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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
타르모 펠토코스키/툴루즈 카피톨 오케스트라 9.28
24세 상임지휘자의 강렬한 첫 인사
툴루즈에서 첫선을 보인 지휘자 타르모 펠토코스키와 악장 김재원을 만나다
지난 9월 28일, 프랑스의 도시 툴루즈는 특별한 날을 맞이했다. 도시를 대표하는 툴루즈 카피톨 오케스트라(이하 ONCT)가 공백 끝에 새로운 상임지휘자를 선임했기 때문이다. 바로 2000년생 핀란드 지휘자 타르모 펠토코스키다.
또 다른 핀란드 신동 지휘자의 등장
몇 해 전 클라우스 메켈레(1996~)가 20대 초중반의 나이로 오슬로필과 파리 오케스트라의 수장이 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처럼 이른 시일 내에 핀란드에서 신동 지휘자가 또 등장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날카로운 음악적 본능이 인상적인 펠토코스키는 어릴 때부터 바그너 음악 지휘를 꿈꾸며 핀란드의 지휘 대부 요르마 파눌라와 사카리 오라모에게 배웠다. 그는 피아노 연주 및 작곡과 즉흥 연주에도 뛰어난 팔방미인이다.
ONCT는 라트비아 국립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이자 로테르담 오케스트라, 도이치 캄머 필하모의 수석 객원 지휘자 등으로 활동하던 그를 상임지휘자로 발탁했다. 마침, 전임 지휘자인 투간 소키예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사임해 공석인 상태였다. 이번 임명이 중요한 이유는 ONCT가 상임지휘자와 오랜 시간 단단한 관계를 유지하는 악단이기 때문이다. 소키예프는 이곳에서 객원부터 총 17시즌(2005~2022)을 함께 했고, 그 전의 미셸 플라송은 35년(1968 ~2003) 동안 ONCT의 지휘를 맡았다.
펠토코스키는 바그너와 대편성 작품 및 오페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이를 보여주듯 취임 연주 레퍼토리도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과 말러 교향곡 2번 ‘부활’을 골랐다. 악장 김재원에 따르면, 리허설에서 펠토코스키가 “가장 사랑하는 두 작곡가의 작품을 한 공연에서 선보일 수 있어 너무나 행복하다”라고 밝혔다고. 지난 3월, 종신 악장으로 임명된 김재원도 이날 악장으로서 첫 시즌 오프닝을 맞았다. 그녀는 “동료들과 무대에 서는 것에 행복과 즐거움을 느낀다. 그 에너지를 함께 나누며 동료들이 신뢰하는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성장하고 싶다”는 소감을 남겼다.
ONCT의 연주 홀인 알로그랭(Halle aux Grains)은 툴루즈의 전통적인 붉은 벽돌 건물로, 19세기 실내 곡물 시장을 1974년에 콘서트홀로 개조해 독특한 육각형의 구조를 띠고 있다. 작고 마른 체구의 펠토코스키가 육각 무대를 돌아 단상 앞에 섰다. 단정히 깎은 머리에 캐주얼한 검은 수트, 은빛 십자가 목걸이가 그의 개성을 드러냈다.
바그너와 말러, 그 사이에서
바그너의 전주곡은 적막 가운데 느리게 시작해 여유 있게 나아갔다. 전체적으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스토리를 천천히 끌어올리고 사그라뜨리는 톤을 유지했지만, 감정을 드러내는 대목은 급격한 아첼레란도와 리타르단도로 굴곡지게 그렸다. 탄력적인 빠르기 운용에서 독특함이 느껴졌다.
전주곡의 마지막 음은 곧바로 말러 교향곡 2번 1악장으로 이어졌다. 자연스러운 전환에 일부 관객은 곡이 바뀐 것을 인지하지 못했고, 1악장 중간의 긴 휴지부에서 박수가 터지기도 했다. ‘부활’은 사후 세계와 부활에 대한 말러의 오랜 고민을 녹여낸 작품이다. 그중 1악장은 교향시로 먼저 작곡됐을 만큼 여러 모티브가 교차하고, 극적으로 함축된 구조를 띤다. 피날레가 연상되는 휴지부도 이러한 구조 중 하나로, 중간 박수는 전주곡과 ‘부활’을 이어 연주했기에 가능했던 해프닝이다.
말러는 죽음 이후의 삶을 생각하는 1악장과 생전의 추억을 다루는 2악장 사이에 5분 정도의 긴 휴지를 두기를 원했다. 생략하는 이들도 많지만, 그는 말러의 의도를 지켰다. 그 사이 라디오 프랑스 합창단과 툴루즈 합창단 단원 100여 명이 입장했다.
각 악장은 과거에 대한 회상, 인간 삶에 대한 회의, 천상의 영역을 묘사하다 작품의 클라이맥스이자 거대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합창으로 끝을 맺는다. 건축 구조상 음향적 도움을 받기 어려운 알로그랭에서 펠토코스키는 관현의 균형을 맞추려 소리가 흘러나오는 벨의 방향과 각도를 세심히 지시했다. 관의 볼륨이 다소 강하게 다가온 전주곡에 비해, 이 약점이 ‘부활’에서는 터질 듯한 폭발감을 높이는 강점으로 변했다. 뻗어 나가는 합창과 종소리, 오르간의 음향 속에서 펠토코스키는 마치 환상을 좇아 사람들을 이끄는 젊은 선지자 같았다.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선보인 놀라운 음악성과 리더십, 자신의 성향과 취임 무대의 효과를 한꺼번에 드러낸 좋은 연주였다.
글 전윤혜(프랑스 통신원) 사진 툴루즈 카피톨 오케스트라
INTERVIEW
툴루즈 카피톨 오케스트라 악장 김재원
지난 3월, 심사위원 및 단원 투표에서 만장일치로 종신 악장에 임명되었습니다. 악장으로서는 처음 맞는 시즌이자 오프닝 공연이라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말러 교향곡 2번은 작곡가가 인류에 남긴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곡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이 작품을 종신 악장으로 임용된 후 첫 시즌 오프닝 연주에서 사랑하는 동료들, 그리고 타르모 펠토코스키와 함께 연주하게 되어 굉장히 뜻깊습니다.
펠토코스키는 바그너 작품과 대편성 교향곡을 선호하는 지휘자로 알려져 있는데요.
타르모는 오페라를 정말 좋아해요. 툴루즈 카피톨 오케스트라에 부임한 이유 중 하나도 오페라와 발레 공연을 함께하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어요. 타르모는 프랑스 작곡가의 작품 외에도 독일 작곡가 등 레퍼토리를 확장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번 무대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을 말러 교향곡 2번 ‘부활’로 자연스럽게 연결해 전체를 하나의 작품처럼 선보였습니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은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어두운 피치카토 두 음으로 끝나요. 아타카로 이어진 말러 2번의 첫 음은 포르티시모로 시작하죠. 종교를 불문하고 인류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하는 이 경이로운 작품을 바그너로 시작해 자연스럽게 이은 흐름은 새롭고 조화로운 해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펠토코스키는 평소 단원들과 어떻게 음악적 소통을 나누나요?
타르모는 평소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포디움에서는 음악적 아이디어와 해석을 단원들에게 정확히 전달하고, 디테일하게 요구해요. 그의 손끝으로 모든 정보가 정확하게 전달되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기도 하죠. 일상에서 에너지를 잘 비축해 두었다가 무대 위에서 모든 걸 쏟아내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모든 공연에서 철저하고 정확하며, 동시에 내면의 열정과 감정이 곡의 절정에서 폭발합니다. 암보로 지휘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워 보이기까지 하죠. 타르모는 작곡가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존중하고, 그것을 철저히 지키며 악단을 리드하는 카리스마가 있어요. 그에게는 음악이 있기에 삶의 의미도 있는 듯해요. 타르모의 음악을 향한 순수하고 대단한 열정 덕분에 단원들도 지휘자의 나이를 떠나 그가 손끝으로 만들어내는 음악에 매료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