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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
이자이 소나타와 파가니니 카프리스 전곡 연주로 채우는 하루
새해에 맞춰 새로운 도전을!
6시간의 간격을 두고 하루에 두 개의 공연, 그것도 서로 다른 작곡가의 대작 전곡 연주. 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작곡가는 이자이와 파가니니로, 바이올리니스트라면 필수적으로 도전하는 난도 높은 그들의 소나타와 카프리스를 소화한다. 서울시향의 악장으로, 그리고 이제는 프로젝트 오케스트라 ‘고잉홈프로젝트’의 수장으로 더 잘 알려진 스베틀린 루세브가 새해부터 준비한 흥미로운 연주회이다.
그 계획에 놀라 이를 어찌 해치울 것이냐 물으니 “둘을 완전히 소화(digest)할 시간이 필요하긴 하죠. 그 소화는 공연을 마친 무대 위가 될 것 같고요”라며 여유롭게 답한다. 악장으로, 그리고 지휘자가 없는 악단의 수장으로 활동한 경력 덕분일까. 그는 어떠한 난관이나 돌발상황도 예측하여 준비하고 있는 듯한, ‘너그러운 완벽주의자’와 같은 흥미로운 상충으로 관객을 매료하고 있다.
연주에 관해 주로 듣는 수식어가 ‘바로크부터 현대에 이르는 넓은 레퍼토리를 가진 비르투오소’입니다. 동의하나요?
콩쿠르나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작곡가에게 새로운 작품 연주를 위촉받으며 자연스럽게 레퍼토리가 확장된 것인데, 그렇게 평가받을 수 있다면 정말 특권이죠. 제 교육 배경 또한 한 국가에서 머물지 않고 다양한 지역에서 얻은 것이라 하나의 스타일에 온전히 속하지 않아서 레퍼토리가 더욱 넓어진 것 같습니다. 결국 제 음악을 판단하는 것은 저 자신이 아닌, 감상하는 누군가이기에 제 소리에서 ‘개성’을 찾아 주신다면, 그 또한 정말 행운이겠지요.
지금까지 걸어온 그 길 자체가 ‘개성’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지휘자 없이 연주하는 독특한 악단 ‘고잉홈프로젝트’의 악장(Artistic Leader)으로 활동하고 있으니까요. 이전부터 이러한 악단을 만들고자 하는 바람이 있었나요?
전혀요. 그래서 저희만 있을 때 이 악단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사실로 농담을 나누곤 해요. 고잉홈프로젝트의 정체성은 각자가 음악을 만들기 위해 하고 싶던 요소가 뭉쳐서 형성됐습니다. 저희는 그저 리허설을 최대한 많이 하고 싶었고, 모든 단원이 지휘자만큼 작품을 공부하길 바랐고, 서로의 결속력이 곧 소리로 투영되길 바랐습니다.
교향악단의 단원으로, 그리고 라디오 프랑스와 서울시향에서 악장으로 일했던 경력이 20년 가까이 되는데, 고잉홈프로젝트에 임할 때도 이 경험이 도움이 되나요?
도움이 되면서, 동시에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고잉홈프로젝트가 추구하는 방향은 제가 해온 것들과는 거의 정반대일 때가 많아요. 거의 초보자에 가까운 악장을 따라주는 멤버들에게 고마울 따름이죠.
그렇다면 그 ‘낯섦’ 덕에 새로운 감각을 느낄 때도 있겠네요!
바로 얼마 전에 베토벤 전곡 시리즈의 교향곡 9번 ‘합창’ 공연이 그랬습니다. 125명의 합창단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가득 채우고…. 연주가 끝났을 때는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로 감동이었어요. 온갖 전율에 뒤덮여져, 아직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네요. 음악가로 지내면서 가장 충만한 만족을 안겨준 기억이 됐습니다.
두 개성을 하나로 잇다
이자이의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전곡을 낮 2시에, 파가니니의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카프리스 전곡을 밤 8시에 하는 공연 프로그램입니다. 두 작곡가는 음악 양식도 매우 다른데, 하루에 이들의 중요 작품 전곡을 연주하는 프로그램을 짠 이유가 있을까요?
저에게도 처음인 엄청난 도전이에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최근에 새로 받은 스트라디바리우스 악기 ‘바론 비트겐슈타인’을 탐구하고 싶어서입니다. 두 작곡가는 말씀하신 대로 정말 다르죠. 파가니니는 특유의 압축적이고 밀도 높은 기교로 바이올린 연주의 기준을 세웠다면, 이자이는 바이올린 음악을 다성음악처럼 확장하여 단선율 위주였던 연주 방식에 새로운 박차를 가했습니다. 특히 이자이는 본인이 직접 남긴 녹음도 있어요. 상상의 거장이 아닌 ‘현실’의 거장으로, 그 음색과 표현을 직접 공부할 수 있어 기쁩니다. 그리고 각각의 전곡은 연주 시간이 대략 비슷해서, 낮과 밤에 나눠 연주하는 것도 여전히 균형이 잘 맞습니다. 이 두 공연을 한자리에서 감상하면, “여기! 바이올린 음악의 정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소리치는 현장의 목격 아닐까요?
두 작곡가를 하루에 정복한다는 본인의 기대도 궁금합니다.
아직 연주를 안 해서 답할 수가 없네요.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몇 곡만 선별한 연주와 전곡 연주는 전혀 다른 차원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곡으로 구성된 모음곡인데, 그중 선호하는 작품을 꼽을 수 있나요?
이 질문이 항상 어려운 게, 저는 좋아하는 작품이 정말 자주 바뀝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생각으로 꼽는다면, 파가니니는 17번을 좋아해요. 이 곡은 한두 가지의 기교에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주법이 조화롭게 담겨있기 때문이지요. 작품의 조성은 E♭장조인데 베토벤 ‘영웅’ 교향곡이나, ‘황제’ 협주곡이 생각나서 저에게 ‘슈퍼히어로’의 도입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이자이 소나타 중에서는 어렸을 적 롱 티보 콩쿠르를 위해 연습했던 3번을 가장 좋아합니다.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회라고 할 때, 많은 이들이 바흐의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 도전을 떠올리곤 합니다. 이를 위한 계획이나 생각도 있을까요?
네, 당연히 “YES”이죠! 이자이와 파가니니를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존경한다고 하면, 바흐는 말 그대로 음악의 아버지처럼 경외합니다. 제대로 연구하여 선보여야 하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2025년 공연 일정을 전해주세요!
가장 중요한 연주는 역시 고잉홈프로젝트입니다. 올해가 라벨 탄생 150주년이라, 그의 교향곡과 실내악곡을 모두 연주할 예정이에요. 베토벤과는 전혀 색다른 도전이라, 이번에도 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파이플랜즈
스베틀린 루세브(1976~) 인디애나폴리스·롱 티보·센다이 콩쿠르 등에서 수상했다. 라디오 프랑스와 서울시향의 악장으로 활동했으며,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도쿄필 등과 협연했다. 불가리아 대통령상과 문화부가 수여하는 크리스털 리라를 3회 수상했다. 현재 고잉홈프로젝트의 리더로 활동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스베틀린 루세브 바이올린 독주회
1월 11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오후 2시 이자이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1~6번(전곡)
오후 8시 파가니니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카프리스 1~24번(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