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그가 다시, 독일의 음향을 두드린다
사이먼 래틀 &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사이먼 래틀은 2023/24 시즌부터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함께 하고 있다. 베를린·런던을 거쳐 다시 뮌헨으로! 리버풀 출생의 지휘자는 여전히 항해 중이다. 그간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이 쌓아온 전통은 무엇이며, 래틀이 몰고 올 새 바람은 무엇일까
총괄 허서현 기자
INTERVIEW 상임지휘자 사이먼 래틀 _허서현
COLUMN 세계의 방송교향악단 _류태형
MEMORY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 _허서현
CEO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대표 니콜라스 폰트 _박선민
전통을 이어가고, 새 바람을 일으킬 지휘자
사이먼 래틀
사이먼 래틀의 은발과 뒷모습은 한국의 관객에게 나름 익숙하다. 1984년, 카라얀과 함께 처음 내한했던 베를린필은 2005년 래틀의 부임 이후 21년 만인 2005년에 다시 내한했고, 그 후로 베를린필의 내한 주기도 짧아졌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최근 내한 공연에 함께 했던 오케스트라가 매번 달랐다는 것. 2017년에는 베를린필, 2022년에는 런던 심포니, 그리고 오는 11월에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Bavarian Radio Symphony Orchestra, 이하 BRSO)이 함께 한다.
이 세 번의 내한 공연에 공통점이 있다면, 공연의 협연자다. 세 공연 모두 1부에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함께 했다. 분석해보면 래틀의 적극적인 아시아 투어는 오케스트라의 시장을 넓히는 데에 탁월했던 그의 감각적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으나, 결론적으로 그의 내한은 다양한 이유에서 언제나 관객에겐 초미의 관심사였다. 덕분에 공연 티켓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지만, 사이먼 래틀이 느낀 한국 관객의 열기는 뜨거웠을 것이다.
“한국 관객은 정말 특별해요. 저는 오래전부터 한국을 방문해 왔습니다. 한국 관객이 주는 느낌을 뭐라고 설명하는 게 좋을까요? 무척 강렬한 느낌을 받는데, 표현하자면 듣는 방식이 남다른 관객 같아요. 수동적이지 않은, 능동적 관객이며, 그 방식이 뭔가 깊이 있다고 느끼게 해줍니다.”
그가 내한할 때마다 동반자가 된 조성진 또한 그와 함께 ‘베를린필 협연 데뷔’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조성진은 이후 베를린필 2024/25 시즌 상주 음악가로까지 커리어가 이어졌다.
“피아니스트 조성진과의 첫 연주는 우연이었죠. 2017년 한국 공연의 협연자로 랑랑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가 건초염으로 연주를 취소해 급하게 조성진과의 연주가 결정됐으니까요. 사실, 처음 조성진에 대해 알게 된 건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추천이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자기가 인정하는 피아니스트에 대해 많이 말하는 편이 아닌데, 조성진에 대해 “다음 세대의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궁금하다면, 그의 연주를 들어봐야 한다”고 하더군요. 이번 공연에서도 그 ‘위대한 피아니스트’와 함께 하게 되어 기쁩니다. 한국이 사랑하는 피아니스트로 인해, 더 다양한 관객이 11월에 공연장을 찾는다면 좋겠네요. 그렇게 우리의 공연을 듣고, 관객이 더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래틀은 지금, 뮌헨의 거리를 거닌다
사이먼 래틀이 새롭게 자리 잡은 도시는 BRSO가 위치한 독일 바이에른주의 뮌헨이다. 그가 40대에 입성한 치열한 오케스트라의 도시 베를린보다는 작지만, 뮌헨 또한 유수의 오케스트라들을 자랑할 만한 음악 도시다. 대표적으로 BRSO를 비롯해 뮌헨 필하모닉과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가 명성을 유지한다.
이번 내한에서, 래틀과 BRSO는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을 선보인다(21일). 특히 뮌헨은 브루크너와 각별한 관계의 도시다. 한때 ‘브루크너 악단’이라고 인식되던 뮌헨 필하모닉과 함께, 지휘자 첼리비다케가 어마어마하게 느린 브루크너 해석을 역사에 남긴 곳이기도 하다. 첼리비다케/뮌헨 필하모닉의 브루크너 음반은 스튜디오 녹음실에는 발도 들이고 싶지 않아 했던 그의 성향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에서 여전히 회자하는 해석으로 남아 있다.
“뮌헨은 오랫동안 브루크너를 사랑한 도시였습니다. 뮌헨 필하모닉이 가진 브루크너의 역사에 대해서는,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지휘자 오스발트 카바스타(1938~1944)에 의해 시작된 전통이 있었죠. 이 당시의 녹음도 훌륭한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첼리비다케는 브루크너 전곡을 다뤘고, 그 전통은 매우 엄숙하고 장엄하며, 풍부한 연주였죠. 그러나 그것이 브루크너를 연주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지휘자들이 첼리비다케가 지휘한 브루크너 교향곡 4번보다 15분 이상 빠르게 연주하곤 합니다. 물론, 그의 해석이 준 교훈은 많아 결코 잊을 수 없죠.”
BRSO의 브루크너 음반 또한, 그간 이 악단을 거쳐 간 지휘자들의 명성만큼 다양하게 남아있다. 초대 지휘자 오이겐 요훔(DG/ 4749902)부터, BRSO의 자체 레이블(BR-KLASSIK)을 통해 마리스 얀손스·라파엘 쿠벨리크·로린 마젤의 연주가 남아있다. “브루크너 해석의 또 다른 전통은, BRSO의 오이겐 요훔에 의해 잘 남아있습니다. 그의 해석은 첼리비다케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역동적이며 경쾌합니다. 위대한 작곡가의 작품일수록, 그 곡을 연주하는 방법은 정말 많습니다. 아주 멋진 일이죠. 사실 이전 시대의 브루크너 연주는 훨씬 유연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음악이 점점 더 감정적으로 연주되었고, 이 현상은 전쟁을 겪은 음악가들의 트라우마가 반영된 것이라는 이론도 있습니다. 독일어로 ‘Pathetisch(격양된)’이라는 단어가 있어요. 영어의 ‘Pathetic’과는 의미가 다른데, 마치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Pathetique)’에서 느껴질 만한 특별한 정서를 의미합니다. 저는 브루크너 음악에서 이런 감정이 적용될 곳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브루크너는 말러의 방식처럼 마음을 드러내기 위한 음악이 아니고, 오로지 순수한 음악과 신앙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으니까요.”
브루크너의 음악 세계 속으로
2023년, 뮌헨에 도착한 사이먼 래틀에게도 이 도시가 품은 브루크너의 체취가 물신 느껴졌을 것이다(물론 그는 취임 이전에도 자주 BRSO의 객원 지휘를 도맡았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브루크너의 전통을 오케스트라에서 느끼고 있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베를린필 시절과 비교했을 때 저의 해석이 바뀌었느냐 한다면, 그 또한 맞습니다. 덜 과장되고, 덜 무겁게, 음악이 스스로 말할 수 있을 만큼 더 긴밀함을 유지하도록요. 하지만, 해석이란 늘 진행 중에 있는 작업이고, 이다음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매일 아침 일어나서 생각해요. ‘지난주에 알았으면 정말 좋았을 것들을, 이번 주에 배웠다!’라고요. 사무엘 베케트가 말했듯, 음악에 있어서는 ‘더 나은 실패’를 시도할 뿐입니다.”
브루크너는 말러와 짝을 이뤄 자주 언급된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브람스와 슈만, 드뷔시와 라벨처럼. 그러나 래틀은 “막상 이 작곡가들을 알고 나면, 처음과 다르게 이들의 음악이 다른 경우가 많다”며, 브루크너와 말러의 차이점을 짚어낸다.
“브루크너와 말러는 비슷한 시기의 대표적인 작곡가였고, 길고 광대한 교향곡을 작곡했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습니다. 말러의 음악은 아주 세밀한 요소가 특징입니다. 숲으로 치자면 나뭇잎 하나하나부터 그 속에 사는 작은 동물까지 보이죠. 반면 브루크너의 음악은 숲 전체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제가 처음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났을 때 든 생각입니다. 당시 음악과 연관된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는데, 작은 비행기에서 수백 마리의 얼룩말이 달리는 것을 내려다보면서 유일하게 떠오른 음악이 브루크너의 곡이었습니다. 그만큼 그의 음악은 엄청난 크기를 넘나드는 느낌이 들죠.”
래틀과 BRSO의 내한은 이틀간 진행된다. 20일에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교향곡 2번을 선보이며, 21일에는 베베른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6개의 소품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 그리고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이 연주된다. 무엇보다 말러 교향곡 전곡·브루크너 교향곡 전곡으로 음악적 성숙을 인정받았던 래틀이 BRSO와 선보일 브루크너 연주는 작곡가의 탄생 200주년을 맞은 올해 공연계의 하이라이트다.
“그런데 미묘하게도, 브루크너 교향곡 9번에서는 그 음악이 갑자기 훨씬 복잡하게 변합니다. 마치 이 곡에서 말러와 손을 잡은 것처럼요. 말러의 미완성 교향곡 10번과 브루크너의 미완성 교향곡 9번 아다지오 시작 부분을 들어보면, 이들이 추구한 방향이 매우 유사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브루크너의 변화는 단순히 그가 점점 더 정교한 작곡을 추구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시기는 그의 깊은 신앙이 흔들리고, 신체와 정신의 건강이 악화하고 있었죠. 이때의 브루크너는 나무 아래에서 이파리의 수를 세다가, 개수를 잊어버릴 때마다 다시 처음부터 세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강박증에 가까웠다고도 할 수 있죠. 교향곡 9번에도 이 느낌을 찾을 수 있습니다. 19세기를 통틀어 놀라운 음악 중 하나인 이 곡을, 한국에서 선보일 순간이 기대됩니다.”
그는 언제부터 지휘자를 꿈꿨나
“모든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 훌륭함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것은 지휘자의 몫이자 큰 도전이고요. 이를 위해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고요한 바다 위에서, 아름다운 경치나 즐기기 위해 항해하는 여객선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싶진 않습니다. 더 깊이 파고들고, 새로운 높이를 마주하며 미지의 것을 발견하는 항해에 관객이 초대되길 바라죠. 때론 약간의 혼란을 마주하더라도요.”
분명한 것은 래틀은 견고한 오케스트라의 벽을 (그 벽이 무너지느냐의 여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두드리는 지휘자라는 사실이다. 피아니스트 이모젠 쿠퍼는 “오랜 전통들이 뒤로 후퇴하는 것 같을 때, 조금씩 흔들어 새로운 걸 시도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사이먼은 언제나 그랬다”라고 언급했다.
어딜 가나 지평이 넓어지도록 악단을 다지는 그의 모습을 보면, 그 본능이 어쩌면 ‘타악기 연주자’로 음악을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존재했을지 모른다는 공상에 빠지게 된다. 1955년,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난 사이먼 래틀에게 음악을 소개한 것은 아버지 데니스 래틀이다. 집에서 피아노로 재즈를 연주한 것도 아버지였다. 그는 자신이 사준 미니 드럼 세트를 네 살 때부터 두드리는 아들을 보며, “내가 늙으면 사이먼이 나를 반주해 줄 재즈 드러머가 될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사이먼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모든 종류의 음악에 귀 기울였다. 여름이면 프롬스의 모든 콘서트를 들었고, 우리는 사이먼이 저녁 7시 30분에 올라가서 라디오를 들을 수 있도록 그전까지 모든 집안일을 마쳤다.”
왕립 음악원 시절에 대한 주변인들의 묘사는 흥미롭다. 훗날 사이먼 래틀의 버밍엄 시절 EMI 초기 레코딩에서 프로듀서를 맡았던 존 윌런은 왕립 음악원 동문 시절 일화를 남겼다.
“사이먼은 음악원 매점으로 달려와서 ‘듀크 홀을 한 시간 쓸 수 있게 됐어. 누구 브루크너 7번 같이 연주할 사람 없어?’라고 묻곤 했다. 그가 지휘하는 걸 보면서, 지휘자가 되겠다던 내 꿈은 영원히 접게 됐다.”
래틀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에는, 제법 진지하게 친구들을 위해 작곡에 도전했다는 에피소드가 남아있다. 물론, 작곡에 대한 꿈은 빠르게 접었지만. 일찍이 그는 피에르 불레즈의 ‘주인 없는 망치’의 지휘 레슨을 그에게 직접 받고 싶어 열심을 낼 만큼 현대음악에 관심이 많았다(실제로 래틀은 불레즈로부터 레슨을 받기도 했다).
“왜 계속 작곡하지 않았냐고요? 놀랄 일은 아니죠, 저는 ‘정말’ 작곡가가 아니니까요. 누구나 어린 시절에 시를 쓰듯 저도 몇 개의 곡을 쓰긴 했지만…. 비공개로 두는 편이 훨씬 좋겠어요! 작곡을 할 수 있는 지휘자들을 저는 엄청나게 존경합니다. 피에르 불레즈를 생각해 보면, 처음에는 작곡가로 시작해 지휘하게 되었잖아요. 지금의 동료 중에서 떠올린다면, 에사 페카 살로넨이 점점 더 훌륭한 작품을 써내고 있어요. 작품을 남기는 것이, 지휘에 얼마나 깊이를 더해주는지 그를 통해 알 수 있죠.”
영국과 베를린에 남긴 두 개의 홀
말러와 쇼스타코비치, 스트라빈스키 등의 레퍼토리만을 손에 쥐고 있던 젊은 사이먼 래틀이 경험을 쌓은 곳은 영국의 오케스트라들이다. 본머스 심포니는 그가 처음 연주한 프로 오케스트라였다. BBC 스코틀랜드 심포니의 부지휘자도 거쳤다. 무엇보다 버밍엄 시립 오케스트라(City of Birming-ham Symphony Orchestra)는 25세의 그를 인증한 단체다. 이들이 발매한 말러 교향곡 2번 음반(Warner/7479628)은 1988년 그라모폰상 오케스트라 부문을 수상했다. 래틀은 이들과 20여 년을 함께했다. 영국 왕실로부터 ‘경’의 칭호를 받은 것은 1994년이었다.
래틀은 베를린필에서의 임기(2005~2018)를 마치고 런던 심포니로 향할 때도, 다시 독일로 돌아와 BRSO과 함께할 때도 ‘상주홀 건립에 얼마나 힘을 쏟을 것이냐’에 대한 질문을 받아야 했다. 어쩌면 이는 그가 일찍이 버밍엄에서 남긴 업적 때문에 생긴 기대일지도 모른다. 사이먼 래틀 시절 지어진 버밍엄의 심포니 홀은, 많은 예산의 투입과 다목적홀이 될 뻔한 위기를 넘기며 ‘오케스트라의 또 다른 악기가 되는 홀’로 남게 됐다.
버밍엄 시절 남긴 홀이 오프라인의 심포니 홀이었다면, 베를린필 시절 그가 남긴 홀은 온라인상에 남아있다. 베를린필의 연주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디지털 콘서트홀’이다. 20세기의 베를린필을 만난 사이먼 래틀은, ‘21세기형 베를린필’을 만들었다. 적어도 21세기에서만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카라얀보다는 래틀이 영웅이었다. 전 세계 사람들의 스마트폰 속에, 그는 베를린필의 노란 로고가 들어간 애플리케이션을 선사했다. 교육 프로그램의 활성화도 래틀과 함께였다.
“클래식 음악을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하길 원한다면,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더불어 문화가 없으면 사회도 더 이상 성장하지 않죠. 문화는 인간으로서의 의미를 발견하는 수단입니다. 저는 이 다양한 형태들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해요.”
자신의 열정이 있는 곳
2017년, 런던 심포니의 유일한 ‘음악감독’으로 부임했던 사이먼 래틀이 2023/24 시즌을 마지막으로 영국을 떠나자 그것에 대한 많은 분석이 나왔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코로나19가, 런던 심포니의 전용 콘서트홀을 추진하겠다는 그의 의욕을 꺾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래틀이 밝힌 이유는 개인적이었다. 아내이자 소프라노인 막달레나 코제나(1973~)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홉 살 막내딸이 수시로 전화를 걸어 아빠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에겐 10년 후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내가 필요했다”며 “가족이 지내는 베를린까지, 뮌헨에선 기차로 간편히 도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대한 레퍼토리를 개발하던 음악에 대한 열정까지 사그라든 것은 아니다. BRSO의 제2바이올린 악장을 역임한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는 래틀이 “진정성 있게 음악을 한다는 표현을 넘어, 음악 그 자체인 사람이었다”라며, “BRSO가 가진 두껍고 따듯한 소리에서, 그는 더 다양한 색채를 찾을 사람이다. 그 변화가 벌써 BRSO의 2024/25 시즌에서도 엿보인다”고 언급했다.
“여전히 새로운 세대의 작곡가들은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제게 영향을 준 젊은 작곡가는 체코의 온드레이 아다멕(1979~)과 이탈리아의 란체스코 필리데이(1973~)입니다. 아마 두 사람 모두 아시아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것 같아 앞으로 몇 년 안으로 꼭 알리고 싶습니다. 낯선 레퍼토리를 사람들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 두 작곡가는 독특한 유머 감각이 있으며, 흔히 보이는 전위적인 스타일은 따르지 않습니다. 영감을 받는 지점도 무척 다양해서, 음악이 감동적일 뿐 아니라 청중에게 전달되기도 좋죠.”
앞으로의 음악에 대해 그에게 묻자, 반가운 그 이름이 나왔다. 온드레이 아다멕은 2023년 통영국제음악제의 상주 작곡가로 ‘특히 희거나 검은 결과물’ ‘디너’ 등의 작품을 국내 관객에게 선보였다. 통영음악재단의 위촉으로 작곡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는 아시아 음악, 특별히 판소리에 관심이 많았던 아다멕의 아이디어가 녹아든 작품이었다.
“특히, 온드레이 아다멕이 작곡한 ‘Where Are You’는 제 아내(막달레나 코제나)와 오케스트라를 위해 쓰인 작품이었습니다. 아다멕은 성악가의 목소리를 폭발적으로 사용할 줄 알았고, 심지어 제 아내는 그간 몰랐던 음역대를 발견하고 노래할 정도였습니다. 놀란 건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리허설을 하면서도 ‘어떻게 오케스트라에서 이런 소리가 나지?’라고 느꼈으니까요. 아다멕은 마법 같은 조합으로, 들어본 적 없는 악기가 있는 것 같은 음향의 곡을 써냈습니다. 이 곡을 언젠가는 꼭 전 세계의 관객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래틀은 여전히 런던 심포니에서는 명예지휘자로 남아있으며,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온 계몽시대 오케스트라의 수석 아티스트다. 새롭게 시작된 BRSO의 2024/25 시즌 작곡가 라인업에는 모차르트·불레즈가 눈에 띈다. 새로운 시리즈인 ‘BRSO hip(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에서는 바흐의 칸타타가 연주된다. 사이먼과 BRSO의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글 허서현 기자 사진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사이먼 래틀(1955~) 리버풀에서 태어나 왕립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1980년에 버밍엄 시립 심포니 수석지휘자로 시작, 1990년부터 음악감독으로 임명됐다. 2002년 베를린 필하모닉 예술감독으로로 취임해 2017/18 시즌까지 활동했으며, 2017년부터 런던 심포니의 음악감독을 시작해 2023/24 명예지휘자가 될 때까지 머물렀다. 2023/24 시즌부터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위상
아마도 현재 명실공히 독일 최고의 방송교향악단을 꼽으라면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이 아닐까. 뮌헨의 바이에른 방송국에서 1949년에 설립한 방송교향악단이다. 가장 독일적인 음악을 구현한 지휘자로 손꼽히는 오이겐 요훔이 초대 상임지휘자다. 서독뿐 아니라 동유럽에서 우수한 주자를 선발하는 한편, 요훔의 리드로 오케스트라의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곧 유럽의 오케스트라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등극했고, 객원 지휘자로 클레멘스 크라우스·클렘페러·뵘 등의 일류 지휘자를 영입한다.
1961년, 쿠벨리크가 취임하고 더욱 방대한 레퍼토리를 다루게 됐다. 그는 말러·쇤베르크나 체코 작곡가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연주하며 청중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번스타인/뉴욕필(CBS), 아브라버넬/유나 심포니(뱅가드)와 더불어 최초의 말러 교향곡 전집(DG)을 발표했다. 이는 2차 세계 대전 후, 독일의 말러 재평가에 크게 이바지했다.
쿠벨리크 이후 키릴 콘드라신을 영입하려 했지만, 그가 1981년 급서하며 무산됐다. 콜린 데이비스·로린 마젤·마리스 얀손스가 자리를 이었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주요 공연장은 가이타익 필하모니와 레지덴츠 궁전의 헤라클레스홀이다. 하르트만·아이넴·오르프·크셰네크·윤이상 등 동시대 작곡가 작품 소개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방송교향악단의 장점을 살려 대부분의 연주회를 실황 중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자체 레이블인 ‘BR 클래식’을 통해 음반과 영상물을 발매하고 있다. 류태형
Performance information
사이먼 래틀/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협연 조성진)
11월 20·21일 롯데콘서트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교향곡 2번(20일) 베베른 오케스트라를 위한 6개의 소품,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 브루크너 교향곡 9번(21일)
02 COLUMN
방송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세계의 방송교향악단
국가별 악단의 특징을 따라
20세기 이후, 라디오 시대가 열렸다. 1920년, 미국에서 세계 최초 정규 라디오 방송이 탄생했고, 유럽에서는 영국이 1922년에 BBC 뉴스프로그램을, 프랑스가 1921년 국영 방송을 개국했다. 독일 라디오 방송국은 1923년 문을 열었다.
이에 따라 ‘방송교향악단’의 역사도 시작됐다. 이름 그대로 라디오 전파를 통해 음악을 보급하기 위해 설립됐다. 유럽과 북미 모두 1920년대부터 우후죽순처럼 생겼지만, 향후 그 자생력은 희비가 엇갈렸다. 창단 취지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설적 방송교향악단 출현
현재 미국에서는 방송교향악단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미국의 대표적 방송교향악단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다. 피에르 몽퇴와 토스카니니가 이끌던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1937~1954)다. 대공황의 여파에서 회복된 후, 라디오를 듣는 청취자들에게 클래식 공연과 강의를 보급하는 목적을 띠고 있었고, 창단 당시 녹음 및 방송 가능 시설이 확보돼 있었다.
매주 NBC 심포니 연주가 방송됐고, 음반도 수입원이 됐다. 1948년 TV 방송으로 활동이 확대됐다. 당시 부흥을 이룬 LP 산업과 접목되어 경영은 호조를 이뤘다. 토스카니니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불세출의 지휘자는 악단의 실력을 향상시킴과 동시에 청중을 끌어들이는 매력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토스카니니 사후, 내림세에 접어들었고 해산하게 된다.
1920년대부터 선두에 선 독일
미국에 비해, 유럽의 방송교향악단들은 수명이 아직 유지되고 있다. 그중 질적·양적으로 모두 선두에 서 있는 건 독일의 방송교향악단들이다.
독일의 방송교향악단들은 이윤을 앞세운 미국의 사기업과 달리 모두 국립 또는 주립 방송국에 의해 창단됐다. 창단의 목적 자체가, 이윤이 아닌 청중의 교양 함양과 음악 교육에 있다. 유럽이 가진 고전 음악의 본고장으로서의 자부심은, 근대화 이후에도 전통 보존의 차원에서 적극적 문화 정책 추구로 이어졌고 방송교향악단 창단도 이와 관련 있다.
1920년대 후반, 독일 주요 도시에 라디오 방송국이 들어섰고, 산하 관현악단을 만들어 클래식 음악 방송 프로그램에 고정적으로 투입했다. 나치 집권 후에는 모든 방송국이 괴벨스의 선전 기능과 관리 아래 놓이면서 ‘제국방송’으로 통합됐고, 악단도 이에 따라 통합해야 했다. 이러한 제국방송 관현악단의 활동은 종전 이후 해체되었다.
이후, 독일 방송국들은 연합군의 동의하에 다시 새로운 방송교향악단을 창단했다. 과거 제국방송 관현악단 단원을 중심으로 새로운 악단이 ‘헤쳐모여’ 식으로 결성됐다. 통일 전, 서독에만 12개의 방송교향악단이 활동했으며, 모두 2차 세계대전 후에 창립됐다.
독일의 방송교향악단 특징은 크게 네 가지가 드러난다. 우선 첫째 현대음악에 남다른 공을 들인다. 대부분 악단이 상주 작곡가를 두고 있다. 둘째로는 전용 콘서트홀의 보유다. 오페라 극장이 있는 경우, 방송교향악단 단원이 대부분 오페라 상주 오케스트라와 활동 반경이 겹친다. 셋째로는 방송국 전용 스튜디오가 있고, 매주 연주가 정기적으로 편성되어 라디오 및 TV로 방송된다는 점이다. EU로 통합되면서, 이들의 연주는 유럽 전 지역에 교차 편성되어 방송된다. 유럽의 방송교향악단이 가지는 경쟁력이다. 마지막으로,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집중 투자다. 청소년에게 악기 연주를 가르치는 것은 물론, 오케스트라 실습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어 저렴한 비용으로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들이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어느 정도 숙달되면 방송교향악단 산하 청소년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편입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독일의 악단들
독일의 대표 방송교향악단 중, 먼저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을 들 수 있다. 1929년 설립되었고, 대내적으론 독일 헤센 방송교향악단(hr-sinfonieorchester)이라는 명칭을 쓴다. 1961~1990년 30년간 딘 딕슨과 엘리아후 인발이 악단에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줬다. 드미트리 키타옌코와 휴 울프, 파보 예르비에 이어 안드레스 오로스코 에스트라다가 수석지휘자 자리를 이어받았다.
NDR 엘프필하모니는 과거 북독일 방송교향악단으로 불렸다. 일찍이 북서독일 방송교향악단으로 명명되었으나, 방송국이 이후 함부르크와 쾰른으로 발전 분리됨으로써 함부르크의 오케스트라는 독일 내에서 NDR 교향악단으로 불렸다. 2017년 화려한 공연장인 엘프필하모니가 문을 열며 본거지를 옮겼고, 악단도 NDR 엘프필하모니로 개명했다. NDR 엘프필하모니는 ‘베를린필과 빈필을 교배시킨 현’, ‘콘세르트허바우와 필라델피아가 결혼한 관’을 목표로 창단됐다.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은 1924년에 설립됐다. 1945년, 교향악단의 이름으로 최초의 연주회를 가졌고 첼리비다케가 수석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주목받은 악단이다. 독일 통일로 인해 방송국이 통폐합되면서 오케스트라의 존폐가 우려됐지만, 독일방송연맹(ARD)과 독일 2TV(ZDF)가 공동으로 ‘독일 라디오(DeutschlandRadio)’를 설립하면서 이 방송국의 전속 악단으로 연주하고 있다. 2002년에 마렉 야노프스키가 음악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화합과 토론을 중시하는 요즘 지휘자들과 달리 악단의 기능을 가혹하게 단련하는 구시대 거장의 카리스마로 독일 관현악 팬들에게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연주를 선보였다. 2017년부터는 블라디미르 유롭스키가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는 1946년 RIAS 방송국(베를린의 미국 점령 지역 방송국)의 주창으로 창설됐다. 1956년에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으로 개명해, (동)베를린 방송교향악단과 쌍벽을 이루었지만, 명칭의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결국 통일 이후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로 이름을 바꿨다. 로린 마젤·리카르도 샤이·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켄트 나가노가 지휘하며 발전을 거듭했으며, 잉고 메츠마허·투칸 소키예프에 이어, 2017년부터 로빈 티치아티가 수석지휘자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도이치 방송 오케스트라라는 명칭으로 알려진 도이치 라디오 필은 자르브뤼켄 방송교향악단의 후신이다. 크리스토프 포펜 등이 수석지휘자로 활약했고, 2017년부터 피에타리 잉키넨이 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인 ‘클래식 음악, 학교에 가다’를 통해 어린이 음악회 등을 열어 차세대 청중을 키우는 데도 힘쓰고 있다.
남서독일 방송교향악단은 독일어로 ‘SWR Sinfonieorchestrer’로 표기한다. 독일의 두 도시, 바덴바덴과 프라이부르크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초대 수석지휘자는 한스 로스바우트였다. 그는 나치 집권기에 연주가 금지되었던 많은 현대 작품을 적극 도입했다. 1950년에는 현대음악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바덴바덴 근처의 도나우에싱엔 음악제의 상주 관현악단이 된다. 400여 곡의 초연작을 공연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중에는 윤이상과 박영희의 작품도 있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비롯한 미하일 길렌(1927 ~2019) 시대의 실황 녹음으로 악단의 명성이 높아졌다. 현재 슈투트가르트 남서독일방송교향악단과 합병한 뒤, 테오도르 쿠렌치스가 수석지휘자를 맡고 있다.
BBC 방송의 힘을 받는 영국
영국의 방송교향악단은 국영 방송사 BBC의 악단으로 대변된다. 여기에는 BBC 콘서트 오케스트라, BBC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BBC 웨일즈 국립 오케스트라, BBC 스코티시 오케스트라 등 모두 다섯 개의 단체가 포함된다. 여기에 BBC 싱어즈가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단체는 BBC 콘서트 오케스트라지만, 해외에서 인지도가 높은 곳은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다. 이는 BBC 프롬스의 상주 오케스트라로 활동하면서 비롯되었다. 1930년 이래, BBC 심포니는 매해 BBC 프롬스의 개·폐막 콘서트를 포함해 20회의 연주를 하고 있다. 두 달간 프롬스의 모든 공연이 라디오로 방송되고, 그중 일부가 TV로 생중계되는 것을 고려할 때 BBC 심포니의 노출 빈도는 전 세계 어느 방송교향악단과 비교해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BBC 심포니 또한 20세기 음악에 남다른 공을 들인다. 주로 자국 출신의 동시대 작곡가를 위촉하는데, 존 애덤스·엘리엇 카터·브라이언 엘리아스 등이 모두 이에 의해 세상에 이름을 알린 작곡가들이다.
소수정예의 강국인 북유럽 악단들
유럽 방송교향악단의 기원은 사실 덴마크다.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독일 방송교향악단의 양적 팽창에 밀려난 듯 보이지만, 북유럽의 방송교향악단은 국가당 한 방송교향악단을 가지는 소수정예의 모양새로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이 시스템에는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는, 한 방송교향악단이 전체 국가를 상징하는 대표성을 지니며, 둘째로는 그만큼 정부로부터의 지원이 집중된다는 것이다. 실제 다른 중부유럽 국가와 비교했을 때, 북유럽 방송교향악단의 국가 지원금은 대단히 풍부한 편이다. 탄탄한 재정은 그들의 상임지휘자와 연주 스케줄, 상주 공연장의 수준만 보아도 쉽게 가늠되며 상임지휘자의 명성으로 세계 유수의 음악 페스티벌에 빈번하게 초대된다.
레퍼토리의 경우, 현대음악에 주력하는 것은 독일과 유사하지만 자국 출신의 현대음악 작곡가를 특히 선호하는 색채를 보인다. 덴마크 방송교향악단, 스웨덴 방송교향악단, 핀란드 방송교향악단 등이 대표적이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03 MEMORY
BRSO 제2바이올린 악장 역임한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
최초의 여성·동양인으로 입단해 접한 악단의 매력 & 래틀과의 추억
오래 몸담았던 악단의 동료들을 만난다는 기대감 때문일까? 11월 BRSO의 내한이 가장 반가울 이는 아마 이지혜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그녀는 발 빠르게 동료들의 마스터클래스 일정도 챙겨두었다.
“같이 연주하고 싶다는 마음도 굴뚝같죠. 래틀이 ‘퍼커션 옆에 의자 하나 둘 테니까 거기 살짝 앉아서 해’라며 농담을 건네더군요. 무대 위는 아니더라도, 백스테이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것 같네요.”
자국의 전통문화를 수호한다는 자부심 강한 독일 악단에서, 그녀가 최초의 동양인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녹록치 않았다. 그러나 결국 이들과 “가족 같은 사이”가 되며, 이지혜는 자신의 음악 인생에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칠 음악적 양분을 얻었다.
뮌헨의 주요 오케스트라로는 BRSO를 포함해 뮌헨필, 바이에른 슈타츠오퍼가 있다. 세 악단의 차이와 BRSO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슈타츠오퍼는 오페라 경험이 많다보니 음악이 드라마틱하고 화려하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곡을 거의 다 초연한 전통이 있다. 뮌헨필은 그들만의 색깔이 확고하며 전통이 길다. 각자만의 소리를 내면서도 앙상블을 유지한달까. BRSO는 오히려 모두가 같은 소리를 내는 것에 신경을 쓴다. 화려한 소리보다는 따뜻하고 어두운, 두꺼운 소리다. 바이올린의 경우, 리허설 때마다 보잉 방법에 대해 정말 꼼꼼히,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맞춰갔던 기억이 있다. 전임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가 추구했던 색깔이기도 했다.
악단 최초의 동양인 악장이었다. 실력을 인정한 파격적 선택이기도 했지만, 역설적으로 그만큼 BRSO가 보수적인 악단이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전히 유럽의 벽은 높다. 유럽 사람들은 여전히 갑자기 실력 좋은 한국 연주자들이 어떻게 이렇게나 들어올 수 있냐며 진심으로 궁금해 한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문화적 차이다. 어떤 태도로 소통하고 이해하느냐가 중요하고, 이게 원활하지 않을 것 같다면 서류부터 싹을 자르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도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해가 어렵더라도 수용하는 게 중요했다. 전통에 대한 자부심, 이를 지키겠다는 그들 안에서 약속의 힘이 강하다는 걸 경험했고, 그렇기에 집요하게 음악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최근 많은 악단이 국제적인 행보를 보이고, 한국 음악가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다. 나 또한 3~4년 정도 생활했을 즈음부터 이들이 조금씩 나를 가족처럼 받아주는 걸 느꼈다. 적어도 BRSO만큼은 한국인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조금 익숙해지지 않았을까.
2023/24 시즌부터 사이먼 래틀이 상임지휘자로 부임했다.
래틀은 악단을 자주 찾는 객원 지휘자 중 한명이었다. 한 시즌에 한 번은 만났던 것 같다. 얀손스가 재직할 무렵이었는데, 음악을 대하는 온도가 달랐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음악에 정말 ‘미쳐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진정성 있다’는 표현 이상으로, 음악 그 자체인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음악을 만드는 과정은 달랐다. 래틀은 늘 ‘어떻게 하면 이 음악이 더 살아있게 들리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독특한 아이디어도 굉장히 환영해 줬다. 호흡이 빠르게 느껴진다고 하면, 그가 “음표보다는, 스피릿이 중요해! 나는 음이 다 들리지 않아도 좋아”라고까지 말하던 것이 기억난다.
래틀의 등장으로 BRSO의 음악에 어떤 변화를 기대하는가?
그간 추구해 왔던 두껍고 어두운, 따뜻한 소리 안에서 래틀은 더 다양한 색채를 만들어가길 원하는 것 같다. 앞서 슈트라우스나 말러·브람스, 그리고 쇼스타코비치나 프로코피예프 등의 레퍼토리에 주력했다면, 래틀과 함께 바흐나 하이든, 멘델스존 등의 고전이나 쇤베르크 등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고 있음이 이미 보인다.
글 허서현 기자
이지혜(1986~) 2012년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아카데미를 거쳐 2013년 아우구스부르크 필하모닉 최연소 악장이 됐다. 2015년부터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에 정식 입단해 2017년 악단 최초의 여성이자 동양인으로 제2바이올린 종신단원이 되었다. 2023년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04 CEO
악단의 안팎살림을 돌보는 대표 니콜라스 폰트
동시대의 거장 지휘자들을 품은 폭과 넓이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특별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당연히 훌륭한 지휘자와 실력이 뛰어난 단원들이 하나로 뭉쳐 만들어 낸 아름다운 음악일 것이다. 그런데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이 악단의 지휘자들이 오케스트라와 합을 맞춘 기간이 대부분 10년을 넘는다는 사실이다. 오이겐 요훔(1949~1960), 라파엘 쿠벨리크(1961~1979), 콜린 데이비스(1983~1992), 로린 마젤(1993~2002) 그리고 2019년 타계한 마리스 얀손스(2003~2019)까지. 완벽함을 추구하는 지휘자들과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점이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진짜 저력이라 짐작해 본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의 대표, 니콜라스 폰트를 만나 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 본지 연재물 ‘세계의 공연기획자를 만나다’ 인터뷰를 글의 내용상 이 페이지에 옮겨 싣습니다
대표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통역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은, 이름 그대로 ‘방송’ 교향악단이다. 그 특징은 무엇인가?
방송국 산하에 있다는 뜻이다. 방송국은 대중에게 시사와 정보는 물론, 문화예술을 라디오와 TV를 통해 전달한다. 때문에 방송교향악단은 연주 실황 및 중계방송을 통해 관객을 만날 수 있다. 이는 애호가를 관객으로 하는 일반 오케스트라보다 더 다양한 관객을 만난다는 뜻이다.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공영 방송국 소속인 단원들은 장기계약직 신분으로 음악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08년부터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에서 근무해왔다. 공연기획부에서 5년간 근무 후, 대표가 되었는데 업무가 어떻게 달라졌는가?
교향악단은 방송국의 한 부서고, 나는 문화총괄부장에게 보고를 하게 된다. 그 위로는 이사회가 존재한다. 공연기획부에서 일하다가, 악단의 책임자가 되며 더 많은 일을 관리한다. 홍보부터 직원 및 단원 채용에 관한 일을 모두 살피고 책임진다. 물론 이전처럼 음악감독과 차기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상의한다. 그럼에도 이전 업무와의 가장 큰 차이라면, 역시 교향악단의 재정에 관한 전반적인 일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방송국의 주요 사업을 결정하는 사람들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는지 궁금하다.
내가 하는 일은 ‘통역’에 가깝다. 방송국 내에서도 서로 하는 일이 다르고, 그래서 이해하기도 어렵다. 방송국 직원들은 교향악단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도 없다. 교향악단이 하는 사업이 방송국에도 꼭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해 필요한 예산이 집행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경영 과정에서 악단 내 직원 및 단원들과의 마찰도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BRSO는 다른 교향악단에 비해 직원 및 단원들과 마찰이 적은편이지만, 마찰이 생길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해결의 출발지점이다. 서로의 의견은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잃지 않는 것이다. 물론 어떤 방면으로든 의견 차이가 생긴다는 것은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어떤 부서든, 이를 대처하는 나만의 원칙이 있다. 문제가 생긴 즉시, 열린 마음으로 솔직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일하면서 터득한 소통의 기술이다. 사실 소통이 안 되는 것에서만 마찰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의외의 조건이 갈등을 만든다. 예를 들어, 방송교향악단의 사무실과 오케스트라의 연습 공간이 떨어져 있어 좋지 않은 조건이다. 사무실은 기차역 옆 방송국 내에 있고, 연습 공간은 자전거로도 15분 정도 떨어진 헤라클레스홀이라 서로가 평소에 일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물리적 거리는 종종 마음의 거리까지도 만든다.
래틀과의 새로운 항해에 거는 기대
2023/24 시즌부터 사이먼 래틀이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다. 그를 어떻게 설득했나?
마리스 얀손스(1943~2019)가 투병하다 사망한 이후, 우리는 한동안 상임지휘자를 찾지 못해 절망하고 있었다. 사이먼 래틀은 종종 함께 연주를 해왔던 이였고, 항상 꿈에 그리던 상임지휘자 후보 1순위었다. 그가 악단의 지휘자가 된 것은 기적 같은 일이고, 동시에 운명 같은 일이다. 래틀과 우리 악단은 2010년 슈만의 ‘낙원과 요정 페리’를 지휘하며 만났고, 서로의 존재에 강렬하게 끌렸다. 생각해보면 그 만남은 첫눈에 사랑에 빠진 순간과도 같다. 그 속에서 서로에 대한 음악적 이해가 자연스럽게 피어났다. 문제는 사이먼 래틀이 당시 음악감독으로 있던 런던 심포니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었다. 래틀은 예술적인 부분과 사적인 점을 모두 고려해 이곳에서의 상임지휘자직을 수행하기로 결정했다. 래틀과 음악감독직 수행에 관련해서 이야기가 오고간 지 1년 만에 계약이 완성됐다. 재임 기간, 래틀은 한 시즌에 11주 정도 지휘를 하게 된다.
얀손스와 래틀의 일하는 방식에는 행정적인 면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두 사람 모두 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다만 일하는 스타일은 다른데, 아마 세대 차이가 아닐까. 오케스트라의 여러 사안들을 상의할 때 얀손스와는 함께 앉아서 밤늦도록 하나하나 상의하곤 했다. 래틀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신속하게 의사소통하는 것을 선호한다.
래틀의 임기 동안, 어떤 프로젝트에 초점을 두고 진행할 예정인가?
가장 먼저 중요한 것은 레퍼토리 확장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방송교향악단은 중계를 통해 다양한 대중을 만난다. 우리는 래틀의 주도 아래 고전음악부터 현대음악까지 그 폭을 넓히고자 한다. 악단의 현대음악 프로그램인 ‘Musica Viva’와 더불어 정기 연주에도 더 많은 현대 음악이 포함될 것이다. 바로크 음악은 ‘BRSO HIP(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s)’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2025년 2월부터 바흐의 칸타타를 고악기로 연주하며 시작할 예정이다. 물론, 래틀의 주요 레퍼토리인 말러·바그너 같은 낭만시대 및 20세기 초반의 현대음악도 계속 연주할 것이다. 레퍼토리의 확장은 관객에게 다양한 음악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할뿐더러, 단원들이 새로운 작품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특히 래틀은 예술성과 명성을 겸비해, 다소 난해한 음악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방송교향악단만의 독특한 경영 방식
악단을 위한 재원 조성은 어떻게 이뤄지나?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공적 자금인 방송국 사업 예산과 티켓 판매 수익 및 투어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이다. 방송국 예산이 75%정도 차지할 정도로 악단 운영에 절대적이나 최근 몇 년간 지원 정도가 많이 줄어, ‘Friends of the BRSO’ 등 다른 수입원의 형태를 늘려가는 중이다. 방송교향악단은 재원 조성을 위해 후원을 모집하는 부서가 따로 있지는 않다. 그러나 더 높은 수준, 더 다양한 공연을 위해서는 악단 자체에서 다양한 재원조성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우리가 공연하는 공연장의 객석이 1,200석 밖에 없어, 티켓 수입이 부족한 것도 현실적 문제다. 재원 조성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방송국 예산이 큰 비중을 가지고 있다면, 인사·프로그래밍 등 악단 운영에 대한 결정권도 방송국이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전혀 아니다. 1949년 악단이 처음 설립될 당시부터 완벽한 자치권을 가지고 있다. 모든 부분은 우리가 스스로 결정하지만, 방송국의 클래식 담당 부서와 긴밀하게 소통한다. 우리가 어떤 프로그램을 연주할 예정인지에 대한 정보를 항상 공유한다. 방송국 클래식 담당 부서는 시청률과 청취율을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악단이 결정한다고 믿고 존중한다. 단원 채용의 경우, 단원들이 결정하며 심지어 상임지휘자인 래틀도 다른 단원들과 마찬가지로 한 표만 행사할 수 있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명반들
그간 DG·RCA·EMI 뿐 아니라 자체 레이블인 ‘BR 클래식’ 등 다양한 음반사를 통해 음반을 발매해왔다. 음반 작업이 악단의 명성을 쌓는 데에 어떤 도움을 주었나?
예전에는 악단을 알리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지금은 음반 시장이 전만큼 활발하지 않은 것 같다. 시장 상황보다는 어떤 아티스트와 함께 협업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자체 레이블이 있고, 방송국을 통해 공연을 송출할 수도 있어 감사하다. 앞으로 80분짜리의 긴 연주를 발매하는 형태가 아닌, 접근이 쉬운 짧은 분량의 상업적 성격의 공연도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선보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자 한다.
악단의 음반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이 있다면?
모든 음반을 사랑하기 때문에 꼽기가 정말 어렵지만, 그래도 하나를 고르자면 래틀이 악단에 취임한 후 처음 녹음한 말러 교향곡 6번을 좋아한다. 또한 2017년 하이팅크 지휘의 말러 교향곡 3번, 그리고 얀손스와의 많은 음반 중 2009년에 녹음한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 2013년 발매된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을 좋아한다.
현재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은 헤라클레스홀·가슈타익 필하모니에서 주로 공연한다. 헤라클레스홀은 아름답고 음향도 훌륭하지만, 1,200석으로 규모가 다수 작고, 가슈타익 필하모니는 뮌헨필이 상주하고 있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상주 공연장 설립 계획이 있나?
21세기에 걸맞은 공연장이 필요하다. 가슈타익은 현재 보수 중으로, 2027년에서야 보수가 끝나며 헤라클레스홀은 공간이 부족하다. 바이에른 주정부는 새로운 공연장을 지어주기로 약속했고, 현재는 어떻게 건축할지를 두고 비용 등의 세부사항을 논의 중에 있다. 문화도시인 뮌헨에 적합한 콘서트홀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아시아 투어에 대한 단상
유럽·미국·아시아 등 투어를 많이 다니고 있다. 각 나라마다의 관객 특징이 있나. 특히 아시아 관객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11월에 떠나는 아시아 투어는 코로나가 끝나고 6년 만으로 많이 기대하고 있다. 아시아 관객은 국가마다 특성이 달라 ‘아시아’로 하나로 뭉뚱그려 표현하는 것보다는 각 나라의 관객에 대해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한국의 젊은 관객들은 음악적 지식이 참 풍부하다. 관람 시 몰입도, 관람 후 터져 나오는 열정적 환호는 단원들에게 강렬한 에너지를 전달한다.
이번 아시아 투어 중 한국·일본·대만에서 조성진이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한다. 그를 단독 협연자로 선택한 이유는?
조성진은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연주자다. 자신의 음악 세계를 풍부한 해석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할 줄 안다. 우리 악단과는 물론, 래틀과도 여러 차례 함께 연주했는데 그때마다 그의 인품과 열정, 뛰어난 실력을 깊이 알 수 있었기에 투어의 협연자로 적절하다는 확신을 가졌다.
글 박선민(싱가포르 국립대 객원교수·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