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예술영화 기대작 8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2월 17일 9:00 오전

CINESSAY

영화로 만나는 세상과 사람

 

2025년 예술영화 기대작 8편을 소개한다

이 시대의 영화란 ‘무엇’이냐는 물음 앞에서

 

2024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슬로건은 ‘영화관은 죽지 않는다(Theatre is not dead)’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제의 개막작은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전,란’이었다. 온라인 영화관이라는 의미로 넷플릭스를 포함한 OTT의 영향력을 품는 것이 최근 영화제의 현상이다. 코로나 이후 관객들은 굳이 영화관에 가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컴퓨터로, TV로 각자의 공간에서 시간에 맞춰 영화를 소비하고 있다.

‘영화관의 위기’라는 말은 줄곧 영화산업이 흔들릴 때마다 현수막처럼 펄럭대며 영화계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영화는 언제나 특유의 회복력과 자생력으로 살아남았다. 그런데 요 몇 년 사이 서울극장과 대한극장이 실제로 문을 닫았다. 이대로라면 영화관이 정말로 모두 사라지는 날이 오는 것은 아닐까, 이번에는 진짜 위기가 아닐까 걱정하게 된다.

소소한 이야기를 품은 다양성 영화

영화계는 투자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하나의 산업으로 타 예술 장르의 장점을 흡수하고 기술적인 발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그 외연을 확장하며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영화가 예술 장르로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상업 영화의 틈 사이로 아주 작은 이야기를 소중하게 담아내는 ‘다양성 영화’에 지원과 투자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이야기에 도전하고 관객을 설득하는 다양성 영화는 우리 곁의 볕이 되어 반짝반짝 빛난다.

 

 

➊ ‘퀴어’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음악 트렌트 레즈너, 애티커스 로스

‘퀴어’는 퀴어(Queer)를 성 소수자의 이야기가 아닌 큐어(Cure), 즉 치유의 시점으로 끌어올리고 확산시키는 역할을 해 온 루카 구아다니노(1971~)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는 1940년대 멕시코를 배경으로, 다니엘 크레이그(윌리엄 리 역)가 주연으로 출연해 한 퀴어 남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 ‘네이키드 런치’(1959) 같은 문제작으로 유명한 윌리엄 S. 버로스(1914~1997)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➋ ‘베이비걸’

감독 할리나 레인

음악 크리스토발 타피아 드 비엘

네덜란드의 배우이자 작가, 감독인 할리나 레인(1975~)의 ‘베이비걸’은 니콜 키드먼(로미 역)과 차세대 젊은 주인공으로 각광받는 해리스 디킨슨(사무엘 역)이 주인공을 맡았다. 영향력 있는 여성 CEO가 무척 어린 인턴과 불륜을 저지른다는 이야기다. 가정과 경력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젊은 남성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중년 여성의 몸과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낼 것으로 보인다. ‘퀴어’와 ‘베이비걸’은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독립영화의 인장처럼 인식되는 제작사 겸 배급사인 A24에서 배급을 확정 지었다.

 

➌ ‘아틀란티스’

감독 미셸 공드리

음악 퍼렐 윌리엄스, 벤지 파섹

미셸 공드리(1963~) 감독은 ‘이터널 선샤인’(2004) 등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 현실적인 감각을 녹여내면서 회화에 가까운 아름다운 미장셴을 만들어왔다. 지난해 ‘공드리의 솔루션북’(2024)으로 8년 만에 복귀했는데, 올해도 신작 ‘아틀란티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퍼렐 윌리엄스(1973~)가 예술가로 성장하는 데 영감을 준 아틀란티스 아파트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뮤지컬 형식의 성장영화이다. 캘빈 해리슨 주니어(1994~)가 가수·프로듀서·패션 디자이너 등으로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시대의 아이콘 퍼렐 윌리엄스로 분한다.

 

➍ ‘더 브라이드’

감독 매기 질런홀

음악 조니 그린우드

세계적인 배우이자 ‘로스트 도터’(2021)의 감독으로도 명성을 얻은 매기 질런홀(1977~)이 로맨틱 공포 영화 ‘더 브라이드’로 돌아왔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프랑켄슈타인이 자기의 신부를 만들어내기에 로맨스물이기도 하다. 우리가 흔히 괴짜라고 부르는 소수자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적 문제까지 끌어내어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크리스찬 베일(프랑켄슈타인 역)과 제시 버클리(신부 역)가 주연을 맡았고, 배역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제이크 질런홀이 누나를 위해 작품에 출연한다고 한다. 유명 감독들의 진심 담긴 아트버스터 지금부터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유명 감독의 영화를 소개한다. 여전히 작은 이야기와 소수자를 향한 그들의 시선은 변함이 없다. 대중 영화의 틀 안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영향력을 얻은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이들의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그들의 첫 번째 영화에는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 안에 담긴 진심은 지금도 여전히 여운처럼 남아있다.

 

 

➎ ‘미키 17’

감독 봉준호

음악 정재일

2월 28일, 봉준호(1969~) 감독의 ‘미키 17’이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기생충’(2019) 이후 6년 만의 신작으로, 우주 행성 개척을 위해 투입된 복제인간 ‘미키’가 주인공이다. 로버트 패틴슨, 스티븐 연, 마크 러팔로, 나오미 아키에 등 다국적 배우들이 참여한 SF 아트버스터(예술성을 갖춘 블록버스터)가 될 예정이다.

 

➏ ‘어쩔수가없다’

감독 박찬욱

음악 조영욱

‘헤어질 결심’(2022) 이후 3년 만에 돌아온 박찬욱(1963~)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 역시 예측 불가한 작품이다. 미국 소설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1933~2008)의 소설 ‘액스’(1997)를 원작으로 한 코스타 가브라스(1933~) 감독의 영화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2005)를 리메이크한 버전으로, 이병헌·손예진·박희순이 출연한다. 사회문제를 스릴러 장르에 녹여낸 전작을 어떻게 새롭게 해석할지 기대된다.

 

폴 토머스 앤더슨

➐ ‘더 배틀 오브 박탄 크로스’

감독 폴 토머스 앤더슨

음악 조니 그린우드

폴 토머스 앤더슨(1970~) 감독도 부지런히 신작을 선보인다. 깊은 상처를 입은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인간 내면의 불완전성을 완벽한 구도로 보여주는 그의 작품은 그간 정적이고 고전적인 형태를 갖춰왔으나 ‘더 배틀 오브 박탄 크로스’는 그의 영화 중 가장 상업적인 영화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숀 펜·레지나 홀 등이 출연하며, 이번 작품 또한 그의 전작들처럼 배우들의 앙상블이 중요한 구성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➑ ‘부고니아’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가여운 것들’(2023)의 요르고스 란티모스(1973~) 감독은 ‘부고니아’를 선보인다. 이 영화는 장준환(1970~)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2003)를 원작으로 한다. 개봉 당시 국내에서 주목받지 못했으나, 이후 컬트영화로 각광받으면서 미국 리메이크에 이르렀다. 깜짝 놀랄 만한 반전과 실험정신으로 가득한 작품으로, 란티모스 감독의 페르소나로 자리를 굳힌 듯한 에마 스톤이 주연을 맡은 기묘한 SF가 될 예정이다.

 

 

영화관이 죽지 않는 이유

올해는 다시, 왜 영화관을 고집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보는 시간이다. 굳이 영화관을 가지 않아도 우리는 영화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서커스 공연을 위한 빅탑, 오페라와 발레를 위한 오페라 극장처럼, 영화관은 영화를 가장 영화답게 만드는 필수 조건이다. 영화관은 불이 꺼진 후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나의 자유로운 시간을 잠시 접어두어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오히려 그 모든 과정이 즐겁고 신나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기꺼이, 끝끝내, 그 시간을 영화와 나누는 정성스러운 대화라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 영화관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슬로건처럼 죽지 않을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마법의 동굴처럼, 불이 꺼지는 순간과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사이를 잇는 특별한 시간을 선물하며 우리 곁에 늘 살아있을 것이다.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제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영화에세이집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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