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먼레브레히트칼럼 | 2012
영국의 평론가가 보내온 세계 음악계 동향
훌륭한 지휘자의 아들
음악의 재능은 유전되는가?
인스타그램에 귀여운 동영상이 하나 뜬다. 서너 살쯤 돼 보이는 사내아이가 이탈리아의 한 오페라 하우스 지휘자석에 앉아 베토벤 교향곡을 배경 삼아 지휘봉을 휘두른다. 이어지는 클래식 FM 계정의 환호 섞인 댓글, “귀여워요!”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이 꼬마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제노바의 카를로 펠리체 극장 지휘자인 프란체스코 이반 치암파(1982~)다. 그는 마에스트로의 재능이 혈연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시사하고자 했을 것이고, 이 가설은 점점 퍼져 나가는 듯 보인다.
우리 시대 지휘 명가(名假)
인스타그램을 닫자마자 독일 서부 도시 마인츠의 감독 교체에 대한 뉴스가 떴다. 이는 나의 개인적인 사항인데, 내 조부는 1885년 마인츠를 떠났고 우리 가족 중 그곳으로 돌아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마인츠로 향하게 될 이 젊은 음악 총감독(Generalmusikdirektor)의 미래는 그의 성이 익숙했기에 더욱 밝았다. 그의 이름은 가브리엘 벤차고. 인디애나폴리스 심포니·베른 심포니·예테보리 심포니의 저명한 음악감독·수석지휘자로 알려진 아버지 마리오 벤차고(1948~) 덕분에 이미 친숙한 이름이었다. 아들이 아버지만큼 훌륭할지는 시간이 말해줄 테지만 말이다.
벤차고 뿐만이 아니다. 구하기 어려운 지휘봉을 손에 넣은 지휘자의 아들이 현재 대여섯은 된다. 일부만 꼽자면 BBC 지휘자 사카리 오라모(1965~)의 아들 타비 오라모(1990~), 쿠르트 마주어(1927~2015)를 똑 닮은 아들 켄 다비트 마주어(1977~), 정명훈(1953~)의 아들 정민(1984~), 스즈키 마사아키가 창단한 ‘바흐 콜레기움 재팬’의 계승자 스즈키 마사토(1981~), 얀 파스칼 토틀리에(1947~)의 아들 막심 토틀리에가 있다. 모두 에이전시와 계약해 앞날이 유망한 이들이다.
일부는 이름을 숨긴다. 프랑수아 로페즈 페르는 아버지 헤수스 로페즈 코보스(1940~2018)가 몸담았던 미국 신시내티 심포니에서 지휘했으며, 기사 작위를 받은 한 영국인 지휘자의 아들은 가명으로 전 세계를 누비며 지휘하고 있다.
또한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두 스위스인은 몽블랑의 위상을 키웠다. 아르민 조르당(1932~2006)의 아들 필리프 조르당(1974~)은 빈 슈타츠오퍼의 음악감독, 마르셀로 비오티(1954~2005)의 아들 로렌초 비오티(1990~)는 네덜란드 국립 오페라의 음악감독이다. 둘은 유년 시절 부친을 잃었다.
더 유명한 예로는 네메 예르비(1937~)의 장자 파보 예르비(1962~), 미하일 유롭스키(1945~2022)의 아들 블라디미르 유롭스키(1972~), 아르비츠 얀손스(1914~1984)의 아들 마리스 얀손스(1943~2019)가 있다. 세 사람 모두 뛰어난 아버지가 소련의 통치하에 억압받는 것을 보고 본인만의 길을 개척하게 됐다. 현재 블라디미르 유롭스키는 독일 뮌헨의 바이에른 슈타츠오퍼를, 파보 예르비는 스위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이외에도 다른 예는 더 있다. 여기서 지금껏 설명한 것은 지휘계의 족벌주의의 음모라기보다는 일상적인 교육, 윤리적 본보기와 상업적 조작에 따라 다양하고도 광범위하게 숨겨진 음악 기능의 전승에 가깝다. 이제 남은 이야기도 계속 집중해 주길 바란다.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일전에 마리스 얀손스는 유년 시절 많은 시간을 아버지가 라트비아 리가의 음악가들과 요술을 부리는 걸 구경하며 보냈다고 내게 말한 바 있다. 파보 예르비는 아버지가 소련 점령 시절의 에스토니아에서는 구할 수 없었던 악보로 여행 가방을 가득 채우느라 스웨덴에서 가진 돈을 모조리 쓰는 걸 보았다. 쿠르트 잔덜링(1912~2011)의 세 지휘자 아들 토마스(1942~), 슈테판(1964~), 미하엘(1967~)은 아버지의 친우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로부터 생존 기술을 배웠다.
지휘자의 자녀는 특권을 손에 쥐고 태어난다. 베를린의 한 학생은 내게 베를린 필하모닉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일요일 점심 식사 자리에서 칼과 포크를 휘두르는 모습에서 오케스트라 지휘에 대해 가장 많이 배웠다고 설명했다. 지휘는 흐릿하고 막연한 예술이다. 지휘봉을 휘두르는 행위는 위협이자 주문이고, 지휘는 사기꾼이 가장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음악의 자리이다.
사기를 칠 수 없는 영역은 지식과 기술, 음악에 몰입한 삶에서 나오는 특징과 음악을 새롭게 창조하려는 억제할 수 없는 욕구이다. 아르비츠 얀손스가 지휘한 희귀 소련 음반인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을 들으며, 아버지의 경험을 흡수하여 그걸 새로이 변형할 방법을 마음속으로 그려내는 어린 마리스 얀손스를 나는 곧바로 상상할 수 있었다. 실제로 리허설 중간에 악단의 의자를 좌우로 1mm씩 움직여 배치하는 마리스를 보곤 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작용한 경우도 있다. 지휘자의 아들로는 가장 유명한 카를로스 클라이버(1930~2004)는 몹시 복잡한 오페라 ‘보체크’부터 평범하기 그지없는 ‘박쥐’에 이르기까지 아버지 에리히 클라이버(1890~1956)의 대표작을 지휘했으나, 그의 지휘는 아버지와는 달랐다.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 보았던 것을 해체하여 생기 넘치는 긴장으로 발전시켰다. 카를로스와 함께 지냈던 빈 필하모닉 연주자들은 그를 지금껏 만난 지휘자 중 가장 매력적인 사람으로 여겼다. 이는 그가 물리쳐야만 하는 ‘마에스트로의 아들’로 살았던 시간에서 기인한 것이다. 에리히는 생전에 아들을 단념시키기 위해 사활을 걸고 그가 지휘자의 길을 걷는 것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음악 산업이 지휘자의 아들을 선호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름이 가진 인지도가 희귀한 분야에서는 저명한 성을 달고 있는 젊은 지휘자로 많은 설명과 홍보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물론 에이전트도 소중한 고객이 “저희 아이 잘 부탁합니다, 이렇게 재능이 넘칠 수가 없어요”라고 말한다면 방도가 없을 것이다. 런던을 기반으로 하는 한 에이전시는 유명 지휘자 아버지를 등에 업은 지휘자 서넛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같은 행보를 보인 딸은 아직까진 없다.
그렇지만 귀하디 귀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재능이 1세대에서 MZ세대까지 이어진다는 생각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잘못됐다. 물론 J.S. 바흐와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들은 작곡가로 명성을 얻기도 했고, 프랑스의 쿠프랭, 카자드쥐, 토틀리에 가문은 수 세대에 걸쳐 음악계에 종사했으며 이탈리아 베니스의 바사노 가문은 훨씬 더 오랜 기간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이는 일반적인 경향과는 거리가 먼 예외이다. 모차르트의 아들과 베토벤의 조카는 한직의 공무원이었고, 슈만의 자손은 음악계를 떠났다. 해군이 된 베를리오즈의 아들은 쿠바 아바나에서 눈을 감았고, 시벨리우스의 여섯 딸은 저택에 머물며 영지를 관리했다. 음악계의 천재성은 동일한 유전자풀에서 두 번 발현하지 않으며, 지휘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근래에 보이는 유일한 ‘푸르트벵글러’는 독일 방송에 나오는 탐정 시리즈의 주인공 마리아 푸르트벵글러뿐이다. 누구의 아들로 이름 불리던 시대는 끝났다.
번역 evener
노먼 레브레히트 칼럼의 영어 원문을 함께 제공합니다.
본 원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Son of a good conductor
A cute little video pops up on Instagram. What you see is a little boy, maybe three years old, sitting in the conductor’s seat in an Italian opera house and waving a baton as long as himself at a background recording of a Beethoven symphony. ‘Adorable!’ cried ClassicFM.
Up to a point. The boy’s father is Francesco Ivan Ciampa, conductor at the Carlo Felice Theatre in Genoa. His intention, we may assume, was to imply that maestro talent runs in the genes. That supposition seems to be growing more widespread.
Barely had I shut the Insta link* than news popped up of regime change in Mainz, a town in western Germany. This is personal to me. My grandfather left Mainz in 1885 and, while none of us has ever been back, the prospect of a young Generalmusikdirektor was cheering, the more so since his name was familiar. Venzago, it is, Gabriel Venzago. Familiar because he is the son of Mario Venzago, who used to be the highly capable music director of Indianapolis, Berne and Gothenburg. Is the son as good as the dad? Time will tell.
Venzago is not alone. There is half a football team of son-ofs who are presently skinning up the slippery pole. To name a few of the likelier lads: Taavi Oramo, son of BBC conductor Sakari; Ken-David Masur, chip off the late Kurt; Min Chung, born of Myun Whung; Masato Suzuki, heir to the Bach Collegium Japan. Maxime Tortelier is son of Yan-Pascal. All have agency contracts and good jobs in prospect.
Some go in disguise. François López-Ferrer conducted in Cincinnati, where his father Jesús López-Cobos was formerly in charge. The son of a knighted British baton conducts around the world under an assumed name.
Two Swiss orphans scaled Mont Blanc: Philippe (Armin) Jordan is music director of the Vienna State Opera and Lorenzo (Marcello) Viotti of Netherlands Opera. Both lost their fathers at a formative age.
More prosperous still are Paarvo Järvi, firstborn of Neeme; Vladimir (Michail) Jurowsky and Mariss (Arvid) Jansons. All three saw their outstanding fathers suppressed under Soviet rule and were incentivised to make their own way. Jurowsky now heads Bavarian State Opera in Munich, Paavo Järvi has the Zurich orchestra.
And there are more. What we are seeing here is not a conspiracy of podium nepotism but a diverse and largely hidden transmission of a musical function by means of informal tuition, ethical example and commercial manipulation. Do I still have your full attention?
Mariss Jansons told me once he spent every spare minute of his boyhood watching Arvid make magic with his Riga musicians. Paavo Järvi saw Neeme spend every cent he earned in Sweden, filling a suitcase with scores unobtainable in Soviet Estonia. The conductor sons of Kurt Sanderling – Thomas, Stefan and Michael – learned survival skills from their father’s close associate, Dmitri Shostakovich.
A conductor’s child is privileged simply by sitting at table. A Berlin student advised me he learned most about directing an orchestra from watching Wilhelm Furtwängler of the Berlin Philharmonic wield a knife and fork at a private Sunday lunch. Conducting is a nebulous art. Waving a stick implies threats and spells. Conducting is the musical role a charlatan can most easily simulate.
What cannot be faked is the knowledge, skill and character that comes from a life’s immersion in music, along with an uncontainable urge to reshape it. Listening to a rare Soviet recording of Arvid Jansons conducting the Tchaikovsky Pathétique, I can readily imagine the young Mariss absorbing his father’s experience and envisaging how to remould it. In rehearsal breaks, I would see Mariss move one orchestral chair after another a millimetre to the left or right.
There can be an Oedipal impulse at work. The most famous son-of, Carlos Kleiber, conducted his father Erich’s signature operas – from the ultra-complex Wozzeck to the utterly trivial Die Fledermaus. But no Carlos performance is like Erich’s. Carlos deconstructed what he saw as a child, fostering a scintillating conflict. Vienna Philharmonic players who worked with Carlos consider him the most fascinating conductor they ever faced. Much of that came from being the son of a maestro whom he had to defeat. Erich had done everything in his power to discourage and impede Carlos from becoming a conductor.
The music industry has reasons for favouring the sons of conductors. In a field where name recognition is rare, a young baton with an established brand name saves a lot of explanation and promotional expense. The agent, anyway, has no choice if a cherished client says ‘please sign up my boy, he’s ever so talented…’ One London-based agency has a neat little pack of nepo-batons, three or four of them. No daughter has yet been advanced.
Yet, despite rare successes, the idea that musical talent passes from Gen-1 to Gen-Z is fallacious to the point of absurdity. True, there were sons of Johann Sebastian Bach and Johanns Strauss who earned a name as composers and there are families in France called Couperin, Casadesus and Tortelier who keep the business running long past its sell-by. The Bassanos of Venice had an even longer run.
But these are isolated exceptions in a general drift to mediocrity. Mozart’s son was a minor civil servant, as was Beethoven’s nephew. Schumann’s progeny fled the field. Berlioz’s son died a sailor in Havana. The six daughters of Sibelius stayed home and managed the estate. Genius in music does not strike twice in the same gene pool. Conductors are made, not born to it. The only Furtwängler you’ll see nowadays is Maria, star of a detective series on German television. The sons have set.
글 노먼 레브레히트 영국의 음악·문화 평론가이자 소설가. ‘텔레그래프’지, ‘스탠더즈’지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블로그(www.slippedisc.com)를 통해 음악계 뉴스를 발 빠르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