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GOING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
변화한 나를 마주하는 시간
솔리스트이자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악장, 그의 이중생활
올해 벽산예술음악상(벽산문화재단)의 수상자는 이지윤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에 그의 올해 일정을 살펴보니, 감탄사와 함께 수긍이 갔다. 오페라, 발레, 콘서트의 음악을 모두 책임지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악장으로 활동하며, 모교인 베를린 한
스 아이슬러 음대에 출강하여 후학을 양성하고, 동시에 지난 6월에 국내에서 리사이틀을 한 번, 그리고 이달에 다른 프로그램으로 다시 리사이틀, 12월에는 큰 협연이 두 번 예정되어 있다.
이번 인터뷰를 위해 연락을 취했을 때, 그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바쁜 일정을 소화 중이었다. 인터뷰 직전에는 제자와 통화하며 꼼꼼히 조언도 나누고 말이다. 영상 통화로 진행되는 인터뷰에서 그가 자주 사용한 어휘는 ‘기대된다’와 ‘재미있다’였다. 지난밤 연주 이후, 오전에 시작한 인터뷰로 피곤을 느낄 법도 한데, 그의 표정은 지난 피로보다 앞으로의 시간에 더 흥미를 표하고 있었다.
마드리드는 어떤 일정 때문에 머물고 있나요?
샌프란시스코 발레의 ‘백조의 호수’ 공연(10.15~22)에 오케스트라 연주를 위해 와 있습니다. 제가 테아트로 레알 마드리드 오케스트라의 객원 악장이거든요. 어제 공연을 시작했고, 매일 공연이 있습니다. 이렇게 8회의 공연을 마치면 아트센터인천에서 경기필(지휘 최수열)과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러 갈 예정이에요.
연말에 국내 공연이 상당히 많네요! 당장 11월에 리사이틀과 12월에 두 번의 협연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베를린에서 지내다 보니 오다가다 하기보단 집중적으로 연주하는 걸 선호하게 됩니다. 11월부터 한국에 들어와서 12월까지 머무를 예정입니다.
이제는 완연한 ‘베를리너’
유학부터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악장까지, 베를린에서 지낸 시간도 꽤 길겠군요. 전(前) 예술감독인 다니엘 바렌보임(1942~)에게 배운 점이 많다고 전하기도 했는데, 이번 시즌부터는 새로운 예술감독인 크리스티안 틸레만(1959~)과 함께하게 됐습니다.
틸레만이 뽑히게 된 이야기는 무척 극적이죠. 처음 틸레만과 악단이 만난 것은 2022년 브루크너의 작품을 연주하는 공연이었어요. 그때 지휘자는 블롬슈테트로 예정되었고 저희는 리허설까지 모두 마쳤는데, 하루 전날 블롬슈테트가 계단에서 부상을 당해 공연이 위기에 처했어요. 그때 당일에 구해진 지휘자가 틸레만이었죠. 한 번의 리허설만으로 진행된 공연이었는데, 평이 무척 좋았어요. 틸레만도 만족한 표정이었죠. 그러곤 더 커다란 일이 찾아왔어요.
2022년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공연한 니벨룽의 반지 이야기군요!
맞아요. 저희 극장에서 10년 동안 정성을 들인 프로덕션이었죠. 새로운 프로덕션을 위해 무대 세트도 전부 새로 만드는,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어간 프로젝트였어요. 그런데 그 개막의 열흘 전 쯤에 바렌보임의 건강 문제로 지휘가 취소됐죠. 극장은 정말 비상이었어요! 너무 중요한 공연이라 신인들에게 맡기는 것은 곤란했고, 거장들은 시간적 여유가 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때 마침 틸레만이 1~2주 동안 시간이 된다고 하여 정말 급하게 다시 베를린 슈타츠오퍼를 방문하게 됐습니다. 저희 극장에겐 그야말로 구원자였죠.
틸레만은 2022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아시아 투어에도 바렌보임을 대신하여 내한했죠. 예술감독과 악단의 호흡은 잘 맞나요?
저희 악단은 독일 레퍼토리에 집중된 오케스트라라서 틸레만과 같이 독일 작품에 경험이 많은 지휘자가 큰 도움이 됩니다. 2023년에 바렌보임이 사임하고, 누가 예술감독이 될지 귀추가 주목됐는데, 틸레만이 제격이었어요. 그는 베를린 출신이기도 하고, 베를린 도이치오퍼·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시즌 첫 지휘에는 현재 명예상임지휘자가 된 바렌보임도 관객으로 왔는데, 정말 훈훈한 공연이었다고 전해 들었어요.
2024/25 시즌 작품에서 기대 중인 공연이 있다면요?
시즌 끝자락에 있는 R. 슈트라우스 ‘침묵의 여인’의 새 프로덕션입니다. 이 작품은 독일에서도 거의 연주가 안 되던 작품이라서,어떤 새로움으로 이를 역사에서 다시 끌어낼지 기대가 됩니다. 나아가 앞으로 7년 동안 틸레만이 저의 ‘보스’가 될 텐데, 함께 다닐 나날이 막연히 기대되네요!
지금까지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악장으로 지냈던 시간도 마찬가지로 7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콘서트 오케스트라 악장이 아니라 오페라 극장 악단의 악장이기에 겪을 수 있던 장점은 무엇인가요?
그동안 오페라 ‘토스카’만 해도 50회는 공연했을 거예요. 그 과정에서 10명이 넘는 지휘자를 만났고, 10명이 넘는 토스카를 보았습니다. 관현악곡만 연주하는 악단은 아무리 같은 곡을 연주해도 이 짧은 시간에 한 작품을 50회나 연주할 수 없었을 거예요. 50회면 악보도 손에 익어서 이제 시야를 더 넓게 쓸 수 있습니다. 같은 악구를 이 사람은 이렇게, 저 사람은 저렇게 연주하는 것을 관찰할 때면, 저의 연주에도 많은 공부가 됩니다. 그래서 제 리사이틀에서도 이미 해봤던 작품을 꺼내서 연주하기로 했어요.제가 배운 것을 스스로 비교할 수 있도록 말이죠.
연말은 ‘코리안’으로서 보내기
11월 21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진행하는 리사이틀 프로그램(피아노 보리스 쿠스네조프)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경험해 본작품으로 묶은 것이었군요.
처음 공연하는 작품도 물론 섞여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10년 전부터 연주해 본 곡 중 다시 해보고 싶은 작품을 고르고자 했어요. 그리고 모든 곡이 서로 대조가 될 수 있도록 골랐습니다. 슈베르트 소나타가 대표적이죠. 꽤 오래전에 연주한 작품이거든요.
이번 무대를 위해 처음 연주해 본 작품은 무엇인가요?
루토스와프스키의 파르티타입니다. 저는 젊은 연주자의 큰 숙제는 현대곡을 연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베를린에서는세상을 떠나신 루토스와프스키 작품을 ‘현대곡’이라고 칭하지 않겠지만요. 어쨌든 프로그램 안에서 비교적 최근의 곡을 꼭 포함하고 싶었습니다.
프로그램 속 드보르자크의 ‘인디언 애가’ 역시 낯선 작품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매우 극적인 작품입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듯해서 드보르자크의 초기 작품처럼 들리기도 하죠.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2번은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버전도 존재하죠. 이렇게 다른 버전이 있는 작품은 연주할 때도 도움이 되는지요?
다른 버전은 재미로 감상할 때가 있지만 저의 연주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루토스와프스키의 파르티타도 오케스트라 버전이 존재하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예요. 제가 연주하는 버전이 중요한 것이죠. 프로코피예프의 이 소나타는 반짝이고, 타악기적인 요소가 있어서 이날의 프로그램을 뷔페처럼 만들어 줍니다.
12월에는 두 번의 브람스 2중 협주곡 공연이 이어집니다. 한 공연에서는 첼리스트 최하영과 다른 한 공연에서는 첼리스트 심준호와만납니다. 두 분과의 인연이 있나요?
최하영 씨도 베를린에서 지내고 있어서, 가끔 마주칠 때면 인사를 하고 지냅니다. 하영 씨의 친동생(바이올린 최송하)도 현재 베를린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콜야 블라허 교수의 클래스에서 함께 하고 있어서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심준호 씨와는 최근에 알게 됐습니다. ‘콘체르토 마라톤 시리즈’를 같이 연주하는데, 한 공연에서 협주곡 두 작품을 연속해서 연주하는 것은 난생처음이라 기대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를 전해주세요!
작은 목표를 계속 만들고, 그걸 계속해 나가는 것입니다. 공연을 위해 도시를 다니는 여행, 그리고 거기서 연주하는 음악이 제게는 모두 저를 변화하게 하는 삶의 활동으로 느껴지거든요. 이 활동의 길을 쭉 따라가고 있어요. 20대 때 직장을 찾고, 레퍼토리를 넓히는 일은 애피타이저였지요. 이제 메인 디쉬인 30대가 시작되는 기분이 무척 즐겁습니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금호문화재단
Performance Information
벽산예술상 시상식
11월 11일 오전 11시 아트선재센터 아트홀
이지윤·보리스 쿠스네조프 듀오 리사이틀
11월 21일 오후 7시 30분 금호아트홀 연세
슈베르트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2중주’ D574, 루토스와프스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파르티타 외
소피 데르보/KBS교향악단(협연 이지윤·최하영)
12월 5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브람스 비극적 서곡, 2중 협주곡, 교향곡 1번
‘콘체르토 마라톤 프로젝트-이지윤·심준호’
12월 14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슈만 첼로 협주곡,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및 2중 협주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