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ETITION WINNER
피아니스트 일리야 슈무클러
우승의 영광 안고, 새 관객 속으로
게자 안다 콩쿠르 위너의 첫 한국 나들이.
그 입신양명의 순간을 앞두고
그가 메일을 받은 곳은 미국 오하이오주 오벌린이었다. 며칠 후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에서 있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준비 중이었다. 지난 5~6월 취리히에서 열린 게자 안다 콩쿠르 우승과 함께 여러 ‘길’과 ‘기회’가 그 앞에 놓이고 있는 것 같다. “독주와 실내악은 물론 제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협연의 기회도 많아졌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할 수 있어, 너무나 행복합니다.”
11월 13일, ‘2024 게자안다 콩쿠르 위너 콘서트’의 주인공 일리야 슈무클러(1994~)가 내한을 앞두고 있다. 이 역시 콩쿠르 부상으로 주어진 여러 ‘길’ 중 하나다. 한국 피아니스트들과 만날 때마다 많은 대화를 나누고 영감을 받아왔다는 그는 “한국 영화를 즐겨보는데, 천재 같은 감독들이 숨 쉬던 공기를 느껴보고 싶다”고 한다.
바흐·슈베르트·리스트·드뷔시·무소륵스키의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무대는 여러 작품이 포진한 무대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흐라는 중심’이다. “바흐의 음악은 슈베르트나 리스트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슈베르트가 리스트에게 영향을 주고, 또 리스트는 그런 슈베르트를 진실하게 평가한 음악가였습니다. 이러한 영향 관계는 음악사에 다분합니다. 드뷔시는 무소륵스키를 정말 좋아했고 ‘보리스 고두노프’의 피아노 버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하기도 했죠.”
게자 안다 콩쿠르에서
지난 6월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렸던 게자 안다 콩쿠르 현장은 치열했다. 특히 준결선에 해당하는 3라운드는 일명 ‘모차르트 라운드’라 불린다. 생전에 모차르트의 협주곡 전곡을 녹음한 게자 안다(1921~1976)의 정신을 표방하기 위한 경연이다. 슈무클러는 플레트뇨프(지휘), 무지크콜레기움 빈터투어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17번을 연주했다.
게자 안다는 어떤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하나요?
“어릴 때부터 선생님들께서 그의 음반을 들어보라고 권하셨어요. 음악으로 느껴지는 따듯하고 친절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피아노에 녹여 넣은 지적인 면모는 부드러운 충격처럼 다가왔고요. 제겐 보이지 않는 스승과도 같습니다.”
오늘날 콩쿠르의 현장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영상은 막을 내린 후에도 ‘기록’으로 남는다. 슈무클러에 대한 인상과 기억도 두 개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하나가 게자 안다, 다른 하나는 임윤찬이 우승한 2022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다. 당시 순위권에 들지 못한 그는 특별상인 ‘모차르트상’만 수상했다.
밴 클라이번에선 모차르트가 달래줬고, 게자 안다에선 그와 함께 영예를 누렸습니다.
“이번 한국 공연에서 모차르트의 협주곡을 선보일 수 없어 아쉽습니다. 모차르트는 끝을 알 수 없는 작곡가이기에 평생 함께 할 것입니다. 그의 작품에는 아름다운 구조가 살아 숨 쉬죠.”
게자 안다 콩쿠르의 최종 결선(4라운드)에는 3명이 올라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와 함께 했다. 지휘는 이 악단의 상임 지휘자 파보 예르비. 라트비아 출신의 다우만츠 리에핀스는 베토벤 협주곡 4번, 러시아 출신의 드리트리 유딘은 버르토크 협주곡을, 슈무클러는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다. 슈무클러는 밴 클라이번과 게자 안다 콩쿠르의 결선 모두 이 곡과 함께 했다.
중요한 순간마다 그리그와 함께 한 셈이네요.
“이 곡을 매우 좋아합니다. 뜨겁게 얼어붙은 얼음 같다고 해야 할까요? 서사적이고, 때로는 친밀하게 다가옵니다. 음표 하나하나 버릴 게 없습니다.”
수상 뒤에 파보 예르비가 ‘섬세한 감정과 열정적인 무대로 관객을 사로 잡은 피아니스트’라고 격찬했습니다. 가까이서 본 파보 예르비는 어떤 지휘자였나요?
“말하지 않아도 음악으로 상대방을 도와주는 사람이랄까. 그의 든든한 지원과 지지가 느껴졌습니다.” 최종 결선을 보니 빽빽한 음표처럼, 건반 위로 땀방울이 빽빽하게 떨어지더군요. 일명 ‘땀방울 피아니스트’인 베레좁스키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무대에 오르기 전부터 부단히 움직여 땀으로 적셔 놓습니다. 한국 공연 때도 그럴 테니 제 공연의 첫 음표는 땀처럼 따듯하지 않을까 싶네요.(웃음)”
땀. 콩쿠르 기간은 긴장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관람을 좋아한다는 그는 “여러 콩쿠르에 참가할 때마다 그 나라의 성당과 미술관에서 숨을 돌린다”고 한다. 하지만 “게자 안다 콩쿠르 때는 인근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고 하니, 그에겐 각오 다지기와 긴장된 연습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의 최종 결선 실황을 본 어느 누리꾼도 ‘밴 클라이번에서 인상적이었는데, 게자 안다에는 이를 갈고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스승의 가르침, 음악의 유산을 품고
곡들을 꾸릴 때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관객들에게 ‘여행’하는 느낌을 주고 싶어요. 어느 한 지점에서 시작해 발전하고 마무리하는.”
하루에 연습량은?
“4시간에서 12시간까지. 연습 자체를 즐기는 편입니다.”
피아노를 떠나 있을 때는 무엇을 하나요?
“하이킹, 박물관과 미술관 관람을 즐깁니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와 탁구 치는 것과 수영을 좋아했고요. 그리고 맛있는 음식도 즐기고요.”
러시아 출신의 슈무클러는 현재 미국 파크대학에 유학하며 스타니슬라프 이우데니치(1971~)에게 배우고 있다. “내 삶의 모든 면에서 멘토입니다. 세심하고 진정한 음악가로, 누구보다도 세심하고 진정성 있게 음악을 대하는데, 저는 그의 음악뿐만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보고 배우려 합니다.” 타슈겐트 출신의 이우데니치는 2001년 밴 클라이번 우승자. 스승은 밴 클라이번의 유산을, 제자는 게자 안다의 정신을 물려받은 셈이다.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었는데, 피아노를 전공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 홈페이지(www.ilyashmukler.com)에는 3살 때 침대에서 뛰어다니며 노래하던 제 모습을 본 어머니가 음악의 재능을 발견했다는 얘기가 담겨 있어요. 탁구나 춤에도 흥미가 있었는데, 10살 무렵에 음악을 진정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고 지금까지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때 결정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사진 소누스아트
일리야 슈무클러(1994~) 모스크바 출신. 12살에 독주회를 가졌다. 2021년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하고 현재 미국 파크대학에 재학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2024 게자 안다 콩쿠르 위너 콘서트-일리야 슈무클러
11월 13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바흐 토카타 BWV912, 슈베르트 소나타 D664, 드뷔시 ‘영상’ 제1권,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