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아트센터 관장 심규만·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 강수진, 발레와 만난 빛의 예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2월 3일 9:00 오전

CO-WORK

 

강릉아트센터 관장 심규만·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 강수진

발레와 만난 빛의 예술

 

허난설헌의 도시 강릉에서, 미디어아트와 만난 창작 발레 ‘허난설헌-수월경화(水月鏡花)’

 

 

가혹한 자신의 운명을 섬세한 필체로 써 내려간 허난설헌(1563 ~1589)은, 천재적인 재능에도 여성이 재능을 인정받지 못한 시대에 빛을 보지 못하고 스물일곱이라는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 가지와 잎 그리도 향그럽더니

가을바람 잎새에 한번 스치고 가자 슬프게도 찬 서리에 다 시들었네

빼어난 그 모습은 이울어져도 맑은 향기만은 끝내 죽지 않아

그 모습 보면서 내 마음이 아파져 눈물이 흘러 옷소매를 적시네

(허난설헌의 시 ‘감우’)

 

심규만

그녀의 삶과 시를 소재로 한 국립발레단의 창작 발레작 ‘허난설헌-수월경화(水月鏡花)’(이하 허난설헌)가 오는 2월 강릉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덧없는 인생 속에서도 빛나는 예술을 남긴 그녀의 삶을 더욱 입체적으로 느껴볼 기회다.

“공연이 오를 강릉아트센터 근처로 허난설헌, 허균 남매의 향기가 느껴지는 초당동이 근처에 있어 공연 전후에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심규만 강릉아트센터 관장/이하 심)

강릉의 아름다운 호수, 경포호를 거닐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넓은 솔숲이 눈에 들어온다. 숲 안쪽 너머 보이는 고택. 조선시대의 여류 시인이자 비운의 예술가 허초희, 우리에게는 그녀의 호인 ‘(허)난설헌’으로 잘 알려진 이의 생가터다. 그의 오빠이자 당대의 문인이었던 허균과 허난설헌을 기리는 기념 공원으로, 이들은 태어난 강릉에 그 흔적을 고스란히 남겼다. 따뜻한 날씨가 되면 이곳에 피어난 꽃들을 보며 허난설헌의 시문을 읽는 것이 강릉의 대표 관광 코스다.

“강릉의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한 초당의 맛집 투어나, 커피 도시 강릉을 상징하는 테라로사·보헤미안 같은 대표적인 카페도 주변에 있고요. 조금 더 시간을 내어 경포호수를 산책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면 한층 더 강릉을 이해하고, ‘허난설헌’ 공연을 온몸으로 느껴볼 수 있을 겁니다.”(심)

 

고향을 찾은 ‘허난설헌’

‘허난설헌’이 강릉을 찾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초연 당시 호평을 받았던 이 작품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축하 공연작으로 강릉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바 있다.

“난설헌을 소재로 한 공연은 다양한 형태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8년, 동계올림픽 문화 행사를 통해 국립발레단의 ‘허난설헌’을 봤던 때의 벅찬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지역 인물 선양사업의 표본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죠.”(심)

심 관장은 이후로 강릉에서 이 공연을 다시 선보이기 위해 국립발레단과 긴 시간 논의를 거쳤다. 국립발레단의 레퍼토리는 강릉아트센터에 자주 올랐지만, 이번 공연은 강릉 출신의 인물을 소재로 했다는 점, 그리고 한국적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허난설헌이 태어난 곳에서 발레단이 창작한 ‘허난설헌’을 공연하는 것 자체가 이미 협업을 통해 얻은 의미 있는 결과입니다. 강릉 시민의 높은 문화 수준과 강릉아트센터의 추진력이 있어 가능한 공연이죠.”(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이하 강)

“난설헌 허초희는 강릉뿐 아니라, 중국까지도 잘 알려진 시인입니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아이를 잃고 요절하는 등, 개인적 삶은 그다지 평온하지 않았죠. 강릉에 위치한 생가터의 푸르른 소나무는 강릉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현재의 우리 시간 속에서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터를 걸었던 허초희의 삶이, 우리 시대 무대에서 새로운 예인의 모습으로 되살아나 지역의 긍지로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심)

미디어아트를 강화하며, 업그레이드!

강수진

‘허난설헌’은 실존 인물의 삶을 다루고 있다. 공연에서는 그의 시에 등장하는 잎·새·난초·바다·부용꽃 등의 소재를 움직임으로 형상화해 선보인다.

안무는 국립발레단 단원 강효형이 구성했다. 강 단장은 국립발레단(KNB)의 안무가 육성사업 ‘KNB 무브먼트 시리즈’를 통해 그의 안무가로서의 역량을 엿보았고, “중극장에서 선보일 한국적 소재의 작품을 만들라”는 제안을 했다. 이에 강효형이 선택한 소재가 바로 허난설헌. 황병기를 비롯한 국악 작곡가들의 가야금과 거문고 음악을 사용한 이 작품은, 국악과 발레의 성공적인 만남으로 호평받았다.

“국악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아름다움과 희망, 위기, 절망 등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이라 생각합니다. 그녀의 기구한 운명을 발레의 아름다운 움직임을 통해 서정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죠. 국악을 사용하는 것뿐 아니라, 안무와 의상에서도 한국 전통의 느낌을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한복과 가장 서양적인 발레가 만나 일으키는 시너지 효과는 매우 컸습니다. 각 요소가 어우러져 아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죠.”(강)

이번 ‘허난설헌’ 공연이 특별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면, 바로 미디어아트를 통한 리뉴얼이다. 강릉아트센터의 미디어퍼포먼스 시리즈의 세 번째 공연이기도 한 이 공연은 강릉시의 관광거점도시 육성사업의 일환이다. 지난해 11월, 강릉의 한소리전통예술단이 선보인 ‘하슬라의 사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의 유경화 교수와 영상원의 조풍연 교수가 함께 선보인 ‘비손:Two Hands’가 이 시리즈의 앞선 두 공연이었다.

“강릉시는 2020년 관광거점도시로 선정되었고, 올해까지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그중 공연 부분에서는 지역의 전통 문화유산을 활용한 콘텐츠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강릉아트센터는 현시대에 맞는 무대 제작 방향에 대해 고민하며 미디어를 활용한 공연 사업의 확장을 염두에 두었고요.”(심)

마치 운명처럼, 이 사업에 꼭 알맞은 콘텐츠가 된 ‘허난설헌’은 이에 따라 올해 강릉에서 가장 발전된 형태의 재연을 가지게 됐다. 배경으로 활용됐던 정적인 미디어아트는, 무용수들과 함께 움직이며 그 춤을 더욱 부각하도록 재작업 중이다. 음악이 중요한 작품인 만큼, 11명의 국악 연주자의 실황 연주도 함께 진행된다.

“기존의 ‘허난설헌’ 무대의 미디어아트는 한국적인 이미지는 잘 담고 있었지만, 그 사용이 다소 평면적이었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번 리뉴얼에서는 붓으로 그은 선, 푸른 물결, 부용꽃 등 기존의 그림 속 이미지들과 더불어, 새롭게 추가된 이미지들이 무용수의 동작과 함께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며 작품의 서사와 감정을 더욱 생동감 있게 전달할 것입니다. 또한 허난설헌의 내면세계와 감정을 더욱 입체적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작품의 감성과 의미가 풍부하게 전달되리라 생각합니다.”(강)

공연 단체와 지역 공연장의 상생

지역 공연장은 걸맞은 콘텐츠를, 공연 단체는 유수의 작품 재연 기회를 얻는다는 점에서 이번 공연은 공연계 상생의 좋은 예다. 국립발레단 또한 그간 고유의 창작 발레작을 방방곡곡 소개하기 위해 지역 공연장의 문을 부지런히 두드려왔다.

“일반적으로 지역 공연장은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인형’ 등 누구나 다 아는 레퍼토리를 선호하기에, 창작 발레가 공연되기는 어렵죠. 이번 프로젝트처럼 지역과의 협업을 통해 관객에게 다양한 장르의 발레를 소개할 수 있다면, 창작 발레의 레퍼토리화도 더 다양하고 빨라질 것입니다. 국립발레단도 ‘허난설헌’과 함께 ‘해적’ ‘돈키호테’ 등 고유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해적’은 2023년 독일 비스바덴, 2025년 독일 루트비히스부르크의 초청을 받을 만큼 검증된 작품입니다. 해외 유명 안무가 작품뿐 아니라, 우리의 창작 발레에도 지역 공연장들의 관심이 커지길 바랍니다.”(강)

강릉아트센터 또한 올해, 여러 예술단체와의 공동 제작 작품을 앞두고 있다. 지역 대표 축제인 ‘강릉 단오제’를 중심으로, 강릉시립교향악단과 강원특별자치도립무용단이 함께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활용한 창작 무용 작품을 만들 계획. 이 공연에도 미디어아트를 활용한 입체적 요소가 사용된다고.

“뿐만 아니라 강릉 지역의 사계를 표현하는 영상물도 제작 중입니다. 비발디의 ‘사계’를 강릉시립교향악단과 강릉특별자치도립 국악관현악단이 강릉의 사계절로 해석한 특별한 공연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올해는 국립남도국악원 국악연주단의 참여나, 오페라·연극·콘서트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강릉아트센터에 오릅니다. 올해, 강릉아트센터가 강릉을 찾는 방문객에게 편안하게 다가설 수 있는 곳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심)

허서현 기자 사진 강릉아트센터

 

PERFORMANCE INFORMATION

미디어퍼포먼스 ‘허난설헌-수월경화(水月鏡花)’

2월 14~16일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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