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HOT 영국 | 내셔널 시어터 ‘진지함의 중요성’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1월 13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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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시어터 ‘진지함의 중요성’ ~1.25

화려함 속에 담긴 위선

 

오스카 와일드의 시선으로 바라본 19세기 영국 상류층의 초상

 

©Marc Brenner

동상은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그의 성격을 반영하듯, 평범함을 수치라고 여겼던 와일드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커다란 바위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독특한 형태로, 대리석과 녹색, 분홍색, 파란색, 검은색의 돌로 화려함을 자랑한다. 얼굴에는 웃음과 우울이라는 상반된 표정이 동시에 담겨 그의 복합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메리온 스퀘어에 있는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의 동상이다.

슬픔에 잠긴 행복한 왕자

오스카 와일드는 동화 ‘행복한 왕자’를 통해 희생과 사랑의 가치를 그렸지만,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나 희곡 ‘살로메’로 인간 욕망과 파괴를 탐구하며 논란을 불러일으킨 동시에 찬사를 받았던 작가로 기억된다.

재치 있는 말솜씨로 유명했던 오스카 와일드는 결혼해 두 아들을 두었지만, 32살에 17세 소년을 만나며 동성애에 눈을 떴고, 39살에는 옥스퍼드 대학생이었던 시인 앨프리드 더글러스와 깊은 관계를 맺으며 삶을 파국으로 몰고 갔다. 더글러스의 아버지는 아들과 와일드의 관계를 폭로하겠다고 위협했고, 와일드는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나 역으로 동성애 행위가 밝혀지면서 유죄 판결을 받고 투옥되었다. 이로 인해 와일드의 이름은 흥행 중이던 공연에서 삭제되었고, 화려했던 그의 삶은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

1917년 영국은 동성애자 사후사면법을 통해 와일드를 사면했으나, 아일랜드와 런던 모두 그를 기념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늘날의 관객들은 그의 이중생활과 성적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작품 속 행간에 숨겨진 비유와 말장난을 즐긴다. 와일드의 작품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유머를 넘어 인간의 욕망과 위선을 꿰뚫는 날카로운 풍자에 있다. 영국 사회의 변화는 와일드의 이야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고, 관객들은 이를 다양한 시각으로 재해석하며 즐기고 있다.

위선과 사랑의 풍자극

내셔널 시어터는 2024년 연말, 노엘 스트릿필드(1895~1986)의 소설을 무대화한 ‘발레 슈즈’와 오스카 와일드의 ‘진지함의 중요성(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을 선보였다. 와일드의 작품은 2024년 11월 28일 내셔널 시어터 리틀턴 극장에서 정식 개막했다. 극장은 분홍색을 메인 컬러로 사용한 포스터와 프로그램 북, 희곡집, 티셔츠, 우산, 양말 등 화려한 굿즈와 연말을 즐기려는 관객들로 가득 찼다. 공연 시작 전 객석이 어두워질 때부터 관객들은 박수와 환호로 기대감을 드러냈다.

1895년 런던 세인트 제임스 극장에서 초연된 ‘진지함의 중요성’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이어 가장 많이 공연된 희곡으로 꼽히며, 라디오극·영화·오페라·뮤지컬 등으로도 재탄생했다. 극은 두 남성이 가명 ‘어니스트’를 사용하며 벌어지는 이중생활의 소동을 재치와 풍자로 풀어낸다. 와일드는 은유와 위트, 그리고 당시 상류층의 위선을 풍자하며 규칙과 매너에 얽매인 사회를 비판했다.

작품은 잭과 앨저넌이 각각 ‘어니스트’라는 이름을 사용해 자신들이 사랑하는 여성에게 구애하며 벌어지는 소동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앨저넌은 자신이 어니스트인 척 세실리에게 청혼하고, 그웬돌린은 잭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어니스트라는 이름을 든다. 그웬돌린은 “믿을 만한 이름은 어니스트뿐이에요”라는 대사로 그 이름에 대한 집착을 드러낸다. 이 장면은 당시 상류층의 위선과 이름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을 풍자하며 와일드 특유의 재치를 보여준다.

여성들은 자신이 어니스트와 약혼했다고 믿으며 갈등을 빚지만, 결국 남성들의 거짓말을 간파하고 서로 가까워진다. 잭은 핸드백 속 아기로 버려졌던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되고, 그의 본명이 어니스트라는 사실도 밝혀진다. 모든 오해가 풀린 뒤, 등장인물들은 각자 짝을 이룬다.

유머와 진지함의 공존

©Marc Brenner

극은 앨저넌 역의 은구티 가트와(1992~)가 빨간색 드레스를 입고 피아노 앞에서 춤을 추며 흥겹게 시작한다. 남자 배우들은 드레스를 입고, 여자 배우들은 남장을 한 채 피아노를 중심으로 춤을 춘다. 무대는 육중한 아치형 액자 속에서 빅토리아 시대 후기의 상류층 가정의 모습을 잘 꾸며진 거실과 화려한 정원, 꽃밭 등으로 화려하게 재현했으며, 시대적 의상까지 더해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했다.

연출가 맥스 웹스터는 희곡의 섬세함이 무대에서 돋보이게끔 유머를 극대화했다. 잭이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기 위해 책꽂이에서 군대 인명부를 꺼내는 과정에서 책이 알파벳 G, A, Y의 순서로 나온다거나, 나체 조각상을 바라보는 등장인물의 시선과 표정 등으로 끊임없이 관객의 웃음을 유도했다.

배우들의 연기는 과장되어 있었지만, 진지하다고 믿게 할 만큼 능청스럽게 배역을 소화해 냈다. 특히 올리비에 상을 세 차례 수상한 샤론 들로레스 클라크(1966~)는 레이디 브렉널 역을 맡아 수상한 부피감 있는 머리 장식과 화려한 의상, 진지한 어조로 우스꽝스러운 대사를 소화하며 큰 환호를 받았다. 공연 중간에도 대사 끝에 박수가 터져 나올 정도였다.

화려한 무대와 과장된 연기는 현실과 동떨어진 상류층의 가식을 풍자하며 오스카 와일드 특유의 재치와 사회 비판을 담아냈다. 다른 삶을 상상하게 만드는 이야기와 경쾌한 마무리는 연말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 런던 극장의 주류를 포함한 음료 반입 문화는 관객의 호응도를 높이며 극장을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만드는 주요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진지함의 중요성’은 고전적인 작품에 현대적 연출을 더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유쾌한 연말을 선사하는 매력적인 공연이었다.

정재은(영국 통신원) 사진 내셔널 시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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