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umn FESTIVAL ➊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예술감독 정갑균
한국 오페라의 ‘수준’과 ‘기준’을 만든다
수준 높은 작품, 신선한 초연, 교류와 소통력을 두루 갖춘 축제가 돌아왔다
2022년 ‘니벨룽의 반지’ 전편 공연은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역사상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스무 돌을 맞은 2023년에는 “바그너 이후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와 ‘살로메’를 선보였다. 서울에서 보지 못한 작품들을 보기 위해 대구로 향하는 마니아도 있었다. 정갑균 예술감독의 전략은 명확하다. “수준 높은 작품에 대한 정공법과 이를 통한 정체성 정립이 곧 축제의 ‘차별화’라는 점”이다. 그는 2021년부터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화제작으로 세간의 이슈를 만들어 축제의 정체성을 다지고, 귀한 작품들과 만나는 접점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대구·한국·아시아·세계 ‘초연’의 성지가 되고 있고요.”
비단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축제가 아니더라도 “파리는 날마다 축제”(헤밍웨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대구표 오페라들이 시즌에도 축제처럼 즐비하다. 올해도 3월 ‘오프레오와 에우리디체’(글룩), 5월 ‘파우스트’(구노)와 ‘안드레아 셰니에’(조르다노) 같은 대작들을 선보였다.
‘국제’ 오페라축제라는 명성에 걸맞게
올해의 개막작은 R.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이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지닌 신선함을 보여주는 데 이보다 좋은 작품이 없습니다. 1996년 서울시오페라단이 한국 초연으로 선보인 후 침묵하다가 대구 초연으로 오르는 공연입니다.”
2023년에 ‘엘렉트라’와 ‘살로메’로 슈트라우스의 첨예한 음악성과 비극적 미학을 보여주었다면, ‘장미의 기사’는 희극성과 대중적 친화성을 보여주는 시간이다. “하지만 세 작품 모두 성악가들에게는 난해한 작품에 도전하는 시간”이다.
축제의 또 다른 화제작은 ‘광란의 오를란도’이다. 정 예술감독은 “한국 초연은 물론이고 아시아 초연이라고 얘기해도 될 작품”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광란의 오를란도’는 ‘사계’의 작곡가로 잘 알려진 비발디의 작품으로, 이탈리아 시인 루도비코 아리오스토가 지은 서사시를 모티프로 1727년에 발표되었다. 작품은 이탈리아 페라라시립오페라극장과 함께 하는 프로덕션이다. 바이로이트 바로크 오페라 페스티벌에 올랐고, 이어 대구로 향한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 명에는 ‘국제’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에 걸맞게 해외 오페라극장, 축제와 연계되어 있으며, 유명 프로덕션의 단독 라이선스를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죠. 올해가 푸치니 서거 100주년인데, 지난 6월에는 대구오페라하우스와 루마니아 부쿠레슈티국립오페라극장과 합작 공연 ‘푸치니 오페라 갈라’를 선보였고, 이번 대구축제에 루마니아 측이 내한하여 같은 공연을 선보입니다.”
“축제에서 선보인 작품 중 반응이 좋으면, 축제 외 시즌 공연으로 녹여넣고자 한다”는 그의 말처럼 축제는 여러 작품을 나열하고 선보이는 장이기도 하다.
오페라계의 비밀 공장, 대구
이처럼 대구국제오페라축제와 본거지인 대구오페라하우스는 교류와 소통으로 새 오페라를 제작하는 예술공장과도 같다. 그래서 정 예술감독이 내세우는 것도 ‘대구오페라하우스=오페라 제작극장’이라는 도식이다. 이번 축제에 세계초연으로 오를 ‘264, 그 한 개의 별’(김성재 작곡·김하나 대본)도 개발과 연구의 꼼꼼한 과정을 거친 기대작으로 시인 이육사의 예술을 다루었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오페라 창·제작을 목적으로 한 연구모임 ‘카메라타 창작오페라 연구회’를 만들고, 3년 동안 다듬어왔습니다. 피아노와 함께한 리딩 공연(2022)과 오케스트라 풀버전(2023)을 거쳐 이육사의 시가 순차적으로 오페라의 그릇에 담겨 드디어 초연으로 선보입니다. 르네상스를 일으켰던 피렌체의 예술가들은 과거와 현재에 머물기보다 미래로 나아가고자 했습니다. 대구오페라하우스와 축제도 대구가 지닌 예술적 자산을 통해 새로운 시간으로 나아가고, 더불어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창·제작 오페라극장’으로 자리 잡는 데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결과’로서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지만, 결과를 향하는 과정의 노출과 공유도 중요한 관건으로 삼고 있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유럽 프로덕션의 개념을 그 과정부터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습이라 할지라도 실제 무대와 비슷한 환경을 성악가에게 제공하고자 간이 세트를 설치한 채 연습을 시작하죠.” 즉 정 예술감독은 “시스템의 수용이 곧 작품의 발전으로 향한다”는 믿음으로 오페라하우스와 축제를 다듬어가고 있다.
교류와 소통의 호흡으로
대구의 오페라하우스는 축제의 장이자, 한국 오페라 유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울과 중앙의 오페라가 지역으로 유통될 때, 공연을 원형대로 구현할 수 있는 비슷한 환경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축제의 초청작은 화제가 된 작품의 “다시 보기” 코너와도 같다. 이번 축제에는 국립오페라단의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가 다시 오른다. “국립오페라단이 창단 60주년을 맞아 한국 초연으로 선보인 작품입니다. 이번 초청을 통해 대구 초연이라는 기록도 만들고, 베르디의 숨은 명작을 관객들이 맛보도록 하는 것이죠.”
오페라를 통한 달빛동맹의 교류도 빼놓을 수 없다. 대구의 옛 명칭인 달구벌의 ‘달’과 광주광역시의 우리말인 빛고을의 앞 글자 ‘빛’을 따와 만든 교류모델로, 지역주의를 타파하고 협력·상생의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축제에는 광주시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가 대구의 축제를 찾는다.
“광주의 오페라단이 대구를 방문하여, 영호남의 협력을 위해 정치뿐만 아니라 예술계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간이죠. 축제의 대중성을 확보하기에도 좋은 작품이고요.”
대구국제오페라축제는 ‘창·제작 오페라극장’으로써 세계로 나가는 길목 앞에 있다. 올해 오페라 에우로파에 가입하여 극장의 프로덕션이 세계로 중계될 예정이다. 내년도 바쁘다. 이번 축제에 ‘광란의 오를란도’를 함께 한 이탈리아 페라라시립오페라극장에는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제작한 ‘안드레아 셰니에’가 간다. 같은 해에 에스토니아의 유서 깊은 사아레마성에서 열리는 사아레마 오페라 페스티벌에는 ‘심청’(윤이상)을 비롯해 대구오페라하우스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와 ‘마담 버터플라이’가 진출한다. 벌써 티켓 창구가 열려 현지의 반응을 가늠 중이다. ‘심청’은 2026년 만하임 극장에도 오를 예정이다.
“글로벌 문화 콘텐츠의 해외 진출을 위한 모범 사례들이, 이곳 대구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해외 오페라극장들이 항공 운송료부터 성악가들의 현지 체류비와 출연료까지 부담하는 러브 콜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구의 이러한 행보는 유럽 시장 진출과 교류를 희망하는 아시아 전역에도 잘 알려졌다. 정 예술감독은 11월에 베이징 국가대극원에서 열리는 음악포럼에 연사로 참석한다. 영국 로열 오페라, 이탈리아 라 스칼라 등의 전 세계 오페라 ‘꾼’들이 모인 곳에서 대구의 성공사례들을 공유할 예정이다.
글 송현민 편집장 사진 대구오페라하우스·대구국제오페라축제
정갑균(1963~) 중앙대(성악 전공) 졸업. 이탈리아 라 스칼라에서 실무경험을 쌓은 후, 로마 연극학교에서 수학했다. 국립창극단 상임연출과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을 역임했으며, 2021년부터 대구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공연예술본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Autumn FESTIVAL ➋
첼리스트·포항국제음악제 예술감독 박유신
상처 주지 않는 음악을 위해
모든 것을 포용하는 ‘바다의 노래’가 있는 포항으로
2021년 11월 ‘기억의 시작’이라는 주제로 시작한 포항국제음악제(이하 음악제)가, 2022년 ‘운명, 마주하다’, 2023년 ‘신세계? 신세계!’를 거쳐, 올해 11월 1일 ‘바다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관객과 만난다. 매해 다른 결의 음악들로 포항의 바다를 한 뼘 더 일렁이게 하는 축제의 예술감독 박유신에게 음악과 바다는 서로를 닮은 존재다. 바다의 품에서 태어나 음악의 높은 파고를 넘나드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올해의 주제인 ‘바다의 노래’는 포항에 가장 어울리는 주제가 아닐까 합니다. 포항인(박유신의 고향은 포항이다)으로서, 바다에 대해 품고 있는 마음이 궁금합니다.
저는 바다가 여러 가지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노을과 바다의 조합만큼 근사한 자연의 모습도 없는 것 같아요. 요동치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흔들리며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힙니다. 어느 순간, 그런 바다가 음악과 참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바다의 노래’라는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이후 바다를 연상하게 하는 작품들을 찾아보았죠. 올해 개막 공연의 프로그램은 바다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작품들입니다. 멘델스존의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라이네케의 플루트 협주곡, 그리고 일렁이는 바다가 그대로 담겨있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죠. 특히 ‘셰에라자드’는 포항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윤한결의 지휘로 만날 수 있습니다.
윤한결은 2023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젊은 지휘자상’을 수상한 전도유망한 지휘자죠.
맞습니다. 실력 있고 유능한 지휘자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윤한결 씨와 꼭 함께하고 싶었어요. 공연에 함께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아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섭외 이후에 프로그램 구상 등 여러 가지를 논의하기 위해 만났는데, 굉장히 진솔한 분이었어요. “개막 공연의 지휘를 맡아 연주한다는 사실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에너지가 담긴 ‘셰에라자드’가 관객들을 얼마나 거대한 바다의 세계로 빠져들게 만들지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렵게 모신 포항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에게도, 반갑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어요.
음악제를 꾸미는 특별한 연주자들
음악제가 시작된 2021년 11월에는 백건우·임윤찬(피아노)과 노부스 콰르텟, 2022년에는 서선영(소프라노)과 김기훈(바리톤), 지난해에는 정경화(바이올린)와 김태형(피아노)이 함께했다면, 이번에는 피아니스트 백혜선이 독주와 앙상블로 참여하는군요!
백혜선 선생은 제가 어릴 적부터 영상을 통해 접해온 피아니스트입니다. 저와 비슷한 또래의 연주자들이라면 누구나 그녀의 연주를 보며 꿈을 키워나가지 않았을까요? 매년 포항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거장 연주자들을 초청해 의미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올해도 실현할 수 있어 매우 기쁘고 감격스럽습니다. 이번 공연의 프로그램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8번과 서주리의 피아노 소나타 2번 ‘봄’, 리스트의 ‘베네치아와 나폴리’, 그리고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으로, 백혜선 선생이 직접 구성했습니다. 곡목을 받아본 순간, 저부터도 이 공연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악제 두 번째 날의 실내악 공연 ‘파도의 장난’에서는 김영욱·김재영(바이올린), 김다솔(피아노), 김유빈(플루트), 김홍박(호른), 조인혁(클라리넷) 등이 무대에 올라 다소 생소한 작곡가인 카를 프륄링과 루트비히 투일레의 작품을 연주합니다. 이 작품들의 매력을 소개해 주세요.
프륄링(1868~1937)의 작품은 정말 드물게 연주됩니다. 프륄링이 그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가 유대인이라는 신분을 숨기고자 가명으로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음반이나 영상으로도 접하기 어려운 이 작품을 이번 음악제에서 남겨보려 합니다. 모든 악장이 각기 다른 매력이 있고요, 아름다운 선율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곡입니다.
투일레(1861~1907)의 곡은 목관 5중주의 대표적인 레퍼토리 중 하나입니다. 목관 5중주는 음악제에서 매해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을 만큼, 정말 매력적인 편성이에요. 작년에 관객으로서 목관 5중주 연주를 들었을 때, 마치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어요. ‘많은 관객이 이날 공연의 피날레에 매료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습니다.
포항 곳곳에 울려 퍼지는 감동의 선율
ARD 콩쿠르 우승팀이자 워너 클래식스 아티스트인 아로드 콰르텟의 무대도 준비돼 있습니다. 절제된 가운데에서도 세련되게 펼쳐 보이는 음악, 경쟁력 있는 테크닉까지 매우 인상적인 팀인데요, 아로드 콰르텟이 연주할 곡들 중 특별히 추천하는 작품이 있나요?
상당히 매력적인 팀이죠? 저는 아로드 콰르텟이 최근 내놓은 프랑스 레퍼토리로 구성된 음반을 매우 좋아해요. 이들은 파리 음악원에서 수학하며 2013년에 팀 활동을 시작했고, 10주년이 되던 2023년도에 프랑스 인상주의 작품들로 음반을 녹음했어요. 이 중 한 곡 정도는 꼭 포항에서 들려주길 바랐습니다. 아로드 콰르텟은 하이든, 슈만, 드뷔시 작품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그중에서도 드뷔시 현악 4중주 Op.10을 실연으로 감상하면, 이들의 탁월함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을 거예요.
포항시립교향악단(지휘자 차웅), 선우예권(피아노)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기대감이 한껏 올라갑니다. 음악제와 포항시립교향악단이 함께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매년 포항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업을 고대해 왔는데, 드디어 올해 실현되었습니다! 지역의 대표 교향악단이 지역의 대표 음악 축제에서 선보이는 첫 무대라고 생각하니 협연자에 대한 고민도 많았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른 연주자가 선우예권이었어요. 개인적으로도 좋아하고 존경하는 피아니스트인데, 망설임 없이 참여 의사를 전해 감사할 따름입니다. 단언컨대 그가 연주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올해 축제의 하이라이트 무대가 될 것입니다!
포항시청 대잠홀에서 열리는 ‘포커스 스테이지’, 포항 출신 피아니스트 최이삭이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 포항’, 도서관과 미술관에서 열리는 ‘찾아가는 음악회’ 등 포항 시민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느껴집니다. 프로그램 기획 의도와 함께, 포항 시민을 포함한 음악제 관람객들에게 초대의 말을 부탁합니다.
시민 친화형 프로그램 구성은 지역음악제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제가 열리는 8일간, 일상을 살아가는 포항시민들과 포항을 방문한 여행객들이 음악제의 기획 프로그램을 통해 바다가 전하는 노래를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최근에 들었던 ‘음악은 상처를 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모든 것을 포용하고 깊은 슬픔마저 삼켜버리는 바다 곁에서 음악을 듣고, 향수를 느끼며,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도 마주해보시길 바랍니다. 삶의 순간순간이 풍요로워지도록 이번 음악제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포항에서 뵙겠습니다.
글 양경원(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포항문화재단
박유신(1990~) 경희대 음대 졸업 후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대에서 석사과정과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쳤다. 2017년 드레스덴 국립음대 실내악 콩쿠르 1위, 2018년 안톤 루빈슈타인 콩쿠르와 야나체크 콩쿠르에서 2위 등을 수상했다. 현재 경희대·이화여대·한양대에 출강하고 있으며, 어텀실내악페스티벌과 포항국제음악제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Autumn FESTIVAL ➌
바이올리니스트· 창원국제실내악축제 음악감독 이경선
오래도록 뻗어 온 인연과 함께
전 세계에서 만난 음악가를 고향으로 초대하여 빚는 축제
남해와 닿아있는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에는 클래식 음악부터 뮤지컬·대중음악 공연을 꾸준히 공연하는 성산아트홀이 있다. 2017년부터 매 가을, 이 공연장에선 창원국제실내악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올해는 여덟 번째 축제로, 창원을 고향으로 둔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이 첫 회부터 지금까지 음악감독을 맡아 왔다.
이경선은 세종솔로이스트, 금호 현악 4중주를 비롯하여 평창대관령음악제, 아스펜 페스티벌, 라비니아 페스티벌 등 다양한 곳에서 실질적인 실내악과 축제의 경험을 쌓아왔다. 대전실내악축제의 예술감독을 맡기도 했으며, 2015년 서울비르투오지챔버오케스트라를 창단하여 젊은 음악가들을 이끌어 왔다. 그에게 올해 지역 문화 예술을 위한 예산이 줄어 축제를 구성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물으니, “어려움만 생각하기보단, 이럴 때일수록 내실 있는 축제가 될 수 있도록 축제의 라인업에 더욱더 신경을 썼다”라는 자신감 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가 성심성의껏 준비한 축제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대전실내악축제를 비롯하여 지역의 음악 축제를 이끌었던 경력이 있습니다. 지역의 음악 축제는 지역민을 위한 마스터클래스, 찾아가는 음악회, 프린지 공연 등이 펼쳐지는데, 창원국제실내악축제만이 가지는 특징이 무엇일까요?
창원국제실내악축제는 매년 성산아트홀을 중심으로 개최하고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 숙소 옆 용지호수를 바라볼 때면 언제나 이 평화로운 시간이 영원했으면 합니다. 거대한 축제들에 비해 소극장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가족적인 분위기가 정감이 가지요. 시끌벅적한 화려함보다는 내면의 세계를 중요시하고, 깊은 감동을 오래 간직하는 실내악과 잘 어울립니다.
올해로 창원국제실내악축제가 8회를 맞이했네요! 짧은 시간이 아닌데, 축제를 진행하며 겪은 기억나는 일화가 있을까요?
매년 연주를 마친 해외 연주단에게 삼겹살과 맥주를 대접하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마다 창원 방문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과 초대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아요. 가장 보람되고 즐거운 순간이죠. 반대로 아찔했던 순간도 있습니다. 2년 전이었는데, 서울비르투오지챔버오케스트라의 무대 리허설 당일에 더블베이스 단원이 갑자기 컨디션이 너무 안 좋다고 하는 거예요. 무대 감독님께서 코로나 검사를 해보자 하셨고, 아니나 다를까 양성이었습니다. 그때 첼리스트 셋 중 한 명이 순발력 있게 더블베이스 파트를 익혀서 그날 저녁 무사히 공연을 마쳤죠. 아찔했던 그날이 이제는 추억같이 떠오르네요.
각각의 우정이 축제가 되다
올해 축제의 주제인 ‘인연, 음악이 되다(Our bond, creates music)’는 어떤 의미인가요?
음악 활동을 시작할 무렵 만났던 오랜 인연들이 올해 축제에 특히 많이 참여하게 되어 그대로 주제가 됐습니다. 제가 20대 때 학생으로 참가했던 라비니아 음악 캠프에서 만난 하르트무트 로데, 대학시절 같이 활동했던 트리오의 멤버 임성미, 대학시절 실력 있는 후배로 아꼈던 김이선, 유학시절 독일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알게 된 윤철희 등 실력은 물론이고, 인성과 됨됨이도 좋은 분들이죠. 음악을 전공하기를 잘 했다고 느낄 때가 바로 이런 각별한 우정이 지속될 때이지요.
축제 프로그램이 각각 개성이 있습니다. 첫날에는 비발디의 기타 협주곡부터 호프마이스터의 비올라 협주곡, 아테르베리의 모음곡, 브리튼의 ‘단순 교향곡’까지 모두 자주 접할 수 있던 작품은 아니네요.
관객에게 선물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숨겨 둔 보물들이에요. 한두 번 유튜브에서 감상해 보시고 오시기를 권장합니다. 이날과 3일에 저는 아테르베리와 쇼송의 작품을 협연합니다. 두 곡을 비교하자면, 아테르베리(1887~1974)의 작품은 길지 않으면서 서정적이고 우수가 가득 차 있고, 쇼송(1855~1899)의 작품은 40분으로 상당히 길고 장엄하고 화려하지요. 아테르베리가 길가에 핀 들국화라면 쇼송은 붉은 장미 다발 같아요.
둘째 날의 공연명은 ‘반 고흐 작품으로 만나는 19·20세기 음악가들’입니다. 드뷔시·풀랑크·그리그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고흐와는 어떤 연관성이 있나요?
당시 시대사적 흐름과 본인의 예술적 특징을 잘 살려낸 이들이죠. 드뷔시-풀랑크-그리그의 작품과 고흐의 작품을 연결하여 음악과 미술의 융합을 느낄 수 있게 구성하였습니다.
3~5일에는 해외 현악 4중주단인 퍼시피카 콰르텟, 보로메오 콰르텟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실내악 중에서도 현악 4중주 작품은 일회성으로 모여 연주하기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좋은 음정을 만들어 내기가 무척 까다롭기 때문이에요. 피아노가 추가되거나 다른 악기가 더해지면 약점이 많이 감춰지지만, 현악 4중주로만 연주하면 마치 유리나 거울에 손자국이 쉽게 보이듯 오점이 적나라하게 보입니다. 미국에서 호평받는 두 단체가 연달아 이번 축제 무대를 장식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축제의 끝은 타악 앙상블 모아티에와 퍼커셔니스트 박윤의 호흡으로 장식됩니다. 실내악 축제에 타악 앙상블이 구성된 것이 독특하네요.
축제를 8년 동안 맡아오면서 타악기 앙상블을 초청한 건 처음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 화려하고 시끌벅적하게 마무리하자는 의미도 담겨있죠. 제 제자가 박윤 씨의 동생이라 오랜 기간 그의 훌륭한 실력과 인성을 알고 있었는데, 이번 공연에서 섭외할 수 있어 무척 기뻤답니다. 함께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들은 박윤 씨가 선택했기에 그 실력 역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흔치 않은 편성이니 꼭 관람해 보길 추천드립니다.
이번 축제는 키즈 콘서트인 ‘앵무새의 합창 대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경험을 해볼 수 있을까요?
어린아이일수록 청각 능력은 뛰어납니다. 그들이 보다 친근한 방법으로 클래식 음악에 입문할 수 있도록 준비한 공연으로, 직접 노래를 부르며 소프라노·알토·테너·베이스 성부를 자연스럽게 익히고, 공연 이후 다양한 악기를 만져보는 체험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축제의 감독으로서, 올해와 앞으로 열릴 축제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전해주세요!
창원국제실내악축제가 어느덧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 축제가 아니었다면 제가 고향을 찾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고향 땅을 밟고 옛 스승님을 뵐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매년 기다려집니다. 또한 미국에서 지내는 제게 계속 음악감독을 맡겨주는 창원문화재단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의미 있는 축제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창원문화재단
이경선(1965~) 서울대, 피바디 음대,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미국 오벌린 음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재직했으며, 현재 인디애나 대학교 내 제이콥스 음악원에서 종신교수직을 맡고 있다. 말보로·아스펜·라비니아 페스티벌 등에 초청됐으며, 대전실내악축제 예술감독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