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ORD COLUMN
음반에 담긴 이야기
세기 전환기, 프랑스 음악계의 총아들
탄생 150주년(라벨), 서거 100주기(사티)를 맞아 살펴보는 혁신적 음악들
20세기의 마지막을 향해 내달리던 유럽의 예술계는 이전과 본질적으로 다른 혁신에 마주한다. 과거의 관습과는 다른 새로운 예술을 열망하는 이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러한 현상은 지역마다 그리고 예술가 그룹마다 다른 형태를 띠었다. 그즈음은 프랑스 벨 에포크 시대(편집자 주_1871년 보불전쟁 끝부터 제1차 세계대전 발발까지 프랑스의 문화·경제가 번성한 시기)의 한가운데로, 수많은 예술가가 찬란한 문화적 성취를 보이고 있었다. 이 분위기 안에서, 1875년생이었던 모리스 라벨과 1866년생이었던 에릭 사티는 당대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음악의 새로운 형태를 제안한다.
독일의 낭만주의 미학에 직접적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던 프랑스 예술가의 선두는 ‘인상주의’라 불리는 일군의 음악을 구체화한다. 드뷔시의 몽환적이고도 감각적인 음악을 시작으로, 라벨에 의해 보다 정교하게 발전한 인상주의 음악은 세기 전환기의 대표적인 대안적 음악이 되었다.
한편, 인상주의가 ‘음악적 소재의 진보’를 부르짖었다면, 사티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새로움을 꾀한다. 신랄하고 건조하며 풍자로 똘똘 뭉친 음악, 더 나아가 문학적 상상과 음악적 창안 사이를 오간 음악. 괴짜 작곡가 사티는 경악할 만한 제목의 작품을 발표하며 음악계를 충격에 빠뜨린다. 달콤한 음향은 유지하되 ‘음악의 권위주의’를 난타하는 작품을 선보인 것이다.
보수적이면서도 우아한 음악 신사, 라벨
감각적 환상에 치중하는 인상주의는 무정형의 애매모호함을 갖는다. 하지만 라벨(1875~1937)은 인상주의적인 속성과 더불어 뚜렷한 윤곽을 지닌 주제를 활용하며, 명확한 리듬이 지배하는 음악을 썼다. 볼레로, 왈츠, 그리고 파반까지. 세기 전환기에 라벨만큼 춤곡을 진심으로 사랑한 작곡가가 있을까?
그는 박의 반복을 선호했고, 또렷한 형태의 음악을 빚는 데에 열중했다. 라벨이 아직 청년이었을 때 발표한 ‘고대의 미뉴에트’(1895)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1899)(Nimbus)❶ 등에는 전통적인 화성과 형식이 등장하되, 그것을 인상주의적 필치로 다루며,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라벨이 뛰어난 관현악 작업으로 정평이 나 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런 오케스트라 음악들은 드뷔시의 작품처럼 대편성의 관현악을 위해 먼저 쓰진 않았다. 라벨의 관현악곡 대부분은 피아노곡의 편곡이거나, 극장음악 혹은 무용음악이다. 이 또한 오케스트라를 다루는 라벨의 보수적인 측면으로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쿠프랭의 무덤’(DG)❷은 1914~1917년에 피아노를 위해 작곡됐고, 1919년에 관현악 버전으로 재탄생한다. 한편 발레 ‘다프니스와 클로에’(1912)(DG)❸는 라벨 음악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가장 원숙한 인상주의 음악으로 소개되는 이 작품 안에는 색채적 관현악법과 풍성하고 진보적인 화성이 지배한다.
벨 에포크 시대의 끝자락에서 탄생한 라벨의 작품이 보다 인상주의적이라면, 전후 등장한 작품들은 ‘고전파’라는 수식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간결한 형식미를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1914년에 작곡한 피아노 3중주(Decca)❹는 의도적으로 옛것을 부활시키겠다는 선전포고 그 자체다. 그렇게 라벨의 음악은 경계를 확장하며 고유의 색깔을 쌓아 나간다. 1919~1920년 작곡된 ‘라 발스’는 전면에 춤곡이 배치되어 있지만, 이전의 미뉴에트나 파반과는 다른 형태의 작품이다. 형식을 활용하면서도 음향적 확장을 꾀하고 있으며, 시간의 감각 또한 새로운 형태다. ‘라 발스’는 피아노곡뿐 아니라 관현악곡으로, 그리고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도 널리 연주되며 극단의 기교를 과시하는 작품으로 무대에 오른다.
현재까지도 대표적인 관현악 레퍼토리로 사랑받고 있는 ‘볼레로’(1928)(DG)❺는 원시적인 양식의 리듬이 독특한 작품이다. 안무가 이다 루빈슈타인(1885~1960)의 의뢰로 만든 발레음악으로, 1928년 11월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니진스키가 연출한 버전이 초연되며 관객을 충격에 몰아넣었다. 하나의 구상에 대한 집착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독특한 전개를 들려주며, 색소폰과 콘트라바순, 피콜로 트럼펫, 오보에 다모레 등 다채로운 악기 편성이 이목을 끈다. 우아하고 품위 있는 라벨의 작품에 ‘원시주의’라는 표제가 낯설긴 하지만, 그럼에도 클래식 음악사에 길이 남는 관능적인 작품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말년의 라벨은 온건하며 보수적인 성향을 더욱 강화한다. 대표적으로 1929~1931년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들(DG)❻❼은 이전 시대의 협주곡 레퍼토리의 명맥을 잇고 있으며, 형식적으로도 명확하다. 예컨대 피아노 협주곡 G장조, 그리고 단악장으로 구성된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D장조가 대표적이다. 이제 라벨의 작품은 조성을 활용하는 또 다른 길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부드러운 화음에 거친 소리를 충돌시키는 라벨 특유의 비화성음 처리 방식은, 사실상 ‘인상주의’와 ‘재즈 음악’ 그 사이 지점에 있다.
라벨은 드뷔시와 함께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언급되지만, 그의 음악은 생각보다 스펙트럼이 넓다. 수직적인 화성의 처리나 관현악법의 색채적인 성격이 분명히 인상주의를 관통하지만, 전후 작곡된 여러 작품은 라벨 고유의 인간적 기질에 따라 점점 더 간결해졌고, 보수적인 성격과 형식을 최우선으로 하게 되었다.
그리고 말년에는 벨 에포크 시대를 다시 그리워하듯 재즈나 스페인 음악 등의 경향이 다채롭게 나타나며, 일부 원시주의적인 속성까지 포함한다. 라벨은 조성음악의 화성적 아름다움을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인상주의를 탐색했고, 후대 청중에게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형태로 이를 전달한 작곡가로 볼 수 있다.
달콤하면서도 서늘한, 음악의 문제아 사티
에릭 사티(1866~1925)는 젊은 시절 선술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다양한 음악적 자극을 흡수했다. 여기에서 큐비즘 화가들과 상징주의 시인을 만나기도 하며 초기 작품을 쓴다. 대표적으로 ‘3개의 짐노페디’(1888)(Philips)❽는 그의 피아노곡 중 가장 자주 연주되는 작품으로서 느린 춤곡을 연상시키는 우아한 반주와 맴도는 느낌을 주는 화성이 특징이다. 수직적으로는 부드러운 음향이 울리고 있지만, 익숙한 화성 전개 방식은 그 당시 독일의 음악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비슷한 시기에 작곡한 피아노 작품 ‘3개의 그노시엔’(1890)(Warner Classics)❾ 역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이 음악에는 그즈음 개최되었던 파리 세계 박람회의 영향으로 동양적 무드가 담겨 있다.
사티의 피아노 음악들은 목표 지향적으로 빽빽하게 흐르던 과거의 음악과 달리, 조성을 적절히 활용하면서도 전혀 다른 시간성을 창출한다. 이는 사티의 음악이 듣기엔 감미롭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느낌을 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시에 사티가 예술 음악과 통속 음악 그 경계선상에 위치하는 ‘사이의 영역’을 추구했다는 점도 거론할 필요가 있다. 사티의 이런 작업은 ‘일상생활 속의 음악’ ‘가구의 음악‘(Apex)❿ 등으로 불린다. 이는 ’집중된 청취‘를 강요했던 19세기의 고루한 관습에 정면으로 대항한 것으로, 연주회 휴식 시간에 배경음악이 되기를 의도한 음악들이기도 하다. 21세기의 청중에게는 익숙한 개념이지만, 그 당시의 콧대 높은 음악계와 선배 음악가들은 이러한 사티의 혁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해학과 풍자 또한 사티의 빼놓을 수 없는 특징으로 그의 작품 곳곳에는 기존의 전통을 전복시키려는 유쾌한 시도가 나타난다. 21개의 짧은 음악으로 구성된 ‘스포츠와 오락’(1914)(Decca)⓫은 샤를 마르탱(1884~1934)의 그림을 음악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각 단편의 제목은 상식을 뒤흔든다. 그 안에는 ‘밥맛 떨어지는 코랄’과 같은 기이한 제목이 붙은 음악이 있는데 이는 사티 자신이 학습했던 대위법을 비꼬고 패러디한 곡이다.
발레극 ‘퍼레이드’(1917)(Warner Classics)⓬는 사티의 아방가르드적 면모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디아길레프가 위촉하였으며 레오니드 마신(1896~1979)이 안무, 피카소(1881~1973)가 무대 장치와 의상, 장 콕토(1889~1963)가 대본을 써 음악 역사상 가장 화려한 협업으로 기록됐다. 작품 안에서 음악은 보조적인 역할로 한정되기도 하며, 사이렌이나 권총, 타자기 소리 등 소음을 적극적으로 극 안에 배치했다. 프랑스의 샤틀레 극장에서 열린 ‘퍼레이드’의 초연에서 관객들은 이 음악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이 격렬한 스캔들을 계기로 사티는 다다이즘의 선구자로 칭송받게 된다.
사티는 프랑스 6인조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20세기의 대표적 아방가르디스트 존 케이지(1912~1992)가 좋아하는 예술가 중 하나였다. 또한 소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에드가 바레즈(1883~1965)보다도 훨씬 전에 동일한 시도를 하였다. 무엇보다도 음악의 청취 방식이나 미학을 뒤흔드는 문제작을 내놓으며 19세기의 낭만주의가 20세기의 완전히 새로운 음악으로 이행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물론 사티의 음악은 달콤하고 나른하며, 때로는 놀이공원의 한없이 즐거운 무드를 포함한다. 하지만 이런 음악적 소재들은 그의 혁신적인 정신과 미학을 은연중에 설파하기 위한 도구라고 봐야 할 것다.
글 이민희(음악학자·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