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STIVAL 1
대전그랜드페스티벌 11.6~10
예술감독 장한나
젊은 예술가들의 초상
39세 이하 젊은 음악가들의 개성과 정체성을 담아낼 그녀의 야심
지난 10월 초, 런던에서 낭보가 날아왔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그라모폰 어워즈 수상 소식으로, 그는 특별상인 젊은 예술가 부문까지 2관왕에 올랐다. 이 외에도 올 한 해 세계 유수 콩쿠르의 입상자 명단에서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의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이 세계 무대에서 이뤄낸 발군의 성적은 비단 최근의 일이 아니다. 젊은 음악가들이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에서 음악을 배우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세계 곳곳에 한국 음악가들의 이름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첼리스트 장한나(1982~)의 등장도 그즈음이었다.
첼리스트에서 지휘자, 그리고 예술감독으로
1994년 열한 살의 나이로 파리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장한나는 2003년 그라모폰 어워즈 협주곡 부문(‘프로코피예프: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 첼로 소나타’)에서 수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첼리스트로 이름을 알렸다. 지난 10월 초, 런던 심포니를 이끌고 내한 무대에 오른 안토니오 파파노는 당시 함께 음반을 녹음했던 장한나에 대해 “그렇게 강렬하고 뛰어난 젊은 재능을 본 기억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첼리스트”라고 회상했다.
한국인 첼리스트로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한 그는, 2007년 25살의 나이에 성남 국제 청소년 관현악 페스티벌에서 서울시청소년교향악단, 중국 심양청소년교향악단, 독일 브란덴부르크청소년교향악단 등의 단원들이 고루 섞인 연합 청소년관현악단의 지휘를 맡으며 지휘자로 정식 데뷔했다. 장한나는 현재 노르웨이의 트론헤임 심포니의 상임지휘자이자 예술감독, 함부르크 심포니의 수석 객원지휘자로서 활발한 지휘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가 노르웨이와 독일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새로운 페스티벌의 예술감독 직을 제안했다. “후배들을 응원하고 싶은 제 마음과 이번 페스티벌의 취지가 잘 맞아 기쁜 마음으로 함께하게 되었어요.” 데뷔 이래 ‘한국 젊은 음악가의 초상’이었던 장한나는 이제 ‘장한나의 대전그랜드페스티벌’(11.6~10)의 예술감독으로서 국내외 젊은 음악가들을 대전으로 초대한다.
내면의 음악을 찾아서
대전그랜드페스티벌은 인재 발굴과 후배 양성을 모토로, 국내외 실력 있는 39세 이하의 젊은 음악가를 위한 국내 유일의 페스티벌이다.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장한나는 젊은 음악가들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어린 시절부터 연주자로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봤다. “제 음악 인생에는 언제나 훌륭한 스승과 선배들의 애정 어린 가르침이 함께했습니다. 과거의 선배들이 그러했듯, 저 역시 후배 연주자들에게 지금까지 받아온 사랑을 나누고 싶어요.”
이번 페스티벌의 주제는 ‘Be Yourself(너 자신이 되어라)’다. “음악적으로 특정된 주제가 아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페스티벌의 서막을 연 것. 장한나는 39세 이하의 젊은 음악가와 함께하는 페스티벌의 특성을 고려해 ‘내면’과 ‘정체성’에 초점을 맞췄다.
“올해 그랜드페스티벌에서 선보일 작품의 작곡가들은 모두 독특한 개성을 지닌 괴짜들이에요. 각자의 개성이 넘치는, 강인하고 뚜렷한 정체성의 대가들이죠. 쇼스타코비치는 억압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음악의 정체성을 지켰고, 쇼팽은 피아노에 가슴 아린 아름다움을 담았습니다. 슈베르트는 짧은 곡 하나에도 인생의 격렬한 아름다움을 자신만의 목소리로 표현했고요.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자신의 전부를 곡에 담아냈습니다. 지금의 젊은 음악가들도 음악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더 깊고 당당하게 표현해 나갔으면 합니다.”
페스티벌에서 만날 젊은 음악가들
청년기는 나 자신을 찾고 정의하는 시기다.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치열한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젊은 연주자들이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곡들로 무대를 꾸릴 예정이다. 페스티벌의 첫날에는 장한나가 지휘하는 대전아트필하모닉이 바이올리니스트 김계희와 함께 페스티벌의 서막을 열고, 축제 기간 디토 체임버 앙상블, 에스메 콰르텟, 첼리스트 즐라토미르 펑, 피아니스트 김다솔,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 소프라노 박혜상과 베이스 스테파노 박, 첼로가야금이 연주를 이어간다. 마지막 날에는 대전아트필하모닉이 다시 한번 무대에 올라 첼리스트 최하영과 호흡을 맞춘다.
대전아트필하모닉은 대전 지역에서 활동하는 만 39세 이하의 청년 음악가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다. 이들은 이번 페스티벌에서 브람스의 교향곡 두 곡으로 축제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
“브람스는 평소 과묵한 성격으로 친한 지인들에게도 속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다고 해요. 하지만, 작품에서는 그의 다양한 면모가 드러납니다. 교향곡 2번에서는 명랑함이, 4번에서는 우울함이 나타나죠. 이번 페스티벌의 주제를 담아 첫날과 마지막 날, 그의 정체성이 담긴 두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대전에서 누릴 음악의 기쁨
오랜 시간 외국에서 생활하며 여러 도시를 거쳤지만, 대전은 장한나에게 특별한 도시로 기억된다. “한국에서 전국 투어를 할 때마다 꼭 대전예술의전당에 들렀어요.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마음 한편에 대전 관객분들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죠. 개인적으로는 돌아가신 외조부가 현충원에 계셔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지역의 음악축제는 지역민과 지역 예술인들의 관심과 참여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에 대전그랜드페스티벌은 대전 지역의 19~24세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즐라토미르 펑, 박혜상의 마스터클래스를 열고, 19세 이하 대전 지역 청소년을 대상으로 공연 리허설 관람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에는 악기 연주가 가능한 시민들이 무대에 올라 오케스트라와 함께 피날레 무대를 꾸민다.
장한나는 지역의 음악축제로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대전그랜드페스티벌만의 차별점으로 “클래식 음악의 기쁨을 깊고 넓게 나누는 것”을 꼽았다. 그는 음악의 모든 것을 담는다는 뜻의 ‘그랜드(Grand)’를 실현하기 위해 리사이틀, 실내악, 오케스트라까지 다양한 편성의 ‘깊고 넓은’ 공연을 준비 중이다.
이번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으며 음악가로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됐다는 그는, 스승 로스트로포비치가 남긴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있었다.
“당시 열한 살이었던 제게 선생님께서 가장 먼저 해주신 말씀은 ‘인생의 기쁨을 잃지 말아라’였어요. 제게 음악은 기쁨입니다. 한계 없는 기쁨은 저를 음악에 푹 빠져 살게 했죠. 이번 페스티벌을 통해 연주자, 그리고 관객 여러분 모두가 끝없는 기쁨을 만끽하는, ‘그랜드’한 경험을 누릴 수 있길 바랍니다.”
글 홍예원 기자 사진 대전예술의전당
장한나(1982~) 11세에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했다. 하버드대(철학), 줄리아드 음악원(지휘)에서 공부했고, 로린 마젤을 사사했다. 2013년 카타르 필하모닉 상임지휘자를 거쳐 오슬로 필하모닉, 예테보리 심포니 등에서 지휘 경력을 쌓았으며, 현재 트론헤임 심포니의 상임지휘자 및 예술감독, 함부르크 심포니의 수석 객원지휘자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