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STAGE
지휘자·테너 호세 쿠라
‘투란도트’의 마법에 빠지는 순간
화려한 무대와 캐스팅으로 무장한 ‘어게인 2024 투란도트’에 윤기를 더할 지휘자
2003년,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특설무대에서 야외 오페라 신드롬을 일으킨 ‘투란도트’가 21년 만에 ‘어게인 2024 투란도트’(이하 ‘투란도트’)로 돌아온다. 특히 올해는 한국과 이탈리아 수교 140주년인 해이자 푸치니 서거 100주년인 만큼,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무대와 화려한 캐스팅으로 공연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위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오페라 스타들이 대거 서울을 찾는다. 타이틀 롤인 투란도트 역에는 첫 내한 무대를 선보이는 소프라노 아스믹 그리고리안을 비롯해 류드밀라 모나스티르스카, 에바 플론카, 그리고 마리아 굴레기나가 함께한다. 칼라프 역으로는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 브라이언 제이드, 알렉산드르 안토넨코, 이라클리 카히제가 오른다.
특히 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이한 테너 호세 쿠라(1962~)는 이번 공연에서 플라시도 도밍고, 파올로 카리야니와 공동으로 지휘를 맡을 예정이다. “오페라를 지휘하는 것은 총체적인 경험”이라고 운을 뗀 그는 “이번 프로젝트가 음악을 통한 동서양의 문화 교류에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며 작품 합류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경험으로 쌓은 음악의 깊이
아르헨티나 태생의 호세 쿠라는 어린 시절 합창 지휘와 작곡, 피아노를 공부했다. 로자리오 국립예술대학교에 입학해서 합창단 부지휘자를 맡기도 했던 그는, 21살에 테아트로 콜론 예술학교에 입학해 작곡과 지휘 공부를 다졌다.
루치아노 파바로티·플라시도 도밍고·호세 카레라스의 스리 테너 후계자로 익히 알려진 호세 쿠라는 클래식 음악계에 지휘자로서 먼저 발을 들였다. 지금의 ‘테너’ 호세 쿠라를 있게 한 무대는 그의 지휘봉 끝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25살 무렵, 저는 아르헨티나의 작은 오페라단에서 ‘토스카’ 지휘를 맡고 있었어요. 그런데 무대에 오를 테너가 갑작스럽게 공연을 취소해 제가 대타로 ‘별은 빛나건만’을 부르게 되었지요. 마침, 객석에 있던 테너 구스타보 로페스가 저를 호라시오 아마우리에게 소개해 주었고, 그때부터 정식으로 성악을 공부해서 29살에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음악가를 두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Story Teller)”이라고 말한다. “여러 가지 경험을 많이 할수록 더욱 풍부하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 그는 이번 공연에서 칼라프 역과 지휘를 동시에 맡을 예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지휘자로서만 무대에 오르게 됐다. “오케스트라 피트는 관객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무대 아래에 있는 연주자들에게는 강한 동료애를 심어 주는 곳입니다. 그 안에서 모두가 무대를 위해 경각심을 갖고 연주에 임하죠. 아쉽게도 저는 이번 공연에서 노래하지 않지만, 뛰어난 역량을 지닌 젊은 성악가들이 캐스팅되었으니 새로운 세대가 선보일 음악을 함께 즐겨봅시다!”
새롭게 선보일 ‘투란도트’
이번 ‘투란도트’는 지난 6월, 라 스칼라 극장에서 ‘투란도트’의 새 프로덕션을 맡아 호평받은 연출가 다비데 리베모어가 합세해 국내에서 신작을 초연할 예정. 지난 반세기 동안 ‘투란도트’의 정석으로 평가받은 프랑코 제피렐리 버전과는 또 다른 매력을 전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번 공연을 위해 코엑스 컨벤션센터에는 길이 45m, 높이 17m의 대형 무대와 7천 석 규모의 객석이 마련된다. 작품은 수백 년 된 유럽의 무대 디자인과 한국의 3D 기술을 결합해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이미지를 선사한다. 호세 쿠라는 “다비데 리베모어와의 첫 협업”이라며 “우리의 전문성을 더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물이 탄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공연장의 공간이 넓고 오페라 전용 극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음향에 대한 고민이 뒤따른다. 호세 쿠라는 “무대를 직접 느껴보기 전까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음향 장비의 세심한 활용과 함께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음향 엔지니어 간의 팀워크가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최 측은 음향 장비를 통해 원음에 가깝게 소리를 증폭하고, 여러 차례 음향 리허설을 통해 보완해 나갈 계획이다.
시대를 아우르는 푸치니의 유산
‘투란도트’는 ‘나비부인’ ‘토스카’ ‘라 보엠’ 등 푸치니가 남긴 12편의 오페라 중 마지막 작품이다. 푸치니는 “이제까지의 내 오페라들은 다 버려도 좋다”고 말할 정도로 ‘투란도트’에 깊은 애정과 자신감을 보였다. 현대 오페라에 관심이 많았던 푸치니 말년의 미완성 유작이기도 하다.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음악적 호기심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음악 스타일로 가닿았음을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대담한 화성법과 탁월한 오케스트레이션은 ‘그가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음악적으로 훨씬 대담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하죠. 푸치니는 ‘투란도트’를 통해 아름다운 멜로디를 포기하지 않고도 현대음악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어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메시지가 있다면 두 세계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후대 음악가들에게 알려준 셈이죠.”
마지막으로, 그는 새로운 ‘투란도트’를 통해 동시대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남겼다.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평화롭고, 건강하며, 소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어 따뜻한 집밥을 먹고, 친구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극장에 들러 ‘투란도트’의 마법을 즐겨보세요. 이러한 소중한 경험들이 우리 삶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되새기게 해줄 것입니다.”
글 홍예원 기자 사진 어게인 2024 투란도트 사무국
호세 쿠라(1962~) 아르헨티나 출신의 테너이자 지휘자. 1992년 오페라 ‘폴리치노’로 데뷔했다. 1994년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 입상, 1997년 아비아티상 수상, 2000년 레바논 정부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2004년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의 ‘카르멘’에 돈 호세 역으로 오른 바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어게인 2024 투란도트’
12월 22~31일 코엑스 컨벤션센터 D홀
박현준(예술총감독)/다비데 리베모어(연출)/플라시도 도밍고·호세 쿠라·파올로 카리야니(지휘)/
오케스트라 심포니 사계·서울경기지역 시립합창단 연합·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무용단/
아스믹 그리고리안·마리아 굴레기나·류드밀라 모나스티르스카·에바 플론카(투란도트)/
유시프 에이바조프·브라이언 제이드·알렉산드르 안토넨코·이라클리 카히제(칼라프)/
줄리아나 그리고리안·도나타 롬바르디·박미혜·다리아 마시에로(류)/
루이스 오타비오 파리아·마르코 미미카·다비데 프로카치니(티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