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QUE
바이올리니스트 스와르테 & 하프시코디스트 테일러·알퍼만
이렇게 다양한 고음악이!
고음악의 전통부터 트렌드를 녹일 ‘바로크음악시리즈’와 ‘한화 클래식’
작년 겨울, 기자는 새해를 맞이하기 직전에 2024년을 빛낼 분야 몇 가지를 꼽고 있었다. 여러 단체와 기획 공연을 쭉 살폈을 때, 가장 주요했던 것은 바로크 작품이 오르는 수많은 공연이었다. 그러나 현실이 그리 쉽게 계획에 박수를 쳐주겠는가. 2024년 하반기 달력에 표시해 둔 공연은 내한을 앞둔 유명 지휘자들의 사건사고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솜사탕 씻은 너구리’ 같은 허망한 표정만 남겼다. 노장이 떠나면 이 ‘고(古)’음악 장르의 소는 누가 키울지에 관한 걱정과 함께.
그러나 11월의 달력을 다시 보니, 허튼 걱정이었던 것 같다. 수준 높은 고음악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두 가지나 찾아오기 때문이다. 하나는 고음악계의 젊은 듀오 테오팀 랑글로와 드 스와르테(바이올린)와 쥐스탱 테일러(하프시코드)의 리사이틀(SAC 바로크음악시리즈)이며, 다른 하나는 4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와 75주년을 맞이한 리아스 실내합창단(지휘 저스틴 도일)의 합동 공연(한화 클래식 2024)이다.
고음악이 나아갈 길을 알고 있는 듯한 아카데미의 창립 멤버인 하프시코디스트 라파엘 알퍼만과, 이 길을 오를 하프시코디스트 쥐스탱 테일러, 바이올리니스트 테오팀 랑글로와 드 스와르테와 서면을 통한 만남을 여기에 담아 본다.
세대를 잇는 이상적인 바통 터치
알퍼만은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의 창단 전부터 이들과 함께했다. 젊은 시절 시작하여 인생의 나날을 함께한 악단이라면 이에 대한 고집이 생길 법도 한데, 유연한 답변이 왔다.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직접 하프시코드를 전수하기 때문일까. 그는 젊은 세대를 믿고 있었다.
“이젠 집이나 다름없는 이 아카데미에서 저는 많은 발전을 목도했습니다. 여러 실험을 통해 좋은 소리를 찾아내는 초창기부터, 이 멋진 동료들과 계속 새로운 작품을 발견하는 나날을요. 이 악단은 지금도 활력이 넘치고,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하기에 앞으로의 미래도 밝을 것입니다. 고음악 시장도 마찬가집니다. 전 세계의 젊고 훌륭한 음악가는 너무나 많고, 그들은 새로운 관객을 만족시키는 법을 알아낼 테니까요.”
윗세대의 이러한 기대는 그저 말로 끝나지 않았다. 스와르테는 2014년 20살의 나이로 프랑스 시대악기 앙상블 ‘레자르 플로리상’에 입단한 후, 그 악단을 이끄는 윌리엄 크리스티와 각별한 음악적 교류를 나눴다. 그는 2021년 크리스티와 2중주 음반을 발매했고, 이달 말에 나올 크리스티의 음반에도 참여했다.
“크리스티 선생님께 배운 교훈은 정말 많습니다. 해석의 완전한 자유, 음악의 드라마투르기, 음을 단어이자 자음·모음으로 보아 악구를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등이요. 그가 단 몇 초만에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는 비결까지 말이죠.”
테일러는 이 세대의 흐름을 잘 이해하고 있는 연주자이다. 그는 앞선 세대의 연주를 지켜보았기에, 이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을 넘어 고음악에도 새로운 해석을 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레온하르트(1928~2012)와 쿠프만(1944~)의 세대는 바로크 음악을 다시 우리 시대로 가져다주었습니다. 음악을 연주하는 데에 필요한 아주 기본적인 지식부터 정리하고, 악보 표기를 올바르게 해석하여 전수하려고 노력했죠. 우리 세대는 그들에게 빚진 것이 많아요. 저는 9살 때부터 하프시코드를 연주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 세대에겐 상상도 못할 일이죠. 그들이 바로크 음악을 새로운 언어로 익혔다면, 제게는 이것이 모국어와 같아요. 저는 이를 활용해서 하프시코드가 가진 노래하는 음색에 감수성과 울림을 담아내려 합니다.”
바로크 안에서, 극과 극의 체험
두 공연은 일주일 차를 두고 열리지만, 그 규모와 프로그램은 극과 극이다. 스와르테와 테일러는 듀오가 보여줄 수 있는 섬세함으로 관객에게 낯선 작품을 소개한다. 60여분 동안 그들이 연주할 작품은 총 16곡으로, 두 연주자의 여러 소통을 통해 큐레이션 된 프로그램이다.
“저와 스와르테는 프랑수아 프랑쾨르(1698~1787)의 g단조 소나타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작품은 정말 감동적이거든요! 이 작곡가를 중심으로 그의 주변 인물을 조사했고, 그의 형인 루이 프랑쾨르(1692~1745)와 오페라를 함께 작업한 프랑수아 레벨(1701~1775)을 찾아냈죠. 그 이후에는 공연의 흐름에 맞춰 파리에서 활동했던 영국 작곡가 헨리 에클스(1670~1742), 당시의 인플루언서인 아르칸젤로 코렐리(1653~1713)까지 배치했어요.(테일러)”
오케스트라와 합창까지 더해지는 대규모 편성의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리아스 실내합창단의 공연은 바로크 음악의 두 거장인 헨델과 바흐의 종교 작품으로 웅장함을 선사할 예정이다. 그중 바흐 칸타타 ‘내 마음에 근심이 많도다’는 한숨 모티프와 눈물이 흐르는 듯한 음의 움직임을 활용하여 직접적인 슬픔을 담아낸 작품이다. 각 부분마다 성악의 규모와 솔리스트의 등장이 다르니, 다양한 음성의 조합을 즐길 수 있다. 이달은 바로크의 살롱 속으로, 그리고 교회 속으로 떠나보자.
글 이의정 기자 사진 예술의전당·제이에스바흐
테오팀 랑글로와 드 스와르테(1995~) 파리음악원에서 마이클 헨츠를 사사했으며, 2014년 레자르 플로리상에 입단, 이후 악단의 솔리스트가 되었다. 비발디·로카텔리·르클레어 협주곡 음반으로 2022년 디아파종 도르를 수상했으며, 이외에 다수의 음반을 발매하였다.
쥐스탱 테일러(1992~) 2015년 브뤼주의 무지카 안티콰 콩쿠르에서 1위를 입상했다. 라인가우 무지크 페스티벌, 몽펠리에 페스티벌, 라 로크 당테롱 페스티벌 등에 올랐고, 파리 필하모니, LSO 세인트 루크스, 워싱턴DC 의회도서관 등에서 연주했다. 알파 클래식에서 스카를라티·리게티의 작품(2018), 라모의 작품(2021) 등을 녹음, 발매했다.
라파엘 알퍼만(1960~)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를 졸업하고 현재 모교에서 하프시코드와 실내악을 가르치고 있다.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와 톤 쿠프만을 사사했으며, 1995년 베를린 필하모닉에 바흐 하프시코드 협주곡으로 데뷔했다.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의 창립 멤버로서 다양한 독주·앙상블·협주 음반을 발매했다.
Performance information
테오팀 랑글로아 드 스와르테·쥐스탱 테일러 듀오 리사이틀
11월 16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프랑수아 프랑쾨르 바이올린 소나타 g단조 중 6번, 루이 프랑쾨르 바이올린 소나타 b단조 중 6번,
헨리 퍼셀 ‘잠시 동안의 음악’ 외 저스틴 도일/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리아스 실내합창단 (협연 엘리자베스 브로이어 외)
11월 23·24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헨델 ‘주께서 말씀하셨다’ HWV232(23일), J.S. 바흐 ‘마니피캇’ BWV243a(24일), 칸타타 ‘내 마음에 근심이 많도다’ BWV21
라파엘 알퍼만·쥐스탱 테일러에게 듣는
하프시코드 이야기
피아노와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하프시코드는 고음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선봉대이자 지휘자와도 같다. 악단과 함께, 또는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하는 각각의 하프시코디스트가 전해 주는 악기와 바로크 음악의 이모저모를 함께 살펴보자.
하프시코드는 르네상스 시기부터 피아노가 생산되는 18세기 후반 전까지 활동하다 자취를 감췄고, 20세기 후반부터 다시 연주됐다. 공백기 동안 악기 제작 방식이 변하지는 않았나?
라파엘 20세기에 복원이 시작될 때는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고 현대 피아노처럼 제작됐다. 철제 프레임을 사용하고, 피아노의 현과 유사한 현을 사용해서였는지 원래의 음색까지 복원되진 않았다. 건반도 피아노만큼 무거웠다. 그러나 오늘날엔 악기와 연주법 모두 당대를 복원하는 방식이 주류가 되어 하프시코드도 전통의 방식으로 제작하게 됐다.
이처럼 과거의 방식으로 제작된 악기는 현대의 악기보다 비교적 소리가 작다. 현대식 대형 공연장에서 한계를 느끼지는 않는가?
쥐스탱 하프시코드가 바로크의 살롱에서 연주하도록 만들어진 것은 맞지만, 현대식 홀의 좋은 음향을 간과해선 안 된다! 서울 예술의전당 역시 하프시코드의 소리를 잘 전달할 만한 음향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프시코드는 독주 악기로도 빛나지만, 17~18세기에는 모든 대규모 작품에 참여하는 반주 악기였다. 이 당시 하프시코드의 위상은 어떠하였는가?
라파엘 당시 예술가마다 시각이 다소 달랐는데, 그들이 바소 콘티누오(건반악기가 베이스음 위에 즉흥적 화성을 입히는 방식)에 관해 언급하는 대목을 보면 알 수 있다. J.S. 바흐는 1738년에 “바소 콘티누오는 가장 완벽한 음악의 기초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러한 바흐에 관해 제자인 로렌츠 크리스토프 미츨러는 1739년에 “바소 콘티누오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우리 바흐 선생님의 연주를 들어라. 그분은 바소 콘티누오를 독주처럼 연주하여 작품을 협주곡으로 만든다”라고 했다. 그러나 바흐의 아들인 C.P.E. 바흐는 1762년에 “바소 콘티누오는 주선율에 종속돼야 한다”라고 정반대로 평가했다.
바로크 시대 거장인 헨델과 바흐의 하프시코드 활용법은 어떻게 다른가?
라파엘 헨델은 오페라 작곡으로 이름을 날렸기에 그의 작품은 당시의 성악가를 위한 선율의 매력이 강한 편이다. 주선율을 제외하면 다른 성부는 종종 매력이 떨어지는 모습도 보이는데, 바흐는 이와 정반대이다. 대위를 사용한 풍부한 작품은 하프시코디스트에게 연주의 흥미까지 선사한다.
쥐스탱 바로크 시대는 서로의 영향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고 해도, 국가별로 음악 양식의 차이가 컸다. 활약하는 음악가마다 주력으로 떠오르는 악기도 차이가 났다.
바흐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5번을 비롯하여 이 악기를 위한 작품을 여럿 썼다.
라파엘 유명한 작품으로는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가 있다. 평균율 2권의 D장조 전주곡과 푸가도 좋다. 바흐가 쓴 하프시코드 작품 중 들어볼 필요가 없는 작품이 있을까.(웃음)
마지막으로, 하프시코드의 매력을 말한다면?
쥐스탱 건반악기 연주자는 한 악기와 친밀한 관계를 쌓지 못하는 게 일반이지만, 하프시코드는 다르다. 특히 하프시코드 건반을 매우 조심스럽게 누를 때, 깃털 같은 손끝이 현을 ‘톡’하고 뜯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현과 가까워지는 이 느낌은 피아노나 오르간에는 없다. 이게 내가 하프시코드와 사랑에 빠진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