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포항국제음악제 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12월 9일 9:00 오전

REVIEW


CLASSICAL MUSIC

 

제4회 포항국제음악제 개막공연 ‘바다의 노래’

축제의 순항을 약속한 순간

11월 1일 포항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아직 추위가 찾아오지 않은 11월의 첫날, 철강의 도시에서 네 번째 포항국제음악제(예술감독 박유신/11.1~8)의 막이 올랐다. 축제의 첫날은 윤한결/포항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플루티스트 김유빈(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수석)의 협연으로 힘찬 ‘바다의 노래’를 시작했다. 1,000석에 가까운 좌석은 지역민과 관광객이 어우러져 빈 곳이 많지 않았다.

첫 곡인 멘델스존의 ‘바다의 고요와 즐거운 항해’에서 윤한결의 지휘는 명확하고 방향성이 있어, 지휘를 잘 모르는 관객도 그의 신호에 맞춰 악단에 시선을 둘 수 있을 정도였다. 8일간 이어질 축제의 시작이기에 다소 긴장감이 느껴졌지만, 부족함을 논할 필요는 없는 정돈된 출발이었다.

이어진 카를 라이네케의 플루트 협주곡을 위해 김유빈이 무대에 올랐다. 총 20여 분의 세 악장이 이어지는 동안 가장 놀라웠던 점은 그의 호흡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플루트는 음반만을 감상하다 보면 실황에서 만나게 되는 큰 숨소리가 몰입을 무너뜨리는 경우가 있는데, 김유빈의 연주에서는 이를 우려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2악장 렌토에서 가장 빛났던 것은 수려한 선율선으로, 부드러운 인사를 건네는 듯한 긴 이음줄이 무척 감미로웠다. 눈을 감고 음색에 집중하면 나무로 된 플루트를 부는 것이라 여겨질 정도로 청아했다. 3악장은 오케스트라의 목관과 주고받는 타이밍과 음색이 정확히 일치했으며, 흠 없이 질주하는 마지막 속주는 큰 환호와 갈채를 끌어냈다. 그는 앙코르로 지난 8월 발매한 음반 수록곡 중 드뷔시 ‘독주 플루트를 위한 시링크스’를 들려준 후 조명을 벗어났다.

휴식 이후 이어진 작품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 웅장한 금관의 시작은 45분간의 순항을 예고하는 듯했다. 1부와는 전혀 다른 음색을 들고 온 악단의 소리는 압도적이었다. 악장의 독주와 다른 악기군 사이의 소리 균형이 매우 뛰어나 이들이 축제를 위해 임시로 모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라는 사실을 잊도록 했다. 현악기군의 소리 역시 단단하게 응집되어 하나의 소리를 냈다.

이 작품의 2악장과 3악장은 목·금관과 타악기의 비중이 높아, 이들 음량의 균형을 잡고 음색을 통일하는 것이 중요한데, 윤한결과 포항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이에 능했다. 목·금관이 독주로 부르는 선율의 음색은 깔끔하게 다른 악기로 올라타, 음악의 흐름이 끊기는 순간이 없었으며, 타악기가 너무 큰 소리를 내서 선율을 가리는 일도 없었다.

3악장에서 4악장으로 넘어갈 때는 윤한결의 기지가 눈에 띄었다. 이날의 청중은 가족 단위가 많아 앞선 1부부터 2부까지 모든 악장 사이에 박수가 나오곤 했는데, 마지막 악장이 시작되기 전까지 지휘자가 3악장이 끝난 제스처를 하지 않고, 마치 아타카(attacca, 악장과 악장 사이를 연결하여 연주하라는 지시)처럼 연결하여, 높은 몰입감으로 4악장을 시작했다. 1악장부터 4악장까지 반복되는 주제 선율은 지루하지 않도록 선율의 움직임을 단호하게 유지했고, 이는 모티브가 돌아올 때마다 다시금 음악에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고요하게 마무리된 4악장의 끝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고, 몇 번의 커튼콜과 한 번의 앙코르 후 개막공연을 갈무리했다.

이의정 기자 사진 포항문화재단

 

 

니콜라이 루간스키 피아노 독주회

피아노 한 대로 표현한 음악적 스펙트럼

11월 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꾸준함과 성실함에 있어서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1972~)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인이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연주했던 지난해 무대(12.13·15/롯데콘서트홀)가 아직도 생생하다.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들은 텍스트 전체에 대한 몰입과 고도의 훈련을 요구하는데, 흔들림 없는 원칙을 지키며 작품에 접근하는 루간스키의 한결같음은 듣는 이들에게 기분 좋은 확신으로 다가온다. 모스크바 음악원의 학생 시절부터 모교의 교수가 된 지금까지 그의 라흐마니노프 해석은 정도를 결코 벗어나지 않는 모범답안이다. 이번에는 자신을 대표하는 라흐마니노프의 독주 작품과 손수 편곡한 바그너의 오페라들과 함께였다.

이번 공연의 오프닝은 라흐마니노프의 연습곡이었다. 루간스키가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거두기 전인 1992년, 스무 살에 남겼던 라흐마니노프의 연습곡 전곡 녹음보다 중후해진 템포와 다이내믹의 세심한 조합, 여전히 변함없는 기술적인 정확도가 느껴졌다.

첫 곡 ‘회화적 연습곡’ Op.33의 네 곡은 부드러운 음상으로 인상깊은 뉘앙스를 빚어냈다. 잔잔한 수면의 파문을 연상케 하는 2번, 유연한 흐름과 엄격한 리듬감이 함께 느껴진 4번, 반음계적 패시지들이 일으키는 폭풍우를 실감 나게 보여준 5번과 작곡가의 내성적 면모를 매력적으로 드러낸 8번까지의 배열도 뛰어났다. 이어진 ‘회화적 연습곡’ Op.39의 두 곡은 단단한 터치와 어두운 열정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6번은 복잡한 텍스트 속에서도 스토리텔링이 훌륭했고, 8번에서는 열띤 어조와 비르투오소적 풍모가 두드러졌다.

전주곡 Op.23 중 여섯 곡 역시 그의 뼛속 깊이 아로새겨져 있는 라흐마니노프를 입증했다. 깊은 우수에 사로잡힌 1번, 작곡가 특유의 패시지들을 응집해 소용돌이를 만들어낸 7번과 풍자적인 리듬을 세련되게 마무리한 3번, 기교적 어려움을 여유롭게 통과한 9번과 사랑 노래를 맑은 톤으로 그려낸 4번, 행진곡과 노스탤지어의 접점을 찾아 개운하게 풀어낸 5번까지, 마치 끊어지지 않는 한 곡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2부에서, 루간스키가 편곡한 ‘신들의 황혼’(바그너) 중 네 장면은 21세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만들어졌으나 작년에야 음원으로 발매됐다. 그는 각 장면의 분위기와 캐릭터들의 감정, 관현악의 거대한 음향과 그에 반응하는 청중의 아우라까지 고려해 건반 위에 옮겨냈다. 무엇보다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원근법을 암시적으로 묘사해 상상력을 자극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브륀힐데와 지그프리트의 사랑의 노래’는 반지를 나누는 모습과 감정적 고조를 실감 나게 그렸으며, ‘지그프리트의 라인 여행’에서는 주인공의 발걸음에 기대감과 비장미를 함께 녹여냈다. ‘지그프리트의 장송행진곡’은 무대의 하이라이트였다. 루간스키의 입체적인 연출력은 피아노 한 대로 여러 캐릭터의 생명력을 골고루 살려냈다. ‘브륀힐데의 희생’에서 반지의 저주를 끊어내려는 브륀힐데의 마지막과 그 구원을, 잘 다듬어진 터치와 페달링으로 나타냈다. 공연의 피날레는 리스트 편곡인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이 장식했다. 루간스키는 순도 높은 음향과 다듬어진 다이내믹으로, 이 곡을 바그너 무대의 차분한 에필로그처럼 풀어냈다. 후반부 전체를 하나의 그림으로 의도했음을 분명하게 설명한 연주였다.

김주영(피아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사진 마스트미디어

 


TRADITIONAL

 

국립창극단 ‘이날치전’

‘정년이’ 유행 따라, 이날치의 판 속으로

11월 14~21일 국립극장 달오름

 

정종임(연출), 윤석미(극본), 윤진철(작창), 손다혜(작곡·음악감독)/이광복·김수인(이날치), 최용석(개다리), 서정금(어릿광대), 남창동(줄타기) 외

국립창극단 ‘이날치전’은 시작 전부터, 흥행 필패의 예감이 들었다. ‘이날치밴드’로 익숙해진 이름 때문이었을까. 혹은 여성 국극을 소재로,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정년이’(10.12~11.17 방영)의 히트와 맞물려서였을까?

초연작 ‘이날치전’은 조선 후기 8명창 중 한 명인 이경숙(이날치의 본명, 1820~1892)의 삶을 소재로, 실존 인물의 생애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팩션(팩트+픽션) 창극’이었다. 작품의 축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신명 나는 연희를 창극에 얹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판소리 갈라 콘서트’를 극 속에 녹여냈다는 것이다. 특히, 명창 윤진철의 작창으로 통인청대사습놀이 장면을 비롯하여 조선 후기 명창들의 소리 특징과 더늠을 극에서 완벽하게 재현했다. 판소리 애호가들에게는 고제 판소리를 모처럼 감상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연출가 정종임과 윤석미 작가는 명창들의 실력 겨루기를 마치 오늘날의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연출했다. 박만순과 이날치가 벌인 광통교 소리대결에서, ‘적벽가’의 ‘불 지르는 대목’을 함께 부르는 모습은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방불케 했다(14일 개막공연 관람).

공연의 절정은 이날치(김수인 분)가 부른 ‘심청가’ 중 ‘심청이 물에 빠지는 대목’이다. 김수인은 이 대목을 처절하게 부르며 연기와 소리의 결합에 한 치의 미끄러짐이 없었다. 정제된 가운데 음악적 효과를 점층적으로 쌓은 음악감독 손다혜의 역할도, 극의 주제가로 작곡된 ‘광대가’화 함께 이 지점에서 가장 빛이 났다.

이번 작품의 또 한 축은 전통연희 판을 실감 나게 무대화시켰다는 것이다. 특히 극의 시작부터 관중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며 눈길을 사로잡은 줄타기(남창동 분)의 장면은 빼놓을 수 없다. 김홍도의 ‘사계풍속도병’에서 아이디어가 더해져, 남사당 놀이판과 12발 상모를 돌리는 풍물패도 무대를 풍성하게 하는 데에 일조했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소위 ‘웰메이드 K-희극뮤지컬’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무대 구성도 효율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평소 객석과 무대 사이에 있던 연주팀을 무대 뒤로 배치, 돌출된 원형 무대로 객석과 거리를 좁혀 관중석에서 줄타기의 체험 효과를 높인 것도 신의 한 수였다. 결론적으로 정년이의 재미는 물론 깊이 있는 예술성까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제작진의 의지가 통한 작품이었다.

다만 몇 가지 옥에 티가 걸린다. 우선,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극의 줄거리와 상관없는 ‘범 내려온다’를 삽입하여 사자춤까지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앞서서 펼쳐진 연희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흥에 겨웠다. 또한 박만순 명창도 8명창 중 하나인데, 굳이 끝까지 악역으로 남겨둔 것이 걸린다. 동편제 명창으로 당대 유명 소리꾼이었는데, 좀 더 입체적 설정이 필요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날치가 사랑한 여인으로 ‘유연이’라는 가상인물을 설정한 것은 좋았으나 뒷심이 약했다. 서학(천주교) 신자라는 프로그램북 상의 설정대로, 유연이가 박해를 받는다는 상황이 무대에서 명확하게 다뤄졌더라면, 이날치가 벼슬을 마다하고 홀연히 떠나는 마지막 장면이 좀 더 설득력 있지 않았을까.

이소영(음악 평론가) 사진 국립극장

 


THEATER

 

연극 ‘이자벨 위페르의 메리 스튜어트’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11월 1·2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고귀한 태생이었으나 수많은 시련 끝에 처형으로 생을 마감한 여인,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1542~1587)의 기구한 삶은 수많은 예술가에게 선명한 영감을 선사했고, 희곡과 오페라, 소설과 드라마,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역사물의 소재가 되어 왔다.

그중 엘리자베스 1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골든 에이지’와 메리 스튜어트(이하 메리)를 중심으로 한 영화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에는 메리의 처형 장면이 인상 깊게 펼쳐진다. 영화에서 메리는 침착한 태도로, 심지어는 장엄하기까지 한 모습으로 등장해 죽음을 맞이한다. 고귀한 여왕이 잉글랜드 교외의 초라한 성에서 수많은 적(!)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목을 내밀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저렇게 차분하고 담담할 수 있을까?

로버트 윌슨(1941~)이 연출한 연극 ‘이자벨 위페르의 메리 스튜어트’는 바로 그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기까지 그가 겪어낸 폭풍과도 같은 마지막 밤을 1시간 반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밀도 있게 압축한 작품이었다.

죽음을 앞둔 메리가 남긴 실제 편지를 바탕으로 한 회상과 독백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메리의 무수한 기억 속에서 그가 마주하는 분열된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때로는 기도 같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 같기도 하고, 소중한 이들에게 남기는 편지 같기도 하다. 이는 일관된 정서나 서사를 갖기보다는 분절된 채 속사포처럼 쏟아진다. 반복되고 끊어지면서 쌓이는 언어적 리듬과 그 리듬을 구현하는 반복적인 움직임이 메리 내면에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흐름을 어떤 말보다도 선명하게 구현해 내면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처연하고 꼿꼿한 실루엣으로 등장해 뒷모습만으로 공간을 장악하는 첫 장면부터 성난 파도처럼 무대를 가로지르며 격한 감정을 토해내고 절규하는 장면들, 그리고 이 모든 감정의 터널을 지나 고요하게 자신의 운명과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메리의 모든 감정은 이자벨 위페르(1953~)라는 경이로운 배우의 몸과 목소리에 실려 극적이고 장대한 내면의 풍경을 객석에 전달했다. 가녀린 체구로 이 거대한 공간을 결국 자신의 에너지로 압도시키는 이자벨의 존재감은 운명 앞에 선 메리를 떠올리게 했다. 섬세한 표현 속에 그녀의 짧은 행복과 긴 고통, 처절한 고독이 섬광처럼 스쳐 갔다. 한 시간 반의 무대를 끌어 나간 것은 ‘이자벨 위페르’라는 위대한 배우 한 사람이었지만, 무대 위의 배우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무대 전체를 압도한 조명이 또 하나의 배우로서 열연을 펼쳤다. 시시각각 색채와 밝기, 명도와 채도가 변화하면서 메리의 심리적 상태와 변화를 암시하고, 때로는 읊조리고 때로는 절규하는 이자벨 위페르의 대사 사이사이에 마치 대꾸하듯 끼어들며 극 전체를 거대한 빛의 대화로 이끌어갔다. 오로지 빛과 조명만으로 이 모든 대화를 이끌어간 로버트 윌슨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지점이었다. 한편, 이 공연의 또 하나의 숨은 배우인 음악 역시 대사가 말해주지 않는 서사를 담당하면서, 한 편의 드라마를 청각적으로 구현하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김주연(연극 평론가) 사진 성남문화재단

 


TRADITIONAL

 

수림문화재단

전통예술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실험을 허하다

 

수림아트랩 ‘오초롱(피리)-종묘: 재래-악’

국악과 전통예술은 수림문화재단(이하 수림)의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신선하게 성장 중이다. 수림은 2009년에 김희수(1924~2012)가 설립한 비영리 민간문화재단이다. 단체명에는 커다란 나무와 아름다운 꽃, 이름 없는 작은 들꽃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숲처럼, 예술가와 함께 지속 가능한 문화생태계를 만들어가겠다는 그의 뜻이 담겨있다.

“배움을 통해 어두운 곳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라는 설립자의 신념에 따라, 수림은 김희수가 타계한 후에도 전통예술 분야를 중심으로 창작지원과 인재 양성 사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림은 창작자와 기획자를 두루 조명했고, 전통예술계의 사각지대를 조금씩 좁혀왔다.

올해는 수림의 설립 15주년이자, 설립자 김희수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해였다. 이를 기념하며 수림은 정체성을 새롭게 다지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고, 올해의 사업에는 수림의 이러한 고민이 녹아 있었다.

 

예술인의 버팀목이 되어준 2024년

올해 수림의 사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인연’이다. 수림을 거쳐 간 아티스트가 수림 밖에서 이룬 발전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수림과 인연을 맺은 아티스트들과 장기적으로 협력할 방안을 고민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올해 재단의 가장 큰 행사였던 ‘아트페스티벌 숲’(6.8/김희수아트센터)에도 수림의 아티스트들이 우선적으로 초청됐다. “단순한 사업 담당자 역할을 넘어 아티스트와 함께 고민하고 좋은 예술을 만들어가는 동반자이자 협력자가 되고자 한다”던 수림 기획자들의 진심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올해 수림이 선보인 4개 주요 사업에도 기획자들의 이러한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담겼다.

① 수림뉴웨이브는 수림을 대표하는 음악축제다. 창작지원 사업과 축제가 결합된 독특한 성격을 띤다. 외부 추진위원단의 의견과 재단의 방향성을 고려해 개성과 창작·실연 능력을 모두 갖춘 전통 분야의 아티스트들을 선정하면, 이들은 재단이 제시하는 올해의 주제에 맞춰 창작곡 1곡 이상을 포함한 프로그램으로 공연을 기획해 무대에 오른다. 전통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아티스트들에게서 자주 볼 수 있는 ‘수림뉴웨이브가 주목한 아티스트’라는 수식어가 이 사업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한다.

② 수림아트랩은 신작 제작을 지원하고, 그러한 신작 중 우수작을 선정해 재창작까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작년을 끝으로 신작 지원을 종료했는데, 당시 선정된 네 팀 중 우수작을 선보였던 이아름(정가)과 오초롱(피리)이 올해 마지막 재창작지원을 받으며 수림아트랩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수림뉴웨이브 ‘강민수-광대’

③ 공동 기획 프로젝트 ‘넛지’는 창작자들의 작품이 공연화되도록 그들이 지닌 고민을 함께 풀어가기 위해 기획되었다. 김희수아트센터에서의 공연 기회와 제작비를 지원해 다양한 실험을 펼칠 수 있도록 장려한다. 올해는 그룹 광대생각, 몸소리말조아라, 박선주 등 9개 개인 및 단체와 함께했다. 예술가들이 원할 경우, 기획·홍보 관련 상담이나 연습 및 회의 공간 제공 등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한다.

④ 전통예술 1인극 희곡 개발 ‘홀로’가 올해 첫선을 보였다. 탄탄한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희곡 대본 개발에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로, 예술가(선정자)와 그 고민을 앞서 했던 선배(멘토), 수림의 기획자들이 함께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도록 돕는다. 4주간 워크숍을 진행한 후 지속적인 멘토링을 통해 희곡을 완성, 12월에 쇼케이스를 개최한다. 올해의 멘토는 판소리 창작자 박인혜다.

 

예술의 숲을 키워갈 2025년

수림의 색깔이 담긴 사업들은 내년에도 이어진다. 대표 프로그램인 ‘수림뉴웨이브’와 올해 신설된 ‘전통예술 1인극 희곡 개발’이 운영되고, 전통예술 공연기획자를 위한 창작지원 사업도 준비 중이다. 기획자를 체계적으로 양성함으로써, 이 분야를 튼튼히 다지겠다는 재단의 포부가 담겼다. 수림이 꿈꾸는, 예술이 살아 숨 쉬는 숲은 내년에도 더욱 울창하게 자라날 전망이다.

김강민 기자 사진 수림문화재단

 

수림뉴웨이브 ‘독파’

(2.22~10.31/김희수아트센터)

 

2012년부터 시작된 ‘수림뉴웨이브’는 예술가들이 무대에 올라, 자기의 뿌리가 되는 전통음악과 오늘날의 음악을 선보이는 시리즈이다. 축제처럼 이어진 이번 시리즈의 주제는 ‘독파(獨波)’였다. 홀로 독(獨), 물결 파(波). 즉, 전통예술계에서 홀로 자신만의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온 음악가를 위한 1인 중심의 무대를 구성했고, 상반기와 하반기에 걸쳐 총 20명(김동근·김준영·안정아·유홍·황민왕 외)의 예술가가 무대에 올라 그들이 살아온 인생과 음악을 들려주었다. 마이크와 스피커를 사용하지 않아 전통악기가 지닌 고유한 음색이 자연스럽게 전달되었다.

기자가 관람한 10월 31일 공연에는 타악 연주자 강민수가 출연했다. 그는 공연을 위한 분장의 과정을 무대에서 직접 설명해 관객이 모르는 무대 뒷이야기를 들려주어 흥미를 자아냈다.

이처럼 올해의 수림뉴웨이브는 예전에 비해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흘러 더욱 독특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QR코드를 통해 관객들이 채팅방에 하나둘 입장했고, 공연 중에도 궁금한 점이나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면, 진행자가 메시지를 읽어주며 대화를 이어갔다. 여기에 아티스트의 재치 넘치는 입담이 더해져 공연 분위기가 유쾌했다.

 

PERFORMANCE INFORMATION

넛지-김상욱 ‘음악과 글쓰기 콘서트: 사이·회상 間·會相’

12월 7일 오후 3·5시 김희수아트센터 SPACE1

‘상령산-깊게 듣기’, ‘중령산-호흡 명상’, ‘세령산-나의 마음 인지’ 외

전통예술 1인극 희곡 개발 ‘홀로’-쇼케이스

12월 12일 오후 7시 수림큐브 C7

김정운 ‘연희-아기야 놀아봐라’, 김나니 ‘판소리-One 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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