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SSUE
2024 공연계 연말결산!
PERFORMANCE of the YEAR
변화가 많았던 연초, 불안한 정세로 출발했지만 올해의 공연계도 언제나처럼 관객에게 큰 감동을 전했습니다. 어떤 감동을 받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요? 그럼 ‘객석’과 함께 한해를 돌아보러 떠나시죠!
총괄 이의정 기자
01 클래식 음악: 관현악 _류태형
02 클래식 음악: 앙상블 _송주호
03 클래식 음악: 독주 _송주호
04 클래식 음악: 오페라 _손수연
05 클래식 음악: 음반 _류태형
06 클래식 음악: 콩쿠르 _박찬미
07 클래식 음악: 서적 _김강민
08 연극 _배선애
09 뮤지컬 _최승연
10 무용 _장광열
11 전통음악 _이소영
부록. ‘객석’ 묶음 _김강민
01 클래식 관현악 ORCHESTRA
행복한 음향을 선사한 내한 악단들
동서유럽의 균형이 잘 맞았던 한 해, 국내 악단은 어땠을까?
올해 무대 중에는 안토니오 파파노/런던 심포니 공연(10.1~5)이 가장 선명하게 떠오른다.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 2악장 2부에서 오르간의 찬란한 음이 공중에서 쏟아졌다. 충만한 색채감과 함께 선명하고 입체적인 음향을 오케스트라는 더욱 실감 나게 직조했다. 플루트의 선율은 세이렌의 노래처럼 관능적이었다. 1부에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1번을 협연하며 예의 무시무시한 기교로 악단과 당당히 맞선 유자 왕은 앙코르를 세 곡이나 선사하며 팬 서비스를 확실히 했다. 앙코르인 포레 ‘파반’에도 플루트가 다시 한번 빛났다. 목관과 현악의 블렌딩과 셈여림의 곡선미가 느껴진 아름다운 연주가 여운으로 남았다.
매년 내한하는 빈 필하모닉의 무대(10.23~26)도 빼놓을 수 없는 음악 애호가의 관심사다. 이번 투어에는 안드리스 넬손스가 지휘봉을 잡았다. 협연자 미도리(바이올린)는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1번을 마치 신인처럼 연주했다. 곡을 자기 안에 움켜쥔 듯 잔뜩 웅크리고 수렴하는 연주였다. 넬손스는 이후 이어진 말러 교향곡 5번에서 진득하고 여유로운 템포를 견지했다. 존 바비롤리의 음반이 생각나기도 했다. 빈필이 번스타인 지휘로 보여줬던 파괴력과 극단적인 상승·하강은 여기서 찾아볼 수 없이 평온했다. 말러가 가진 아드레날린과 염세주의, 유대적 클레츠머풍의 구성 대신 빈필의 음색이 여운으로 남았다. 앙코르 프란츠 폰 주페의 ‘경기병’ 서곡은 눈이 번쩍 뜨이는 호연이었다. 금관·목관·현악이 이리 고급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분 좋게 기름진 음색에 귀가 황홀했다.
정명훈/라 페니체 오케스트라의 무대(10.4~10)에서 지휘자 정명훈은 광활한 캔버스 위에 한 송이의 들꽃도 놓치지 않고 소복이 담아냈다. 그의 시그니처인 베르디 ‘운명의 힘’ 서곡부터 그랬다. 이탈리아인보다 더 이탈리아적인 피가 끓는 해석이었다.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 중 ‘티볼트의 죽음’은 박진감이 넘쳤다. 광기로 집중된 혈기, 출혈로 나른해지듯 빠져나가는 기운,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음색이 어둑하게 물들어나가는 표현은 기가 막혔다. 협연자인 김선욱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은 그의 나이에 20년은 더한 피아니스트처럼 노련한 연주였다. 뚜렷한 과거를 회상하다 멈칫하듯이, 느릴 이유가 충분한 2악장은 명연이었다.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브르노 필하모닉(10.2·3)의 연주도 기억에 남는다. 체코필이 베를린필이라면 브르노필은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같이 매끈했다. 브루크너 해석의 거장 중 한 명인 러셀 데이비스의 지휘봉 아래 악단은 부드러운 음색을 선보였다. 체코 특유의 그리움을 띤 투명하며 따스한 현악과 지저귀는 새 같은 플루트, 시종 얼굴이 붉어지던 클라리넷, 과하지 않은 바순 등의 목관이 있었으며, 티 나지 않게 테두리를 만드는 호른, 시원하게 포효하면서도 끝이 둥근 금관군이 훌륭하게 블렌딩하여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을 해석했다.
부천아트센터에서 펼쳐진 안제이 보레이코/바르샤바 필하모닉(2.13)은 루토스와프스키 ‘작은 모음곡’과 앙코르곡 바체비치 ‘오베레크’로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했다. 거대하면서도 구석구석 잘 ‘보이는’ 음향이 다이아몬드처럼 작품을 빛나게 했다. 라파우 블레하츠(피아노)가 협연한 슈만 협주곡은 시차 적응 때문인지 기대 이하였지만, 앙코르인 쇼팽 왈츠 Op.64-2는 자유자재의 템포로 역시 아티스트다운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브람스 교향곡 2번은 곡에 충실한 명연주는 아니었지만, 음향을 중점으로 감상하니 곳곳에서 관과 현 소리가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부분이 많았다.
토마시 브라우너/프라하 심포니(1.17·18)는 쌉싸래한 현악 소리만 들어도 오래된 체코의 건물과 포도, 새파란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을 자아내는 듯했다. 목·금관도 하늘에 구름 빛깔처럼 준수하게 펼쳐졌다. 프라하 심포니는 체코필에 비해 자유롭고 분방한 연주를 펼쳤다. 템포가 자주 변하면서도 흐름을 끊지 않았다. 따뜻하고 화사한 성질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쾌해 보이는 팀파니스트는 어깨춤을 추고 헤드뱅잉을 하며 곡 자체의 긴장감을 빼고 음악의 정수만을 흐르게 했다. 관현악을 위한 ‘전설’과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는 군더더기를 다 제한 채 체코의 것만 남겨놓은 알짜배기였다. 문태국이 협연한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은 지금까지 그의 연주 중 가장 풍성한 음향을 만들어냈다. 앙코르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프렐류드였다. 오케스트라 앙코르로 ‘슬라브 춤곡’을 들으니 붉은 낙엽이 하나둘 블타바강에 떨어져 흘러가는 프라하의 가을 냄새가 났다.
국내 오케스트라 가운데는 얍 판 츠베덴이 본격적인 지휘를 선보인 서울시향이 탄탄한 현을 중심으로 흔들리지 않는 아성을 구축한 가운데 KBS교향악단이 피에타리 잉키넨 시대의 마지막 해를 보내며 향후 애호가들의 기대치를 높였다. 다비트 라일란트/국립심포니는 콘셉트가 확실한 디자인으로 고정 관객을 확보했다. 세 악단 공히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선욱의 경기필은 라이너 호넥(빈필 악장)을 기용해 ‘영웅의 생애’를 연주하는 등 고급 애호가들의 취향을 저격했고 고잉홈프로젝트는 베토벤 교향곡 전곡 시리즈로 젊은 청중을 끌어모았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BEYOND CHOICE
또 다른 감동으로 남은, 국내 교향악단의 협연!
다카세키 겐/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6.27/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등받이 의자에 앉아 홀로 내면을 탐구하는 듯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려준 미하일 플레트뇨프 ◎양경원
투간 소키예프/서울시향 (8.30/롯데콘서트홀)
러시아·프랑스 음악 해석에 뛰어난 지휘자 투간 소키예프의 탁월한 작품 해석 ◎최은규
02 클래식 실내악 ENSEMBLE
빛을 발하는 관록
지난 몇 해간의 집중을 통해 이뤄낸 여러 단체의 성취
고전의 텍스트를 연구하고 가장 좋은 소리를 만들면서 자신의 색을 입히는 데에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이 모인다면 더더욱. 3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현악 앙상블 화음챔버오케스트라(3.30·5.18·12.14)는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다. 지난 3년 동안 ‘레퍼토리 시리즈’를 통해 고전 레퍼토리와 창작곡 레퍼토리를 통합하는 시도의 대단원을 앞두고 있다. 그들은 익숙한 클래식 작품과 낯선 창작곡이 한 주제로 묶여 자연스러운 음악 이야기로 만들어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올해 창단한 에올리아 앙상블(6.18)도 실내악의 지평을 한 차원 끌어올린 ‘챔버뮤직소사이어티’ 멤버들이 다시 모인 관록 있는 앙상블이다. 목관 5중주의 고전인 프란츠 단치의 작품과 함께 상당한 집중을 요구하는 힌데미트, 미요, 풀랑크의 레퍼토리를 연주하여 시작부터 정상급 앙상블임을 보여주었다. 세종솔로이스츠(8.24) 역시 창단 30년을 맞은 올해도 신선한 예술적 경험의 기회를 마련했다. 세종솔로이스츠 출신의 네 명의 악장들과 마련한 연주회는 음악 기술의 거장 토드 마코버가 AI를 활용한 음악을 위촉 발표하고 김택수의 위촉작을 초연하는 등 주목해야 할 사건으로 채워졌다.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일환으로 내한한 카잘스 콰르텟과 임효선(8.1)의 연주도 작은 홀(알펜시아콘서트홀)에서 세계 정상의 연주자를 만나는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B-A-C-H 동기를 공유하는 바흐와 구바이둘리나의 음악은 시간을 초월하는 확장을 경험하게 했고, 모차르트와 슈만의 연주에서는 소리에 감싸 안기는 전율을 느끼게 했다. 한재민과 크리슈토프 바라티, 박재홍으로 구성된 피아노 3중주(10.30)는 상설 단체는 아니지만, 매우 섬세하고 내밀한 연주였다. 드보르자크, 차이콥스키 등 죽음과 슬픔을 담은 작품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 다가갔고. 그들의 음악회는 매 순간 제의로 변모되어 영혼에 파동을 일으켰다.
이뿐 아니라, 고전에서 벗어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연주자들도 언제나 있어 왔다. 배승혜의 앙상블 작품 ‘도시산조I: 서울’(10.16)은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 국악, 창작곡 등이 어우러지고, 영상과 콘서트가 공존하는 무대를 만들었다. 균형을 맞추기가 대단히 어려운 여러 요소는 ‘서울’이라는 키워드로 무게중심을 잡고, 공감과 감동이 교차하는 넌버벌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박정은의 ‘질곡: 차꼬와 수갑’(10.18) 또한 다양한 편성의 앙상블에 현대무용, 영상, 무대장치를 결합하여, 자유를 잃은 오늘날 삶에 대한 메시지를 강렬하게 호소했다.
현대음악 전문 앙상블의 어려운 여건에서도 끊이지 않는 도전에 아낌없는 격려를 보낸다. 현대음악앙상블 소리(3.28·9.24·11.5)는 젊은 한국 작곡가와 그들이 영향을 받은 작곡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3년간의 ‘동방신곡(東方新曲)’ 프로젝트를 마쳤다. 올해는 지성민, 최재혁, 손일훈이 함께 했다. 작곡가들에게는 자신의 음악을 돌아보고, 연주자들은 젊은 작곡가들의 세계를 체계적으로 익히며, 감상자들은 해설과 함께 새로운 음악을 접함으로써, 각자의 입장에서 모두가 배우고 즐겼던 음악회였다.
반면, 앙상블블랭크(8.17)는 한국에서 가장 젊은 현대음악 앙상블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프로그램은 시대를 꿰뚫는 무게감을 지니고 있다. 베베른에서 시작하여 불레즈와 핀처로 흐르고, 공모를 통해 김준영과 패트릭 프릴의 작품을 소개한 이 연주회는 감정 표현의 미학을 현대화하며 현대음악 감상의 또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BEYOND CHOICE
악기와 곡목이 눈에 띈 올해의 실내악!
박동욱 타악 리사이틀 (1.24/예술의전당 IBK챔버홀)
1세대 퍼커셔니스트의 구순. 그가 35년에 걸쳐 작곡한 다섯 개의 작품으로, 타악기 연주 기술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역사적 가치의 공연 ◎이민희
백향민 트럼펫 리사이틀 (2.6/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드뷔시의 ‘달빛’부터 볼컴의 ‘우아한 유령’까지, 멀리 보이던 트럼펫을 단번에 친근하게 만들어주는 마술 ◎양경원
발트앙상블 리사이틀 (8.19/롯데콘서트홀)
야나체크 현악 4중주 편곡 버전 등 참신한 프로그램과 뛰어난 합주, 단원 개개인의 탁월한 기량과 음악적 아이디어의 참신함까지 ◎최은규
03 클래식 독주 SOLOIST
한명 한명이 만든 하루하루가 축제
각자의 개성으로 역사를 묶어주는 솔리스트
올해는 서로 다른 레퍼토리와 스타일을 가진 피아니스트들의 무대가 돋보였던 해였다. 2022년부터 슈베르트 소나타 연주를 이어가고 있는 폴 루이스(1.31~2.1)는 첫날은 4·9·18번, 둘째 날은 19·20·21번을 연주했다. 흔히 언급되는 초기의 어리숙함이나 후기의 방랑자 기질은 루이스에게 편견일 뿐이다. 그는 자신이 느낀 솔직한 감각을 최상의 솜씨로 표현하며, 지난 공연에 들려준 거인의 이미지를 연장선으로 그렸다.
메시앙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 전곡에 도전한 조재혁(3.9)의 무대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발레리나 김주원 등 여러 무용수들과 함께한 공연은 방대한 대작이 담고 있는 신비로운 음향에 또 다른 이야기를 더하며 우리의 삶과 동조했다. 현대음악 애호가라면 다닐 트리포노프(4.1)의 연주 또한 잊지 못할 것이다. 20세기 전반에 걸쳐 특징적이고 아이디어 넘치는 아홉 작품으로 채운 그의 프로그램과 연주는 도전적인 연주자와 감상자에게 강렬한 통찰의 시간을 제공했다. 특히 앙코르로 연주한 존 케이지의 ‘4분 33초’는 지금도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피에르 로랑 에마르(10.1)는 리게티와 베토벤의 바가텔, 그리고 리게티와 쇼팽, 드뷔시의 에튀드를 교차하는 연주로 공연장을 시공간을 초월한 환상으로 고양시켰고, 모두를 포용하는 우주를 경험하게 했다. 호불호, 선호, 취향 등을 말했던 입들이 얼마나 부끄러운가! 에마르는 앙코르로 존 케이지에 대한 패러디였던 리게티의 ‘세 개의 바가텔’을 연주하여, 본의 아니게 트리포노프에 대한 응답을 주었다. 예브게니 키신(11.20) 또한 베토벤부터 프로코피예프까지 200년간의 주요 작곡가를 다루었다. 아울러 잘 연주되지 않았던 작품들로 신선함과 매력을 더했으며, 키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하고, 포용과 공감이라는 예술의 목소리를 듣게 했다.
바이올린 애호가에게도 올해는 축제의 연속이었다. 5년 만에 내한한 안네 조피 무터(3.13)는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그리고 클라라 슈만과 레스피기라는 복합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큰 명성을 얻었던 그의 어린 시절 속 거장들을 연상하게 했다. 동시에 어느덧 원로 연주자가 된 모습에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반면에 정경화(8.6)는 브람스와 프랑크의 소나타에서 여전히 젊은 시절의 감성을 들려주면서 한편으론 사뭇 다른 모습도 보여주었다. 유연한 프레이즈부터 거친 제스처까지, 속삭이는 피아노부터 호소하는 포르테까지, 견고한 성과 같은 정경화의 음악 세계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조진주(10.17)는 비버와 모차르트, 쇼송, 프로코피예프까지 300년에 이르는 시간을 한자리에 소환하는 마력을 들려주었다. 폭발적인 열정으로 압도하는 호소력을 들려준 그의 연주는 오랜 음악의 역사를 자신의 삶으로 치환했고, 이를 감상자 한 명 한 명의 마음에 각인했다.
남다른 무대 장악력을 보여준 음악가들도 기억에 남는다. 소프라노 박혜상(2.13)은 무대 공연으로서의 음악을 다시금 깨닫게 했다. 사랑과 숭배와 관련된 다양한 곡들을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듣는다는 감격에 더해, 그의 퍼포먼스는 감동의 드라마가 되었다. 클라리네티스트 김한(4.18)의 공연 또한 무대를 활용한 공간적 연주를 들려주었다. 20세기의 작품들을 뛰어난 솜씨와 섬세한 뉘앙스를 갖춰 연주하면서, 음악 감상이 청각에서 시청각으로 확장되었음을 선언했다. 첼리스트 한재민(3.27)은 첼로의 히어로였다. 그의 독주회에서는 유명한 코다이와 리게티의 소나타, 카사도의 초절적인 모음곡과 함께 미국의 역사와 사회를 되짚은 존 윌리엄스의 모음곡이 연주되었다. 수준 높은 이해력과 기교로 첼로의 폭넓은 표현력과 호소력이 빛을 발한 공연이었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BEYOND CHOICE
레퍼토리가 다양했던 올해의 독주회!
윤혜리 플루트 리사이틀 (6.12/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낯선 프로그램으로 만든 결코 낯설지 않은 음악. 플루트의 서정성과 현대적 기교까지 악기의 모든 매력 발산 ◎유선옥
다니엘 로자코비치 바이올린 독주회 (9.10/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바흐 무반주 작품의 볼륨이 얼마나 커지고 작아질 수 있는지, 얼마나 무겁고 가벼워질 수 있는지 ◎양경원
김계희 바이올린 리사이틀 (10.10/금호아트홀 연세)
다양한 무대와 레퍼토리를 섭렵하며 다져진 실력. 노련함·힘·뚝심·인내심이 느껴지는 성실한 연주자의 발견 ◎김주영
04 클래식 오페라 OPERA
크고 작은 양극화
국공립 단체와 민간단체의 엇갈린 행보
올해 오페라계는 2022~2023년과 사뭇 다른 양상이 느껴졌다. 국내 오페라 생태계 구도는 항상 국공립 오페라단과 민간 오페라단으로 양분됐는데, 올해는 최근 2~3년간 약진해 온 민간 오페라단의 활동이 주춤하고, 국공립 오페라단들의 활약이 돋보여, 모양새가 달라졌다. 한편,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맞아 전 세계적으로 그의 작품이 많이 공연됐으며, 국내 오페라계도 이 흐름에 맞춰 푸치니 오페라를 많이 공연했다는 점도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다.
국립이라는 위상에 맞는 선택
국립오페라단은 2월부터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한여름 밤의 꿈’ ‘죽음의 도시’라는 국내 초연작을 잇달아 무대에 올렸으며, 나아가 국립오페라단으로서 45년 만에 공연하는 ‘탄호이저’까지, 작품마다 개막 전부터 화제를 모은 출연진을 선보였다. 1979년에 한국 초연한 바그너 ‘탄호이저’(10.17~20)는 당시 한국어로 번역·노래했으나, 이번에는 원어로 공연하며 국립오페라단과 국내 오페라 역사에 새로운 한 페이지로 남게 됐다. 특히 2025년 ‘트리스탄과 이졸데’, 2027년 ‘니벨룽의 반지’로 이어지는 국립오페라단 ‘바그너 시리즈’의 신호탄이 될 작품으로 더욱 관심을 끌었다.
이번 시즌 공연된 3편의 한국 초연작들은 모두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보기 드문 오페라 작품으로, 이들을 한국 무대에 소개하는 것은 국립오페라단의 레퍼토리 다변화·다양성 측면에서 매우 환영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중 브리튼 ‘한여름 밤의 꿈’(4.11~14)과 코른골트 ‘죽음의 도시’(5.23~26)는 출연 가수, 연출, 무대디자인, 음악 등 전반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으며, 덕분에 초연작임에도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영조 작곡의 오페라 ‘처용’을 파리·빈·베를린에서 콘서트오페라로 공연한 6월 유럽 투어 또한 현지에서 호평을 들었다. 지난해 베르디 탄생 210주년을 기념하며 시즌 모든 오페라를 베르디 작품으로 공연해 비판받은 것과 달리, 푸치니 서거 100주기에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12.5~8)를 다시 공연하는 정도로 작곡가를 예우한 것도 민간 오페라단과의 차별점이 됐다. 국립오페라단의 달라진 행보는 최근 몇 년간의 안일함에서 벗어난 모습으로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서울 예술의전당도 지난해 오페라 ‘노르마’에 이어 올해도 8월 영국 로열 오페라의 프로덕션으로 베르디 ‘오텔로’(8.18~25)를 선보였다. 테너 이용훈의 두 번째 국내 무대가 된 이번 오페라는 로열 오페라 특유의 웅장하고 세련된 무대세트와 섬세한 소품으로 주목을 받았고, 국립심포니의 좋은 연주가 인상적으로 남았다.
호연을 이어간 나날
서울시오페라단 또한 상반기에는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를 1930년대 경성으로 옮긴 ‘라 트라비아타-춘희’(4.25~28)로 화제를 낳았고, 하반기에는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를 캐스팅한 푸치니의 ‘토스카’(9.5~8)로 기대를 받았다. 이때 ‘토스카’에서 일어난 배우들의 돌발행동은 오페라계에 논쟁을 이끌었다. 카바라도시를 맡은 테너 김재형이 열광적인 박수에 화답해 공연 중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을 앙코르로 불렀고, 이에 안젤라 게오르규가 불만을 품고 무대에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를 벌인 것. 안젤라 게오르규의 돌발행동이 무례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드라마의 일종인 오페라에서 극의 흐름을 깨고 앙코르를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의 문제는 찬반양론이 일었다.
6월에 야외무대에서 선보인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6.11·12)는 서울 시민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지난해 야외오페라 ‘카르멘’에 이은 서울시오페라단의 시도로 적은 예산에 크지 않은 무대지만, 우리나라의 정상급 음악가들이 참여해 만든 공연으로 질적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 광화문 한복판에 울려 퍼진 오페라 선율은 관객뿐만 아니라 퇴근길 위의 시민에게도 클래식 음악에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국립오페라단과 서울시오페라단은 규모나 예산 면에서는 큰 차이가 있지만, 서울의 국공립 오페라단으로서 각자의 구실을 다했다는 의견이다. 서울문화재단은 2022년부터 3년간 이어오고 있는 한강노들섬클래식의 일환으로 야외오페라 비제의 ‘카르멘’(10.19·20)을 공연했으며, 올해도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러한 기조는 지방의 국공립 오페라단에도 이어졌다. 자체 극장을 보유한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여전히 활발한 공연을 지속했다. 시즌 작품으로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글루크) ‘파우스트’(구노) ‘안드레아 셰니에’(움베르토 조르다노) ‘라 보엠’(푸치니)을 공연했으며, 특히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가 많은 박수를 받았다. 제21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10.4~11.8)는 ‘장미의 기사’를 시작으로 ‘광란의 오를란도’(한국 초연), ‘264, 그 한 개의 별’(세계 초연), ‘시칠리아섬의 저녁기도’(국립오페라단), ‘라 트라비아타’(광주시립오페라단) 등이 성공적으로 공연됐다.
특히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한 민족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이육사를 소재로 한 오페라 ‘264, 그 한 개의 별’(작곡 김성재/대본 김하나)은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지난 2021년부터 진행해 온 ‘카메라타 창작오페라 연구회’ 사업의 첫 결과물로, 이번 축제에서 세계 초연됐다. 창작오페라 발굴과 공연에 꾸준한 관심을 기울여온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오랜 준비 끝에 내놓은 신작으로써 의의가 있다. ‘라 트라비아타’는 광주시립오페라단이 제작한 프로덕션으로, 광주의 단체와 대구오페라하우스는 지난 2016년부터 달빛동맹을 맺어 작품 교류를 이어 왔다. 대전예술의전당은 지난해 개관 20주년을 위해 베르디 ‘운명의 힘’을 선보이려 했으나, 무대 세트 미완성 문제로 개막 전날 공연을 취소하여 난관에 처했다. 하지만 올해 화려한 무대로 많은 갈채를 받아, 실추된 명예를 회복했다.
예산 감축의 직격타를 맞은 민간단체
국공립 오페라단이 기세를 올린 것과 대조적으로 민간 오페라단의 공연 실적은 저조한 편이다. 제15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서 그 조짐이 나타났다. 약 50일의 기간 동안 총 8편의 작품이 공연되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 5월 25일부터 7월 7일까지 공연작은 총 5편으로 줄었다. 이는 축제 예산 삭감에 따른 규모 축소였다.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은 작년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장르 대표 지원 사업으로 지정되어, 해마다 4억 5천만 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아 왔다. 하지만 올해 지원 사업 대상에서 탈락하면서 참여 오페라 단체들은 지원금 없이 100% 자력으로 참여해야 했다. 정부 지원금이 사라지자 선정된 일부 단체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조직위에 불참을 통보했으며, 이는 국립오페라단도 예외가 아니었다. 15주년을 기념해야 할 축제가 오히려 씁쓸하고 초라한 잔치로 변했다. 지난 15년간 민간 오페라단의 활동에 든든한 동력이 돼왔던 본 축제에 국고 지원이 중단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근심스러운 상황에도 지난 6월, 베세토오페라단(‘피가로의 결혼’)과 누오바오페라단(‘나비부인’)은 페스티벌에 참여해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
9월 대구에는 영남오페라단이 창단 40주년을 기념하는 갈라 콘서트를 성대히 개최했다. 영남오페라단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작품 활동하는 민간 오페라단 사이에서도 긴 역사를 자랑하는 단체이다. 수도권도 아닌 지역에서 40년 동안 거의 매년 꾸준히 오페라를 공연했다는 점은 큰 의미이다. 11월 글로리아오페라단은 예술의전당에서 오페라 ‘나비부인’을 다시금 공연했다.
초대형 공연의 부활
민간 오페라단이 과감한 공연을 선보인 사례도 있다. 솔오페라단은 10월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과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맞이하여 잠실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8일간 이탈리아의 아레나 디 베로나에서 공연한 프로덕션 그대로 푸치니 ‘투란도트’(10.12~19)를 공연했다. 야외오페라를 올림픽 체조경기장에 무대를 세운 실내오페라로 전환했으나, 프랑코 제피렐리(1923~2019)의 전설적인 ‘투란도트’ 무대와 의상을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로도 큰 의의가 있었고, 성악가의 가창과 연기 또한 뛰어났다.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비싼 푯값에도 불구하고 뜻깊은 공연으로 평가됐다.
솔오페라단의 ‘투란도트’에 이어 12월 22일부터 10일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주)2024투란도트문화산업전문회사가 제작한 ‘어게인 2024 오페라 투란도트’(12.22~31)가 공연될 예정이다. 같은 작품을 막대한 규모로, 비슷한 시기에 공연하는 두 단체는 출연진 섭외 등을 두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두 단체의 공연은 민영 오페라단의 침체가 유난히 두드러졌던 올해의 분위기와 반대로 보기 드문 대작을 선보인다는 점에 특기할 만하다.
올해의 오페라계는 양극화가 두드러졌다. 국공립 오페라단의 공연 활성화와 민간 오페라단의 부진, 나아가 전반적으로 민간 오페라단의 공연단체와 규모가 감소한 가운데 등장한 초대형 체조경기장 오페라의 부활 등이 그것이다. 한편으로는 고무적이고, 한편으로 우려스러운 현상이 동시에 관찰됐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우리 오페라 생태계의 균형 잡힌 발전을 기대해 보도록 하자.
글 손수연(오페라 평론가)
BEYOND CHOICE
또 다른 감동으로 남은, 올해의 오페라!
예술의전당 ‘오텔로’ (8.18~25/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장르로서 오페라가 가진 힘을 제대로 보여준 공연. 매년 여름 이어오고 있는 예술의전당 오페라 시리즈에 앞으로도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한정호
김재훈컴퍼니 ‘피앤오’ (10.15·16/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과거 ‘1가정 1피아노’ 시대를 벗어나 이제는 폐기물 취급을 받는 피아노를 향한 시선을 담아낸 음악극. 피아노를 물리적·관념적으로 해체하여 새 악기로 구성해 나가는 과정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미술적 오브제 ◎이민희
국립오페라단 ‘탄호이저’ (10.17~20/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뛰어난 완성도의 바그너 레퍼토리로 내년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도 기대. 좋은 오페라 하우스 극장 체계만 갖춰진다면, 국내의 훌륭한 성악가들을 계속 소개할 수 있을 것 ◎한정호
국내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세련된 연출과 뛰어난 가창, 연주로 소화 ◎최은규
05 클래식 음반 RECORD
세계가 주목한 한국의 별
음악계의 미래를 밝힐 젊은 아티스트의 향연
올해는 지상파 뉴스에서도 클래식 음반이 다뤄졌다. 지난 10월 그라모폰상 후보에 오르고 수상까지 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음반이 이 분야 올해의 최대 화제였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피아노 부문 한국인 최초 수상이다. 최종 후보에 오른 총 세 장의 음반 목록에 피아니스트 피오트르 안데르셰프스키의 버르토크·야나체크·시마노프스키(Wanner Classics)와 함께 쇼팽 에튀드(Decca)➊와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Steinway&Sons)➋, 이 두 장의 음반이 모두 오른 것도 화제였다.
수상작인 쇼팽 ‘에튀드’ 음반 커버는 임윤찬이 원하는 분위기를 내기 위해 필름으로 촬영됐고, 1960년대 이후 데카의 황금시대 피아니스트를 연상시키는 오리지널 데카 LP 로고를 사용했다. 임윤찬의 연주는 한마디로 ‘완급과 농담(濃淡)의 자유자재’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연주와는 다른 부분이 새로운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에 그치는 게 아니라 설득력을 갖춰, 곡을 더 입체적으로 조망하게 하고 작품에 대한 애착을 증대시킨다. 이는 그라모폰상 두 후보작인 쇼팽과 리스트 음반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부분이다.
그라모폰상 ‘올해의 음반’으로 선정된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의 이자이 무반주 소나타 음반(DG)➌은 연주와 녹음 양면에서 기억해 둘 만하다. 까다로운 작품이라 결정반이라고 할 수 있는 녹음이 그리 많지 않은 상황에서 작곡 100주년을 기념해 힐러리 한이 명작을 남겼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와 함께한 ‘러브 뮤직’(Naïve)➍는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에 이어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프란츠 박스만(‘트리스탄과 이졸데 환상곡’)으로 문을 열고 바그너(‘베젠동크 가곡’)로 문을 닫는 구조 속에 코른골트 ‘죽음의 도시’나 R. 슈트라우스 바이올린 소나타 등 반복 감상을 통해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들을 배치해 연주뿐 아니라 기획의 귀재다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바그너에 매료됐던 피아니스트가 또 있다. 니콜라이 루간스키의 바그너 음반(Harmonia Mundi)➎은 피아노 편곡 연주의 무한한 가능성과 바그너 음악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더욱 깊게 만들어줬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 데이비드가 연주하던 ‘라인의 황금’ 중 ‘신들의 발할라 입성’(루이 브라생·루간스키 편곡)으로 시작되는 음반은 ‘발퀴레’ 중 ‘마법 불꽃 음악’(브라생 편곡)을 거쳐 루간스키가 직접 편곡한 ‘신들의 황혼’ 중 ‘브륀힐데와 지크프리트의 사랑의 이중창’ ‘지크프리트의 라인 여행’ ‘지크프리트의 장송행진곡’ ‘브륀힐데의 고별의 노래’ 등 네 곡을 만난다. 이후 ‘파르지팔’ 중 장면전환 음악과 종막(펠릭스 모틀·니콜라이 루간스키·코치슈 졸탄 편곡)을 거쳐 리스트 편곡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으로 끝나는 건반의 드라마였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모차르트 음반(DG)➏ 역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환상곡 K397, 론도 K485 피아노 소나타 K332, K545, 전주곡과 푸가 K394 등을 특유의 시적 흐름으로 배열했다. “어른이 치기 너무 어렵다”라고 하지만 노(老) 대가의 모차르트를 들으며 또 다른 차원의 깊이를 새롭게 발견한다. 우리 안의 순수를 발견하는 동시에, 모차르트 안의 노련함과 고단함도 느낄 수 있던 음반이다. 총 3장의 음반 중 올해 2장이 발매됐다.
이밖에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플루트 수석 김유빈이 첫 정식 음반으로 발매한 ‘포엠’(Sony)➐도 눈에 띈다. 관악의 전통이 숨 쉬는 프랑스에서 무르익은 김유빈답게 생상스, 드뷔시, 풀랑크, 프랑크 등 여러 프랑스 작곡가의 작품을 해석했다. 피아니스트 김도현과 함께 오랜만에 우리 관악기 연주자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06 클래식 콩쿠르 COMPETITION
경연과 경쟁을 넘어
젊어지는 우승자들과 진화하는 콩쿠르
바이올린·비올라·첼로·더블베이스 네 개의 현악기 부문에서 한국인 연주자들이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다. 루마니아 에네스쿠 콩쿠르(8.31 ~9.22)에서 만 14세의 나이로 바이올리니스트 이현정이 2위에 올랐고, 독일 막스 로스탈 콩쿠르(10.19~25)에서는 비올리스트 신경식(1998~)이 금빛 트로피를 들었다. 폴란드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 첼로 콩쿠르(5.1~12)와 이탈리아 보테시니 더블베이스 콩쿠르(10.21~27)에서는 각각 김태연(2006~)과 유시헌(2005~)이 우승을 차지하며 주목받았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약 19세로, 국제 콩쿠르에서 1위에 오른 연주자의 나이가 낮아지는 추세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편, 아레테 콰르텟이 프라하의 봄 콩쿠르(2021), 모차르트 콩쿠르(2023)에 이어 프랑스 리옹 콩쿠르(4.23~26)에서도 승전고를 울렸다. 작곡 부문에서는 유상민(2000~)이 비올라와 실내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 ‘되찾은 시간’으로 스위스 제네바 콩쿠르(10.15~22)에서 3위에 입상했다.
지휘와 성악 부문에서는 오랜 무대 경험을 쌓아온 음악가들이 낭보를 전했다. 이승원(1990~)은 덴마크 말코 지휘 콩쿠르(4.15~20)에서 우승했고, 최재혁(1994~)은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지휘 콩쿠르(7.10~19)에서 3위에 올랐다. 독일 비스바덴 국립극장에서 솔리스트로 활동 중인 바리톤 박사무엘은 ARD 콩쿠르(9.3~20)에서 1위를 차지하며 바리톤 김동섭(2003)과 양준모(2006) 이후 18년 만에 성악 부문 한국인 우승자가 되었다. 제네바 콩쿠르 성악 부문에서는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영 아티스트로 활약(2018/19 시즌)한 바리톤 김정래가 2위와 두 개의 특별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프랑스 루아르 지방의 샤라페르테앵보 성에서 펼쳐진 제1회 조수미 성악콩쿠르(7.7~13)에서는 바리톤 지하오 리, 테너 제오르제 비르반, 테너 이기업이 차례로 1~3위에 올랐다. 성악가에게 이상적인 콩쿠르를 고민한 대회는 본선 및 결선 진출자에게 지역 주민과 함께 생활하며 현지 문화를 체험하고, 각국의 언어와 문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미국에서도 콩쿠르의 진화를 꾀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클리블랜드 피아노 콩쿠르(7.28 ~8.10)는 올해 출범 50년을 맞아 새로운 경연 형식을 도입했다. 각자의 무대뿐 아니라, 참가자들이 임의로 쌍을 지어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해 편곡된 가요를 연주하는 라운드가 진행됐다. 작은 공연 공간에서 심사위원과 관객에게 직접 자신의 음악적 비전을 소개한 뒤 연주하는 살롱 콘서트도 열렸다. 또한, 변화한 음악계 비즈니스에 맞춘 프로그래밍, 브랜딩, 마케팅, 펀드레이징 등에 관한 워크숍도 제공되었다.
단순 경연과 경쟁의 틀을 탈피하기 위한 콩쿠르의 실천이 점차 가시화된 한 해였다. 점차 1위라는 타이틀보다 콩쿠르를 통한 다양한 직간접적 기회가 젊은 음악가들을 한데 모으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 박찬미(독일 통신원)
07 클래식 서적 BOOK
‘객석’이 추천한 열 권의 음악 서적
글 속에 흐르는 클래식 음악
올해도 매달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는 책들이 출간돼 음악 애호가들을 즐겁게 했다. 이제 막 클래식 음악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초심자를 위한 말랑말랑한 입문서부터, 현재 예술계의 이슈를 깊이 있게 다루는 전문 서적까지, 다양한 주제의 책들이 책장을 풍성하게 채웠다.
올해는 많은 책이 단순히 하루에 한 곡씩 추천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독자가 자신의 관심사에 맞춰 음악을 감상할 수 있도록 다양한 감상법을 제시했다. 도시의 문화를 살피며 여행을 겸하는 ‘하룻밤 공연장 여행’(최민아)➊, 클래식 음악에 미술 작품을 곁들인 ‘루브르에서 쇼팽을 듣다’(안인모)➋, 영화 속 클래식 음악을 살피는 ‘뮤직파라디소 2’(심광도)➌, 가요와 함께 감상하는 ‘K-POP에서 만난 클래식 예술 살롱’(지나 김)➍ 등 타 장르와의 조합을 통해 흥미를 더했다. 음악과 관련된 다섯 개의 단편 소설을 엮은 ‘음악소설집’(김애란 외)➎도 빼놓을 수 없다. 각 소설에 드뷔시 ‘달빛’, 홀스트 ‘행성’ 등이 문학적 모티프로 흘러 페이지를 넘기는 재미가 있다.
초심자와 전문가 사이에 있는 중간 단계의 애호가를 위한 서적이 다양하게 출간된 점도 반갑다. 새로운 관점에서 체계적인 음악 감상 연습 방법을 제시하는 ‘클래식의 클래식’(이영록)➏, 음악의 박자·리듬·타이밍을 깊이 있게 이야기하는 ‘음악, 밀당의 기술’(이미경)➐ 등이 쉬운 설명으로 음악의 이해를 돕고 감상의 폭을 넓혔다. 특히 ‘모차르트는 여성이었다’(알리에트 드 라뢰)➑는 모차르트의 누이 마리아 안나, 슈만의 아내 클라라는 물론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음악사에서 잊힌 여성 예술가들을 조명해, 역사를 더욱 풍부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더 클래식’(김호정)➒은 각 연주자마다의 작품 해석 차이를 살필 수 있어 흥미롭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손열음·조성진 등의 연주를 비교하여 감상해, 각 연주자가 무엇을 다르게 표현하는지, 그리고 이들의 차이가 어떠한 감동을 만들어내는지에 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예술과 기술의 접점을 탐구하는 서적들도 부쩍 눈에 띄었다. 이는 AI와 인간의 관계가 점점 더 밀접해지는 이 시대에 예술이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남을 수 있을지에 관해 답을 각자의 모색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중에서도 ‘AI 시대의 음악과 테크놀로지’(음악미학연구회)➓는 인공지능과 뇌, 그리고 기술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음악 경험을 조망하며,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 가져올 미래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글 김강민 기자
08 연극 THEATER
‘구분 짓기’의 실체에 질문을 던지다
장애·인종·젠더 등에 대한 연극성의 탐구
다양한 작품들이 풍성하게 공연된 올해 연극계에서 특별한 키워드를 추출한다면, ‘배리어컨셔스(Barrier-Conscious)’로 설명할 수 있겠다. ‘장애를 없애자’는 배리어프리와는 달리, 배리어컨셔스는 ‘장애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지하는 것부터 필요하다’는 태도이다. 배리어컨셔스는 직접적으로는 장애 관련 작품을 다양화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고, 간접적으로는 담론의 영역을 확장하여 경계와 틀, 구분 짓기의 실체에 대한 문제 제기에도 적용됐다.
기존 작품들이 배리어프리의 입장에서 자막·수어 통역·음성 해설 등 몇몇 장치를 적용했다면 올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장애 자체에 집중했다. 개별 장애에 적합한 작품들이 창작되었는데, 우선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이지민 작·연출의 ‘기억들의 무덤’(9.12~15), 이진엽 작·연출의 ‘커뮤니티 대소동’(10.11~13)이 눈에 띈다. 공연장 내 암전 등으로 시각이 차단된 상태에서 시각장애인의 감각을 체험하는 이 작품들은 비장애인들에게 장애를 정확히 인지시키는 역할을 했다.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맥베스’(6.13~16)는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했고, 농인 배우들이 출연한 작품이다. 자막과 수어를 통해 대사를 전달했음에도 모든 감각을 감지할 수 있었다. 장애인 배우의 출현도 여러모로 확장되었는데, ‘젤리피쉬’ ‘생활의 비용’ ‘인정투쟁:예술가편’ 등 장애 연극은 물론이고 장애 연극을 표방하지 않은 작품에도 선명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국립극단·아르코예술극장 등에서 배리어프리와 배리어컨셔스의 방법이 공연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연극계의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배리어컨셔스의 확장된 담론으로, 경계와 구분 짓기에 대한 인식의 환기를 중심에 둔 작품들도 다양하게 창작되었다. ‘안나전: Hallo 춘향!’(1.25~28)은 외국인 배우가 춘향을 연기한다는 설정으로, 다양한 국적의 배우가 자신의 경험을 풀어내며 인종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꼬집는 작품이었다. 강보름 작·연출의 ‘-풀이연습’(8.24~9.1)은 비교적 견고해 보이는 전통이라는 틀에 대해 판소리를 습득한 외국인들과 전통예술을 공부한 이들이 직접 질문을 던졌다.
SF 장르와 결합하여 인간과 포스트휴먼에 대한 경계를 고민한 작품은 올해도 꾸준히 창작되었는데, ‘거의 인간’ ‘천개의 파랑’ ‘전기없는 마을’ ‘모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경계 탐색의 대표격인 젠더의 경우, 작년 한 해 쉬었다가 올해 재개된 제6회 페미니즘연극제(7.17~9.1)의 참가작 여섯 편이 다양한 층위의 젠더를 보여주었고, 그중 ‘커튼’은 동시대 여성의 고민과 연대를 제안하면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제5회 여주인공페스티벌(11.4~12.15)의 참가작 다섯 편은 연극 속 구체적 실현으로서 여성의 입지를 형상화했다.
흥미로운 것은 많은 작품이 경계를 인지하는 태도를 지향하면서, 실질적인 무대 위 구현 방법은 강한 연극성의 탐색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연극이기에 가능한 방법들, 연극만이 할 수 있는 표현 방법들이 부각되었다. 젠더에 대한 제안이면서도 강한 연극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작품은 서동민(작)·강훈구(연출)의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8.2~11)이다. 성소수자를 둘러싼 가족이라는 다소 단순한 서사를, 네 명의 배우가 모든 캐릭터를 번갈아 가며 연기하는 방법으로 입체화했다. 바닥에 그어놓은 공간구획선을 떼어내면서 직접적으로 경계를 지우는 연출은 연극이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김은성이 각색하고 문삼화가 연출한 ‘로풍찬 유랑극장’(8.29~9.8) 또한 강한 연극성을 보여줬다. 생존이 우선이었던 사람들이 처음 연극을 접했을 때의 생소함을 객석과 무대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강조하였고, 그로 인해 연극의 존재 의미를 환기하게 되었다.
서울시극단의 ‘퉁소소리’(11.11~27)는 조선시대 한문 소설 ‘최척전’을 각색한 작품으로, 공연 시작부터 이것이 연극이며 한바탕 놀이라는 것을 강조했던 공연은, 그 기조가 유지하며, 연극 고유의 연출 미학을 관객들이 체감하도록 했다. 혜화동1번지 8기 동인 페스티벌 ‘장르 대축제’(9.7~11.17)는 다양한 장르의 탐색이 목표였는데, 혜화동1번지라는 작은 공간 속에서 펼쳐내다 보니 연극만의 언어를 선택할 수밖에 없어서 의도하지 않게 강한 연극성을 보여준 작품들이 공연되었다. 특히 무협장르에 해당하는 ‘연차대전’은 고수들의 내공과 결투를 가능하게 한 연극의 마술을 보여주었다.
배리어컨셔스가 궁극적으로는 현실의 모순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할 때, 돌봄을 적극적으로 담론화한 ‘장녀들’(7.28~8.4), 가해와 피해의 의미를 묻는 ‘애도의 방식’(10.1~19), 상실에 따른 상처와 극복을 다룬 ‘시차’(10.29~11.16) 등은 우리 사회의 여러 현실을 적극적으로 무대화한 작품들이다.
키워드와는 별도로 주목되는 것은 ‘햄릿’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늘 공연되지만, 올해는 유독 ‘햄릿’이 여러 프로덕션으로 공연되었다. 연극의 근원에 대한 질문들이 고전으로 향하게 되고, “사느냐 죽느냐”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햄릿에게 집중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봉련 배우가 연기한 여자 햄릿(7.5~29), 손진책 연출의 실험적인 햄릿(6.9~9.1), 신유청 연출의 세련된 햄릿(10.18~11.17) 등 다양하게 해석된 햄릿은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올해는 많은 원로 연극인이 세상을 떠나셨다. 오현경·임영웅·김민기·권성덕·김동수 등 평생을 연극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던 원로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일즈맨의 죽음’ ‘고도를 기다리며’ ‘라스트세션’ 등을 통해 강한 존재감과 건재함을 보여주는 원로들을 보며 원숙함과 노련함의 미덕이 무엇인지, 삶이 세월이 되었을 때 그 무게가 어떤 것인지, 원로 연극인들이 왜 귀감이 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글 배선애(연극 평론가)
BEYOND CHOICE
‘객석’이 주목했던 이 연극
연극 ‘햄릿’ (6.9~9.1/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햄릿’은 인류 공동 문화 재산이자 희곡계의 모나리자와 같은 작품이다. 400년 동안 수많은 연출자와 배우에 의해 재해석 됐지만, 여전히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연극을 탐구하는 정신이 어디까지 깊고 넓어야 하는지를 은연중에 가르쳐주는 작품이다. ‘햄릿’이 갖는 주제는 ‘사느냐 죽느냐’이다. 결국 인간이 목숨을 잃을지언정, 진실에 따라 살 것인가, 아니면 진실을 외면하고 목숨을 간신히 부지할 것이냐는 삶의 근원적인 질문이다. 우리에겐 영원하고 통시적인 주제이다.” ◎2022년 8월호/연출가 손진책
09 뮤지컬 MUSICAL
확장과 변화를 도모하다
마케팅 혁신과 여성 주인공의 시대
올 한 해 뮤지컬계는 총매출 4천590억 원(공연예술통합전산망 기준)을 기록했던 지난해의 흐름을 이어갔다. 내부적으로는 티켓 가격 및 배우의 겹치기 출연 이슈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으나, 스테디셀러의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해였다. ‘헤드윅’ ‘프랑켄슈타인’ ‘어쩌면 해피엔딩’ ‘시카고’ ‘킹키부츠’는 여전히 압도적인 흥행을 이어갔고, 지난해 특징적으로 관찰되었던 K-뮤지컬의 흐름은 더욱 강화되어 ‘위대한 개츠비’ ‘어쩌면 해피엔딩’ ‘마리 퀴리’ 등의 작품이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장기 공연되는 사례를 만들어냈다.
올해 한국 뮤지컬의 첫 번째 키워드는 ‘확장과 변화’다. ‘오즈’ 앙코르 공연과 ‘접변’의 성공으로 일본 및 중국 시장과의 쌍방향적 교류가 시작되었으며, 아시아 시장은 물론, 영미권 진출을 위한 현지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프로덕션이 늘어났다.
마케팅 측면에서는 기존의 유튜브 채널과 쇼츠를 활용해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으려는 노력이 대극장 뮤지컬까지 확장되었다. 쇼츠를 통해 최재림 신드롬을 이어갔던 ‘시카고’(6.7~9.29)는 물론이고, ‘킹키부츠’(9.7~11.10)는 유튜브 채널 ‘빵송국’의 콘텐츠 ‘뮤지컬 스타’를 통해 쥐롤라 신드롬을 만들어 내며 Z세대적 뮤지컬 향유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했다. 대학로에서는 창작 뮤지컬 ‘웨스턴 스토리’가 코미디의 현장성과 즉흥성을 쇼츠에 녹여 재연에 성공했다. 한편에서는 뮤지컬 팝업스토어가 홍보 방식의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는 ‘마리 퀴리’ ‘킹키부츠’ ‘알라딘’ ‘랭보’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틱틱붐’ 등에서 활용되었으며, 앞으로 더 많은 프로덕션에 적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작품성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팬데믹 시기에 초연되었던 ‘그레이트 코맷’(3.26~6.16)과 ‘하데스타운’(7.17~10.6)은 올해 재연에 성공하며 스테디셀러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레이트 코맷’은 연남장(서울 서대문구)에서 재연된 ‘룰렛’과 함께 이머시브 뮤지컬의 개념을 구체화했고, 음악의 힘으로 시적인 정취를 창출한 ‘하데스타운’의 폭넓은 흥행은 뮤지컬의 장르적 외연을 넓혔다.
창작 부문에서는 창작가무극 ‘천 개의 파랑’(5.12~26)과 음악극 ‘섬:1933~2019’가 호평받으며 인간과 휴머노이드, 장애 이슈를 뮤지컬 무대에 본격화했다. 동물의 관점에서 사랑과 연대, 성장을 이야기한 ‘긴긴밤’(10.15~ 2025.1.5)도 주목받았다. 오페라를 통해 일제 강점기 청년들의 꿈을 애잔하게 그린 ‘일 테노레’, 록과 글램 록(Glam Rock)을 통해 약자와 배제된 자들의 목소리를 전한 ‘홍련’과 ‘이터니티’는 새로운 음악 스타일로 초연에 성공했다. 팝 음악을 도입해 불안 장애를 앓는 인물을 조명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두 번째 키워드는 ‘여성’이다. 올해는 여성 인물만 존재하거나 여성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 증가한 해였다. ‘여기, 피화당’ ‘유진과 유진’ ‘메노포즈’ ‘접변’ ‘카르밀라’ ‘홍련’ ‘베르사유의 장미’ ‘리지’ ‘방구석 뮤지컬’ 등이 공연됐으며, 여성을 주체화하거나 시스터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전면화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특히, 대학로 중소극장 뮤지컬에서 시도되는 여성 뮤지컬들은 관객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남성 인물 중심의 서사에서 여성이 도구적으로 소비되던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배우로는 홍광호와 최재림이 건재한 가운데, ‘몬테크리스토’와 ‘지킬앤하이드’로 대극장에 안정적으로 진입하고 있는 김성철(1991~)이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다. ‘하데스타운’에서 한국 최초 젠더 프리 헤르메스로 열연한 최정원은 ‘시카고’의 벨마 켈리 역으로도 여전히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작사 측면에서는 CJ ENM이 공연의 특성에 맞춘 다양한 마케팅을 시도하며 자사 공연 브랜드를 더욱 안정적으로 구축했으며, 에이콤은 ‘영웅’과 ‘명성황후’를 각각 15주년, 30주년 기념공연으로 선보이며 역사 소재의 한국 뮤지컬을 발전시키고 있다. 또한, 다수의 IP를 확보하며 시장을 확장해 가고 있는 라이브러리컴퍼니의 행보가 매우 특징적이었다.
글 최승연(뮤지컬 평론가)
BEYOND CHOICE
‘객석’이 주목했던 이 뮤지컬
창작가무극 ‘천 개의 파랑’ (5.12~26/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경마를 위해 기수 휴머노이드가 만들어지는 세상. 자기와 함께 달리는 말 투데이가 달릴 때 행복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 휴머노이드 C-27은 스스로 낙마해 하반신을 부서뜨린다. 안락사를 기다리는 투데이, 폐기 처분을 기다리는 C-27, 상처 입은 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서 천천히 나아가며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선사해 나간다 ◎5월호/김강민
뮤지컬 ‘마리 퀴리’ (2023.11.24~2024.2.18/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마리 퀴리 역을 맡은 아일사 데이비슨은 냉철한 과학자로서의 인상을 주었고, 이주민 여성 과학자로서 불굴의 노력과 심리적인 변화를 탁월하게 표현하며, 윤리적 딜레마 속에서 갈등하는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9월호/정재은
뮤지컬 ‘홍련’ (7.30~10.20/대학로 자유극장)
올해 7월, 정식 초연된 ‘홍련’은 신예 창작진이 촘촘하게 엮어낸 서사가 돋보인다. 한을 담아내는 음악으로는 강렬한 록 사운드를 택했다. 씻김굿 장면을 제외하면 한국적 색채는 음악보다 서사의 정서에 더 짙게 배어있다 ◎9월호/허서현
10 무용 DANCE
발레계에 불어온 새 바람들
창단부터 기념 주년을 맞은 단체들의 맹활약
올해 국내 무용계는 발레가 주도했다. 서울에서 48년 만에 공공 직업 발레단인 서울시발레단이 출범했고, 부산에서는 부산오페라하우스 산하 단체로 운영할 부산오페라하우스발레단이 결성됐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창단 40주년 기념 공연을 가졌고, 광주시립발레단·부산발레시어터·세종시티발레단·인천시티발레단 등이 지역 발레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창단 20주년을 맞은 와이즈발레단과, 서울발레시어터·댄스시어터샤하르·정형일발레크리에이티브 등 전문 발레단의 활발한 활동도 괄목할 만했다.
창단 첫 시즌을 맞은 서울시발레단은 5월에 안성수·이루다·유회웅의 안무작을 모은 트리플 빌 공연 ‘봄의 제전’(4.26~28)에 이어, 8월 23~25일 창단 공연 ‘한여름 밤의 꿈’(안무 주재만)을 대극장 무대에 올렸다. 10월 9일부터 3일간은 한스 판 마넨의 ‘캄머발레’와 차진엽의 신작 ‘백조의 호수’를 묶어 공연했다. 프로젝트 체제로 출범하긴 했지만, 컨템퍼러리 발레를 지향한 서울시발레단은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예술감독의 부재, 작품 선정, 기획에서부터 제작 과정까지의 부실한 운영, 프로젝트 발레단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점에서 향후 문제를 개선하려는 과감한 용단이 필요해 보인다.
부산오페라하우스발레단은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였던 김주원을 예술감독으로 선임하고, 프로젝트 단원 10명을 선발, 11월 15~17일 부산영화의전당에서 ‘파키타 그랑파 클래식’과 박소연·이정윤이 안무한 ‘샤이닝 웨이브’로 첫 시즌 공연을 치렀다.
국립발레단은 존 노이마이어 안무작 ‘인어공주’(5.1~5), 파리 오페라 발레의 박세은·마린스키 발레의 김기민을 객원으로 초청한 ‘라 바야데르’ 공연으로 상·하반기 모두 뉴스의 중심에 있었다. 강수진은 이르지 킬리안에 이어서 또 한 명의 세계적 거장의 작품인 ‘인어공주’를 레퍼토리에 포함함으로써, 월드 스타로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높였다. 무엇보다 연극적·미술적 요소를 곁들여 극장 예술로서의 발레가 가진 장점을 높은 예술적 완성도로 이뤄냈기에 올해 무용계 최고의 공연으로 꼽아도 손색없다. ‘인어공주’의 주인공, ‘라 바야데르’의 니티카와 감자티로 연기한 조연재는 독창적 캐릭터를 창조해 내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무용수로 꼽힐 만했다.
2024년 주목을 받은 작품은 김보라가 안무한 국립현대무용단 ‘내가 물에서 본 것’(10.17~19), 벨기에 피핑톰 컴퍼니 시즌 단원으로 활약 중인 정훈목의 ‘야라스’(1.27·28)였다. 두 작품 모두 안무가들이 그간 공연과 사뭇 다르게 무용수들과 소통했다. 출연 무용수의 몸을 새로운 방법으로 해체하고 있는 이들은, 작품 속에서 선명한 비주얼과 함께 독창적 감각으로 살아 숨 쉰다. 와이즈발레단이 20주년 기념 공연 중 하나로, 주재만의 초연작을 보완해 올린 ‘VITA’(9.28·29)에서는, 시각적 조형미와 변화무쌍한 무용수들의 움직임, 에너지의 조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국립정동극장의 기획 공연 ‘세실풍류’ 중 하나인 ‘2010년대 이후 컨템포러리 한국춤’(4.25)에서 여섯 명의 여성 안무가가 직접 출연한 솔로 공연도 빼어났다. 분명한 콘셉트, 이를 풀어내는 아이디어의 참신성, 음악과 움직임의 뛰어난 일치 외에도 안무가들은 오브제를 활용한 메시지와 시각적 이미지를 구축했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의 기획 공연 ‘일무일악一舞一樂’(7.17·19)은 기존의 전통춤과 음악의 지역적 특성을 보존하면서도, 무용수와 연주자의 새로운 해석을 담아내며 재창작한 공연이었다. 국가무형유산 영산재 전승교육사 동희 스님이 16년 만에 제자들과 함께 마련한 ‘遠聞(원문), 천상의 소리와 작법’(10.19·30)도, 불교 성악과 불교 무용을 만날 수 있는 드문 무대로 주목받았다.
2024년 무용계는 연초부터 대표적 공공 지원기관의 심사 결과 때문에 소란했다. 독립무용가들의 성명서 발표, 인기 공연장인 아르코예술극장이 유례 없는 대관 취소 사태를 직면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그간 여러 카테고리로 나누어 운영한 지원 사업을 ‘창작 주체’ 항목으로 통합했으나 제대로 된 심사위원 구성과 운용을 하지 못했다. 서울문화재단은 가장 많은 무용 지원서가 접수되는 창작트랙 부문에 들쭉날쭉한 토론심사와 심사위원들의 과다한 심의 기피로 인해 우수 단체와 안무가가 대거 탈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별다른 차별성을 갖지 못한 ‘대한민국은 공연중’ ‘대한민국 문화예술교육 축제’와 같은 행사성 축제를 직접 기획한 문화체육관광부의 과시형 사업도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전 세계적으로 고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여러 나라에서 몸을 매개로 하는 예술 장르이자 창의적 삶을 생활 속에서 구현할 수 있는 무용 예술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정책을 개발·시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 같은 변화를 주시하고, 우리 실정에 맞는 탄력적 정책 운용을 적극 시행할 필요가 있다.
한국춤비평가협회가 시행한 ‘비평시각 춤 작가 공개 인터뷰 시리즈’는 한국 안무가들(제임스전·김은희·안애순·미나유·배정혜 참여)을 다양한 관점에서 집중적으로 조망하고 아카이빙 한 작업이라는 점에서 시선을 끌었다. 또한 TV 오디션 프로그램인 Mnet의 ‘스테이지 파이터’도 화제였다. 2014년, ‘댄싱 9’이 장르 제한 없이 행해진 것과 달리, ‘스테이지 파이터’는 발레·한국무용·현대무용이라는 장르 구분으로 시작해 경계를 허물어가는 방식을 택했다. 높은 시청률로 순수 무용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진다는 긍정론과 함께, 서바이벌 게임의 지나친 상업화에 대해 경계하는 목소리도 작지 않았다.
글 장광열(춤 비평가)
BEYOND CHOICE
또 다른 감동으로 남은, 올해의 무용!
서울시발레단 ‘봄의 제전’ (4.26~28/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서울에 모던 딴스를 허하라! 문법도 형식도 모두 새로운 컨템퍼러리 발레를 만나다 ◎양경원
국립발레단 ‘인어공주’ (5.1~5/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인생작’을 만난 환희가 조연재의 일거수일투족에 함께 했다. 안무가는 물속을 우아하게 유영하는 장면보다, 뭍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인어의 불안을 볼거리로 활용했다. (…) 국립발레단은 노이마이어의 아카이브 가운데 동북아시아 정서에 부응하는 작품으로 협업을 시작했다. 노이마이어는 결혼과 팬데믹을 겪으면서 아카이브 재생에 의욕을 보인다. 팔십 대 중반의 거장에게 1989년 도쿄 발레 위촉 ‘달에 모이는 일곱 개의 하이쿠’를 제작하던 시절의 체력을 요구할 순 없으나, 국립발레단의 놀라운 흡수력을 이어갈 차기작 연계를 더 늦출 순 없다 ◎6월호/한정호
11 국악 TRADITIONAL MUSIC
가·무·악·희를 한 자리에서!
악기와 노래, 춤까지 융합이 보여준 가능성
2024년 전통음악계는 분리되어 있던 가무악희(歌舞樂戱)가 한 무대에 오르는, 장르 융합적 창· 제작 공연이 활발했다. 전통 타악기와 장단의 매력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김인수의 장단소리: 정면’(5.26)은 공연 마지막에 연주된 ‘삼도장단소리’에서 구음으로 풀어낸 장단과 무용수들의 춤을 통해 가무악희 종합예술을 밀도 있게 구현하였다. 김인수가 창작 중심으로 타악의 가능성을 탐색했다면 김태영의 ‘춤을 부르는 장단’(6.8)은 전통에 좀 더 충실하였다. 종래의 타악기 반주자 위치에서 벗어나 무대 중앙에서 주인공이 되어 판을 이끈 김태영은 복미경의 태평무, 채향순의 승무 등 5가지의 전통 가무악 형태를 품격 있게 보여주었다.
이태백은 여우락페스티벌(7.4~27)에서 당대 최고의 기악연주자·소리꾼·춤꾼을 집대성한 공연을 펼쳤다. 이날 이태백은 스승 박종선의 아쟁 산조와 단가 ‘백발가’를 통해 그의 음악적 뿌리인 이임례 명창으로부터 내려오는 ‘오리진 사운드’(7.10)를 들려주었다. 허윤정의 ‘다시:나기’(7.5·6)는 부친 허규 각본·연출의 연극 ‘다시라기’를 모티프로 하여 거문고 및 기악 앙상블 위에 가무악 통섭의 연희를 아울렀다. ‘류경화의 동해안별신굿’(10.10) 역시 가무악희의 종합 공연을 주관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간 철현금과 타악주자로 일가를 이룬 류경화는 동해안 별신굿에서 지모가 담당하는 춤과 무가를 배워 굿을 주관하는 무당으로의 새로운 변신을 보여주었다.
한편 악(樂)과 무(舞)의 일대일 만남이라는 새로운 연행 양식으로 주목받은 공연은 ‘일무일악’(7.17·19,8.13)이었다. 무용수와 연주자가 하나의 작품으로 만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연주자가 단순한 반주자가 아닌 무대의 주인공으로 참여하여 악무의 기존 역학관계를 비트는 새로움이 있었다. 각각에게는 익숙하지만, 조합을 통해 맥락이 새로워지는 공연 형태라 할 수 있다.
올해 콘서트 중심으로 연희 양식의 완성도 높은 공연은 풍물과 굿을 융합한 ‘연희본색 II : 공존의 시대’(10.11)라 할 수 있다. 호남우도농악·동해안별신굿의 성주굿·대구 금회북춤 등을 무대에서 재구성한 연희 콘서트로서, 솔리스트의 역량에 주목하여 풍물에서 존재하던 개인 놀이의 중요성을 새삼 부각시켰다. 전통연희 중 공연예술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하면서 농악(혹은 풍물) 자체가 집중 조명된 것은 임실필봉농악을 주제로 한 전주세계소리축제(8.14~18)의 개막공연 ‘잡색 X’(8.14·15)이었다. 전통 농악대에서 뒷치배 놀이꾼에 해당하는 ‘잡색’을 주제로 한 콘서트였는데 배 구조물, 당산나무 등 대형 무대 장치를 활용했다. 잡색 퍼레이드를 비롯한 다채로운 퍼포먼스와 상징적인 연출,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이 강렬한 인상을 주면서도 보는 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논쟁적 공연이었다.
내년 출범 60주년이 된 국악관현악단은 새롭게 위촉·초연되는 창작의 산실 역할을 올해도 톡톡히 하였다. 국악관현악의 미래를 전망해 보는 관점에서 필자는 20~40대 작곡가들의 초연작을 주목하는데, 올해는 손다혜·이고운·여수연·최덕렬의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경기민요 한강수타령을 관현악적 기법으로 세련되게 쌓아 올린 손다혜의 ‘이화 도화 만발하니’와 함께 이고운의 타악기를 위한 협주곡 ‘울림’이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20년의 울림: 미래를 향해’(6.28)에서 초연되었다. 특히 이고운의 ‘울림’은 사물놀이와 관현악을 결합한 ‘신모듬’의 패러다임을 뛰어넘어 본격적인 풍물굿의 연행양식을 관현악과 치밀하게 결합해 국악관현악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연주자 그리고 작곡가’(6.13)에서 여수연의 해금 협주곡 ‘몽양’은 연주자가 직접 창작할 때 어떤 시너지가 있느냐는 기획 의도에 잘 부합하는 곡이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정반합’(10.2)에서 초연된 최덕렬의 ‘수리루’는 새타령 민요 가락을 기악적 동기 발전 수법 속에 정교하게 드러낸 수작이었다.
2회차를 맞이한 ‘대한민국국악관현악축제’(10.15 ~26)에는 10개 악단이 참여하였는데 일반 관중과 전문가 양쪽에서 가장 박수를 많이 받은 음악회는 뜻밖에도 올해 창단된 평택시립국악관현악단(10.16)의 특별공연이었다. 신생 단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탄탄한 연주력과 아시아 월드뮤직을 아우르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였는데 이는 단장 김영재와 그날 오랜만에 피리 협연과 지휘를 맡은 박범훈의 노련한 지도력에 기인한 것이다. 그날 연주된 황호준의 ‘영혼의 집’도 국립국악관현악단 ‘탄, 명작의 생’(6.14)에서 초연된 김성국의 ‘진도아리랑’과 함께 중견 작곡가의 저력을 확인시켜 준 우수작이었다.
이밖에 여성국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조영숙X장영규X박민희-조 도깨비 영숙(싱크 넥스트 24)’(7.26·27)과 말러 교향곡과 동해안별신굿을 결합한 생황 연주자 김효영의 ‘오굿XResurrection’(9.22), 그리고 관객참여형 확장현실(XR) 음악극 ‘네발은 좋고 두발은 나쁘다’(11.9·10)는 실험성과 전통성의 균형을 갖추면서도 기획적으로 매우 신선하고 의미 있는 공연이었다. 내년에도 장르와 매체, 세대 간의 경계를 뛰어넘고 전통 음악계의 안과 밖을 거침없이 횡단하는 융합형 창·제작 공연들이 많이 생산되어 새로운 맥락에서 전통 텍스트가 동시대성을 확보하고 나아가 전통 음악계의 지평을 더욱 확장해 나가길 기대한다.
글 이소영(음악 평론가)
BEYOND CHOICE
‘객석’이 주목했던 이 전통예술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 ‘잡색 X’ (8.14·15/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
“농악의 가장 큰 특징은 ‘청중·관중의 전복’이다. 현대 프로시니엄 극장에서 이를 자연스럽게 구현하기 어려워 무대 위의 ‘유사 관객’을 만드는 것으로 대처했다. ‘유사 관객’이 만드는 전복까지 관객이 고요하게 바라보면, 과거와 현대의 대척하는 장점이 모두 드러날 것이라 기대했다.” ◎8월호/연출가 적극
SUMMARY
각 달을 즐겁게 해준 인물, 알아야 할 사회 이슈 돌아보기
한 해를 ‘객석’으로 요약하면!
올해도 어김없이 새로운 도전과 묵직한 담론이 무대 위로 펼쳐졌고, ‘객석’은 이를 생생히 담아냈다. 한 해 동안 펼쳐진 다채로운 공연과 묵직한 담론을 되돌아보며 공연예술의 흐름을 정리했다.
1월
서울시향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
“모든 오케스트라에는 영혼이 있고, 지휘자는 이를 존중해야 한다. 다만 오케스트라 가진 이 보물을 언제나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돕는다. 오케스트라 트레이너라는 나에 대한 이미지는 지극히 작은 나의 일부다. 리허설을 위해서는 ‘트레이너’겠지만, 나 역시 무대 위의 연주자다.” 클래식 음악도 스트리밍 서비스의 시대 오직 클래식 음악 감상자를 위한, 클래식 음악 감상에 의한 스트리밍 서비스를 전격 비교했다. 스포티파이·애플 뮤직·유튜브 뮤직·이다지오 사용기를 확인할 수 있다.
새해를 여는 음악, 왈츠의 모든 것 새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음악, 왈츠. 느린 왈츠가 춤곡에서 시작해 시민 계급의 새로운 유행으로 떠올라 훗날 가정용·연주회용 음악으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2월
팝페라 테너 임형주
국내외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2003년, 그때부터 임형주의 이름 뒤에는 굵직한 기록들이 새겨졌다. 카네기홀의 모든 홀(아이작스턴 오디토리움·젠켈홀·웨일 리사이틀홀)에서 공연한 최초의 한국인 음악가, UN 평화메달 역대 최연소 및 한국인 최초 수상 등 ‘최초’와 ‘최연소’라는 수식어는 언제나 그의 곁을 맴돌았다. 지난해 임형주는 데뷔 25주년을 맞이했다. 팝페라테너로서 긴 시간 동안 홀로 남긴 ‘발자취’는 고스란히 후배들이 걸어갈 ‘길’이 되었다.
3~12월까지, 장르별 주목할 공연 프리뷰 전국 각지에서 펼쳐지는 공연 소식을 모았다. 각 지역의 공연장과 단체들이 선보이는 마티네 콘서트·실내악 공연·작곡가 시리즈부터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가족음악회와 영화음악 콘서트까지, 관객의 취향을 만족시킬 프로그램들을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3월
창간 40주년 기념호
월간 ‘객석’이 창간 40주년을 맞았다. ‘객석’은 1984년 3월 시작된 이래 국내외 예술 보도를 아우르며 명실공히 국가를 대표하는 음악·공연예술지로 자리를 지켜왔다. 출판한 권수는 지금까지 490권(2024년 12월호 기준). 수만 장에 달하는 종이에는 변화와 성장을 거듭해 온 대한민국 공연예술사의 짙은 희로애락이 묻어있다. 활자를 넘어 기록으로 남은 ‘객석’의 40년 역사를 돌아본다.
4월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1989년 시작된 교향악축제가 서른여섯 번째 막을 올린다. 한 달간 쏟아지는 다양하고 도전적인 작품,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이들이 가득한 협연자 목록, 새롭게 발표되는 작품 등… 그리고 이 모두를 가능케 하는 데는 무대에 오르는 단원 하나하나의 힘, 무대 아래에서 그들을 보좌하는 사무국과 실무자의 지지가 있다. 축제를 만드는 사람들, 올해는 그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자.
다양한 언어로 ‘재’탄생한 오페라 이탈리아부터 중국까지, 각 민족어로 새롭게 태어난 오페라의 발전사는 물론 성악가들의 언어별 접근법까지 탐구했다. 오페라 양식이 성립된 이후, 세계 각국은 ‘모국어 오페라’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인 ‘춘희(라 트라비아타)’와 첫 한국어 오페라인 현제명의 ‘춘향전’을 통해 서양음악을 수용한 이후의 한국 오페라사도 확인할 수 있다.
올봄엔 현대음악과 친해지자! 쇤베르크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며 현대음악의 매력을 살펴보았다. 봄에 내한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활동하는 세 명의 아티스트, 다닐 트리포노프·나래 솔·티에리 위에와 함께라면 그 재미를 더욱 크게 느낄 수 있다.
5월
함부르크 발레 단장·상임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
“안무가는 혼자 남겨져야 한다. 그가 무엇을 표현하길 원하는지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때로는 배운 것에 반대되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 할 수도 있겠다. 오늘날 많은 현대 안무가 비슷한 모습을 띠는 것은 모두가 서로에게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중략) 그 영향을 받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계속 질문해야 한다.”
컨템퍼러리 발레 입문서 17세기에 확립된 발레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며, 고전·모던·컨템퍼러리라는 양식이 만들어졌다. 발레의 역사와 고전 발레에 대한 거부와 창조적인 포용의 모습을 함께 짚었다. 매튜 본의 ‘로미오와 줄리엣’과 케네스 맥밀런의 ‘로미오와 줄리엣’ 무대에 오르는 뉴 어드벤쳐스의 모니크 조나스(줄리엣 역), 유니버설발레단의 이현준(로미오 역)을 통해 닮은꼴 작품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6월
첼리스트 김민지
“내가 무언가를 시도할 수 있는 용기는 학생들의 존재에서 나온다. 그런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스승이 되고 싶다. 먼저 새로운 레퍼토리에 도전하고, 새로운 방식의 연주를 보여주며 안주하지 않는 사람,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 간응성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내 음악 인생의 목표이다.”
콘서트 오르간의 매력 오르간 연주를 감상하기 전 미리 알아두면 좋을 핵심 내용을 육하원칙에 맞춰 정리했다. 오르간의 구조 및 발전사,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된 국내의 대형 공연장과 음반으로 만나는 숨은 명곡, 오르가니스트가 말하는 오르간 음악의 무한한 세계까지 꼭꼭 눌러 담았다.
올여름 음악 여행은 아시아로! 좋은 음향의 공연장이 있는 도쿄, 명소마다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베이징, 이국적인 매력이 가득한 대만, 가까이에서 유럽을 느낄 수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싱가포르까지. ‘비행시간 3시간 안팎’이면 도착할 수 있는 아시아 근교 여행을 준비했다.
7월
소프라노 홍혜경
“한국인 최초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한 후, 첫 내한 독창회를 1992년에 가졌어요. 그 이후 미국 유학을 오는 한국 학생이 늘어났죠. 지금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의 제 연주가 누군가에게는 ‘나도 저 사람처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제 앞에 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미처 꿈꾸지 못했음에도 운명처럼 꿈을 이뤘지만, 누군가는 저를 보며 희망을 품고 꿈을 꿀 수 있지 않았겠어요?”
예술과 함께, 파리 올림픽 파리의 아름다운 문화유산과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 담긴 예술적 요소를 소개했다. 베르사유 궁전·샹 드 마르스 등 경기장으로 활용된 도시의 문화유산은 물론, 매년 프랑스의 여름을 장식해 온 아비뇽 페스티벌·아를 국제 사진전·니스 재즈 페스티벌 등 다섯 개의 문화 행사 정보를 정리했다. 이번에 새롭게 올림픽 공식 종목으로 채택된 브레이킹의 역사와 이 종목이 지닌 다채로운 매력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파리 올림픽 문화 행사 프로그램인 ‘코리아시즌’의 일환으로 선보인 국립오페라단의 ‘처용’을 포함해, 파리를 물들이는 여러 한국 공연을 살펴봤다.
8월
클래식 기타리스트 박규희·변보경·조대연·박지형
여기, 각각의 ‘작은 오케스트라’를 품은 네 명의 기타리스트가 모였다. 데뷔 14년 만에 첫 바흐 음반을 들고 돌아온 박규희, 2023년 프란시스코 타레가 기타콩쿠르의 위너 조대연, 이제 막 해외 공연을 마무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박지형, 그리고 미국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변보경까지.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이 젊은 기타리스트들은 국내외를 넘나들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각자의 기타 줄을 조율해 나가는 중이다.
요즘 감성으로 클래식 음악 듣기 대중의 취향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이에 따라 클래식 음악 감상 방법도 달라졌다. 공연장이 아닌 새로운 공간에서, 책과 음반이 아닌 대중적인 매체로 즐기는 요즘 세대의 클래식 음악 소비 방식을 소개했다. ‘궁예 레퀴엠’을 탄생시킨 KBS교향악단 공연사업팀 서영재 PD와 TV 예능에 출연한 바이올리니스트 대니 구 인터뷰도 흥미롭다.
9월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송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를 향한 존경의 마음은 언제나 가득합니다. 이 감정은 변한 적이 없고, 제가 살아있는 날까지 변하지 않을 거예요. 그는 저에게 깊은 영감과 인상을 남긴 첫 번째 지휘자였습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도 빼놓을 수 없죠. 저는 말러 유스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으로 활동하며 50회 정도의 연주를 그와 함께했는데, 역시 제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푸치니의 음악 유산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며 그의 삶과 작품을 탐구했다. 당시의 시대상, 이국주의와 오리엔탈리즘, 그리고 푸치니가 사랑한 뮤즈들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모두 모았다. 푸치니의 오페라에 오르는 예술가들이 전하는 작품의 의미를 통해 푸치니의 오페라가 오랜 시간 사람들을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를 살펴봤다. 또한, 푸치니 작품과 의미, 오페라에 비해 덜 알려진 그의 관현악곡·미사곡·현악 4중주곡과 추천 음반, 국내에서 만나기 어려운 희귀한 오페라의 실황 영상물도 함께 소개했다.
10월
런던 심포니 수석지휘자 안토니오 파파노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사이의 화학 작용은 매우 신비롭다. 그 작용이 긍정적이면 그 자리의 모두가 그 감각을 느낀다. 나는 LSO와의 호흡이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1996년부터 항상 그래왔다.”
세계로 뻗어나간 한국의 발레 무용수들 한국 발레 무용수들이 해외에 진출한 역사와 각국에서의 활약상을 조명했다. 1940년대 일본으로 떠나 러시아 발레를 익힌 한동인·정지수·진수방부터 2010년대 한국 발레의 전성기를 알린 박세은과 김기민까지 해외 진출의 역사를 연표로 살펴볼 수 있다. 한국 발레 역사의 시작점이자 해외 발레단 진출의 서막을 연 김혜식을 시작으로, 최태지·강수진·김용걸·김지영·서희·이상은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해외 진출의 상황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발레의 중심지로 여겨지는 프랑스·러시아는 물론 일본과 중국 등 한국인 단원이 진출한 해외의 38개의 발레단과 세계 곳곳을 누비는 한국 발레 무용수들의 소식을 담았다.
11월
사이먼 래틀&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브루크너 연주 해석에 대한 전통을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이 있는 뮌헨에서 느끼고 있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예스’입니다. 베를린필 시절과 비교했을 때 제 해석이 바뀌었냐고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덜 과장되고 덜 무겁게 말이죠. 음악이 스스로 말할 수 있을 만큼 긴밀함을 유지하도록요. 그러나 음악에 대한 제 해석은 언제나 ‘진행 중’입니다. ‘더 나은 실패’를 계속할 뿐!”
영화로 모인 예술 영화는 필름·렌즈·카메라·영사기 등 근대 과학 기술의 발전과 함께 탄생하여 가장 늦게 시작된 예술이지만, 앞선 공연 예술의 장점들을 흡수하고 성장하며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예술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연극과 뮤지컬이 영화에 끼친 영향과 영화가 예술을 담아온 방식을 통해 영화의 역사를 되짚어봤다.
영화의 예술적 면모를 느낄 수 있는 두 작품, 연극으로 재탄생한 영화 ‘타인의 삶’과 영화로 재탄생한 뮤지컬 ‘위키드’를 바탕으로 장르의 융합과 새로운 매력을 살펴봤다. 클래식 음악·대중음악·연극·미술 등 예술을 소재로 한 올해의 개봉작 18편을 주제별로 소개하며, 영화와 함께 예술에 한 걸음 다가가는 기회를 마련했다.
12월
바이올리니스트 콜야 블라허
일찍이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하던 어린 소년은 ‘아바도 시대’(1989~2002)의 베를린필 최연소 악장으로 무대에 올랐다. 눈빛만으로도 지휘자의 의도를 파악하던 젊은 악장은 아바도의 오른팔이 되어 지휘를 배우기 시작했다. 현재, 그는 베를린 국립음대(한스 아이슬러) 교수로 재직하며 젊은 음악가들의 멘토로 자리매김했다. 냉철하면서도 따듯한 그의 조언은 새로운 세대를 길러내는 길잡이가 되고 있다.
2024년, 공연계 연말결산! 2월호가 한해 동안 펼쳐질 공연을 담은 ‘계획의 호’라면, 2자가 다시 박힌 12월호는 한해를 휩쓴 공연을 펼쳐 보는 ‘추억의 호’이다. 클래식 음악은 물론 연극, 뮤지컬, 무용, 전통예술과 음반, 신간서적, 콩쿠르 등 한 해의 예술계를 수놓은 공연과 콘텐츠들을 살펴본다.
2024년의 공연예술계를 지키며 12권의 책을 만든 기자들의 감회도 남다르다. “다시 시작된, 화려한 대규모 공연들에 압도당한 한 해”(허서현), “앉은 자리에서 매달 떠난 세계 투어”(이의정), “초면인 사람과 차 한 잔씩 백 잔을 채운 기분”(홍예원), “인생에서 가장 많은 경험을 해 본 시간”(김강민)이었다.
정리 김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