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현장의 살림꾼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1월 6일 9:00 오전

NEW YEAR’S SPECIAL

 

더 재밌고 특별한 문화를 만드는

예술현장의 살림꾼들

 

8인의 예술 단체장에게 듣는 새해 계획

 

 

 

공연장과 문화재단은 예산, 조직, 프로그래밍, 홍보와 마케팅, 관객개발과 서비스까지 여러 업무로 돌아가는 문화예술의 공장과도 같다. 공장장과도 같은 그들은 조직과 극장 운영의 기틀을 닦고, 좋은 문화와 예술을 만들어 시민과 관객이 유입되도록 한다.

‘객석’은 신년호를 맞아 이들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누군가는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매너리즘에 빠져 정체되지 않도록 균형감을 갖추고자 한다”(서초문화재단 강은경 대표이사)라며 한 해를 돌아보고, 누군가는 “이 공간에서 예술가와 관객이 서로 연결되고, 새로운 경험을 창출하며, 휴머니티가 응집되는 결정적 순간을 만들어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GS문화재단 박선희 대표)라며 신년의 계획에 방점을 찍었다. 또 누군가는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여럿 진행하여 지역 자체 콘텐츠를 일구고자 한다”(광주시문화재단 오세영 대표이사)라며 진행하던 사업에 세밀함을 더하겠노라, 또 누군가는 “앞으로의 10년, 나의 임기 뒤에도 이어갈 수 있는 설득력 있는 계획을 수립할 것”(서울시향 정재왈 대표이사)이라며 새로운 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러한 이들의 다짐은 곧 문화 공장의 낡은 기계를 바꾸고, 윤활유를 뿌리고, 이를 통해 보다 나은 예술을 만들어, 우리의 일상으로 돌아온다.

 

01 서울시향 정재왈 대표이사 _이의정

02 GS문화재단 박선희 대표 _허서현

03 클래식부산 박민정 대표 _홍예원

04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김민 음악감독 _김강민

05 서초문화재단 강은경 대표이사 _허서현

06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이강현 전당장 _허서현

07 광주시문화재단 오세영 대표이사 _이의정

08 마포문화재단 송제용 대표이사 _김강민 0

9 예술현장을 변화시키는 그들 _송현민

 


 

01 서울시향 대표이사 정재왈

 

문화 시장을 성숙하게 만드는 길

모두와 함께하는 예술을 꿈꾸다

 

정재왈(1964~)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이사, 서울예술단 이사장 및 예술감독, LG아트센터 운영국장 등을 거쳤다. 2024년 10월 25일부로 서울시향 대표이사로 임명됐다.

 

작년 가을의 끝자락, 서울시향은 새로운 대표이사로 정재왈 서울사이버대 부총장을 임명했다. 임기는 10월 25일부터 3년. 이제 막 시작된 임기 초기, 큰 계획을 세우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그를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앞으로의 목표를 차분히 설명하면서도, 그러나 중요한 부분은 작은 ‘디테일’임을 강조했다. “작은 데에 정성을 들여야지 큰 부분에서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있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중요한 공연을 잘 챙기는 것이 이 시장을 성숙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그의 인터뷰에는 모든 이를 포용하고 싶은 시각이 엿보였다.

10월 25일부터 오늘까지 약 40일간, 긴 시간은 아니지만, 조직 내부에서 바라본 서울시향의 인상은 어떠한가?

조직 밖에서 바라볼 때, 클래식 음악은 분명 폐쇄적인 인상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고. 그러나 그 안에 들어와 보면, 이 역시 굉장히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단체라는 걸 새롭게 깨닫는다. 지금은 그 색채를 기쁘게 관찰하고 있다.

고양문화재단·금천문화재단·안양문화재단·예술경영지원센터 등을 거쳐 서울시향에 당도했다. 과거 경력은 다방면의 문화예술을 두루 도모하는 위치였는데, 음악만을 다루는 이곳은 다르게 다가오겠다.

경력에 접점이 없어 보이는지, 그런 질문을 여러차례 받았다. 하지만 모든 장르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시각은 문화예술 행정계의 생태환경일 뿐, 실제 예술은 그러하지 않다. 나 역시 일찍부터 그런 구분 선을 지우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스스로 그렇게 단련해 왔다. 물론 각자에겐 선호·취향이 있어 연극·무용 등 나의 발길이 잦았던 장르가 있고, 그것이 이력에 남아있지만, 근본적으론 장르의 구분을 답습하여 행하려는 마음은 없다.

연극·무용 분야에서 익힌 경험이 교향악단에 적용될 수도 있다는 의미인가?

장르가 가진 고유한 특성을 무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각 장르가 가진 문화는 존중받아야 한다. 나는 여러 가지를 과감하게 접목하기보다는, 지금의 클래식 음악 분야가 가진 보편을 존중한 상태에서 이를 더 넓은 이들의 취향으로, 소비층을 넓히는 방법을 고려하는 역할이다.

모든 악단이 그러하듯, 관객층을 넓히는 것이 사무국 대표로서의 목표겠다.

그렇다. 서울시향은 대한민국 수도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 오케스트라로서, 높은 수준의 연주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공연에 가면 관객분들의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을 본다. 콘서트홀은 신전과 같은 중압감을 풍기며, 신성하게 공연을 관람해야할 것 같은 분위기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공연 문화를 이상향으로 두지 않는다. ‘퇴근길 콘서트’ 시리즈를 가보면 전혀 다른데, 콘서트홀이 아닌 장소에서 출발하니, 관객층도 다양하고 보다 즐겁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더 깊은 감동을 얻곤 한다. 엄숙함과 즐거움, 그 균형을 잡는 것이 관건이겠다.

두 마리 토끼의 관객층을 노리는 것일까?

세 마리 토끼를 잡고자 한다. 수월성으로 기존 클래식 음악 애호가와 함께하고, 저변 확대에 힘써 새로운 관객을 만나고, 이 모든 내실을 다져 글로벌 관객에게 다가가는 것이 서울시향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재단 설립 20주년, 더 넓은 소비층 확보하기

세 가지 방향을 제시하였는데,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이야기해 달라.

우선 저변확대에 관해 큰 관심을 두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연 시리즈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2024년부터 서울시향을 이끌어 온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도 이에 굉장히 열의가 많다. 공개모집으로 선발된 장애인 연주자가 함께하는 ‘행복한 음악회, 함께’ 시리즈가 그러했고, 이들과의 연으로 협연자를 선발하여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콘서트’ 시리즈가 존재했다. 올해에도 이 두 공연을 지속·확대할 예정이다.

오프라인으로 관객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최근에는 온라인 관객의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다. 공연의 디지털화와 온라인 콘텐츠에 관한 의견도 궁금하다.

디지털 콘텐츠는 사실 전용홀이 우선해야 한다. 음반 녹음과 영상 촬영을 통해 하나의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는 리허설부터 본 촬영까지의 단계가 필요하고, 이 모든 과정의 대관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향 전용홀에 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논의가 존재하지 않기에, 이른 시일에 해결될 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이를 끊임없이 설득하는 것이 분명 대표이사의 역할일 것이다. 2035년까지 앞으로의 10년, 나의 임기 뒤에도 이어갈 수 있는 설득력 있는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녹음 및 음반에 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데…

전용홀이 없다는 사유로 디지털 콘텐츠를 소홀히 하고 싶지는 않다. 츠베덴 감독이 말러 교향곡 전곡 녹음을 본인 임기에 달성하고자 하기에, 앞으로 3년을 함께할 동행자로 힘을 실어주고 싶다. 지난해 말러 교향곡 1번을 발매했고, 올해는 2번과 7번 녹음이 진행된다.

꾸준히 진행하는 사무국의 업무로는 신규 단원 채용도 있다. 서울시향의 악장 자리는 오랜 기간 공석인데, 올해 채용을 진행할 예정인가?

악장뿐만 아니라 수석도 여러 자리 비어 있다. 새로운 인원을 충원하여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것이 악단의 신진대사를 돌게 하는, 무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동시에 신중하게 임할 수 밖에 없다. 좋은 연주자를 뽑기 위해서는 예산 문제도 잊을 수 없고 말이다. 이와 관련해서 ‘오케스트라 단원 제도에 마치 대학의 석좌 교수 같은 자리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고민도 했다. 기업쪽에 악기 후원자가 있듯이, 단원에게도 개인 후원 제도가 있으면 새로운 도전이 가능하지 않을까? 구체적으로 제안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이다.

앞으로 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무척 많아 보여, 서울시향의 2025년이 더욱 기대된다. 2025년 주목해야 할 공연을 마지막으로 꼽는다면?

모두 중요하지만, 그중에도 한국 음악가가 참여하는 공연을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임지영·윤한결·박재홍·김봄소리가 내년에 서울시향과 함께한다. 또한 정재일·신동훈 작곡가의 작품이 서울시향의 연주로 세계 초연될 예정이고, 이 작품은 미국 카네기홀 투어도 예정됐다. 서울시향이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도전하는 것도 눈에 띄는 일정이다. 올해는 재단 설립 20주년이고, 고려교향악단부터 출발한 서울시향의 창단 80주년이기도 하다. 세계 수준의 오케스트라로 전진하는 한 해를 기대해 달라.

이의정 기자 사진 송종석(studio BoB)

 

PERFORMANCE INFORMATION

얍 판 츠베덴/서울시향(협연 하나엘리자베트 뮐러·태머라 멈퍼드· 성남시립합창단·고양시립합창단·파주시립합창단)

1월 16·17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 말러 교향곡 2번

얍 판 츠베덴/서울시향

2월 20·21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 말러 교향곡 7번

 


 

02 GS문화재단 대표 박선희

 

지금의 공연 예술계를 향한 꿈

옛 LG아트센터 역삼을 새롭게 한 공연장 개관을 앞두다

 

박선희(1975~) 2024년 GS문화재단의 대표로 임명됐다. 2002~2018년에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에 재직했다. 2019~2021년에는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 대표로 재직하며 재임 기간 내에 ‘KNSO국제아카데미’ ‘KNSO국제지휘콩쿠르’를 추진한 바 있다.

 

지난해, GS문화재단이 출범을 알렸다. 여름에 이사회가 구성됐고, 10월에 박선희 전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 대표가 초대 수장으로 임명됐다. 재단의 시작을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는 이들은 다가오는 해, 옛 LG아트센터 역삼을 재단장한 공연장을 선보일 예정이다. 개관을 앞두고 꿈과 열심을 더해가고 있는 박선희 대표를 만났다.

2025년 4월 개관을 위해 공연장 재단장 중인데,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나?

공사는 한창 진행 중이다. 건축 구조를 변경하는 수준은 아니고, 기존에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수용했던 형태는 유지하면서 로비나 무대, 노후화된 기계 설비, 출연자 공간 등을 새롭게 하고 있다.

공간으로서 공연장의 운영 철학은 무엇인가?

핵심은 ‘공간이 미디어’라는 개념이다. 공연장을 물리적 장소가 아닌, 이야기와 경험을 전달하는 매체로 바라보는 것이다. 공간 전체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이바지하길 바란다. 나아가 강남 한복판을 대표하는 문화적 정체성이 되길 바라고 있다.

예전의 LG아트센터 역삼(2000년 개관·2022년 마곡 이전)에서의 관람 경험을 기억하는 관객들이 많다. 특히 시즌제 도입 및 차별화된 해외 공연 등을 선보이며 국내에 새로운 공연 문화를 자리 잡게 한 공연장이었기에, 동일한 곳에서 시작될 GS문화재단의 경영 방식에 대한 기대도 크다.

LG아트센터 역삼에서의 공연 관람이 마음속 깊이 남아 있는 관객 중 한 사람으로서, 이 공간이 새롭게 탄생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 또한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그 임무가 내 것이 될지는 상상 못 했지만…. 많은 분이 새 공간에 대한 기대를 숨김없이 전해주실 때마다, 종종 우스갯소리로 “저희는 이제 막 탄생한 테헤란로의 스타트업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농담 속에 의지가 담겨 있다. 우리의 꿈이 지지를 받으려면, 지금의 공연예술 생태계에 부합하는 역할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민첩하게 변화를 받아들이고, 선택과 집중의 전략으로 일하려는 우리의 다짐이 꿈을 실현하는 초석이 되길 바란다.

2025년은 GS그룹의 20주년과도 맞물려 있다. 다가올 한 해 대부분의 국공립 기관이 예산 삭감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데, GS문화재단의 경우는 어떤가? 재단 출연을 위해 수백억 원을 사용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는데.

공연장 리뉴얼과 재단법인 설립에 상당한 규모의 재원이 투입되었다. 언급한 대로 GS그룹의 20주년과 공연장의 개관이 맞물려 진행되는 만큼, 그룹의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통로로서 문화재단이 의미를 가진다. 특히, 역삼역 GS타워에 있는 공연장을 재단장하기에, 인근 지역민들과 관객, 다양한 예술가들 모두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되길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 금전적 지원은 물론, 비금전적 지원을 포함한 그룹 차원의 다양한 후원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고 있다.

 

구성원들과의 소통으로, 꿈은 뚝심이 된다

GS 공연장 조감도

작년 여름에 재단이 출범했고, 지난 10월에 초대 수장으로 임명이 밝혀졌다. 재단 출범과 공연장 개관을 앞두고 프로그램 기획, 재단 실무자 꾸리기 등으로 분주한 시기겠다.

재단 출범 전부터, 전문가들로 구성된 TF가 조직되어 있었다. 대표 이사로 합류하게 되면서 TF에서 심도 있게 검토한 내용의 방대함과 깊이를 보며 감탄을 넘어 전율을 느꼈다. 이 기반 위에 주춧돌을 올리는 시점에 합류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주춧돌은 ‘사람’이다. 우리의 방향에 따라 조직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사람이기에, 이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꿈을 함께 공유하고 풍성하게 할 구성원들을 만나는 일을, 운명처럼 설렘 속에 기다리고 있다.

앞서 금호문화재단에서 오래 재직한 경험이 있다. 기업 출연의 문화재단 사업이 가지는 장점과 한계가 있다면 무엇인가? 이를 토대로, GS문화재단 운영에 적용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기업 출연의 문화재단은, 민간 기업의 민첩성과 효율성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공공의 이익과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야 하는, 독특한 이중적 특성을 가진 조직이다. 효과적으로 운영되는 민간 문화재단은, 먼저 한정된 자원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비전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설정한다. 공동체 기여와 사회적 변화를 목표로 특정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필요하다면 그 내에서도 세부 영역에 집중한다. 이를 전 구성원이 공유하도록 일관된 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단기적 성과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는 뚝심 있는 접근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금호문화재단은 이러한 원칙을 실천하며 성공을 거둔 조직이었다. 이 운영 방식을 GS문화재단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새로운 해는 뱀의 해다. 지난해 코로나 이후 여러 예술 기관이 긍정의 의미를 담은 용의 해를 맞이했는데, 뱀의 해를 맞이하며 떠오르는 의미가 있다면? 또한 새해를 맞이하는 대표이사로서의 마음가짐은 무엇인가.

뱀의 의미가 여러 가지 있지만, 허물을 벗고 변화를 추구하는 동물로서 공연예술계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도전하는 모습이 의미를 준다. 다가오는 신년은 GS공연장이 새롭게 탄생하는 해인 만큼, 새로운 변화를 선도하고 성장하기 위한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이 공간에서 예술가와 관객이 서로 연결되고, 새로운 경험을 창출하며, 휴머니티가 응집되는 결정적 순간을 만들어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허서현 기자 사진 GS문화재단

 


 

03 클래식부산 대표 박민정

 

공연예술계의 발신지로 발돋움하다

부산콘서트홀 개관을 앞두고 전하는 새로운 다짐

 

박민정(1970~) 2024년 클래식부산의 초대 대표로 임명됐다. 1992년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부장 및 문화예술본부장 등을 역임했으며,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조직위원회, 대한민국발레축제 조직위원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했다.

 

푸른 바다의 도시, 부산에 두 개의 새로운 공연장이 들어선다. 물결 위를 떠다니는 배를 형상화한 부산콘서트홀(6월 개관 예정)과 부산의 지리적 특색을 살려 북항(부산역 인근)에 위치한 부산오페라하우스(2027년 개관 예정)다. 두 극장의 건립과 운영을 담당하는 ‘클래식부산’의 박민정 대표는 1992년부터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부장 및 문화예술본부장 등을 역임한 공연예술계의 베테랑이다. 그와 함께, 공연예술의 도시로 새롭게 닻을 내릴 준비를 마친 클래식부산의 면면을 미리 살펴봤다.

부산콘서트홀이 오는 6월 개관을 앞두고 있다. 개관 준비는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나?

현재 기본적인 음향과 설비, 조명 등을 테스트하고 있다. 1월까지 독일 프라이부르거(Freiburger) 사에서 제작한 파이프오르간의 현장 조립이 완료된다. 파이프오르간의 조율이 끝나면 주요 시설물의 설치는 마무리되며, 개관 전까지 여러 차례 시범 운영을 통해 불편사항을 개선해 나갈 예정이다.

부산에는 시립예술단(교향악단·합창단·국악관현악단·무용단·소년소녀합창단), 국립부산국악원 등과 유서 깊은 예술단체들이 있다. 시립 공연장으로서 이러한 지역 예술 자원과의 연계 계획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클래식부산이 운영할 부산콘서트홀과 부산오페라하우스에 훌륭한 예술단체의 공연을 적극 유치하고, 부산 내 다양한 조직 및 행사와 연계해 클래식부산의 역할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대표의 임무다. 내년부터 부산의 대표적인 공연예술단체들을 부산콘서트홀에서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모델로 삼고 있거나, 공연장 운영에 참고한 사례가 있나?

최근에 문을 연 엘프필하모니와 필하모니 드 파리의 여러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찾아봤다. 특히, 공연이 없을 때에도 방문객들이 로비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런던 극장의 풍경을 부산콘서트홀에서도 실현하고 싶다. 더불어 예술의전당 재직 당시 상사이자 선배였던 안호상 사장님의 국립극장과 세종문화회관 운영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모범사례이며, 닮고 싶은 성공 사례다.

지난해, 대부분의 국공립 기관이 예산 삭감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두 공연장을 운영하는 동시에 클래식부산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재정 안정을 위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

우선 극장의 네이밍 스폰서를 찾고, 후원회나 회원제 등 여러 재원 마련 노력을 추진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관객과 시민의 관심이 지속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해 공공자금의 지원에 대한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국내 공연예술계를 이끌어 갈 부산의 에너지

지난해 9월, 클래식부산의 초대 대표로 취임 후, 처음 맞이하는 시즌이다. 조직 구성과 공연장 개관 준비에 특별히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있나?

새롭게 출발하는 조직이자 극장이기 때문에 예산, 조직, 프로그래밍, 홍보와 마케팅, 관객개발과 서비스까지, 조직과 극장 운영의 기틀을 닦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부산콘서트홀의 개관을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다.

예술의전당에 오랜 시간 재직했다. 지금까지 쌓아온 노하우가 클래식 부산 운영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앞선 경력을 바탕으로 준비 중인 방향성이 있다면?

우선은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하기보다, 이미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극장들만큼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 30여 년간 예술의전당 성장을 직접 경험하고, 지켜보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공연장 운영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산콘서트홀에서는 그 시간을 가급적 줄이는 데 집중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극장의 역할이 주도적이어야 하고, 변화하는 시대와 부산이라는 지역에 맞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시립공연장으로서 상주 예술단체 운영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창작과 공연의 기반이 되는 기획, 제작극장의 역할을 확대하고, 관객 중심의 운영을 이어가고 싶다. 제작극장은 소속예술단체나 상주단체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극장의 자체 기획과 제작을 통해 예술계를 리드하고, 관객 저변을 확대하는 공연장의 사례도 있다. 더욱이 클래식부산에는 정명훈 예술감독이 계시니 충분히 이러한 역할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부산은 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무용제, 부산비엔날레 등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의 자원이 풍부한 도시다. 예술의 도시로서 부산이 지닌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영화와 시각예술 분야에서 부산의 위상은 현재의 K-컬처를 이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의 예술제들을 세계적인 문화행사로 거듭나게 한 부산만의 저력과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부산국제공연예술마켓 방문객들이 입을 모아 “부산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공연예술 분야에 발전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는데, 나 역시 동감한다. 공연예술 애호가, 지역 예술가, 그리고 부산을 방문하는 관광객까지, 이들의 힘이 모인다면 부산이 음악과 공연예술의 발신지로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세계와 소통하는 곳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새해를 맞이하여, 앞으로의 계획과 ‘객석’ 독자들에게 전할 새해 인사를 부탁한다.

새해에는 아무래도 부산콘서트홀과 부산오페라하우스로 가득 찬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지만, 틈틈이 시간을 내어 부산의 곳곳을 만끽하려고 한다. 많은 분이 ‘객석’을 통해 부산 클래식 음악계의 소식을 접하고, 부산콘서트홀에서 ‘객석’의 독자들을 자주 뵐 수 있으면 좋겠다. 새해에는 예술과 함께 더욱 행복하시길 바란다.

홍예원 기자 사진 클래식부산

 


 

04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음악감독 김민

 

한국 실내악의 길을 묻다

창단 60주년을 맞은 KCO가 전하는 악단의 역사와 꿈

 

김민(1942~) 1980년 서울바로크합주단(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의 전신)을 재창단하고 음악감독으로 취임해, 라인가우 페스티벌·조지 에네스쿠 페스티벌 등 국제 페스티벌을 포함 1천여 회의 연주를 이끌었다. KBS교향악단의 초대 악장·서울대 음대 학장·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이하 KCO)는 1965년 ‘서울바로크합주단’으로 시작해, 60년간 한국 실내악의 역사를 써 내려왔다. 실내악의 발전과 변화의 중심에 선 음악감독 김민을 만나 KCO의 발자취와 그가 그리는 청사진에 관해 묻고 들었다. KCO를 이야기할 때마다 머금는 따뜻한 미소에는 악단을 향한 그의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KCO 창단 60주년을 축하한다. 음악감독으로서는 45년째 악단과 함께하고 있으니,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창단 당시에는 악장으로 무대에 올랐고, 1980년부터는 음악감독으로 KCO와 함께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60년이 흘러, ‘바람 같이 지나갔구나’ 싶다. 보람, 아쉬움, 부족함, 의욕… 만감이 교차한다. 그리고 여든이 넘은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축복이라 생각한다. KCO의 성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앞으로 경영적으로도 더 탄탄해지고,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으며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과제들은 다음 세대가 이루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다음 음악감독이 KCO를 잘 이끌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KCO를 이끌며, 국내외 악단 중 본보기로 삼았던 곳이 있었나?

KCO는 1965년에 창단됐다. 1953년 휴전 이후, 모든 것이 폐허에서 새로 시작되던 때였기에 당시 한국에는 본보기로 삼을 만한 악단이 없었다. 다만 내가 독일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1980년 KCO의 음악감독을 맡게 되었을 때는, 1970년대에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실내악단 아마티 앙상블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지휘자 없이 연주하며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실내악단으로, 내가 KCO로 구현한 음악과 방식이 유사하다.

 

한국 실내악의 역사를 일구며

음악감독으로서 단원들에게 강조해 온 가치는 무엇인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우리 단원들은 모두 각자 다른 소속과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실내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KCO에 모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월급이 아닌 연주료를 받으며, 단원이 아닌 각자가 모두 한 명의 음악가로서 함께한다. 이런 특성을 반영해, 연습은 전통적으로 저녁 6시부터 시작된다. 낮에 본업을 마친 후 저녁에 KCO와 함께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KCO의 단원은 총 110명으로, 이들 중 약 40명이 모여 연주를 준비한다. 각 단원은 보통 세 번에 한 번씩 연주에 참여하며, 정해진 모든 연습 일정에 참석이 어려운 경우에는 연주에 참여하지 않는다.

KCO는 ‘한국 실내악의 살아 있는 역사’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60주년을 기념하며 준비한 특별한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우리에겐 늘 일상이었기에, ‘우리가 곧 역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그저 우리도 유의미한 기록으로 남겠다는 마음뿐이다. 그런 마음으로 지난 60년간 1천 번 이상의 연주를 해왔는데, 올해는 창단 이후 처음으로 ‘한국 챔버 오케스트라 60년사’ 사진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사진전에서 중요한 건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겪어온 의미 있고 재미있는 사건들이다. “그때 이런 일이 있었지!”하며 떠올릴 수 있는 사진들을 선별해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와 이탈리아·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독일 해외 순회공연도 예정돼 있다.

베토벤 전곡 프로젝트로 기대하는 바가 궁금하다. 2019~2023년의 모차르트 교향곡 전곡 프로젝트는 악단에 어떤 변화를 주었나?

2015년은 KCO에 큰 전환점이 된 해였다. 서울바로크합주단에서 KCO로 명칭을 변경했고, 목관과 금관을 더해 기존의 현악 중심 앙상블에서 체임버 오케스트라로 규모를 확장했다. 2019년의 모차르트 교향곡 전곡 연주는 KCO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시작한 프로젝트다. 이 과정에서 악단의 응집력은 물론 현·관악기 간의 균형을 갖출 수 있었다. 올해 베토벤 교향곡 전곡 프로젝트까지 무사히 마친다면, KCO는 체임버 오케스트라로서 어느 무대든 자신감 있게 오를 수 있는 자부심이 생길 것이다.

지난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악단이 달성해야 하는 과제로 경영적 과제를 꼽았다. KCO가 생각하는 해결책이 궁금하다.

단원들이 주인이 되는 방향을 구상 중이다. 단원들이 실력을 바탕으로, 공연과 악단의 존립을 공동의 과제로 여기는 운영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60%의 자구책을 갖고 있으니, 나머지 40%를 채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실력과 자부심, 책임감을 바탕으로 체계가 마련된다면, 훗날 내가 KCO를 떠나게 되더라도 조직은 흔들림 없이 더 강한 결속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KCO를 엿보다

2024년을 돌아보며, KCO 최고의 프로젝트를 꼽는다면?

현대음악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고자 예술의전당과 함께 선보인 기획공연, ‘최수열의 밤 9시 즈음에’다. 수석객원지휘자인 최수열과 KCO의 현대음악 앙상블로 발족한 ‘KCO모더니즘’이 무대에 올라 관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또, KCO는 1980년부터 한국 창작곡을 꾸준히 위촉해 다음 세대의 뛰어난 작곡가들과 함께해왔는데, 작년에는 작곡가 김택수 작곡가와 함께한 기억도 떠오른다. 피아니스트 미하일 플레트뇨프와 호흡을 맞췄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 연주도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도전하고자 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기회가 된다면, 현대 캄머(체임버) 오페라에 도전하고 싶다. 캄머 오페라란 단편 소설처럼 짧은 스토리에 소규모 오케스트라가 함께하는 현대 오페라 작품을 의미한다. 우리는 민간단체이기에 연주하고 싶은 프로그램에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니 캄머 오페라도 분명 곧 연주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한국에 실내악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무엇이 중요한가?

실내악은 클래식 음악 장르 중에서도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렇기에 활동 의지가 강한 연주자들이 모여 신뢰를 바탕으로 실력 있는 팀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팀의 규모에 상관없이 이들의 존립을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 클래식 음악은 본질적으로 비상업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지원은 팀의 지속은 물론 국민의 문화적 소양을 키우는 기회가 된다.

푸른 뱀의 해를 맞아, ‘객석’ 독자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해 달라.

‘객석’은 우리 예술계에 횃불 같은 잡지다. 독자 여러분들의 사랑을 받으며 창간 60년, 100년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큰 빛을 발하기를 소망한다. 그 과정에서 독자 여러분이 문화예술계에 큰 역할을 해주신다면 무척 기쁠 것이다.

김강민 기자 사진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PERFORMANCE INFORMATION

최수열/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협연 김세현·후미아키 미우라·마체이 스크세츠코브스키)

2월 1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 시리즈

2024년 12월 15일~2025년 12월 1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외

한국 챔버 오케스트라 60년사(사진전)

5월 2~10일 한가람미술관 7전시실

해외 초청 연주

7월 9~15일 이탈리아·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독일

 


 

05 서초문화재단 대표이사 강은경

 

당신의 일상 속 예술이 낯설지 않도록

국내 유일의 음악문화지구를 품은 문화재단의 존재 가치

 

강은경(1970~) 2023년부터 서초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금호문화재단·대원문화재단을 거쳐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이사를 역임하였다. 대학에서 예술법 및 예술경영을 강의하며 다수의 관련 저서를 출간하였다.

 

서초문화재단은 구 단위 문화재단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문화예술 증진을 목적으로 함과 동시에 서초구 내에 있는 전문 공연장, 이와 관련된 사업 생태계가 조성된 곳이기 때문이다. 서초구는 국내 유일의 음악문화지구로, 그 속에 속한 서초문화재단 또한 예술의 깊숙한 곳까지 소통하며 긴밀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서초문화재단이 설립 10주년을 맞이했다. 어떤 마음으로 올해를 준비해 왔나.

10주년을 앞두고 올해 재단 슬로건을 공모했다. 다양한 부서의 직원들이 낸 제안을 바탕으로 ‘Life into Arts, Arts into Life!’로 내용을 도출했다. 재단의 미션인 ‘일상이 예술로, 예술이 일상이 되는 문화도시 서초 구현’을 기초로, 영문 표현을 통해 예술과 생활이 더 가깝게 융화되는 것을 부각했다. 재단의 존재 이유와 현재적 가치를 되새기고 구성원들 스스로 정체성을 다잡는 계기였다.

다른 지역 문화재단과 달리, 서초문화재단은 지역이 품고 있는 특수성이 있다.

서초구에 예술의전당이 들어선 이후 30여 년간 인근에 클래식 음악 기반의 공연 문화와 관련 사업이 자생적으로 발화해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된 음악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어 왔다. 재단에서는 지난해 한국예술경영학회와 함께 서초음악문화지구의 미래를 모색하는 학술 포럼을 열고, 현장 및 학계 전문가들과 지역문화재단의 역할을 논의하기도 했다. K-클래식의 당당한 한 축인 악기장인들의 작업을 알리는 프로그램을 연중 운영하며, 음악문화지구 내 다양한 공간의 공연사업을 지원하는 등 지자체와 함께 제도적 차원의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또 특별히 ‘서리풀청년예술단’으로 시작해 지금은 ‘서초M.스타즈’라는 별칭을 가진 청년예술인 양성사업이 있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맞춤형 육성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인데, 최종 라운드에서는 재단의 상주단체로 활동할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구민들의 예술에 대한 관심도는 어떤 편인지 궁금하다.

클래식 음악 분야 애호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매년 시행하고 있는 이용자 만족도 조사의 장르별 선호도에서 클래식 음악이 부동의 1위를 차지하며 오페라와 발레가 그 뒤를 잇는다. 다른 지역에서 뮤지컬이나 대중음악 분야가 우세한 것이 일반적이라고 보았을 때, 서초의 관객층은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새로운 것을 선도적으로 선보이는 데 적합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문화예술 향유의 풀뿌리를 단단히 하다

바로크 노엘

지난해를 돌아보았을 때, 가장 큰 성과가 있었던 사업은 무엇인가?

반포심산아트홀의 브랜딩을 꼽고 싶다. 구체적으로는 서초의 우리말이자 옛말인 ‘서리풀’을 모티브로, ‘서리풀 시리즈’라는 기획공연물을 연중 소개하며 전문 공연장으로서 자리매김을 시도한 것이다. 고음악시리즈·무반주시리즈·실내악시리즈·작곡가탐구·전곡연주·거장시리즈·영재음악회·재즈페스타 등 다양한 기회물이 있었고, 그중 반포심산아트홀의 음향적 특성을 고려했을 때 고음악, 즉 바로크 음악이 특성화할 수 있는 콘텐츠라고 판단했다. 다양한 고음악 연주회를 선보였고, 연주자와 관객 양측에서 모두 사랑을 받으며 단기간에 탄탄한 저변이 구축됐다는 점에 보람을 느낀다. 지난 12월 3일에 선보인 ‘바로크 노엘’은 아마 앞으로 교향곡 ‘합창’이나 ‘호두까기 인형’처럼, 서초문화재단 심산아트홀의 사랑스러운 송년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앞서 서울시 소속의 단체인 서울시향 대표 이사를 역임한 바 있다. 예술단체와 문화재단의 운용 환경은 차이가 있었을 텐데, 이러한 변화 속에 어떤 경영 철칙을 추구하고 있나.

서울시향 재직 시, 서울시 모든 자치구를 찾아가는 음악회를 진행했던 적이 있다. 같은 콘텐츠임에도 수용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때 기초 단위의 풀뿌리에서 문화예술을 조성하는 것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지역문화재단은 공연예술단체와 같이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와 사업자, 향유자들이 ‘잘 활동하고, 잘 즐길 수 있도록’ 관련한 문화예술 생태계를 조성하는 역할이다. 다양한 배경의 구성원들이 모여 이 플랫폼의 부분이 된다. 구성원들의 특징과 서초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 ‘선도적 플랫폼’으로서의 좋은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 이러한 선도성은 전문적 조직 운영에 기반하기에, 부임 이후 조직 개편을 통해 본부제를 도입, 사업 부서별로는 공연·시각예술, 지역문화, 예술교육, 도서관 부문 등을 연계해서 운영하고 있다.

2024년부터 전국 문화예술 기관의 예산 삭감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도 나아질 기미는 없는데, 이러한 부분을 타계하기 위한 긍정적 대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모두가 어려운 시기다. 지역문화재단 입장에서는 출연금에 기반한 기획사업 하나하나가 소중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해야 하는 입장에서, 사업의 장단기 필요성 등을 고려해 선택과 집중을 위한 현명한 판단이 요청된다. 그 과정에서 우선적 기준은, 관객의 의견에 기초한 철저한 환류 프로세스다. 관객의 소리는 항상 준엄한 것이고, 운영자는 시대적 상황에 순발력 있게 대응하는 혜안이 필요하다.

신년을 앞두고 있다. 서초문화재단의 10주년인 새해를 맞이하며, 어떤 각오를 남기고 싶은가.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매너리즘에 빠져 정체되지 않도록 균형감을 갖추고자 한다. 기존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더 해 그것이 재단의 중장기적 유산으로 이어지도록 긴 길을 닦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새해에도 예술을 통한 치유와 위안이 필요할 때마다, 서초문화재단이 미력하나마 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객석’의 독자들도 예술의 향기로 건강하고 평안한 새해를 맞이하시길.

허서현 기자 사진 서초문화재단

 


 

06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당장 이강현

 

민주주의 역사를 품고, 아시아를 향해

창·제작을 위한 지원과 연구 시설을 갖춘 거대한 문화전당

 

이강현(1962~) 2022년부터 ACC의 전당장으로 재직 중이다. KBS아트비전 부사장·KBS청주 총국장·KBS미디어 콘텐츠사업본부장을 역임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마지막 항쟁지인 광주광역시의 옛 전남도청 부지 위, 2015년에 세워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이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는다. 이를 기념하며 ACC의 첫 전당장인 이강현에게 질문을 던진 날은 아이러니하게도, 간밤에 45년 만의 계엄령(12.3)을 경험한 다음 날 아침. 민주주의의 터 위에 세워진 ACC의 역사와 그에 대한 예술적 승화를 돌아보았다.

ACC가 있는 장소는 옛 전남도청 부지로, 최근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의 배경지기도 하다. ACC가 지하를 중심으로 건축된 이유와도 관련이 있다고.

ACC는 문화적 공간인 동시에 역사를 품은 장소기에 초기 구상 단계부터 이러한 취지를 설계에 반영했다. 5·18민주화운동의 상징인 건물들을 기념하기 위해 그대로 옛 것을 두고, 주요 건물을 과감히 지하 25m 공간에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건물 옥상과 지상 공간은 시민들을 위한 열린 공원으로 만들었으며,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현장인 5·18 민주광장에서 광주의 자랑인 무등산을 바라볼 때 가리지 않도록 건립됐다.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공연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

민주·인권·평화 가치 기반의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선보인다. 지역의 문화예술가와 협력해 5·18민주화운동 피해자·가족의 사연을 담은 ‘오월어머니의 노래’ 공연(2024)으로도 상처를 어루만졌다. 외에도 ‘시간을 칠하는 사람들’ 등을 통해 광주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키는가 하면, ‘오월 이야기 퍼즐’ ‘가슴에 묻은 오월 이야기’ 등으로 일반 시민과 학생들에게 오월 정신을 이해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ACC의 공연 중 본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나는 광주에 없었다’를 꼽고 싶다. 2020년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작으로 창·제작된 공연으로, 초연 당시 코로나로 관객 참여가 제한됐었다. 이 공연은 관객들이 5·18민주화운동의 시민군이 되어볼 수 있는 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특히 공연 마지막에는 ACC 블랙박스 극장의 빅도어가 열리며(극장 후면이 열려 외부 공간과 연결되는 구조), 관객이 현재의 광주로 돌아오는 순간은 많은 이가 명장면으로 꼽기도 했다. 올해 ACC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

아시아권 국가와의 교류도 주요 사업이다. 범위가 무척 넓은 듯한데, 어떻게 지역을 나누며, 어떤 교류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나.

현재 4개의 권역으로 나누어 진행 중이다. 동남아시아는 ‘아시아전통음악위원회’를 통해 전통음악·차세대 음악·전통공예 분야를 교류하고 있다. 중앙아시아는 ‘아시아스토리텔링위원회’를 통해 그림책 및 문학 분야를 위주로 하며, 남아시아는 ‘아시아무용위원회’를 통해 전통무용 장르에서 활발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아시아는 시각예술 및 디자인 장르를 위주로 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 외에도 아시아문화자원 보존과 아시아 개도국의 문화역량 강화를 지원하기 위해, 문화 분야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미얀마·라오스·키르기스스탄 등을 비롯, 올해부터 몽골(2025년), 필리핀·스리랑카(2026년) 등 수혜 권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넓은 전당의 뜰에, 시민을 초청한다

ACC 전경

ACC는 광주의 랜드마크가 될 만큼 크고, 시설도 다양하다. 다른 문화예술시설과 차별되는, ACC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창·제작을 중시하고, 문화 콘텐츠 저변에 아시아성을 두는 것, 민주·인권·평화의 가치에 주목한다는 점, 문화예술이라는 개념 아래 콘텐츠를 경계 없이 다룰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개관 후 ACC에서 운영된 프로그램은 총 1,910건이며, 이중 연구 및 실험 등을 통해 자체 창·제작 및 기획한 프로그램은 1,255건으로 전체의 66%다. 국내외 작가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스튜디오, 융복합 연구개발 실험실도 운영 중이다.

개관 이후 6년 가까이 전당장 자리가 공석이었다. 2022년 초대 전당장으로 취임하며 ACC와 아시아문화원 등의 조직도 통합됐다. 취임 후 조직 내의 운용에도 변화가 있었을 텐데, 어떤 철칙을 가지고 접근했나.

ACC는 오랜 기간 직무대리 체제를 유지해 왔기에, 제1대 전당장에 대한 기대가 몹시 컸다. 이에 부응하고자,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찾아오는 곳’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용자 중심의 공간 변화, 문화발전소로서의 다양한 창·제작,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곳으로 거듭나도록 직원들과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ACC 문턱이 낮아지고, 더 활력 넘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ACC가 개관 1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어떤 예술 작품으로 공간을 채울 계획인가?

아시아 연출가 3인의 문화해석이 담긴 옴니버스식 연극 ‘아시아 연출가 3부작’에서는 한국·대만·태국 연출가의 작품이 트리플 빌로 오른다. 미디어 판소리극 흥보가 ‘제비노정기’ 또한 ACC의 대표 브랜드 작품이다. 극장의 과거 10년을 되짚는 주요 공연도 무대에 오른다. ‘나는 광주에 없었다’ ‘시간을 칠하는 사람’을 비롯해 ‘심청가’를 심학규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두 개의 눈’도 올해 공연 예정이다. 그 외의 전시·ACC 개관 10주년 기념 국제학술행사 등을 개최한다.

다가온 새해를 맞이하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한 해를 준비 중인가?

올해는 을사년(乙巳年)으로, 푸른 뱀의 해다. 푸른색은 희망과 성장을, 뱀은 동양 문화에서 지혜와 변화를 나타낸다. 개관 10주년을 맞은 ACC는 그동안의 성과를 발판으로 더욱 역동적 성장을 기대하고 있다. 그간의 성원에 힘입어 올해는 ‘내일의 아시아, ACC가 그리다’라는 슬로건 아래 많은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10살 생일을 맞은 ACC를 많이 찾아주시길 바란다.

허서현 기자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07 경기도 광주시문화재단 대표이사 오세영

 

‘문화 블랙홀’로 만들겠다는 포부와 실천

성공적인 관악제 유치를 발판으로 지속가능성을 논하다

 

오세영(1956~) 한국방송공사 예능국 책임프로듀서, 창원방송총국 편성제작국장을 거쳤다. KTH 사장,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부회장 등을 거쳤으며, 2020년 12월 제1대 광주시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임명됐다.

 

경기도 광주시문화재단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준비되어 2020년 하반기에 문을 연 젊은 재단이다. 이 첫 문을 연 순간부터 광주시문화재단을 지켜온 오세영 제1대 대표이사는 성공적인 재단 운영을 통해 지난해 10월, 연임이 발표되어 새로운 2년의 임기를 부여 받았다. 문화재단의 이사장인 방세환 광주시장과 함께 재단을 굳건히 다지고 있는 그에게 광주시문화재단의 지난 성과,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이제 막 5년 차에 돌입하는 광주시문화재단이 다른 문화재단과 비교하여 가진 차별점은 무엇인가?

문화재단의 업무가 모두 유사하지만, 광주시문화재단은 자체 기획공연과 행사가 많다. 지원 사업까지 포함하여 1년에 45~50회 정도의 기획공연을 진행해 왔다. 그중 12~13회는 섭외도 직접 진행하여 제작하는 주요 행사이다. 또한, 경기도 광주시는 도시와 농촌이 함께 존재하는 도농복합시이기에 공연장에서 열리는 행사도 중요하지만, 지역민을 찾아가는 공연 역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큰 차별점이겠다.

광주시문화재단의 공연과 행사는 클래식 음악·연극·발레·무용·가요·인디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특징도 있지만, 뇌과학자·작가·유튜브 크리에이터 등이 출연하는 ‘크리에이티브토크’ 시리즈와 같이 게스트의 폭이 넓은 것도 눈에 띈다. 이러한 방향성을 어떻게 취하였는지 궁금하다.

31년 동안 예능 PD로 활동하며,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기획·연출을 맡아왔다. 이곳에서 콘텐츠 제작에 직접 뛰어든 이유도 PD 생활 중 접했던 여러 문화예술 공연 덕분이다. 클래식 음악·전통예술은 물론 엔터테인먼트까지 폭넓게 담당해 왔기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러 아티스트와 고루 만남을 이어왔다. 또한 KBS교향악단이 재단법인이 되기 전 시청자 사업 국장으로서 KBS교향악단을 이끌었고, 한류 추진단장으로 K팝의 흐름을 지휘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력 덕에 광주시문화재단의 다양한 갈피를 세울 수 있었다.

광주시문화재단의 성공적인 사업으로는 지난여름 진행된 제20회 세계관악컨퍼런스(WASBE)가 꼽힌다. 지난 행사를 어떻게 평가하나? 또한 이 경험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클래식 음악은 오케스트라 위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윈드 오케스트라와 앙상블이 주축이 되는 행사를 진행하는 것은 큰 도전이었고, 실질적인 어려움도 존재했다. 그러나 관악계의 올림픽이라고 하는 세계관악컨퍼런스의 한국 첫 개최가 광주시라는 점은 매우 기쁘다. 행사 기간 저녁 공연은 물론, 평일 오후 2시의 공연까지 모두 매진인 것은 고무적이었다. 이를 발판으로 광주시가 관악계의 메카가 되는 음악 도시로 성장하길 바란다. 교육청과의 협업으로 청소년 윈드 앙상블을 만들고, 각 학교에 지원을 더해 밴드부와 윈드 앙상블을 개설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나아가 또 다른 국제적인 관악제 유치 또한 도전해 보고자 한다.

지난 4년간 제1대 대표이사로의 경험을 돌아보았을 때, 이번 연임 기간에서 개선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앞서 언급됐듯이, 우리는 신생 재단이기 때문에 첫 출범 당시 예산도 많지 않았고, 광주 시민에게도 낯선 단체였다. 문화재단 출범 이전 광주시에는 기획공연이 많지 않아, 시민들이 공연을 찾아 가까운 서울 또는 성남을 방문하시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반대로 성남에서 오시기도 하고, 인근 지역인 용인·송파의 관객분들도 찾아오신다. 광주시를 경기 동남부의 ‘문화 블랙홀’로 만들겠다는 포부가 실현되고 있다. 4년 동안은 재단과 조직을 만들어 가는 일을 했다면, 앞으로는 보다 공격적인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시민을 찾아가는 콘텐츠를 넓힐 생각이다.

시민을 찾아가는 콘텐츠로는 무엇이 있나?

공연장과는 거리가 있는 농촌 지역에서 영화 상영과 체험극 등을 진행하는 ‘찾아가는 영화관’ 사업이 있다. 또한, 광주시 생활문화센터 운영 역시 우리 재단이 맡아 하고 있는데, 현재 2곳이던 센터가 올해 4곳으로 확대된다.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여럿 진행하여 지역 자체 콘텐츠를 일구고자 한다. 나는 대표이사라는 명칭을 달고 있지만, 간부가 아닌 재단 속 하나의 스텝으로 일을 하고자 함이, 우리 광주시민들께 전해지길 바란다.

이의정 기자 사진 광주시문화재단

 

 

2024 세계관악컨퍼런스 (WASBE/7.16~20)를 돌아보다

작년 여름 5일간, 경기도 광주시의 시청광장·남한산성아트홀·문화스포츠센터·곤지암도자공원·남한산성 인화관 등에서 축제가 열렸다. 세계관악컨퍼런스(WASBE)는 1981년 영국에서 결성된 협회이다. 관악 전문 지휘자·작곡가·교수 등 1천여 명의 정회원으로 구성된 협회의 컨퍼런스는 2년마다 개최지를 바꿔 왔다. 공연은 물론 전시,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제20회를 맞은 광주에서의 컨퍼런스는 30여 개국 2천여 명이 참석했다. ‘천혜의 자연환경이 살아 숨 쉬는 경기 광주에서 관악이 피어나’기 바라는 마음에 야생화를 테마로 한 관악제 로고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관악예술은 야외의 활동성과 어울린다. 거대한 음량은 기운과 군기를 불어넣는 군악대 음악으로도 적합하고, 연주자의 흔들림에 민감한 현악기에 비해 보행과 연주의 병행이 가능하기에 마칭밴드나 이를 이용한 쇼도 가능하다. 이번 축제에서도 거대한 음향을 연출하는 윈드 오케스트라, 마칭, 퍼레이드가 광주시청 광장과 광주대로 일대를 ‘바람의 소리’로 가득 채웠다.

무엇보다 세계관악컨퍼런스를 통해 국내 관악계의 현주소를 되짚어볼 수 있었다. 남한산성아트홀에서는 메인 공연이 열렸는데, WASBE 페스티벌 윈드 오케스트라(7.16)의 무대로 국내 관악예술가들의 결집을, WASBE 유스 윈드 오케스트라(7.20)의 무대로 관악 유망주들이 그려나갈 미래를 만날 수 있었다. 이외 호주·스페인·대만·미국·싱가포르·독일·프랑스에서 온 윈드 오케스트라들이 메인 공연의 무대를 꾸며나갔다. 특히 미국에서 참가한 4팀의 윈드 오케스트라가 각일 무대에 올라 ‘관악 강국’임을 뽐냈다. 오랜 전통의 제주국제관악제를 매년 장식하는 제주 서귀포 윈드 오케스트라(7.16)도 참여했다. ‘변방’ ‘주변부’를 뜻하는 프린지 페스티벌은 오히려 관악제의 중심을 차지해, 많은 관객의 관심과 환영을 받았다. 당시 광주시 곳곳이 야외 공연장으로 변했고, 오후 12시 30분부터 늦은 저녁까지 각국의 윈드 오케스트라 공연이 이어졌다.

서양 현악기에 비해 발달의 역사가 비교적 짧아 20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해 온 세계의 관악문화는 세계관악컨퍼런스를 통해 꾸준히 진화 중이다. 남한산성아트홀과 광주시 문화스포츠센터에서는 이를 위한 전시와 강연도 진행하여, 세계 각국의 전문가가 국경을 넘어 관악의 노하우를 공유했다. 세계관악컨퍼런스의 위원장 콜린 리차드선은 “경기도 광주가 지닌 천 년의 역사와 자연경관과 잘 어울리는 컨퍼런스”라고 평하며, 제20회 세계관악컨퍼런스의 성공적인 진행을 알렸다. (본지 2024년 8월호)

 


 

08 마포문화재단 대표이사 송제용

 

공익 정신으로 써 내려간 도전의 기록

임기 마무리를 앞두고, ‘당위성 있는 적자’로 만든 문화의 가능성을 전하다

 

송제용(1965~) 마포문화재단의 5·6대 대표이사로서 마포아트센터 재개관·M 축제 시리즈 브랜드화 등 여러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한겨레신문사 기획담당부 국장, 성균관대·덕성여대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청암언론문화재단의 이사를 맡고 있다.

 

5년간 마포문화재단을 이끌며 가장 중요하게 철학이 있다면?

구태의연하게 들릴 수 있지만, 공익 정신이다. 사람에 따라 저마다 수익성, 재정자립, 공익성 등을 강조하는 바가 다르지만, 나는 ‘당위성이 있는 적자를 내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재단을 직접 이끌어보니, 재단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효율적이고 신중해야 하지만, 흑자만을 지향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았다.

부임 이후 긴 기간 팬데믹이 이어져 어려움이 컸을 것 같다.

사실 공연계 종사자들은 다른 사람들 일할 때 같이 일하고, 그들이 퇴근 후 공연을 보러올 때도 또 일을 해야 하기에 무척 힘들다. 그래서 부임하자마자 내세운 슬로건이 ‘요차불피(좋아서 하는 일은 지치지 않는다)’였다. 덕분에 팬데믹 기간에도 재단의 정체성을 마련하는 공연을 이어갈 수 있었다. 마포문화재단의 가장 큰 사업은 마포 M클래식 축제다. 관객 접근성을 높이고자 축제의 영상화 작업을 준비하던 중 팬데믹이 발발해 비대면 축제로 진행했는데, 서울시의 우수 축제로 선정됐다. 특히 하늘 공원의 갈대밭에서 피아니스트 문지영이 연주하는 영상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100명의 랜선 관객이 화면을 통해 소통하는 관객 참여형 공연에는 2만 명이 동시 접속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임기 중 의미 있는 사업을 꼽는다면?

흥행과 무관하게 기초문화재단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전했고, 모든 사업이 의미 있는 발걸음이었기에 하나만 고르기는 어렵다. 다만 가장 고생했던 사업으로는 2022년 한국 가곡을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 ‘첫사랑’을 제작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기초문화재단에서 뮤지컬을 제작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지역민들이 문화적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우리의 과제이기에 과감히 제작에 돌입했다. 직원들이 힘을 합쳐 열심히 해주었기에 가능했다.

임기 동안 재정 조성과 후원의 중요성을 체감했을 텐데, 다른 예술기관에 도움이 될 만한 팁을 전해준다면?

부지런해야 한다. 정보를 찾아보고,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나 서울시가 발표한 사업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평소에 많이 시도하고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다. 당위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 재단은 2022년부터 한글날을 기념하며 순우리말 가곡·동요 공모전 ‘훈민정음 망월장’을 통해 음원을 제작해 왔는데, 지난해에는 문체부가 주관하는 한글날 주간행사(2024.10.4~10)의 개막식에서 대상작을 공연할 기회가 생겼다. 공모전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은 아니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재단의 가치를 높일 수 있기에 중요하다. 특히 ‘훈민정음 망월장’과 같은 공모전은 문화재단만이 할 수 있지 않나.

2024년, 마포문화재단에서 진행한 최고의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최고가 어디 있고 최하가 어디 있겠나. 다만, 내가 이곳에서 근무했었다는 사실을 ‘최고의 경험’으로 꼽을 수 있겠다. 재단의 직원들과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다. 허락되는 한 기꺼이 선봉에 서겠다는 마음으로, 경영자의 위치에 있으나 노동자의 마음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마지막으로, ‘객석’의 독자분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해달라.

여러분은 대한민국 문화의 혁신에 앞장서며, 문화예술 트렌드의 중심에 있으니 무한한 자부심을 갖길 바란다. 지금처럼 계속 문화예술계에 관심을 기울이며, 많은 응원과 지원을 부탁드린다.

김강민 기자 사진 마포문화재단

 


 

09 COLUMN

 

예술현장을 변화시키는 그들

기반과 토대를 만드는 예술기관들의 역할과 소망

 

공연장·문화재단·예술단체는 아마 비슷한 희망과 바람을 갖고 있을 것이다. “창작과 공연의 기반이 되는 기획, 제작극장의 역할을 확대하고, 관객 중심의 운영을 이어가고 싶다”(박민정 클래식부산 대표)는 것. 혹은 “저변확대에 힘써 새로운 관객을 만나고, 이 모든 ‘내실’을 다져 글로벌 관객에게 다가가는 것”(정재왈 서울시향 대표이사)일 것이다.

무대에는 예술가가 오르지만, 이를 위한 기반과 토대를 만드는 것은 예술 관련 기관들이다. 기관들도 중앙정부나 시(市)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을 수령해 실행만 하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예비 관객들의 주변과 일상을 관찰하며 적재적소의 프로그램과 이를 위한 예산의 지도를 그려나가고 있다. 더불어 그런 기관들의 명칭에는 ‘국립’이나 ‘시립’이라는 단어가 드러나진 않지만, 대부분 중앙정부(국가)나 시정부로부터의 지원·보조금을 통해 엔진을 가동 중이다. 그래서 ‘세금’이 아닌 ‘혈세’로 문화·예술의 장을 만들어가며, 무대 위의 예술가들을 통해 이러한 ‘혈세’를 환원해 주고 있다. 우리가 주변의 공연장과 예술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공연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물론 민간 예술단체는 이러한 관리와 운용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긴 하다. 그들은 “활동 의지가 강한 연주자들이 모여 신뢰를 바탕으로 실력 있는 팀을 구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은 본질적으로 비상업적이기” 때문에 이들 역시 “규모에 상관없이 이들의 존립을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도 필요”(김민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음악감독)하여, 직·간접적으로 정부 지원을 받기도 한다.

우리 앞에 당도하는 예술, 우리 일상에 놓이는 예술의 공장이 이렇게 가동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문화·예술과 정치·경제와의 상관성도 파악하게 된다. 즉 정치·경제의 안정화와 활성화가 곧 문화·예술 지원 통로와 길을 단단히 닦고, 예술가들도 그 길을 잘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부의 예산 감축과 뜻하지 않은 시국으로 인해 2025년 문화·예술계의 전망은 더욱 어려울 것으로 많은 이가 예측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기관장들의 마음은 한결같고 꿋꿋하다. 문화·예술의 소비층이든, 수혜를 기다리는 소외 지역이나 주민이든 간에 이들의 마음을 읽고, 지원과 공급의 길목을 확장해야 한다는 각오와 다짐이다. “우리의 꿈이 지지를 받으려면, 지금의 공연예술 생태계에 부합하는 역할을 찾아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민첩하게 변화를 받아들이고, 선택과 집중의 전략으로 일하려는 우리의 다짐이 꿈을 실현하는 초석이 되길 바란다.”(박선희 GS문화재단 대표)

더불어 예술기관이 자리 잡은 ‘주변’과 ‘일상’을 둘러보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서초문화재단만의 스토리텔링을 써 나가겠다”(강은경 서초문화재단 대표이사)는 포부처럼, 혹은 지역에 담긴 문화와 역사를 꾸준히 예술의 소재로 추출하여 “문화발전소로서의 다양한 창·제작 극장이자, 지역 사회 및 아시아문화발전의 중심지로 활력이 넘치는 곳”(이강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당장)으로 만들어가며 호응을 얻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문화·예술로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오는 길을 닦는 것만으로도 안 된다. 어쩌면 “공격적인 서비스”와 “시민을 찾아가는 콘텐츠”(오세영 광주시문화재단 대표이사)가 필요한 시대인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의 삶에서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하거나, 정치·경제와의 우선순위에서 후순위에 있는 문화와 예술도 이러한 시장 파악, 수요 조사, 성공적인 공급과 호응에 기대로 이뤄진 장이다. 올해는 뱀의 해이다. 뱀이 상징하는 여러 의미 중 “허물을 벗고 변화를 추구하는 동물로서 공연예술계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박선희 GS문화재단 대표)는 변화의 의미가 가장 다가오는 시간이다. 이번 특집호에 게재된 이들이 벗을 허물과 변화의 운폭에 응원을 보내고, 기대와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송현민(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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