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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캉토로프
네 명의 작곡가로 그리는 자화상
낭만주의 음악으로 채워진 무대에서, 그의 내면을 마주하다
2019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결승 마지막 무대에서 알렉상드르 캉토로프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했다. 참가자 대부분이 러시아 작품을 택할 때, 그는 내면의 목소리를 따랐다. 브람스는 캉토로프가 지금까지도 고향 같은 깊은 연결고리를 느끼는 작곡가다. 청중도, 심사위원도 그 끈끈함이 느껴지는 연주에 사로잡혔다. 그 결과, 캉토로프는 우승과 함께 콩쿠르 역사상 단 세 번 주어졌다는 그랑프리를 석권했다.
콩쿠르 이후 세계적인 활동을 이어온 캉토로프는 브람스를 비롯해 낭만주의와 20세기 초 레퍼토리를 집요하게 파헤쳤다. 여러 장의 브람스 음반은 그의 감정적 깊이를, 몇 해에 걸쳐 발매된 리스트와 생상스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 음반은 폭발적인 에너지를 보여줬다. 2020년 발매된 우루과이 작곡가 호세 세레브리에르(1938~)의 피아노 협주곡 음반은 캉토로프의 호기심 가득한 면모도 보여준다. 오는 11월 발매될 음반(BIS)을 통해 그는 다시 브람스와 슈베르트라는 음악적 고향을 찾는다.
알렉상드르 캉토로프가 2022년 이후 다시 한번 내한한다. 이번 독주회에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네 작곡가, 브람스·슈베르트·리스트·라흐마니노프를 선보인다.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추구하고, 깊은 멜랑콜리를 표현하는 데 탁월하며, 실험정신과 강렬한 비르투오즘을 겸비한 캉토로프를 만날 기회다.
자신을 투영한 프로그램
브람스와 슈베르트, 그리고 리스트와 라흐마니노프. 이번 독주회를 통해 상반된 성격의 음악가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피아노라는 접점을 지녔지만 이들은 서로 굉장히 다르다. 이를 독주회에서 보여주고 싶었다. 브람스와 슈베르트는 연주자라기보다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이 강하다. 피아노를 위해 작품을 썼다기보다 작품을 위해 피아노를 활용했다. 리스트와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니스트로서 경험이 더 많았던 만큼 피아노 소리와 기술에 염두를 두고 작품을 썼다. 특히 라흐마니노프가 젊은 시절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1번에서는 아직 정제되지 않은 작곡가의 실험정신과 창의성을 볼 수 있다.
네 작곡가 중에서도 브람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여러 차례 표했다.
오랫동안 많은 작곡가의 음악을 접했지만, 브람스는 여전히 정신적으로 가까이 느껴진다. 그의 감성과 멜랑콜리함, 모든 것을 드러내지 않는 내향적인 모습 때문이다. 이성과 감성이 균형 잡힌 것도 매력적이다. 내가 추구하는 연습과 연주 방식이기도 하다. 연습 중에는 여러 시도를 통해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을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무대에서는 의식의 영역을 닫고 몸에 밴 가장 자연스러운 연주가 나오도록 한다. 또, 브람스는 구조적인 작품을 썼는데, 단 다섯 개의 음으로 시작된 곡이 변형을 거듭해 대작으로 완성되는 과정이 큰 울림을 준다. 대중음악의 요소를 적극 차용한 데서는 인간적인 면모도 느껴진다. 그는 내성적이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전한 인물이었다.
한편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당신의 연주는 리스트나 라흐마니노프를 연상시킨다. 두 작곡가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리스트는 호기심 많은 인물이었다. 평생 다양한 형식의 음악을 실험했고, 생의 말기에 인상주의와 무조음악 등도 시도했다. 미발표 작품들에서는 그의 혁명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이런 면이 내게서도 드러난다.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버지 연주를 따라 피아노로 비브라토를 표현하려는 시도도 했다.(웃음) 또, 악보를 연구할 때 위험을 감수하고 다양한 실험을 한다. 악보는 눈앞의 대상을 보고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상상한 것을 그리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어떨까?
가장 존경하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 라흐마니노프를 비롯해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1901~1961), 상송 프랑수아(1924~ 1970), 빅토리아 포스트니코바(1944~), 미하일 플레트뇨프(1957~) 등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타오르는 감정을 쏟아내는 연주자들에게서 큰 감명을 얻는다. 결과적으로 음악적 해방감,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한편, 이들은 각자 꽂힌 작품의 특정 요소에 집요하게 파고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내가 연주에 있어서 최근 고민하는 지점은 한 음을 끝까지 분명하게 끌어가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건반을 누른 뒤 신경 쓰지 않으면 음이 사라져 버리기 쉽다. 음향이 각기 다른 공연장에서 연주할 때마다 이에 특히 공을 들인다.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시간
부모님이 모두 바이올리니스트인데, 피아노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든 빨리 배우고 결과를 확인하는 것을 선호했던 터라, 바이올린보다는 직관적인 피아노에 끌렸다. 그런데 오히려 피아노가 박자, 페달 등 조절할 영역이 많은 악기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바이올린을 연주하지 않아서 다행인 가장 큰 이유는, 부모님과 실내악을 연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9년 콩쿠르 이후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궁금하다.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전까지는 개인적인 즐거움에서 비롯되어 연주했다면, 이제는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 커졌다. 특히 콩쿠르를 준비하며 작품 연구가 연주에 얼마나 큰 차이를 가져오는지 깨달았다. 콩쿠르 이후 수많은 피아니스트의 역사에 내가 포함되었다는 점, 그리고 굳이 시간을 내서 나의 연주를 보러오는 관객이 있다는 점을 곱씹으며 연주자로서 사명도 생겼다.
음악가로서 그리는 미래는 어떠한가?
‘나는 어떤 음악가인가’라는 질문에 장기적으로 답해가는 시간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주목받지 않은 작곡가 니콜라이 메트너(1880~1951)를 소개하고 싶다. 메트너는 라흐마니노프와도 친분이 있었던 작곡가로, 20세기의 쇼팽이라 칭하고 싶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다음 세대 연주자들이 그의 음악을 자연스럽게, 더 자주 접할 수 있게 된다면 뿌듯할 것 같다.
글 박찬미(독일 통신원) 사진 마스트미디어
알렉상드르 캉토로프(1997~) 프랑스계 영국인 피아니스트로, 16세에 프랑스 라 폴 주르네 페스티벌에서 데뷔했다. 2019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이며, 콩쿠르 사상 네 번째로 그랑프리상을 공동 수상했다. 2024년에 길모어 아티스트 어워드에서 최연소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며, 프랑스 정부로부터 슈발리에 문화예술훈장을 받았다.
Performance information
알렉상드르 캉토로프 피아노 독주회
10월 4일 오후 7시 30분 대구 달서아트센터 청룡홀
10월 5일 오후 3시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10월 6일 오후 5시 경기아트센터 대극장
10월 8일 오후 7시 30분 이천아트홀 대공연장
10월 9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0월 10일 오후 7시 30분 신세계남산 트리니티홀
브람스 랩소디 1번,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12번 ‘눈보라’,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1번, 바흐/브람스 ‘왼손을 위한 샤콘’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