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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틸슨 토머스/뉴욕필(협연 이매뉴얼 액스) 9.12~15
화려한 시작으로, 새 시즌!
노장 지휘자의 뒷모습에 뉴요커들이 보낸 기립 박수의 이유와 의미
2024/25 시즌 뉴욕 필하모닉의 오프닝 공연은 뉴요커들이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이매뉴얼 액스가 3일 동안 같은 프로그램으로 무대에 올랐다. 금요일 낮 2시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객석은 홀의 불빛만큼 공연장을 꽉 채웠다.
혁신을 아우르는 거장의 손길
무대 위로 오른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머스(1944~)와 이매뉴얼 액스(1949~)는 오래된 인연을 보여주듯 친구처럼 편안한 모습으로 함께 등장했다. 그가 연주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14번은 자주 연주되지 않은 곡으로, 2015년 7월 뉴욕필의 상하이 투어에서 앨런 길버트의 지휘로 액스가 협연한 바 있다. 22분 정도 길이의 이 협주곡은 E플랫 장조가 가진 조성적 특성상 웅장하게 시작하는 것이 특징이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 서곡, 교향곡 39번,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의 도입부를 들었을 때 공통으로 느껴지는 장엄함과 흡사하게 느껴진다.
오케스트라 전체가 연주하는 도입부에서는 다소 무겁게 시작하지만, 작품은 곧 열여섯 마디 만에 c단조로 분위기를 바꾸어 진행하면서 다른 색채감을 드러낸다. 청중에게 반전 매력을 선사해 주며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조성의 급격한 변화를 보여준 모차르트의 혁신적인 이 곡은 1784~1786년에 작곡된 11개의 피아노 협주곡 중 첫 번째 작품으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천천히 허공을 흐르는 마이클의 손은 다소 느리게 진행되었다. 그는 안전한 진행을 선택했지만, 처음에는 단원들과 호흡이 잘 맞지 않는 듯 느껴지는 구간도 있었다. 그러나 이매뉴얼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여유 있는 웃음으로 연주자들을 바라보며 뚜벅뚜벅 그의 길을 걸어갔다.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을 담은 그의 건반은 거침없이 탄력을 받았다. 이매뉴얼은 서정적이고 섬세한 화성의 특징을 잘 담아냈고, 모차르트가 표현하고자 했던 창의적 부분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연주로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무게감 있는 그의 존재가 확연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말러에 더해진 무게
후반부에는 말러 교향곡 5번이 연주됐다. 오케스트라들이 비교적 많이 연주하는 곡임에도 불구하고, 뉴욕필이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연주한 것은 2018년 상하이 투어였다. 뉴욕필이 말러 교향곡 5번을 처음 연주한 것은 1911년 11월 23일이다. 말러와 뉴욕필의 인연은 1907년, 말러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지휘자로 뉴욕에 체류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1909년 뉴욕필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했고, 1911년까지 재직했다. 당시 말러는 뉴욕필과 함께 연주하며 자신의 작품을 미국에 소개했다.
말러 교향곡 5번은 4악장 아다지에토가 유명하다. 현악기와 하프로만 구성되어 있어서 다른 악장과도 구별된다. 사색적이고 영혼을 울리는 음색,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느린 템포와 부드러운 선율로 깊은 감정을 잘 표현해 주었다. 말러가 아내 알마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고 알려진 이 곡은 단독으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으며, 완결성이 높아 영화 음악으로도 자주 사용되어 말러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곡이다. 또한 세르게이 쿠세비츠키·로버트 케네디·레너드 번스타인 등 많은 유명 인사의 장례식이나 추모 행사에서 연주되기도 했다.
마이클 틸슨 토머스는 보면대 위에 오롯이 올려져 있는 악보를 마치 장식품처럼 넘기지 않았고, 머릿속에 넣은 음표를 하나씩 꺼내듯 섬세하게 이끌어갔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므로 어떤 부분은 매끄럽게 이어가기에 다소 부족한 부분도 있었지만, 말러 5번의 ‘꽃’인 트럼펫을 필두로 금관 저음부까지 혼연일체를 이루며 웅장하게 끌고 나갔다.
마이클은 1995~2020년까지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음악감독으로 25년간 재직했다. 2021년 뇌암을 진단받아 수술했고, 2024년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가졌다. 뉴욕필과의 이번 공연에서 말러 교향곡 5번을 선택한 그는 악보에서 눈을 떼었던 1·2악장과 달리 4악장에서부터 악보를 보기 시작했다. 공연 초반에 완벽한 집중력으로 몰두했다면, 후반부로 가면서 약간의 긴장이 풀린 듯했으나 전반적으로 훌륭한 연주를 선보였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은 대부분 기립 박수로 뉴욕필의 시즌 첫 연주와 마에스트로 마이클 틸슨 토머스에게 환호를 보냈다. 많은 관객이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무대 뒤로 천천히 사라져가는 거장을 아쉬워하며 배웅했다.
글 양승혜(뉴욕 통신원) 사진 뉴욕 필하모닉
2024/25 뉴욕 필하모닉 시즌 임윤찬부터 존 애덤스까지
뉴욕 필하모닉은 2024년 하반기에 클래식 음악의 정통성을 지키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이어가기 위한 다양한 구성을 담은 폭넓은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10월에는 피아니스트 비킹구르 올라프손이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10.4~8)을 연주하며, 쇤베르크의 작품이 연주되는 양일간(10.10·13) 길 샤함이 협연자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선보인다. 또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클라리네티스트 앤서니 맥길이 10월 23일 2회에 걸친 공연을 예정하고 있다.
11월에는 수잔나 멜키가 라벨의 작품을 비롯해 루카 프란체스코니(1956~)의 뉴욕 초연곡을 위해 지휘봉을 잡는다(11.1·2). 더불어 이번 시즌 뉴욕 필하모닉의 아티스틱 파트너인 작곡가 존 애덤스(1947~)의 작품도 포디엄에 오를 예정(11.14·16). 피아니스트 예핌 브론프만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한다(11.20).
특별히 11월 27일~12월 1일에는 임윤찬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 공연이 기다리고 있다. 연말을 맞이하여 헨델의 대표작인 ‘메시아’ 공연(12.11~14)이 예정되어 있으며, 영화음악 작곡가 존 데브니(1956~)의 ‘엘프’도 연주(12.19~22)될 예정이다.
양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