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공연수첩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1월 1일 9:00 오전

REVIEW

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시린 겨울, 분노에 찬 손을 잡아주는 그대

국립오페라단 ‘서부의 아가씨’

2024년 12월 5~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홍석원(지휘)/니콜라 베를로파(연출), 아우렐리오 콜롬보(무대)/ 임세경·김은희(미니), 박성규·한윤석(딕 존슨), 양준모·황인수(잭 랜스) 외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며 화려한 라인업이 가득했던 지난해, 국립오페라단 ‘서부의 아가씨’는 그 대미를 장식한 공연이었다. 서정적인 아리아로 잘 알려진 푸치니의 다른 오페라와 달리 그의 음악이 가진 관현악적 풍성함을 조명할 기회였다(12월 5일 관람).

오페라는 19세기 캘리포니아의 탄광을 배경으로 한다. 가난한 예술가의 다락방에서 시작하는 푸치니의 또 다른 오페라 ‘라 보엠’보다 한층 더 이색적이다. ‘라 보엠’이 낭만적 겨울을 떠올리게 한다면, ‘서부의 아가씨’는 또 다른 겨울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흐릿한 숲속, 광부들이 태우는 빨간 담뱃불이 드문드문 엿보일 때면 손끝이 시려오는 쓸쓸하고 고독한 겨울의 냄새가 나는 듯했다.

시작은 여주인공 미니(임세경 분)의 술집이다. 미니는 광부들에게 성경 강의를 할 정도로 모두의 존경을 받는다. 국내외 무대에서 ‘나비부인’ 초초상 역으로만 200번 가까이 무대에 올라온 임세경이 표현하는 미니는 자애롭고 강인하다. 더없이 불안한 겨울, 광부들의 유일한 위로 같아 보이는 미니의 존재감은, 푸치니의 음악에 설득력을 더하는 임세경의 목소리로 뚜렷해진다.

미니는 자신이 약탈자 라메레즈라는 사실을 속인 딕 존슨(박성규 분)과 사랑에 빠진다. 이를 방해하는 것은 보안관 랜스(양준모 분). 미니는 딕 존슨의 정체를 알고도, 총에 맞은 그를 랜스로부터 보호한다. 미니는 랜스에게 딕 존슨의 운명을 건 카드 게임을 제안하고, 재치를 발휘해 승리를 거머쥔다. 그럼에도 결국, 딕 존슨은 광부들에 의해 잡혀 온다. 사형을 당하기 직전, 미니는 그를 구하기 위해 무리 가운데로 뛰어든다.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당당히 총을 겨누는 미니는 푸치니 오페라에 등장하는 여성상 중 가장 강단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분노에 찬 대중의 마음을 녹이는 것은 그들의 손을 잡으며 노래하는 미니다.

“나의 트린, 산 도밍고로 보내는 첫 편지를 쓸 때 내가 손을 잡아줬잖아요. 그리고 여러분 모두 투박하고 선량한 내 마음의 형제들이죠. (권총을 던지며) 이전처럼 여러분의 친구이자 자매로 돌아갈게요. 여러분에게 숭고한 사랑의 진실을 가르쳐주던 날로요.”

유독 마음이 시렸던 지난 12월의 초, 미니의 위로가 무대 위의 광부들에게 닿는 순간, 그 위로가 광장의 시민들에게도 닿길 바라는 마음이 스쳐 지나갔다. 존경할 미니가 우리에겐 없기에, 서로가 서로의 손을 이 노래의 온기로 잡아줄 수 있다면.

합창단의 앙상블은 규모에 비해 그 효과가 아쉬웠지만 4관 편성의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뚫고 빛을 발한 주연 성악가들의 호연, 무엇보다 코리아쿱오케스트라를 완벽한 오페라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빚어낸 홍석원의 지휘가 찬사를 받을 만했다.

허서현 기자 사진 국립오페라단

 

 

어둠 속에서 빛나는 연대

연극 ‘타인의 삶’

~1월 19일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원작)/손상규(각색·연출)/윤나무·이동휘(비즐러), 정승길·김준한(드라이만), 최희서(크리스타) 외

조명이 켜지지 않은 무대 위로 디지 길레스피(1917~1993)의 재즈 선율이 흐른다. 흥겨운 리듬이 잦아들고, 무대 곳곳에 놓인 차가운 금속 재질의 의자와 테이블 사이로 동독 정보기관의 비밀경찰 ‘비즐러’가 들어선다. 극은 냉철하고 빈틈없는 비즐러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심문 장면으로 시작한다. 작품은 동명의 영화(국내 개봉 2007년)를 원작으로, 1984년 전체주의가 팽배한 동독 비밀경찰의 감시 아래 반체제 예술 활동을 펼치는 극작가 ‘드라이만’, 그의 연인이자 배우인 ‘크리스타’, 그리고 이들을 감시하는 동독 최고의 비밀경찰 ‘비즐러’의 이야기를 그린다(12월 10일 관람).

무대는 몇 개의 의자와 테이블 외에 별다른 소품 없이 비어있다. 이러한 설정은 예술가들의 일상과 그들을 감시하는 비밀경찰의 도청 공간을 분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극적 약속을 바탕으로, 비즐러(이동휘 분)는 드라이만(정승길 분)과 크리스타(최희서 분)의 바로 옆에서 그들의 일상을 기록하고 감시한다. 비즐러가 보고서의 타이핑 내용을 대사로 발화하는 동안, 관객은 어느새 비즐러의 입장이 되어 그의 시선에서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을 바라본다. 이는 관객에게 비밀경찰의 감시 속에서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고통과 갈등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한다.

극 초반, “우리 정부가 아무 일도 없이 사람을 가두기라도 한다는 겁니까?”라며 냉혈한의 모습을 보이던 비즐러는, 정부의 압력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연극 연출가 예르스카가 남긴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의 시집을 낭독하며 예술가들의 삶에 점차 동화된다. 반체제 성향이 강했던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의 삶은 작품 속 동독 예술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그의 작품은 동독보다 서독에서 더 큰 주목을 받았다. 브레히트의 시는 당대의 예술과 문학을 대변하는 하나의 시대정신이었다.

이후, 드라이만이 동독의 현실을 서독에 알리는 글을 투고하는 과정에서 비즐러는 그를 비호하기 위해 보고서를 거짓으로 작성한다. 지금껏 ‘타인의 삶’을 관찰하던 비즐러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며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자신이 동독 비밀경찰의 감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드라이만은 비즐러와 ‘가깝고도 먼 타인’으로서 연대했던 마음을 글로 써서 전한다. 브레히트는 ‘암울한 시대에도 노래를 부를 것인가? 그래도 노래 부를 것이다. 암울한 시대에 대해’라고 썼다. 유난히 차가운 계절을, 시대의 혼란 속에서도 연대를 나눈 이들의 이야기가 더욱 와닿는 밤이다.

홍예원 기자 사진 프로젝트그룹일다

 

 

램프에서 피어오르는 무한한 요술

뮤지컬 ‘알라딘’

~6월 22일 샤롯데씨어터

 

김준수·서경수·박강현(알라딘), 정성화·정원영·강홍석(지니), 이성경·민경아·최지혜(재스민)/ 알란 멘켄(작곡)/케이시 니콜로(연출·안무) 외

드디어 뉴욕 브로드웨이의 대표작 알라딘을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됐다. 브로드웨이 초연 10년 만에 이루어진 한국 첫 공연이기에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는 일찌감치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손꼽혔고, 그 열기는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졌다(11월 23일 관람).

‘알라딘’은 한 마디로, 유쾌하고, 화려했다. 뮤지컬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관객이 상상하는 ‘뮤지컬의 정석’이 있다면, 바로 ‘알라딘’일 듯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알라딘과 재스민 공주의 사랑, 지니와의 우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됐고, 여기에 약간의 각색과 새로운 넘버가 추가돼 신선했다. 밝고 가벼운 분위기를 유지한 덕분에 누구나 즐길 수 있었다.

알라딘의 풋풋함을 살려낸 박강현, 용감한 재스민을 표현한 최지혜, 요정 지니를 재치 있게 소화한 정원영까지, 주연 배우의 실력이 극에 몰입감을 더했다. 색색의 의상과 무대 세트가 끝없이 이어지는 화려한 연출도 인상적이었다. 무대가 더 넓었다면 훨씬 더 웅장한 연출이 가능해 보일 정도였다. 특히 황금이 가득 찬 동굴 안에서 지니가 등장한 순간엔 객석에서 작은 탄성이 터졌다. 시각적으로도 가장 화려했을 뿐 아니라, ‘나 같은 친구(Friend Like Me)’를 부를 때 지니의 매력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객석의 박수가 끊이지 않자 지니가 “워, 워”하며 관객을 진정시키기도 했다. 춤을 추던 중 다리에 쥐가 났다며 “이거 쥐니? 난 지니!”라며 언어유희를 사용하는가 하면, 요즘 유행어 “이븐하게 구워드릴게요” 등 국내 공연에 맞춰진 대사들 덕분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알라딘과 재스민이 양탄자를 타고 밤하늘을 나는 장면은 무척 낭만적이었다. 이 장면은 알라딘이 재스민에게 조심스레 물으며 시작됐다. “나를 믿어요?” 재스민이 “믿어요”라고 답하며 양탄자에 오르자 모든 조명이 한순간에 꺼졌고, 곧이어 무대는 물론 객석의 천장까지 작은 조명들이 반짝이며 켜졌다. 드넓게 펼쳐진 밤하늘, 둥실둥실 떠오른 양탄자, 두 사람이 부르는 넘버 ‘새로운 세상(A Whole New World)’이 극장을 순식간에 애니메이션 속 한 장면으로 만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이 마무리되자, 무대에 오르지 않았던 또 한 명의 주인공에게도 박수가 이어졌다. 2층 객석 난간 부근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지휘자 양주인의 모습이 송출됐는데, 관객들이 그를 향해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 것이다. 뮤지컬 ‘알라딘’이 지난 10년간 꾸준히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배우들의 열연, 아름다운 음악, 다채로운 연출도 있지만, 작품이 지닌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알라딘이 진정한 사랑과 자신의 가치를 깨달았듯, 공연장을 떠나는 관객이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이었다.

김강민 기자 사진 에스앤코

 


 

BBC 프롬스 코리아 소피 데르보/KBS교향악단

한 악기 같았던 바이올린(이지윤)과 첼로(최하영)

2024년 12월 5일 롯데콘서트홀

 

롯데콘서트홀에서 봤던 KBS교향악단의 공연 치고는 유난히 관객이 적었다. 객원악장 데이비드 김(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악장)이 등장해 튜닝을 했다. 이어 바지 차림의 지휘자 소피 데르보(1991~)가 맵시 있게 등장했다. 빈 필하모닉의 바순 수석으로 그의 연주를 접했지만, 지휘는 처음이었다.

브람스 ‘비극적 서곡’에서 데르보는 큰 폼의 지휘로 세부에 머물지 않고, 중후하게 전진하는 박동의 감각을 살렸다. 나무보다 숲이 떠오르는 첫인상이었다. 가지런한 붓끝이 느껴지는 소리로 입체적인 양감을 살렸다. 비장감보다는 희미한 밝은 빛이 감도는 음색이었지만 상대적으로 극적 굽이는 크지 않았다. 잠시 지리멸렬한 부분도 있었지만, 곧 절도를 되찾았다. 음악을 재단하는 끈과 긴장감은 느슨한 편이었다.

남색 의상의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1992~)과 흰색 의상의 첼리스트 최하영(1998~)이 나왔다. 브람스 2중 협주곡에서 최하영은 첫 음부터 비브라토를 많이 쓰며 곡을 충분히 음미했다. 첼로의 다양한 표정과 여유, 노래하는 듯한 그윽함이 인상적이었다. 이어 이지윤의 바이올린이 가세했다. 짙은 음색이 첼로와 어우러질 때 호흡과 기교면에서 두 연주자의 상성이 잘 맞는다고 느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바이올린과 첼로가 8줄짜리 한 악기 같았다. 풍성한 저음과 정확한 고음의 두 연주자. 악구가 끝날 때는 약속한 듯 활을 들면서 시각적인 만족감도 주었다.

웅장하게 끝을 맺은 1악장에 이어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2악장에서도 두 악기가 섞였다. 곡의 극적 전개가 외형적으로 활짝 열리는 느낌을 주었다. 3악장은 첼로의 격정을 바이올린이 이어받았다. 개별적인 기교와 종합적인 앙상블이 빛나며 끝을 맺었다. 앙코르인 C.P.E. 바흐의 프레스토 c단조에서도 두 연주자는 피치카토로 한 악기처럼 연주했다. 음량을 페이드아웃하며 끝내는 피날레의 호흡도 잘 맞았다.

2부의 브람스 교향곡 1번은 비교적 빠른 빠르기로 시작했다.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주목받은 팀파니가 길을 냈고 현악기의 피치카토도 명확했다. 현을 두텁게 가져가면서 긴장감을 부여했다. 오보에의 노래가 담담하게 이어지고 앙상블의 발걸음이 엇갈리기도 했다. 크게 부풀어 오르거나 긴장감이 넘칠 때는 좋았지만 악기군간 블렌딩이 뿌옇고 산만해질 때가 있었다. 팀파니가 뜨겁게 달아오를 때는 인상적인 순간이었고, 1악장의 마지막에 원기를 모으듯 움츠렸다 발산하는 부분도 돋보였다. 지휘자 데르보는 서정적이고 꿈꾸는 듯한 2악장 초반에 굽이를 부여하며 무언가를 만들어보려 시도한 듯하다. 오보에 솔로와 어슴푸레한 현이 일견 잘 어우러졌다. 악장 데이비드 김의 바이올린 솔로가 발군이었다. 차갑고 맑게 빛나는 솔로는 어수선한 다른 부분을 모두 채울 정도로 빛났다. 3악장의 빠르기가 빨랐는데 잰걸음에 맞추다 악기군간 어긋날 때가 많았다. 한걸음에 모두 담으려는 시도는 곡상을 단조롭게 만들곤 했다.

4악장에서는 플루트의 활약이 돋보였다. 현의 합주는 관대함을 떠올리게 했고, 반짝이는 순간들이 많았지만, 전체적으로 도도한 저류를 끝까지 끌고 가지 못한 건 지휘자의 책임으로 보였다. 지휘를 떠나 KBS교향악단 단원들만 보면 예전에 비해 개개인의 색채가 훨씬 밝고 다이내믹했고, 이는 앞으로의 연주에 기대를 걸게 했다.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음악 칼럼니스트)

 

 

피터 야블론스키 피아노 독주회

연주로 내보인 오랜 내공의 흔적

2024년 12월 3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가급적 쓰지 않았으면 하는 표현 중 하나가 ‘현대음악’이다. ‘낯설고 얼른 이해되지 않는, 비교적 최근에 작곡된 음악’이라고 뭉뚱그리기에는, 21세기 중후반부터 만들어진, 이른바 ‘새로운 음악’의 가짓수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난해한 음악을 이해하기 쉽게 연주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모나지 않은 음악성으로 보편타당한 해석을 들려주거나, 오랫동안 특정 분야나 작곡가에 천착해 본인의 스타일로 온전히 ‘체화’된 연주를 들려주는 것. 피터 야블론스키(1971~)는 이 두 조건을 모두 갖춘 피아니스트다. 20세기 이후의 동유럽과 북유럽 작곡가들의 작품에 강점을 보이는 그가 최근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는 폴란드 작곡가들의 유산이다. 젊은 시절부터 꾸준히 그를 따라다닌 ‘지나치게 무난한 음악적 처리와 다소 부족한 존재감’이라는 평가는 현학적인 분위기의 20세기 피아노 작품에서 꼭 필요한 덕목이라는 점도 주목된다.(※본 공연은 예술의전당의 기획 공연 ‘월드스타 시리즈’ 중 하나였으며, 연주회의 부제는 ‘Polish Night’이다)

첫 곡은 시마노프스키(1882~1937)의 모음곡 ‘마스크’ 중 ‘돈 주앙의 세레나데’였다. 돈 주앙을 다룬 음악 작품 가운데 가장 비뚤어지고 우스꽝스러우며 흥미로운 캐리커처가 야블론스키 특유의 모나지 않은 타건과 과장되지 않은 페달링, 절제된 다이내믹으로 그려졌다. 이어지는 로널드 스티븐슨(1928~2015)의 ‘만루’ 모음곡은 파데레프스키(1860~1941)의 오페라 ‘만루’에 쓰인 선율에 의한 것으로, 집시 혈통인 오페라의 주인공에 맞춘 집시 풍의 즉흥성이 매력적이다. 야블론스키의 해석은 자유로운 리듬감과 밝은 음색으로 특징지어졌다. 특히 모음곡의 네 번째 곡 ‘크라코비엔’에서 보여준 자유분방함은 버르토크의 그림자를 비춰내는 듯했다.

바체비치(1909~1969)는 폴란드의 여성 작곡가로, 시마노프스키를 사사했다.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했으나 ‘10개의 콘서트 연습곡’에서 보여준 피아노 서법(敍法)은 바체비치가 피아니스틱한 처리에도 매우 능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야블론스키는 쇼팽과 시마노프스키를 풍자적으로 연결한 듯한 이 난곡들을 여유롭고 정돈된 악상과 템포 감각으로 풀어내며 공감대를 만들어냈다.

2부 역시 시마노프키의 작품으로 시작했다. ‘메토프’는 1부 첫 곡이었던 ‘마스크’보다 더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는 인상주의 기법이 매우 은유적으로 표현됐기 때문이다. 세 곡으로 구성된 이 모음곡은 모두 ‘물’과 연관돼 있는데, 야블론스키는 물의 흐름에 짙은 밀도를 가미해 텍스트를 부각했다. 그중 두 번째 곡 ‘칼립소’가 특히 호연으로, 물의 움직임에서 라벨 풍의 정교함을 나타내려 한 모습이 뛰어났다.

마지막 곡 바체비치의 소나타 2번은 그의 스승 시마노프스키의 그림자가 부드러운 베일에 싸여 나타난 모습이었다. 교묘한 다조성이 명쾌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1악장, 코랄 풍의 2악장, 마주르카 리듬 중 하나인 ‘오베렉’이 사용된 3악장을, 야블론스키는 온전히 장악했다. 강력한 불협화음이나 타악기적인 효과, 불규칙한 선율이나 어지러운 무궁동에 이르기까지 거침없던 연주자의 모습은 작품 속 작곡가의 복잡한 내레이션을 마지막 순간까지 조리 있게 풀어내려는 시도로 느껴졌다.

김주영(피아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사진 예술의전당

 

 

국립심포니 ‘ECO & ECHO 콘서트’

자연을 노래로 연결한 현재와 과거

2024년 11월 30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작년 9월 1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초연된 최우정 작곡가의 신작 ‘수제천(壽齊天) resounds’가 땅끝 통영의 무대에 올랐다. 이 작품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위촉작으로, 전통곡인 ‘수제천(壽齊天)’을 활용한 작품이다. 그러나 수제천이 가진 소리를 직접 모방하거나, 이를 서양악기로 옮겨오는 모습보다는, 서양음악을 공부한 한국인 작곡가가 자신의 정체성과 더 가까운 소리를 자신이 새롭게 익힌 어법으로 다시 표현하는, 문화적 혼종성의 결과물로 탄생된 작품에 가까웠다.

연주는 지난 서울의 공연과 마찬가지로 정치용/국립심포니가 맡았다. 마치 천의 질감으로 만든 듯한 스크린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연의 모습이 음악과 함께 시작됐다. 조명을 활용하여 곡의 분위기를 색감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수제천 resounds’의 1악장(‘오래된 음악들의 메아리’)은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소리가 조금씩 박자가 어긋나듯 이어져 그 자체가 하나의 소리 풍경을 만들었고, 그 위를 유영하는 관악기는 조심스럽지만 보다 선율을 들려주며 움직였다. 배경 같던 현의 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을 때는 긴장감도 따라 상승했다. 작곡가는 1악장의 마지막 음이 자연스럽게 멘델스존 ‘핑갈의 동굴(헤브리디스) 서곡’으로 연결되도록 의도하였다. 10분여 연주된 이 작품은 앞선 신작의 풍경과 어울려 아타카로 이어진 시작을 더욱 만족스럽게 했다. 그 뒤로 이어진 본 윌리엄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종달새의 비상’을 연주하기 위해 유다윤이 무대에 올랐다. 단악장 작품인 이 협주곡은 새의 날갯짓처럼 움직이는 바이올린의 하모닉스 고음이 특징인데, 유다윤은 이를 완벽에 가깝게 소화했다. 군더더기 없는 고음은 자연의 에코(echo)처럼 다가와, 공연의 제목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휴식 이후 진행된 2부는 베토벤의 교향곡 6번 ‘전원’으로 시작됐다. 1악장은 여유로우면서 첫 두 음의 분절 모티브가 생생하게 들려 생명력이 유지됐다. 전체적으로 모든 악장이 유려함과 유연함을 중시하여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구절이 없었다. 4악장의 마지막이 다가오자 현악군이 어두운 분위기를 유지하여 ‘수제천 resounds’의 2악장(‘먼 훗날로부터 오는 메아리’)으로 이어갔는데, 이때 흰색 조명을 이용해 파괴되는 자연의 인상을 심어주었다.

‘수제천 resounds’의 2악장은 말러의 교향곡 5번의 트럼펫 소리를 오마주 하였다. 이는 지휘를 맡은 정치용의 아이디어로, 예부터 무언가에 대한 경고는 나팔소리로 표현되었다는 것을 떠올려, 경각심을 불어넣는 관습적 역할을 했다. 작품을 이대로 ‘환경오염’으로 끝낼 수 있겠지만, 작곡가는 암울한 이야기보다는 희망을 택했다. 작품의 마무리는 다시금 자연의 소리로 회귀하여 우리가 지금의 기후위기를 아직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의미를 전했다.

자연으로 묶은 전체 프로그램의 흐름은 의의가 있었다. ‘수제천 resounds’가 공연의 처음과 끝을 감싸니, 네 곡의 작품(최우정·멘델스존·윌리엄스·베토벤)이 따로 연주되는 연주회가 아닌 말 그대로 거대한 ‘2시간의 프로그램’이라고 인식됐다. 서로 다른 작곡가의 작품임에도 각 곡의 유사성에 관해 떠올려볼 수도 있었다. 미디어아트 활용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자연을 표현하는 음악의 뒤편에 AI로 생성된 듯한 이미지는 평온하고 잠잠한 자연보다는 오히려 현대 사회의 발달된 기술의 어설픔이 느껴져, 감상을 방해했다.

이의정 기자 사진 국립심포니

 

 

BBC 프롬스 코리아 최재혁/앙상블블랭크

예술 영웅들의 모험(협연 제롬 콤테)

2024년 12월 3일 롯데콘서트홀

 

하고자 하는 예술에 종사하는 이가 적다면, 그는 다른 감각을 가진 이이다. 예술이 또한 매우 어렵다면, 더불어 그는 도전적인 이이다. 우리는 이를 해내고자 노력하고, 끝내 해낸 사람을 예술가라 칭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낯선 세계를 보여주고, 또 다른 세계를 경험케 한다.

그렇기에 롯데문화재단이 주최한 ‘BBC 프롬스 코리아’(12.2~8)의 흥미로운 공연들 중 앙상블블랭크에 주목하였다. 감상자가 적어 위기를 맞고 있는 현대음악의 최전선을 선택한 그들은 우리 시대 예술의 영웅이다. 근본적으로, 보편성을 고려하지 않는 반고전적 속성을 가졌기에 적은 관객은 위기가 아닌 당위이다. 이 결연한 정체성은 현실의 딜레마로 작용하곤 하는데, 다행히도 든든한 음악제의 존재는 이를 해소한다.

1부는 연극적·시각적·기술적·공간적 요소를 결합하여 낯선 극적 양식을 꾀했다. 특히 첫 곡은 객석에서 무대로, 두 번째 곡은 무대에서, 세 번째 곡은 다시 객석에서 연주하여, 마치 멀티버스와 같이 연주했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연주자들이 입·퇴장을 하지 않고 전체 흐름을 이은 계획은 매우 주효했다. 트롬본 독주 작품인 첫 곡, 베리오(1925~2003)의 ‘세퀜차 V’는 연주자에게 숨을 내뱉을 뿐만 아니라 들이마시는 등 익숙지 않은 연주 기술을 요구하며, 광대로 분장한 채 간단한 액팅과 말도 해야 한다. 영화 ‘조커’의 조커로 분장한 트롬보니스트는 객석 뒤에서 등장하여 무대 방향으로 이동하며 연극적으로 구성된 소리들과 공간적 움직임을 들려주었다.

이어서 어둠 속의 무대 위에서 대기했던 네 명의 연주자들은 알렉산더 슈베르트(1979~)의 ‘심각한 미소’를 연주했다. 지휘자(최재혁)를 포함하여 신체에 부착된 센서를 활용한 연주로, 음악적 구성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는 곡이다. 앙상블블랭크는 조명도 적극 활용하여 시각 요소도 더한 흥미로운 연주를 펼쳤다. 기술적 문제로 4분 정도를 지체했지만, 이런 일은 그다지 드물지 않다. 전반부 마지막 곡은 모차르트의 ‘그랑 파르티타’ 중 아다지오로, 한 곡 이상의 고전 작품 연주를 정례화한 앙상블블랭크의 선택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정서의 격변으로 인지 부조화를 일으킬 수 있는데, 연주자가 관객에게 보이지 않도록 객석 2층에서 연주하여 ‘낯섦’을 유지했고, 극적 연결성을 획득했다.

2부는 익숙한 콘서트 양식으로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었다. 첫 곡은 최재혁(1994~)이 앙상블을 위해 편곡한 사티(1866~1925)의 ‘벡사시옹’으로, 840번 반복하라는 원곡자의 지시를 지킬 수 없었지만, 다르게 반복하기를 꾀했다. 같은 소재를 시간에 따라 다르게 그린 동시대 화가 모네의 그림과 유사했다. 곧바로 이어진 최재혁의 클라리넷 협주곡 ‘녹턴 Ⅲ’(2017)은 섬세한 소리의 세공이 돋보였으며, ‘다이내믹한 다이내믹’은 변화무쌍한 도시의 밤을 연상시켰다. 제롬 콤테의 클라리넷 연주는 자아를 의식하면서도 다수에 속해있는 존재의 인식으로 앙상블과 균형을 이루었다. 마지막 곡은 크리스토프 베르트랑(1981~2010)의 ‘스케일’로, 앙상블블랭크는 치밀한 설계도와 같은 악보를 완전한 소리 유기체로 변환하는 데 성공했다. 앙코르로 프랭크 자파의 팝 스타일의 경쾌한 앙상블 작품 ‘G-스폿 토네이도’를 연주하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여러 단체와 연주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은 그 자체로 현대음악의 위기가 아닌 생명력을 증명한다. 앙상블블랭크의 공연은 바로 그 단면이며 증거이다.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롯데문화재단

 

 

서울오페라앙상블 ‘사막 위 디아스포라’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정리가 잘 안될 때

2024년 12월 11·12일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

 

장수동(예술감독·작·연출)·오예승(작곡)·시현정(안무)·윤빛나(음악코치)/정주현(지휘)·박용규(합창지휘)·서울오페라앙상블·노이오페라코러스/ 정시영(순이)·김중일(야마다)·최병혁(오마르)·이소연(나디아)·신성희(탈리아)·장성일(아사드)·임희성(파비엥)·유태근(경훈)

오페라가 처음 탄생한 1600년경의 르네상스·바로크 시대는 음악을 쓰는 법에 관한 규정이 무척이나 많았다. 약 400년의 세월 동안, 오페라 작곡가들은 이 엄격한 규정에 질문을 던지며, 오페라가 가진 최소의 뼈대가 무엇인지 고민했다. 즉, 오늘날의 오페라 작곡가는 한 음악을 ‘오페라’라 부를 수 있는 장르만의 특징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이번에 초연된 오예승(1976~)의 ‘사막 위 디아스포라’는 과연 ‘이것이 오페라인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있었을까?

총체예술인 오페라에서 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극예술에 비해 낮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창작오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드라마 비중이 비교적 낮은 것은 바로크부터 고전시대까지 존재했던 오페라 세리아나 오페라 부파로, 앞서 말한 엄격한 규정으로 인해 모두가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극의 진행을 아무도 알 수 없는 창작극에서 드라마의 흐름·개연성 등이 어색하다면 관객은 몰입에 어려움을 느끼는 게 당연지사.

‘사막 위 디아스포라’는 프랑스 기자 델핀 미누이(1974~)가 쓴 저서를 원문으로 한다. 시리아 내전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시민을 위해 도서관을 운영하는 두 인물, ‘오마르’와 ‘나디아’가 주축이다. 그러나 이 두 인물이 주인공이라는 것을 바로 알기 어렵다. 작품의 독창 아리아는 국경 없는 의사회에서 파견 나온 의사 ‘순이’와 ‘야마다’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땅의 아이들을 치료하고 싶다며 의지를 다지는 둘을 관객은 이 오페라의 주요 인물로 착각했을 터이다. 악역으로 등장하는 레바논 출신 군인 ‘탈리아’, 그와 거래를 나누는 약탈자 ‘아사드’ 역시 각자의 아리아를 불러 비중이 상당히 높다.

극중 인물 모두가 유사한 비중을 가져 주·조연이 구분이 흐릿한데, 조연의 아리아를 비중 있게 다루어 주어진 시간에 모든 서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가장 극적이어야 할 오마르 사살 사건은 등장조차 하지 못하고 대사 몇 줄로 치환되며, 극 중 인물 누구도 이 사실에 몰입하지 않는다. 거대한 슬픔 또는 분노를 느낄만한 인물 사이의 연대 서사가 없기 때문이다.

작곡가는 프로그램 노트에 “이 작품의 음악들은 작법적인 부분에서 통일성을 갖추고 있지 않다”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각 등장인물의 음악은 그들의 성격을 반영한 개별 가곡에 가까우며, 인물 관계에 관한 치밀한 연결이나 암시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만약 서사의 연결이 더욱 촘촘했다면, 이러한 작법이 뮤지컬 넘버와 유사하게 활용됐을지 모르나, 느슨한 서사를 음악이 묶어주지 못하니, 작품에 유기성을 줄 수 있는 요소가 그 무엇도 없었다. 인물의 특징과 대사의 내용에 음악이 잘 어우러졌고, 타악기와 건반악기가 적절한 균형을 맞추어 성악가들의 좋은 발성을 즐길 수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작품은 오페라보다 가곡 갈라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하나의 오페라에는 많은 예산과 인력이 필요하다. 안정적 재원이 없이 많은 인원을 모아야 하는 민간단체 창작오페라의 무대 아래에는 분명 말할 수 없는 여러 고충이 존재할 것이다. 오페라 한 작품을 올릴 때에는 관객이 그 결여를 느끼지 못할만큼 좋은 작품이 서울오페라앙상블에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

(※이 작품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주체지원사업 선정작이다)

이의정 기자 사진 서울오페라앙상블

 

 

이신우 ‘가지 않은 길Ⅱ: 달항아리를 위한 시’

길목에 잠시 서서 음악으로 백자를 빚다

2024년 12월 10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이화윤(비올라), 고은이(피아노), 방지원(타악기), 승경훈(플루트), 윤정은(피아노)

음악은 작곡가라는 토양에서 삶과 경험이라는 자양분으로 성장한다. 이 토양에는 자신과 경험이 아닌, 이를 넘어선 존재가 건네는 ‘영감(靈感)’이 씨앗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작곡가 이신우(1969~)는 “‘놓아버림’, 에고(ego)로 집중된 시선을 뒤로 물러서 관찰자의 시점으로 바꾸는 것입니다.”라고 답한 걸까?(본지 23년 12월호) 그는 음악 앞에 자신을 내려놓고, “무한한 우주, 창조주에게로 뛰어드는 것”을 작곡 원리로 삼았다.

주제는 ‘달항아리’이다. 달항아리는 배가 둥글게 나온 백자로, 달처럼 희고 둥글다고 하여 그렇게 불린다. 이를 지그시 바라보면 독특한 영적 교감을 느끼게 된다. 순백의 색상은 복잡한 감정을 지우고, 둥그런 외형은 시간의 흐름을 가둔다. 무아의 경지로 이끄는 영체(靈體). 영적 세계를 추구하는 이신우는 달항아리를 만나는 순간, 모종의 영감을 느꼈음이 분명하다.

공연은 이신우의 비올라와 소리북을 위한 ‘카프리스 2번 적벽’으로 시작했다. 이 곡의 주제는 죽음이었다. 하지만 이 연주회에서만큼은 육신의 죽음이 아닌 자아의 죽음, 곧 자기의 내려놓음으로 받아들여졌다. 어린 시절 판소리를 배운 비올리스트 이화윤은 판소리 ‘적벽가’를 익숙한 노래를 부르듯 연주했다.

이어진 작곡가 김새암의 작품 ‘월하풍류’(세계초연)는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위촉 신작으로, 피아노의 화음으로 피어나는 꽃 위에서 플루트의 선율이 나비의 춤을 췄다. 무궁동과 같이 역동하는 두 악기는 생명의 힘을 끌어올리며 회전하는 소리로 서로를 범람했다. 지금까지 달항아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었다면, 마지막 순간은 달항아리로 형상화되어 소리를 멈춰서 시간도 정지시켰다. 4악장이 짧아서 음악의 균형이 맞지 않아 보였지만, 무대에 놓인 달항아리가 피날레의 현현이 됐다.

이후 이신우의 비올라와 피아노, 타악기를 위한 ‘달항아리를 위한 시’(세계초연)가 또 다른 달항아리를 만들었다. 먼저 크리스털 싱잉볼(singing bowl)들의 순수한 진동은 화음을 넘어 하나의 음조(tone)로 융화되었고, 그 지속은 감상자를 점차 영적 세계로 인도했다. “인간의 깊은 내적, 영적 측면까지도 전달할 수 있는 악기”라고 언급했던 현악기(비올라)와 피아노를 더하며, 한국의 느린 춤사위를 소리로 들려주었다. 1악장의 제목은 ‘숨’이었지만 그 소리는 오히려 숨을 멎게 했으며, 육신이 아닌 영의 숨과 내면의 숨소리를 듣게 했다. 모두가 하나가 되는 2악장 ‘결’을 지나, 3악장 ‘불꽃’에서 장구채의 거친 리듬에 비올라가 격렬한 불의 춤을 추었다. 4악장 ‘우주’는 1악장의 음조로 돌아와 영과 내면의 세계를 유영한 후, 5악장 ‘달’에 이른다. 마지막에 세 명의 연주자가 하나가 되면서 비로소 또 하나의 달항아리를 완성하고, 영원히 연주될 것 같은 음악으로 달항아리가 품은 영원성을 찬미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극적 표현보다는 음조의 일치에 초점을 두었다면, 이 곡이 추구하는 영성과 내면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 공연은 이러한 음악 작품들과 함께 도예가 신철의 달항아리 작품 두 점, 그리고 이를 주제로 한 나태주의 새로운 시 낭독이 함께했다. 음악과 미술, 문학이 함께한 총체적 무대였으며, 앙코르 또한 ‘달항아리에 부친 보허자’를 연주하여, 돌아가는 발걸음에 영적 감흥을 흘리지 않도록 마음에 담아주었다.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J&R예술기획

 

 

‘음악과 글쓰기 콘서트-사이회상’

느림의 지루함이 아닌, 명상음악으로의 가능성

2024년 12월 7일 김희수아트센터 SPACE1

 

강태훈(거문고), 고수연(대금), 강서연(해금), 최휘선(양금), 함동우(타악), 심정은(바이올린), 강찬욱(첼로)

조선 선비들이 즐겼다는 풍류에는 음악은 물론 여러 예술이 어우러졌는데, 그중 하나가 시작(詩作)으로 대변되는 글쓰기였다. ‘사이회상’은 음악과 글쓰기가 어우러진 콘서트로, 전통음악의 명상적 요소와 글쓰기 행위가 지닌 치유의 기능을 접목한 공연이었다. 작곡가 김상욱, 작가 구수정, 연출가 이인보가 함께 했다.

공연장에 들어서니 연필이 꽂힌 프로그램북이 배포되었다. 펼쳐보니 공란이 있고, 좌석에도 앉은뱅이책상이 하나씩 배치되었다. 글쓰기라는 ‘참여’를 요하는 노트와 좌석 배치였다. 김상욱은 국악기를 위해 태어난 ‘영산회상’을 바이올린, 첼로와 어우러지도록 했다. 느리게 흐르는 ‘상령산’부터, 흥청거리는 ‘군악’까지 9곡으로 구성된 ‘영산회상’은 곡마다 악기의 종류를 달리하여 연주되었다.

이번 공연은 음악 감상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음악회는 보통 표현자(예술가) 중심이다. 한편 ‘사이회상’은 표현자(작곡가나 연주자)의 작품을 수용한 감상자(관객)가 자기 내면을 성찰하고, 그들이 제2의 표현자(글쓰기 주체)가 되어보는 순이었다. 이 과정을 수행하는 동안 모티프로 삼은 ‘영산회상’의 음악적 특징을 결정짓는 ‘순환구조’도 떠올려 볼 수도 있었다. ‘영산회상’에서, 하나의 곡은 파생곡을 낳으며 여러 길을 걷는 것 같지만, 결국 반복이라는 순환 구조를 통해 여러 곡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선비들은 이러한 ‘영산회상’을 통해 연주와 청취의 흐름을 하나로 엮었고, ‘수양’이라는 최종 단계로 나아갔다.

‘영산회상’을 다리 삼아 만난 동·서양 악기의 접목도 이색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영산회상’의 또 다른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특히 영산회상이 지닌 느린 흐름을 ‘지루함’이 아닌, 명상의 속도로 치환한 기획과 작품성이 돋보였다. 추후 명상음악 콘텐츠로서의 발전 가능성이었고, 음악·미술·무용 등 ‘서양예술’이 중심이 된 예술치료(치유)에 국악이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흐르는 음악과 함께 글을 쓰도록 유도한, 구수정이 기획한 글쓰기 노트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늘날 조선의 여러 문예가 여러 모습으로 복원되고 있다. 특히 음악 분야로 따질 때, 당시의 풍류 문화를 복원하는 데에 있어 선비이자 풍류객이었던 그들이 다룬 고(古)악보 해독과 이를 통한 창작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할 때 ‘사이회상’ 공연은 남다른 복원(풍류+글쓰기)의 방식이 있음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작곡가 김상욱은 국내서 국악작곡을 공부했고, 미국 매네스 음대(석사), 캘리포니아 대학(산타쿠르즈/박사)에서 공부했다. 외국 유학을 통해 그는 전통음악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그러한 시선을 남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설픈 현대음악풍의 실험보다, 전통음악의 내부를 더듬고 다듬어 추출한 소리들로 진지하게 새 곡을 빚는다. 그의 이러한 자세는 한결같아, 이제는 ‘김상욱 시리즈’라고 해도 좋을 작품 계보를 만들어가고 있다. 유학 중에 쓴 판소리를 위한 ‘구음 시나위의 변형’(2018)이나, 서양의 현악 4중주와 국악기(가야금·피리·아쟁·대금)가 만난 ‘법고창신’(2022) 시리즈에서도 민속음악과 산조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여, 이번 공연에서도 원본으로서의 ‘영산회상’을 만남과 동시에 김상욱만의 ‘영산회상’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송현민(음악평론가·편집장) 사진 수림문화재단·박주영

 

 

김영상 작품 발표회 ‘울림의 메아리’

실험과 감성의 기로에서

2024년 12월 10일 서울돈화문국악당

 

김은세(가야금), 홍세인(거문고), 강성우(대금), 최은지·선지우(해금), 김주호(타악), 박민하·강나영(바이올린), 신지섭(비올라), 박윤수(첼로), 최윤지(피아노)

김영상(1993~)은 국악작곡을 전공했다. 국악작곡 부문이 있는 콩쿠르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했으며, 비교적 이른 나이에 실내악부터 국악관현악까지 여러 장을 빠르게 접수했다. 살펴보면 그의 세대를 이루는 젊은 작곡가들은 이전 세대에 비해 자유롭다. 국악작곡을 전공했어도 ‘국악적인 것’만 고집하지 않는다. 오히려 연금술과 야금술로 ‘국악’과 ‘국악이 아닌 것’을 뒤섞고 합금하고, 다시 녹여내기도 한다. 이전 세대 역시 이러한 메소드를 보여줬지만, 그 실험 뒤에 남은 것은 여전히 ‘전통적’ ‘국악적’ ‘한국적’이라는 흔적이었다. 하지만 김영상과 그의 세대는 다르다. 공부의 폭도 넓고, 서양음악을 복수 전공하여 국악에 없는 기법을 취사선택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전 세대가 전통음악과 자신의 연계성을 강하게 드러낸다면, 김영상 세대는 ‘자신’과 ‘감정’과 ‘주관’을 드러낸다.

결론적으로 이번 발표회는 김영상의 전환점 같은 갈림길을 보여준 시간이었다. 실험성이 강한 예전 작품들과 달리 이번 작품들은 편하게 다가왔다. 전작에 비추어 볼 때 실험성보다 감성이, 논리적 기법보다 주관적 상상력의 농도가 짙은 작품들이었다. (프로그램북에 의하면) “마음이 따르는 곳을 들여다” 본 순간이었고, “그곳에서 감응한 것들을 소리로 연결”한 작품들이었다.

인상적인 곡을 꼽는다면 ‘밤의 귀로에서’(가야금·타악기)이다. 국악작곡가들은 전통음악을 이루는 요소나 골자적 선율을 추출해 작곡의 재료로 사용하곤 하는데, ‘밤의 귀로에서’는 씻김굿을 모티프로 했지만, 실제로 씻김굿의 음악적 요소와 흔적은 희미했고, 대신 씻김굿을 바라보는 김영상의 시선과 상상력이 진하게 느껴졌다.

해금과 피아노를 위한 ‘Luminous’(어둠에서 빛나는)도 실험성의 칼날이 무뎌진 것이 아니라, 가슴의 감성도 이제 자신의 음악적 타깃이 되었다는 것을 선언하는 곡 같았다. “사랑의 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감정의 다층적인 흐름과 변화, 그리고 그 내면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탐미”(프로그램 노트)하려는 소리와 시도. 해금과 피아노를 위해 태어났지만, 훗날 해금과 국악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으로 다시 태어나도 좋을 곡이었다.

한편 김영상은 여전히 김영상이기도 했다. 거문고와 피아노를 위한 ‘너머’가 그러했다. 피아노는 해머로 현을, 거문고는 술대(막대기)로 현을 내려치기에 두 악기는 현을 두드려 소리내는 공통점이 있다. 김영상은 불규칙적이고 예측불가능한 소리의 흐름으로 두 악기가 숨기고 있던 타악기의 면모를 과감히 드러냈다.

이번 발표회에서 인상적인 것은 현악 4중주를 활용한 곡들이었다. 현악 4중주곡 ‘유동적 색채’가 문을 열고, 현악 4중주·대금·해금이 함께 한 ‘울림의 메아리’가 막을 내렸다. 두 곡 모두 김영상이 지휘를 맡았다. ‘울림의 메아리’에서는 현악 4중주가 이루는 소리의 물결 위로 국악기 특유의 소리들이 묘하게 포개졌다. 이전의 김영상이라면 이 간극에서 일어나는 트러블의 사운드를 부각시켜 특유의 실험성을 내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동서양 악기가 만든 이접(離接)의 지대를 김영상은 부드럽게 처리해 기존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대가 전환될 때마다 미리 녹음된 김영상의 목소리가 작품 해설을 맡았다. 그 내용도 상당히 문학적이어서, 실험보다 감성으로 그의 작품을 대하게 하는 준비운동처럼 느껴졌다.

송현민(음악평론가·편집장) 사진 더즐더즐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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