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HOT 프랑스 | 라 로크 당테롱 피아노 페스티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9월 9일 9:00 오전

WORLD HOT_FRANCE

전 세계 화제 공연 리뷰 & 예술가

 

라 로크 당테롱 피아노 페스티벌 7.20~8.20

전통을 담고, 미래를 꿈꾸다

 

화제가 된 쥐스탱 테일러(하프시코드)의 공연과 그에게 듣는 ‘시대연주’의 미래

 

 

시대연주 붐이 일던 1960년대, 하프시코드의 전진기지는 단연 네덜란드였다. 구스타프 레온하르트(1928~2012), 톤 쿠프먼(1944~) 등의 하프시코디스트는 원전연구를 바탕으로 한 이성적 접근, 무게감과 신성함을 자아내는 연주로 범접하기 어려운 하프시코드의 영역을 구축했다. 최근엔 프랑스 악파가 독보적이다. 30대 초반의 쥐스탱 테일러(1992~), 장 롱도(1991~)의 이름이 이를 대변한다. 금속적인 음색으로 때론 사납게 느껴질 수 있는 악기를 이 프랑스인들은 훨씬 부드럽게 다룬다. 따뜻한 음색, 감성적인 해석이 청중의 귀를 간질인다.

한낮 기온 38도를 뚫고 도착한 실바칸 수도원에서 라 로크 당테롱 피아노 페스티벌의 독주회를 앞둔 쥐스탱 테일러를 만났다. 선선한 수도원 내부, 시원하게 챙챙거리는 하프시코드 음색을 고대했던 필자가 마주한 건 온화함이었다. 무대는 주 예배 공간이 아닌 중정과 기둥을 나누는 회랑에 마련돼 더운 바람이 들었고, 연습 중이던 쥐스탱의 하프시코드는 벨벳과 같은 음색으로 공간을 감싸고 있었다.

쥐스탱 테일러는 2015년 무지카 안티콰 하프시코드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등장했다. 콩쿠르 부상으로 알파 레이블의 전속 아티스트가 된 이래 10장이 넘는 음반을 발매하며 하프시코드와 포르테피아노 레퍼토리를 폭넓게 탐구했다. 그가 유럽 클래식 음악 축제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여름 쥐스탱은 폴란드, 포르투갈의 음악 축제에 이어 라 로크 당테롱 피아노 페스티벌에 섰고, 곧 벨기에, 독일 등으로 향하는 기차에 연이어 오른다. 공연 전, 쥐스탱과 하프시코드를 두고 이야기 나눴다. 9세기를 버텨낸 공고한 실바칸 수도원 벽 사이에서 그의 꿈과 포부가 피어올랐다.

 

‘역사적 접근’ 자체가 새로운 시각

에어컨은 고사하고 더운 바람이 드는 공간이라니, 연주하기 까다로운 조건이네요.

바람 때문에 암보로 연주해요. 전에 여기서 공연을 관람했는데, 악보가 여기저기 날아다녔거든요.(웃음) 그래도 12세기에 지어진 역사적인 공간에서 새와 매미 소리를 벗 삼아 연주한다는 게 특별합니다. 공연 후에는 제 음악과 함께한 여름밤이 어땠는지 관객과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리허설 중에도 어느 모자(母子)와 대화를 나누던데요.

열 살 정도 된 남자아이가 하프시코드 연주자래요. 제 팬이라서 모든 음반을 소장하고 있다고요. 공연은 매진돼서 리허설이라도 보려고 왔대요. 축제 사무국에 전화해서 1열에 두 좌석을 마련해줬어요.

열 살의 하프시코드 연주자라니, 프랑스에 하프시코디스트 육성 비결이라도 있나요?

프랑스 전역에 하프시코드 수업, 훌륭한 교육자가 많아요. 작은 도시에 살아도 하프시코드를 배울 수 있죠. 사실 하프시코드는 첫눈에 반하기 어려운 악기예요. 그럼에도 프랑스에서 이 악기가 인기 있는 이유는 프랑스 악파의 영향이 있다고 봅니다.

리허설을 들어보니 음반에서보다 부드러운 소리가 더 잘 느껴졌어요.

사실 이 점은 비판을 받기도 해요. 하프시코드는 짧고 또렷하게, 리드미컬하게 연주해야 한다는 관념에서죠. 이런 관념은 이전 세대가 피아노와는 차별화된 하프시코드의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쿠프랭이나 바흐 등의 문헌을 살펴보면 ‘노래하는 듯한’ 연주를 강조했다는 점을 알 수 있어요.

시대연주를 통한 음악에 새로운 시각이 더해졌네요.

어릴 때부터 하프시코드를 모국어처럼 배운 덕이에요. 악기를 있는 그대로 탐구할 수 있었죠. 구스타프 레온하르트나 톤 쿠프먼 등의 세대는 ‘피아노와 달리 하프시코드는 이렇게 연주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아요.

프랑스 하프시코드 음악은 이탈리아, 독일과 비교해 장식음이나 곡의 전개 등이 정말 달라요. 각 나라의 악기도 모두 특성이 다른가요?

형태나 음색이 규격화된 피아노와는 달리, 하프시코드는 악기마다 천차만별이에요. 제작된 도시와 제작자마다 고유한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피아노만 연주하는 제 친구가 “이 스타인웨이는 저번에 연주했던 스타인웨이랑 너무 달라!”하고 불평하면, 저는 코웃음 치며 말해요. “이번에 내가 연주할 하프시코드는 후기 바로크 음악을 연주하기에는 건반이 부족해”라고요.(웃음) 독일 악기는 다성부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데 적합해요. 모든 음역의 건반이 동일한 음색과 음량을 내거든요. 이탈리아 악기는 타격감이 커서 오케스트라와 연주하는 데 최적이죠. 프랑스의 하프시코드는 악기의 공명에 주안을 둡니다. 제가 프랑스 악기를 즐겨 연주하는 이유죠.

실바칸 수도원에서 연주할 악기도 프랑스 악기죠?

맞아요, 필리프 위모가 2018년에 제작한 젊은 악기예요. 18세기 제작법을 따라 만들었는데 터치감이 아주 고르고 유려해서 좋아하는 악기입니다. 잘 만들어진 카피 악기도 좋아하지만, 당시 음악을 연주하는 데는 역사가 깃든 오리지널 악기가 최적이라고 생각해요. 몽펠리에 아사스 성에는 18세기 초에 만들어진 하프시코드가 있는데, 그 악기로 두 개의 음반을 녹음했어요.

 

하프시코드로 그리는 미래

음반에 대한 철학이 궁금합니다.

이미 수없이 녹음된 곡에 어떤 새로운 점을 가져올 수 있을지 질문해요.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쇼팽 전주곡입니다. 저는 스스로를 하프시코디스트라기보다 ‘역사주의 건반 연주자’로 정의합니다. 이번 녹음엔 프렐류드가 탄생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플레이옐을 사용해요. 여섯 옥타브가 채 되지 않는 작은 업라이트 피아노인데, 쇠 프레임이 없고 한 음당 2개의 현이 연결돼 있어서 굉장히 부드러운 음색을 냅니다. 1838년 마요르카에 머물던 쇼팽이 프렐류드 완성을 위해 파리에 있던 제작자 플레이옐과 긴밀히 소통하며 제작과 배송을 의뢰해 탄생한 악기죠. 음반을 통해 작품과 악기 사이 특별한 관계를 조명하고자 했습니다.

쇼팽이 연주했던 악기로 녹음하나요?

안타깝게도 쇼팽의 플레이옐은 연주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에요. 대신 1836~1839년에 제작된, 2현 악기를 수소문해서 연주에 적합한 두 대를 공수했어요. 쉽지 않은 여정이었죠.

개인 소장한 악기도 있나요?

가격 때문에 오랫동안 그림의 떡이었는데요, 2년 반 전에 굉장히 손상된 앤티크 하프시코드를 발견해서 구매했어요. 건반도 뚜껑도 없었지만, 사운드보드 상태는 좋았거든요. 그런데 악기를 수리, 복구하는 과정 중 사운드보드 안쪽에 새겨진 제작자의 서명을 발견했어요. 알고 보니 아주 유명한 프랑스의 제작자인 장 클로드 구종의 1754년산 악기더라고요! 정말 짜릿했어요. 남아 있는 부품 대부분을 살려 복구 중이에요. 내년에는 이 악기로 연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프시코드 역사에 어떤 족적을 남기고 싶나요?

스카를라티 소나타 전곡을 녹음하고 싶어요. 555곡이니 CD 30장 분량이죠. 한 해에 두 차례 녹음하면 무려 10년이 걸립니다. 이 예산을 어떻게 감당할지 생각해 봐야 해요.(웃음)

지난해에 이어 올 11월 또 한 번 내한합니다. 무엇이 기대되나요?

악기요! 토미 하프시코드의 대표 구민수가 정말 좋은 악기들을 소유하고 있어요. 또, 제가 만나 본 가장 열정적인 한국의 관객을 다시 만날 생각에 설렙니다.

박찬미(독일 통신원) 사진 라 로크 당테롱 피아노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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