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 GAME&MUSIC_22
게임을 듣다
마인크래프트
법칙도, 규칙도 없는 음악에 각자의 경험을 빚어내다
게임을 듣다
01 … 18 스타듀 밸리 19 서브노티카 20 리그 오브 레전드② 21 잇 테이크 투 22 마인크래프트
모든 것이 투박할 정도로 네모난 세상이 있습니다.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의 크기는 어찌나 넓은지, 현실 지구의 8배에 달하죠. 그러나 이 광활한 땅에는 여타 게임처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극적인 서사가 없습니다. 플레이어는 비대하게 넓은 공간과 목적이 전혀 없는 흐름 속에서 오로지 생존을 위해 나무를 캐고 땅을 파며 삶의 터전을 가꾸어야 하죠. 그리고 이 여백이 가득한 게임은 역사상 가장 성공한 게임이라는 기록을 세웁니다. 무한한 자유와 창의력을 실현할 수 있는 이달의 게임 ‘마인크래프트’를 살펴봅시다.
2009년 출시 이후, ‘마인크래프트’의 판매량은 현재까지 약 3억 장을 넘어서는 중이며, 이 경이로운 판매 기록은 절대로 깨지지 않을 듯합니다. 이 게임의 음악은 ‘C418’이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독일의 인디 작곡가 다니엘 로젠펠트(1989~)가 작곡했습니다.
일반성을 거부한, 남다른 음악
로젠펠트는 기승전결을 갖춘 음악보다 반복적이고 단순한 선율이 주가 되는 앰비언트 음악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마인크래프트’는 서사가 없기 때문에, 가슴을 뛰게 하는 현란한 선율과 리듬이 담긴 음악보다는, 고요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음악이 더 적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오지 속 ‘생존’에 초점을 맞춘 만큼, 새소리·물소리·발소리 등 다양한 음향효과는 가려지지 않아야 했기에, 이와 함께할 음악의 밀도는 희박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로젠펠트의 음악은 아주 독특한 감각을 선사합니다. 예를 들어 ‘서브우퍼 자장가’는 3화음을 상행했다가 하행하는 ‘도-미-솔-미’ 진행을 기본으로 하는 음악인데, 이 4개 음을 중심으로 하는 선율이 지속되고 그 주위를 잔향이 많은 전자음으로 감싸고 있는 형태입니다. 명확한 선율마저 음고를 미세하게 낮춰 불협화음의 느낌을 선사하여, 청자는 왠지 모르게 편안하면서도 섬뜩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한편, ‘마인크래프트’의 음악이 특이한 이유에는 음악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게임 속에서 음악이 재생되는 방식에 있습니다. 게임음악 분야에 선구적인 연구를 남긴 잭 훼일렌은 ‘게임음악은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있다’라고 일컫습니다. 즉, 게임에서 음악은 기본적으로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죠.
게임에서 음악은 플레이어의 행동을 유도하거나, 그 행동에 반응하는 것이 일반입니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 눈앞에 적이 나타났을 때 위기감을 조성하는 음악을 재생하여 플레이어가 검을 들고 투지를 다지게 하거나, 냉큼 줄행랑을 치게 할 수도 있죠. 새로운 장소로 이동하면 이에 맞는 음악으로 분위기를 전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인크래프트’의 음악은 사뭇 다릅니다.
목적이 없어서, 더욱 미적인 음악
목적이 없는 게임을 닮은 듯, 이 게임의 음악은 말하고자 하는 ‘무언가’가 없습니다. 게임 속에서 음악이 시작하는 지점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죠. 조용히 나무를 자르거나, 광물을 채굴하거나, 어딘가를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을 때, 뜬금없이 특정 음악이 흘러나온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렇다면 플레이어 대부분은 자신의 어떤 행동이 음악을 재생시켰는지 확인하려고 하겠죠.
이 시도는 곧 실패합니다. 플레이어가 듣는 음악은 철저하게 임의로 설정했기 때문이죠. ‘마인크래프트’에서 재생되는 음악은 플레이어에게는 부자연스러운 인상을 주고, 심지어 어떤 플레이어는 이 배경음악을 ‘공포스럽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나 혼자뿐인 게임에서 갑자기 음악이 영문도 모른 채 흘러나오면, 그보다도 고독하고 스산한 게 없으니까요.
위의 특징을 차치하고도, ‘마인크래프트’의 사운드트랙은 여전히 희한합니다. 그 이면에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었죠. 2009년 ‘마인크래프트’의 출시를 앞두고, 게임 개발자들은 그래픽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음향과 음악에 관해서는 그리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고 하죠. 이런 일은 게임계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로, 특별한 경우는 아닙니다. 시각 요소와 청각 요소 중 우위에 놓이는 것은 늘 시각이었죠. 게임음악 작곡가들은 언제나 기술의 제약과 한계에서 고군분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음악 해석은 플레이어의 몫
로젠펠트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처음 ‘마인크래프트’에 참여했을 때, 제작사에서 사용하고 있었던 프로그램은 여러 선율과 음향효과가 만나면 바로 충돌이 일어날 정도로 어설펐죠. 게다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게임은 지구의 8배 크기라는 광활한 세계를 구현했기에, 시각 정보 데이터를 화면으로 불러오기도 벅찹니다. 플레이어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무엇을 하는지 예측하여 음악을 재생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결국, 로젠펠트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음악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음악을 해석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몫으로 남기면서 말이죠.
어찌 보면 그저 우연에 불과하겠지만, 로젠펠트의 시도는 적중했습니다. 무언가를 말하지 않는 음악을 들은 여러 플레이어는 그 음악에 자신의 목소리를 투영하기 시작했거든요. 나만의 의미를 투사하여 음악을 듣는 ‘마인크래프트’ 플레이어의 독특한 청취 방식에 주목한 게임음악학자 미키엘 캠프는 이를 ‘미적 청취(aesthetic hearing)’라고 명명합니다.
덕분에 ‘마인크래프트’ 사운드트랙 유튜브 영상의 댓글을 보면 무한에 가까운 플레이어의 경험을 훑어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나무집을 다 짓고 아침 해를 맞이하며 들은 음악”이라, 또 다른 이는 “처음으로 다이아몬드를 캤을 때 들은 음악”이라고 적는 것처럼 말이죠. 무엇이든 간에 확실한 사실은 각 플레이어가 ‘마인크래프트’에 고유의 각별한 의미와 추억을 간직한다는 점입니다.
올해 4월, 워너브라더스에서 ‘마인크래프트’를 실사영화로 제작합니다. 예고편 영상에서 ‘마인크래프트’의 음악은 거의 5초 정도로, 매우 짧게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예고편 영상의 댓글에는 이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 게임의 음악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몇 개의 음만으로 지난 세월 동안 즐겁게 플레이했던 게임의 경험을 소환하는 것, 그것이 게임음악이 가지는 힘이 아닐까요?
※ 2023년 4월호부터 연재된 ‘게임을 듣다’는 22회를 끝으로 종료됩니다. 그동안 ‘게임을 듣다’를 정독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글 이창성 서울대학교 작곡과 이론 전공을 졸업 후 동대학원 석사과정에서 게임과 음악의 관계에 관심을 두어 게임음악학 연구를 진행 중이다. KBS 1FM의 작가 및 PD로 근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