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안젤라 휴이트, 균형을 위한 선택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12월 2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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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안젤라 휴이트

바흐로 쌓은 내공, 특별한 인연의 피아노(Fazioli)로 연주하다

 

균형을 위한 선택

 

 

오는 12월, 안젤라 휴이트가 10년 만에 내한 독주회를 갖는다. 그는 최근 영국 레이블 ‘하이페리온’을 통해,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발매 중이다. 내한을 앞두고 오랜만에 열어본 안젤라 휴이트의 연주에 반가운 마음이 든다. 간만에 재료부터 조리 과정, 맛까지 제대로 갖춘 건강한 정찬을 먹은 기분이랄까.

요즈음은 지구 반대편 콩쿠르 우승 소식이 시차도 없이 전달된다. 웬만해서는 실시간 관람도 가능하다. 체감상 격 달에 한 번씩 콩쿠르 스타가 탄생했다가 저물지만, 만족스러운 연주를 찾긴 어렵다. 심지어 (이제는 몇 개 남지도 않은) 주류 음반사의 후광을 입고 등장하는 ‘레코딩 스타’도 적지 않다. 개성으로 혁신을 일으켰다는 그들의 음반을 들으며, ‘과연 실황 연주를 이만큼 해낼 수 있는 연주자일까?’하는 의구심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이 빠르고 자극적인 시류에서 벗어날, 다른 선택지가 필요하다.

안젤라 휴이트의 연주를 듣고 있자면, 작곡가가 오선지에 써놓은 음표가 선명하게 들린다. 혹자는 그것을 ‘다소 지루한 해석’이라고 치부할지 모르지만, 이 정직한 해석을 위해 그가 보냈을 지난한 시간은 가늠하기 어렵다. 손가락의 움직임만으로 다이내믹을 표현할 수 있는 균형 잡힌 테크닉, 정갈하게 정리된 푸가, 넘치지도 급하지도 않은 템포의 깊이. 가만히 앉아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피아노라는 악기로 도달할 수 있는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바흐에서 시작해 모차르트, 브람스까지

피아노의 본질이라는 표현은 다소 무겁지만, 안젤라 휴이트를 정의하기엔 과하지 않다. 그가 바흐 건반 악기 작품으로 쌓아온 음반 때문이다. 1994년부터 무려 11년에 걸쳐 바흐의 주요 건반 악기 작품을 담았다. 10개가 넘는 이 음반들로, 안젤라 휴이트는 ‘21세기의 바흐’를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그렇듯, 특정 작곡가의 스페셜리스트로 불리기를 그도 원하지는 않지만, 안젤라 휴이트가 연주하는 모든 작품에는 바흐의 흔적이 묻어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아니던가. 모차르트나 베토벤, 브람스와 쇼팽, 멘델스존이나 슈만 혹은 그 이후의 작곡가들까지. 바흐가 구축한 음악 세계에 빚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물론, 제가 바흐를 많이 연주한 것은 모차르트를 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명확한 타건 방식이나 손가락의 균형같이 기술적인 요소를 넘어, 음악을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요!”

오랜만의 한국 공연을 앞두고 안젤라 휴이트는 “10년 전 내 공연을 보러 왔던 스물다섯 살의 청중이, 이번에도 다시 관객석에 있길 바란다”며, “그간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는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많아졌다. 한국 관객은 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열정이 높았고, 이제는 10년간 더 성숙해지기까지 했을 관객을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며 기대감을 전했다.

 

이번 내한 공연 1부에서는 바흐와 모차르트의 작품을 연주한다. 두 작곡가를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나?

어떤 작품을 연주하든, 그 곡을 쓴 작곡가가 되어야 한다. 바흐를 연주할 땐 바흐가 되고, 모차르트를 연주할 땐 모차르트가 되는 상상을 한다.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 작곡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음악, 단지 피아노 음악이 아닌 모든 음악을 알아야 한다. 특별히, 모차르트의 작품을 익힐 때 마치 바흐의 푸가를 치듯 한다. 처음부터 아티큘레이션이나 손가락 번호, 템포 등을 신중하고 정확하게 결정한다.

2부는 헨델의 샤콘 HWV435, 그리고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Op.24를 연주한다. 바로크 음악의 선율을 활용한 낭만 시대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할 때, 바로크적 접근 방식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궁금하다.

샤콘의 분위기가 브람스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에 두 작품은 연결해서 감상하기 좋다. 브람스는 헨델을 비롯한 바로크 음악 전반에 영향을 받았다. 물론 브람스의 작품은 완전히 그 작곡가의 방식으로 연주해야 하지만 여전히 강조해야 할 대위법적 요소들은 남아 있다. 특히 브람스의 변주곡들은 바로크 음악이 가진 뛰어난 구조를 잘 포함하고 있다.

 

특별한 도시, 특별한 인연

©Bernd Eberle

캐나다 출생의 안젤라 휴이트는 현재 런던에 주로 거주한다. 고향인 캐나다, 그리고 이탈리아 움브리아에서도 지낸다. 이 나라들이, 그의 커리어를 설명한다. 특히 이탈리아는 그가 25년간 애용해 온 피아노 브랜드 파지올리(Fazioli)가 탄생한 곳이다. 파지올리 아티스트이기도 한 그의 파지올리 사랑은 각별하다. 거의 대부분의 음반을 파지올리 피아노로 녹음했고, 그가 사용할 피아노 F278을 위해 파지올리는 네 번째 페달을 단 특별한 피아노를 제작해 주기도 했다(파지올리는 올해부터 국내에도 공식 수입되고 있어, 이 피아노로 무대에 서는 국내 피아니스트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캐나다는 출생지, 이탈리아가 그만의 주요무기가 생산되는 곳이라면, 영국은 그가 30년간 전속으로 녹음해 온 음반사 하이페리온이 위치한 곳이다.

런던은 당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음반사 하이페리온이 위치한 곳이다.

하이페리온과 함께 정말 많은 레퍼토리를 녹음했다. 내가 쌓아온 경력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내가 처음 이 경력을 시작했던 30년 전과, 지금의 음반시장은 완전히 다르다. 스트리밍 청취가 자리 잡았고, 실물 음반은 사라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아쉽지만, 스트리밍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이페리온은 이제 유니버설 뮤직에 소속되어 있고, 스트리밍 시대에 열심히 적응해야 한다.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는, 우리가 같이 두고 볼 일이다.

파지올리 피아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한국에서 다닐 트리포노프·마리아 주앙 피르스 등이 파지올리를 사용해 독주회를 가졌다. 그러나 아직 국내 대부분의 공연장에서 피아니스트가 피아노의 브랜드를 선택할 정도는 아니다.

여러 피아니스트가 파지올리를 연주하고 있다니 반갑다. 물론 나도 모든 공연장에서 파지올리 피아노를 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선택할 기회가 피아니스트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주요 제조사들이 훌륭한 악기를 만들어내고 있고, 이를 통해 여러 브랜드가 경쟁의 구도를 가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늘 악기를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현악 연주자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어떤 피아노 소리를 선호하는가?

깊이와 품위가 있는 소리를 좋아한다. 거친 소리 혹은 금속성이 느껴지는 소리는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파지올리 피아노는 터치에 민감하다. 좋은 피아노는 풍부한 음색을 추구할 수 있고, 또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피아노를 오랜 친구같이 느낀다면, 더 많은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파지올리 피아노에 있는 네 번째 페달은 어떤 효과를 내며, 구체적으로 어떤 레퍼토리에 사용하는가?

베토벤을 연주할 때, 마치 포르테피아노로 연주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 사용한다. 예를 들어 피아노 소나타 ‘월광’의 마지막 악장에서 낮고 부드러운 왼손을 연주할 때다. 바흐나 모차르트의 작품 연주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슈베르트의 즉흥곡 Op.90-3 같이, 흘러가는 왼손의 반주를 가볍게 만들고 싶을 때 일부 사용한다.

2008년에 바흐 작품 연주법을 설명한 DVD를 발매하기도 했다. 앞으로 음악가로서 남기고 싶은 기록이 있다면?

언젠간 책을 쓰고 싶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책을 쓰려면, 또 한 번의 팬데믹이 오지 않고서는 어렵다.(웃음) 여행하는 음악가의 삶이 실제로 어떤지, 책을 통해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마지막으로, 오래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기 위한 성숙을 바라는 젊은 연주자에게 남겨줄 한마디.

계속 연습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길 바란다. 폭넓은 레퍼토리는 필수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 속에서 경험한 것들이 음악에 스며들게 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허서현 기자 사진 예술의전당

 

안젤라 휴이트(1958~) 토론토 바흐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바흐의 건반악기 작품들을 11년에 걸쳐 녹음했고, 스카를라티·쇼팽·라벨 등의 음반으로도 호평을 받았다. 캐나다 컴패니언 훈장·대영제국훈장을 비롯, 라이프치히 바흐 메달, 위그모어 메달 등을 수상했다.

 

PERFORMANCE INFORMATION

안젤라 휴이트 피아노 독주회

12월 11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4번, 바흐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 BWV903, 브람스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Op.24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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