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내게로 온 순간_12
음악가들이 알려주는 ‘추억의 플레이리스트’
추억의 플레이리스트 1 지휘자·피아니스트 김대진 2 피아니스트 이경숙 3 바이올리니스트 이경선 4 바이올리니스트 강동석 5 베이스 연광철 6 비올리스트 최은식 7 작곡가 이영조 8 첼리스트 조영창 9 바리톤 박수길 10 메조소프라노 강화자 11 피아니스트 한옥수 12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나의 삶, 나의 음악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나의 삶, 나의 음악
글 이성주(1955~) 다섯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아홉 살에 서울시향과 협연하며 데뷔했다. 1966년 이화경향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줄리아드 음악원 예비학교에서 갈라미언과 딜레이를 사사했다. 1977년 영 콘서트 아티스트 인터내셔널 오디션을 통해 뉴욕 무대에 데뷔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를 역임했다. 1997년 직접 창단한 현악 앙상블 조이오브스트링스의 이사장 겸 예술감독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R. 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진심이 담긴 다짐
볼프강 자발리쉬/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협연 제시 노먼)
감상 포인트 음악과 한 몸이 되어가는 제시 노먼의 음성
만 다섯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지금까지 평생을 바이올리니스트로 살아왔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부모님 사이에서 5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저는 오빠와 언니들이 배우는 피아노, 클라리넷, 바이올린 등의 악기를 보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악기를 배워 바이올린을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1969년, 중학교 2학년 때 유학을 떠났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홀로 길을 떠나며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꼭 성공해서 돌아오겠다고! 유학 도중 어려운 일들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바이올린은 제 가장 친한 벗이 되어 주었고, 점차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1977년 뉴욕 데뷔 후, 저는 젊은 예술가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어느 해 연말, 미국에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보내며 TV를 보던 중, CD로 자주 들었던 소프라노 제시 노먼(1945~2019)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화면 속 그녀는 R. 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저는 다음 연주 때 입을 드레스를 손수 수선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슈트라우스의 네 곡 중 마지막 곡에서 모든 걸 멈추고,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녀의 목소리가 이 아름다운 곡과 어떻게 하나가 되어가는지 지켜보았습니다. 그녀는 마지막 부분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장면은 지금까지도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연주자가 느끼는 감정을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연주자로서 더욱 충실히 연구하고, 진심을 담은 아티스트로서 성장하겠다고.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고난과 감사의 순간
#R. 슈트라우스 #바이올린 소나타 Op.18 #연주 여행
야샤 하이페츠(바이올린), 브룩스 스미스(피아노)
감상 포인트 감성 깊은 멜로디와 현대적인 테크닉이 어우러진 곡
제 연주 생활은 계속되었습니다. 1980~90년대는 가장 바빴던 시기였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공연 일정이 잡혔고, 반주자와 저는 뉴욕에서 덴버를 거쳐 아주 작은 비행기로 갈아타고 목적지에 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덴버에 도착하니 갑작스러운 폭설로 비행기가 결항되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연주는 다음 날이었고, 저는 급한 마음에 렌터카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작은 차로 이동할 계획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차에는 스노우타이어도 없었고, 설상가상으로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로키산맥을 넘어가는 길이었습니다. 눈은 그치지 않았고, 앞도 잘 보이지 않으며, 차들은 길목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저는 할 수 없이 운전하며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아 5km의 속력으로 주행하며, 30분이면 갈 길을 4시간에 걸쳐 도착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과연 목숨까지 걸고 연주 여행을 해야 하는지, 연주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R. 슈트라우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Op.18은 대다수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하고 싶어 하는 곡 중 하나로, 낭만 시대에 걸맞게 감성 깊은 멜로디와 현대적인 테크닉이 필요한 곡입니다. 저는 그날 공연 프로그램 중 가장 중요한 곡이었던 이 곡의 느린 2악장을 연주하며,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내가 사랑하는 바이올린으로 이 신비스러운 선율을 연주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그날 이후,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고 바이올리니스트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첫 음반 녹음의 추억
#슈만 #바이올린 소나타 #데뷔 음반
이성주(바이올린), 스티븐 라자루스(피아노)
감상 포인트 깊이 공부할수록 무궁무진하게 빠져들게 되는 슈만 작품의 매력
뉴욕 데뷔 이후, 9년 만에 리코딩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첫 음반을 출반하던 순간의 설렘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 음반을 가장 아끼곤 합니다. 첫 음반으로 생각한 곡은 브람스의 작품이었습니다. 제작사에 브람스 작품 녹음을 제안했지만, 그들은 자주 녹음되는 레퍼토리보다 덜 알려진 곡을 생각해 보라고 했고, 결국 슈만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택했습니다. 슈만의 작품은 처음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지만, 깊이 공부할수록 무궁무진하게 빠져들게 되는 매력이 있습니다.
음반 녹음에는 그 시절 늘 저와 함께 하던 스티븐 라자루스가 동참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일 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지식 외에도 다양한 방면으로 호기심이 많은 친구였습니다. 함께 연주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를 통해 더 넓은 음악 세상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LP와 CD 녹음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고민 끝에 저는 LP 녹음을 택했습니다. 그 시절 가장 유명한 프로듀서이자 리코딩 엔지니어였던 데이비드 핸콕 피디님이 녹음을 맡아주셨기 때문입니다. 뉴욕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녹음을 마치고, 핸콕 피디님의 스튜디오에서 편집하며 녹음에 대한 지식을 쌓았던 시간은 지금까지도 귀한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선생님은 편집으로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지만, 좋은 음반이 나오려면 우선 연주가 좋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 수많은 유명 연주자의 음반을 제작하신 선생님의 격려와 칭찬은 지금까지 연주자로 살아온 시간 동안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