받는 피아니스트였던 만큼, 이들의 작품은 ‘피아니스틱’하다. 제 손으로 연주하며 남긴 악보들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선율을 화려한 피아니즘으로 덧입혀 변주하거나 편곡한 사례도 많다. 그래서 연주하기도 까다롭기에 ‘자기만 연주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것 아니냐’는 전공생들의 숱한 오해를 낳기도 한다.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여전히 피아니스트로서 작품을 담긴 다수의 작곡가가 있지만 이름이 알려진 것은 부소니(1866~1924)나 고도프스키(1870~1938) 정도뿐이다. 이 비르투오소들의 연주를 즐겨 하기엔 우선 테크닉의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았고, 참조할 음반을 찾는 것도 어렵다. 이러한 블루오션에 유일한 등대가 바로 아믈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 애호가였던 아버지의 집에는 희귀한 레코딩이 모여 있었고, 거기서 아믈랭은 몇 없는 샤를 발랑탱 알캉(1813~1888)의 LP를 들으며 자랐다.
1994년, 그가 하이페리온 레코드와 함께 낸 첫 음반 ‘알캉&헨젤트-피아노 협주곡’을 시작으로 온스타인(1893~2002), 그레인저(1882~1961), 로슬라베츠(1881~1944), 제프스키(1938~2021) 등 비르투오소 출신 작곡가들의 작품이 그의 손으로 세상에 빛을 봤다. 그중 고도프스키의 ‘쇼팽의 연습곡을 위한 연구’ 전곡(53곡) 음반은 그가 아니면 남기 어려웠을 만큼 난해한 작품이다. 본지 필자인 피아니스트 김주영이 이 음반에 대해 남긴 “복잡한 텍스트 안에서도 연주는 쾌적하며, 균형 잡힌 페달링이 기분 좋은 뒷맛을 제공한다”라는 평은 아믈랭의 수준 높은 해석 때문에 흔쾌히 공감하게 된다. 지난 세기에 흘러간 비르투오소들의 이름을 빛내준 오늘날의 비르투오소. 어쩌면 헤럴드 숀버그가 붙인 ‘슈퍼 비르투오소’는 아믈랭이 ‘비르투오소들의 비르투오소’임을 의미한 것일지도 모른다.
“호로비츠가 ‘테크닉(Technic)’이라는 표현은 잘못됐으며, 이를 ‘메커닉(Mechanics)’으로 불러야 한다고 언급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제게도 테크닉이란 모든 연주의 작동 방식을 통합하는 것입니다. 감정이든 육체든 모두 효율적으로 활용해 음악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대중에게 ‘비르투오소’라는 말은 음악의 본질적 표현보다 신체적 능력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비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를 ‘비르투오소’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요. 제가 대중 앞에 서는 것은 신체적 능력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제가 가진 것을 활용해 음악이 주는 기적 같은 창의성을 관객과 나누기 위함입니다.”
음반사(史)에 독특한 길을 내온 30년
아믈랭의 방대한 디스코그래피는 영국의 클래식 레이블 ‘하이페리온’을 기반으로 한다. 한 가지 놀라운 점은, 70장이 넘는 음반 중 그 흔한 베토벤 독주곡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C.P.E 바흐 음반은 있지만, J.S. 바흐 음반은 없다. 일반적인 피아니스트의 디스코그래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경력 초기에, 아믈랭에게도 ‘너무 특이한 작품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라는 인식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용기였는지, 어떻게 보면 무지한 것이기도 했다”는 것이 그의 회고. 원하는 음악을 선택했지만, 피아니스트라면 흔히 연주하는 레퍼토리의 음반은 남지 못했다.
그러나 아믈랭과 계약하고 꾸준히 ‘특별한’ 음반들을 발매한 하이페리온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뛰어난 실력과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 그리고 아믈랭의 탐험 정신에 주목했다. “모두가 들어본 익숙한 작품들보다 새로운 것, 재발견된 것, 그리고 소외된 작품들을 선호한다”는 것이 현재 하이페리온을 이끄는 수장 베리 홀든의 입장이다. 그는 “쇼팽의 연습곡은 우리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지만, 이 작품을 존경하면서도 대담하게 재해석한 고도프스키의 ‘연습곡 연구’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다”라고 덧붙였다.
이제는 아믈랭의 시간도 익어가는 것일까. 지난 2018년, 그는 슈베르트의 소나타 D960을 포함한 음반을 발매했다. 물론 이전에도 슈만이나 모차르트의 작품을 담은 음반을 발매하긴 했으나, 아믈랭이 이 음반에 대해 밝힌 소회는 남달랐다.
“슈베르트의 D960을 공연장에서 연주했던 1997년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시 젊었던 나는 당장 이 작품을 녹음하고 싶었죠. 그러나 기다린 보람이 있었고, 20년간 연주해 온 이 작품을 담은 음반은 그간의 모든 음반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죽을 때까지 모든 독주회에서 D960을 연주하라고 해도, 저는 전혀 불행하지 않을 거예요.”
그리하여 오는 9월에 있을 한국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할 작품은 이 곡이다. 그의 현재 거주지는 미국 보스턴. 2021년부터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로서의 삶도 지내고 있다. 더욱 깊게 여물어가고 있을 아믈랭의 피아니즘을 만나볼 최적의 레퍼토리로 꾸려진 9월의 무대를 기대해보자.
글 허서현 기자 사진 더브릿지컴퍼니
마르크 앙드레 아믈랭(1961~) 프랑스계 캐나다 피아니스트. 뱅상 댕디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 대학교에서 학·석사 과정을 밟았다. 1994년부터 하이페리온 소속으로 다수의 음반을 발매했다. 2017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 심사위원 위촉된 바 있으며, 2021년부터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마르크-앙드레 아믈랭 피아노 독주회
9월 8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슈만 ‘숲의 정경’, 라벨 ‘밤의 가스파르’,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 D960
RECORD CHOICE 하이페리온 대표 베리 홀든이 추천하는 아믈랭의 명반
음반 애호가라면, ‘마르크-앙드레 아믈랭’이라는 피아니스트의 이름을 추가하는 건 큰 행운이다. 그의 이름을 따라가며 만나게 되는 음반들은 신선한 작품들로 채워져 있으며, 청취자를 신세계로 인도하는 그의 솜씨 역시 군더더기 없이 완벽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하이페리온 레코드 대표 베리 홀든이 사심을 듬뿍 담아 추천한 아믈랭의 음반 3선.
C.P.E 바흐: 소나타 & 론도
Hyperion CDA68381/2 “C.P.E
바흐의 소나타와 론도는 끊임없는 놀라움을 감춘 작품입니다. 아믈랭의 강렬한 연주력은 음색과 분위기를 빠르게 전환하고, 이 작품이 가진 예상치 못한 결말을 제대로 전달합니다.”
고도프스키: 쇼팽의 연습곡에 대한 연구
Hyperion CDA67411/2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를 아직도 정확히 기억합니다. 제가 양손으로도 치지 못했던 쇼팽의 연습곡 Op.10-6을, 왼손으로만 연주하고 있었어요! 이 엄청난 프로젝트를 해낼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요? 게다가 아믈랭처럼 ‘쉽게 연주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제프스키: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Hyperion CDA67077
“이 36개의 변주곡은 ‘20세기의 디아벨리 변주곡’이라고 불립니다. 건반악기의 비르투오시티가 빛나는 걸작이며, ‘왜 아믈랭과 하이페리온이 함께 하고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음반이기도 합니다.”
ABOUT 하이페리온 레코드
새로움을 추구하며 소외된 작품을 발굴하는 레이블
‘영국의 독립 클래식 레이블’. 이 수식어는 1980년에 시작된 하이페리온의 정체성이자 자부심이었다. 이들은 알려지지 않은 레퍼토리를 탐구하고, 이를 수행할 아티스트들과 꾸준한 음반 작업에 몰두했다.
변화무쌍한 음반 시장에서 하이페리온이 이와 같은 독특한 위치를 선점하게 된 데에는 창립자 테드 페리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인쇄소에서 일을 시작해, 레코드숍 등을 거친 그는 하이페리온 설립 당시 부족한 수입을 메우기 위해, 야간의 택시 운전 일을 자처하며 운영을 시작했다.
12세기 독일의 수녀원장이자 여성 작곡가였던 힐데가르트 폰 빙겐의 ‘숨결 위에 깃털’로 첫 음반을 발매한 그의 혜안은 회사를 점차 일으켰다. 초기에는 르네상스·중세 시대의 생소한 작품에 집중하는가 하면, 점차 슈베르트의 가곡 전집(37장), 리스트의 피아노 작품 전집(99장)을 발매하기도 했다. 하이페리온이 세운 인상적인 기록은 전 세계 음악 애호가에게 그들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후 마르크-앙드레 아믈랭, 안젤라 휴이트, 스티븐 허프, 스티븐 이설리스, 타카치 콰르텟 등 음반을 통해 깊이 있게 음악에 접근하는 음악가들이 하이페리온 소속의 아티스트로 함께 하고 있다.
한편 지난해, 하이페리온은 유니버설뮤직 그룹의 산하 레이블로 인수됐다. 현재 도이치 그라모폰과 데카도 유니버설뮤직 그룹 산하의 레이블이다. 당시 테드 페리의 아들인 사이먼이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었는데, 인수 과정에서 하이페리온이 가진 방대한 음원의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변화와 혁신의 과제를 마주하고 있는 하이페리온. 아믈랭의 내한으로 그의 디스코래피를 살펴보던 중 수장을 맡고 있는 베리 홀든과의 대화를 통해 음반 시장, 아티스트 선정, 그리고 하이페리온만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지난해, 하이페리온은 유니버설뮤직 그룹의 산하 레이블이 됐습니다. 당시 대표였던 사이먼은 현재 레이블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창립자 테드의 아들인 사이먼은 매각 후 몇 달 만에 은퇴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시작해 놓은 모든 리코딩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테드와 함께 15년간 일했던 기술 감독 닉 플라워, 그리고 테드와 10년간 알고 지낸 제가 회사에 남아 때때로 ‘테드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되새겨 보곤 하죠. 하이페리온을 만든 정체성을 이어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다수의 피아노 앨범 제작에 기여한 전문가 마이크 스프링도 빼놓을 수 없어요. 실제로 아믈랭의 작업에도 도움을 많이 주는 사람입니다.
유니버설뮤직 산하의 조직이 되면서, 하이페리온의 방대한 음반이 온라인상에 올라갔습니다. 어떤 긍정적인 반응을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스트리밍이 가능하도록 전환하는 것은 무척 중요했습니다. 이제 하이페리온이 가진 귀중한 카탈로그가 전 세계에 공개됐죠. 청취자들의 반응은 무척 긍정적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세부 사항을 철저히 확인했습니다. 음반의 소책자까지 청취자가 확인할 수 있도록요. 2024년 초에 모든 작업을 완료했고, 이미 2억 회 이상의 재생 수를 기록하고 있어요. 창립자인 테드 페리도 이 사실을 알면 놀라며 기뻐하지 않을까요!
음반 마니아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하이페리온만의 개성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시스템 중에 유지하고 있는 것이 있나요?
물론, 우리는 유니버설뮤직 그룹 내에서 독창적인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원래대로 런던의 성 실라스 교회나 헨리 우드홀에서 녹음 작업을 하고 있고, 프로듀서와 엔지니어도 바뀌지 않았어요.
하이페리온을 정의할 수 있는 요소들, 그래서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가치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 하이페리온은 최고 수준의 연주자를 찾습니다. 아믈랭을 비롯해 안젤라 휴이트나 스티븐 허프 등을 떠올려보시면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아시겠죠? 둘째, 우리는 학문적 접근에서도 신중합니다. 음반 작업과 함께, 소책자(부클릿)의 세부 사항을 잘 만들기 위해 무한히 노력해요. 학생들이 신뢰할 수 있는 연구 자료로 사용할 정도로 철저하고 통찰력 있게 만듭니다. 마지막은 탐험 정신입니다. 우리는 새로움을 탐구하는 아티스트, 소외된 작품을 선호합니다. 허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